절제는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투명함을 위한 것
2025-10-14 01:56:54
“L’artiste ne doit pas rire ni pleurer ; son œuvre doit tout faire pour lui.”
(“예술가는 웃지도 울지도 않아야 한다. 그의 작품이 대신 웃고 울어야 한다.”)
‘사실주의’라고 하면 흔히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과장도, 미화도, 왜곡도 없이, 삶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는 것.
정말로 ‘있는 그대로’라면 왜 플로베르는 감정의 절제를 그토록 강조했을까?
플로베르에게 절제는 단순히 차가운 태도나 감정의 부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감정을 느끼게 하기 위한 기술적 장치였다. 그는 감정을 표현하되, 작가의 감정을 제거함으로써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만들고자 했다.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L’auteur, dans son œuvre, doit être comme Dieu dans l’univers, présent partout et visible nulle part.”
(“작가는 우주 속의 신처럼, 모든 곳에 존재하되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아야 한다.”)
이 문장은 플로베르식 사실주의의 핵심이다. 작가의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면, 독자는 그 감정을 ‘보게’ 되지만, ‘느끼게’ 되지는 않는다. 플로베르는 그 반대를 원했다. 작가가 감정을 지시하지 않고, 대신 인물과 사물의 묘사를 통해 감정이 스스로 흘러나오게 하려 했다.
그가 말한 절제는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정확성의 문제였다. 문체는 수학처럼 정밀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감정의 과잉 표현은 진실을 흐리고, 정확한 묘사만이 인간 내면의 진짜 움직임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문장을 외과의사가 수술하듯 다듬었다. 감정의 본질만 남을 때까지.
결국 절제는 사실주의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주의가 예술이 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곧 ‘무엇을 쓰지 않을지’ 결정하는 일이다. 플로베르의 절제는 작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물과 인물 자체가 말하게 하는 기술이었다.
그가 말한 문체의 예술이란, 감정을 지우지 않고 정화하는 것, 작가의 감정이 아니라 세계의 감정이 독자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가 ‘절제된 문체’라고 부르는 것은 냉정함의 표식이 아니라, 감정의 투명함을 위한 정화의 결과다. 플로베르에게 절제는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순수한 형태로 느끼게 하는 유일한 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