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보바리 3부 누구 엠마를 죽였는가
2025-11-25 22:24:21
쑥맥 같았던 레옹은 3년간 파리물을 먹어서 이제는 파리 대로를 에나멜 구두로 밟아보지 못한 자들을 우습게 여기는 도시 청년이 되었고, 시골 의사의 아내인 엠마 정도는 유혹해 내리라 자신하죠. 둘의 불륜은 파리 시내를 종횡으로 달리는 좁고 무덤 같은 흔들리는 마차안에서 격정적으로 시작합니다. 성당지기의 지옥불 속의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외침이 이미 연애의 파국을 예언하는 듯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던 "번개처럼" 찾아온 격정적인 사랑은 엠마가 혐오하던 결혼 생활만큼이나 진부해집니다. 일탈이 일상이 되면 더 이상 일탈이 아니게 되지요.
하지만 엠마의 목숨을 앗아간것은 사람의 패배나 열정의 소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부채때문이었죠. 뢰르라는 19세기 신흥 부르조아의 전형적 경제 행위자를 통해 플로베르는 당시 소비 자본주의의 구조적 착취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엠마의 파국은 엠마 개인의 허위의식에서 비롯되었으나 동시에 무모한 이상을 좇게 만드는 당대 여성의 사회적 한계와 주변 남성들의 무심함, 이기적 행위에 몰린 결과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주의 작품이라서인지 도덕적 응징, 구원의 서사 같은 것은 1도 없는 결말을 보여줍니다. 보바리 가문은 비극으로 사라지고, 가장 비열한 뢰르는 신흥 마차 사업으로 성공하며 기회주의자 약제사 오메는 오매불망 원하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게 됩니다.
플로베르는 '내가 보바리다'라고 말했다고 하죠. 어쩌면 우리도 보바리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인간은 크든 작든 자신이 아닌 어떤 것이 되고자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광고 속 모델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 소비를 통해 자기를 정체화하는 것, 자기서사에 타인의 시선을 반영하는 것 등 우리가 알아차리지도 못 하는 사이에 우리에게 스며들어 작동하는 욕망이 보바리즘이 아닐까 합니다.
마담 보바리를 읽으며 플로베르의 문체에, 유머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즐거운 독서였고 생각하고 분석하는 과정 역시 풍요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다른 소설 감정교육도 읽어보고 싶어졌고, 마담 보바리도 몇 년 후에 다시 읽어보면 그때 또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하는 기대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