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타난 보바리즘의 개념과 구현
2025-10-26 19:55:04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에 나타난 보바리즘의 개념과 구현
'보바리즘(Bovarysme)’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가 창조한 개념적 인물상에서 비롯된 심리적·철학적 개념이다. 그 어원은 그의 소설 『마담 보바리(Madame Bovary, 1857)』의 주인공 엠마 보바리(Emma Bovary) 의 이름에서 왔다. 이후 이 개념은 문학비평가 쥘 드 고티에(Jules de Gaultier) 에 의해 철학적 개념으로 체계화되었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로서 자신을 상상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근원적 경향”을 뜻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보바리즘은 단순히 ‘로맨틱한 환상’이나 ‘현실 회피’가 아니라, 자기정체성의 분열과 현실에 대한 불만족에서 비롯된 근대적 인간의 내적 병리 현상이다.
<보바리즘의 정의와 철학적 배경>
플로베르 자신은 ‘보바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엠마의 심리 구조를 통해 이미 그 개념을 구현했다. 고티에의 정의에 따르면,
“보바리즘이란 인간이 자신이 아닌 무엇이 되려는 환상 속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성향이다.”
즉, 보바리즘은 ‘현실의 나’와 ‘상상 속의 나’ 사이의 간극이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욕망의 운동이다. 이때 욕망은 결코 충족될 수 없으며, 그로 인한 좌절이 인간을 자기기만과 파멸로 이끈다.
이 사유는 낭만주의적 이상주의에 대한 사실주의적 비판이자, 근대적 주체의 분열된 자의식을 드러낸다. 플로베르는 엠마를 통해 “낭만주의적 상상력의 말로”를 냉정히 묘사하면서, 동시에 인간이 환상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엠마 보바리의 보바리즘적 환상 구조>
(1) 낭만적 텍스트의 내면화
엠마의 보바리즘은 문학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수도원 시절 읽었던 멜로드라마적 연애소설들에 의해 “감정의 언어”와 “사랑의 형식”을 학습한다. 그녀는 현실의 사랑을 체험하기 전에 이미 문학 속 사랑의 틀을 내면화한 인물이다. 즉, 엠마에게 있어 사랑은 실재가 아니라 서사적 모델의 반복이다.
“그녀는 시골의 작은 생활 속에서도 늘 무도회와 고백, 장미빛 달빛과 뜨거운 열정을 꿈꾸었다.”
이 인용에서 보듯, 엠마의 욕망은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텍스트와의 동일화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독자가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를 원한다.
(2) 결혼과 현실의 불일치
엠마는 평범하고 선량한 시골 의사 샤를 보바리와의 결혼을 통해 자신이 꿈꾸던 “부르주아적 행복”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결혼 후 그녀는 일상의 단조로움, 시골 사회의 무미건조함, 남편의 둔감함에 실망한다.
“그녀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행복이란 아마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일까?”
이처럼 보바리즘은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족으로 나타난다. 엠마는 자신이 처한 사회적 조건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가능성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3) 욕망의 대상 전이: 로돌프와 레옹
엠마는 농장주 로돌프, 그리고 젊은 공증사 견습생 레옹과의 연애를 통해 환상을 실현하려 한다. 그러나 이 관계들 역시 지속적인 환멸로 끝난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실은 상대 남성이 아니라 그 남성을 통해 경험하고자 하는 ‘소설적 순간이다.
“그녀는 로돌프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했다.”
이 문장은 보바리즘의 핵심을 압축한다. 엠마의 사랑은 타자지향적이라기보다 자기지향적이다. 그녀는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 상상 속의 ‘나’를 완성하려는 욕망을 투사한다.
(4) 파멸과 자기인식의 결여
엠마는 경제적 파탄과 사회적 추락 속에서도 자신의 환상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녀의 자살은 절망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마지막 환상의 수행이다.
“그녀는 죽음조차 연극처럼 느꼈다.”
죽음마저 연극화되는 이 장면은 엠마가 끝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채, 허구 속에서 생을 마감했음을 보여준다. 플로베르는 이를 통해 낭만주의적 자의식이 결국 현실 감각의 붕괴로 귀결됨을 냉혹하게 드러낸다.
<보바리즘의 문학사적 의미>
보바리즘은 플로베르가 제시한 근대적 인간 유형의 전형이다. 엠마 보바리는 산업화·도시화·소비문화가 등장하던 19세기 중엽, 욕망의 대리만족 구조 속에 살던 부르주아 사회의 산물이다. 그녀의 비극은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시대적 병리이기도 하다.
플로베르는 엠마의 환상을 비판하면서도, 그 속에서 예술가 자신의 내면을 투사했다. 실제로 그는 “마담 보바리, 그건 나야 (Madame Bovary, c’est moi)”라고 말했다. 즉, 보바리즘은 단순히 여성 인물의 비극이 아니라, 현실을 견딜 수 없어 허구 속에서 의미를 찾는 모든 예술가의 운명적 자화상이다.
『마담 보바리』의 핵심 주제인 보바리즘은, 현실을 견딜 수 없어서 이상 속에 자신을 투사하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을 드러낸다. 엠마의 비극은 단지 환상에 빠진 여인의 도덕적 실패가 아니라, 근대적 자아의 구조적 불안정의 표현이다.
플로베르는 엠마를 통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실험하면서, 인간이 ‘사는 것’과 ‘상상하는 것’ 사이의 간극을 섬세하게 포착했다. 보바리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념으로, 미디어·소비·정체성의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기기만을 설명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키워드로 남아 있다.
by Chat GP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