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의 숲에 나란히 눞다
2025-12-02 13:06:40
여자는 네 살에 이미 음성학적으로 모음의 첫소리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할 정도로 언어에 예민했습니다. 모국어가 지닌 완전함과 불완전함, 모호함, 그리고 사람들이 모국어로 만들어내는 소리와 의미들이 그녀에게는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는 언어’ 즉 폭력적 언어로 다가와 그녀를 공격했습니다. 17살 여자는 첫 침묵 속에서 솜처럼 포근한 안식처를 찾게 됩니다. 그러다 비블리오테크라는, 미지의 언어인 프랑스어 단어를 통해 다시 발화를 시작하지요. 두 번째 실어는 외부적 요인뿐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여러 요인들이 겹쳐서 찾아오는데, 여자 자신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침묵은 첫 번째와 달리 더 이상 따스하지도, 농밀하지도, 밝지도 않으며, 첫 침묵이 출생 이전의 것이었다면 두 번째는 죽음 이후의 것과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즉, 엄마의 태 속 따뜻함과 무덤 속 관의 차가움을 대조적으로 느낍니다. 저는 두 침묵 모두 그 자체로 sanctuary, 즉 피난처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피난처란 외부의 속박으로부터 보호받는 장소이지만, 다른 말로 하면 외부로 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는 보르헤스의 묘비명으로 소설을 시작합니다. 보르헤스가 실명했던 사실과 남자 주인공의 연관성을 남자의 입을 통해 반복적으로 소환합니다. 또한 여자가 첫 침묵에서 세상으로 돌아오게 만든 단어가 bibliothèque, 즉 ‘도서관’이라는 점은, 생전에 도서관장이었던 보르헤스와 그의 저서 『바벨의 도서관』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합니다.
실어와 실명은 두 사람 사이 그리고 각각 여자, 남자와 세상 사이에 놓인 단절 즉 칼과 같았지만, 마지막에 이뤄진 둘 사이의 접촉—손끝에서 시작되어 입술까지 가닿은—은 남자가 요아힘과 나누지 못했으나 나누었어야 했던 ‘힘찬 포옹’의 구현이었으며, 흑점이 터질 만큼 커다랗고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흑점의 폭발이 소리 없이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두 사람의 심장과 입술이 결국 영원히 어긋나서 그들이 서로의 완벽한 구원자가 될 수 없을 지언정 적어도 심연의 숲에서 나란히 누워 결국은 같이 설 수 있는 존재로 남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여자는 첫 음절을 발음하는 순간, 힘주어 눈을 감았다 뜬다. 눈을 뜨면 모든 것이 사라져 있을 것을 각오하듯이.”
만약 정말로 모든 것이 사라져 있다면, 요아힘의 말대로 0의 이데아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이 스물두 번째 장이 아니라 ‘0’으로 표기되었다는 사실, 즉 0이라는 형식을 부여했다는 사실은 요아힘의 주장—0 이하에는 본질도, 이데아도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소설은 0에 형태르 부여함으로써 소멸(언어의 상실이든 시력의 상실이든)에도 하나의 서사가 깃들고, 심지어 하나의 이데아가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단어마다 문장마다 의미와 상징을 담고 있는 깊이 있는 아름다운 시적산문의 대표적 작품입니다. 감정의 바다에 굵고 성긴 그물을 던져놓고 큰 슬픔을 낚는 듯한 한강의 작가의 희랍어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