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사육제 - Carnival 과 Cannibalism 에 대해서
2026-01-17 16:33:36
어둠의 사육제라는 제목에 대해서
사육제를 카니발 carnival 이라고 하지요. 식인은 카니발리즘 cannibalism 이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같은 단어를 공유해서 저는 카니발이라고 하면 식인부족들이 제물을 앞에 두고 춤을 추는 제식행위에서 발전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카니발은 고기를 먹어치운다는 의미로 40일간의 금욕기간인 사순절 전에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으며 즐기는 방탕한 축제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문제는 차이를 알게 된 후에도, 아마도 날고기를 먹는 장면이 상상되어서인지 식인부족이 불을 피워놓고 그림자를 드리우며 춤을 추는 모습이 같이 겹치곤 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제게는 이 소설에서 카니발과 카니발리즘의 이미지가 계속 겹칩니다.
"어둠이 베어 먹다 말고 뱉어 놓은 살덩어리 같은 달이 떠 있었다. 이지러진 달의 둥근 면은 핏기 없이 누리끼리했고, 베어져 나간 단면에는 검푸른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그 깊숙한 혈흔을 타고 번져 나온 어둠의 타액이 주변의 천체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치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날짐승이 도시를 한 입씩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낯익은 어둠의 창날이 명환의 얼굴과 몸뚱이를 날카롭게 베어내리고 있었다"
"명환은 이 자리에서 어둠 속에서 노려보고 있곤 했다. 명환의 눈빛은 주술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명환의 몸뚱이는 지척에 있었지만 그의 혼은 알지 못하는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어떤 사람이 죽어 있어"
"----더 견딜 수 없어서 죽였어."
이 도시의 어둠은 누군가에게는 반짝이고 아름다운 불빛을 주지만 대개는 무언가를 삼키고 베어물고 뱉어내고 상처를 내는 날짐승 같은 포식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런 포식자가 없는 햇빛이 가득한 낮을 견디지 못합니다. 유월의 기류는 유황가스처럼 숨통이 막히고 혈관이 뜨거워질 정도의 미친 여인 같은 태양이 있어서 헐떡일 수 밖에 없는 피곤함입니다. 햇빛은 따스한 존재라기 보다 '얼음가루' 같고 '쏘는 듯'하며 '깨어진 술병조각'처럼 날카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밤은 "이제 모든 것을 용서받은 것처럼 더 이상 죄지을 필요도 뉘우칠 필요도 없는 생기"를 품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둠은 낮의 햇빛보다는 숨을 틔우는 존재이기에 포식자임에도 불구하고 낮보다 덜 폭력적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포근한 것 만은 아닙니다. 불빛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혼돈스러움이 공존하죠. 그래도 어둠은 끝까지 몰린 빈자들에게 허용된 마지막 안식처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