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들이란 제각각 생명을 가지 고 있기 때문에요, 영혼을 깨우기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2026-01-08 00:12:37
“물건들이란 제각각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요, 영혼을 깨우기만 하면 다 되는 겁니다.”
소설 속에서 이 문구가 가지는 의미는 분명 클 것이다. 하지만 아직 책을 읽어가는 중인 나는, 우선 이 문장 자체가 품고 있는 의미를 붙잡아 보고 싶다.
물건이 제각각 생명을 가진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의 생물학적 생명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의미와 잠재성의 생명으로 이해하는 편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불교의 연기 사상에서 말하듯, 어떤 것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고정된 자성을 갖지 않는다. 모든 것은 관계 속에서 잠정적으로만 존재한다. 고대의 애니미즘 역시 사물에 영혼을 ‘부여’했다기보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내려놓고 세계 전체를 상호 주체들의 장으로 바라보려는 태도에 가까웠다.
충분히 과학에 눈뜬 현대인이 그런 ‘믿음’을 가질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물건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대체로 사람 역시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사물에까지 존중의 시선을 확장한다는 것은, 세계를 살아가는 가장 고결한 태도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결국 이 문장은 세계가 이미 살아 있다고 주장하기보다, 우리가 세계를 어떻게 ‘깨울 것인가’를 묻는 질문처럼 읽힌다. 그런 감수성을 공유하는 사회라면 최소한 덜 잔인하고, 덜 무심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물론, 아이러니하게도 그 존중이 사랑이 되고 집착이 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석유와 가스, 희토류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 사랑을 빼앗으려 전쟁을 시작하는 인간들처럼. 베네주엘라를 침공한 트럼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