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멜랑콜리 2
2026-01-17 23:23:39
오늘까지 읽은 부분은 에스테르 교수의 집에서 시작해 바깥으로 나갔다가 다시 교수의 집으로 돌아오는 공간 이동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병과 세상에 대한 환멸로 은둔한 에스테르 교수가 세상과 연결되는 통로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하레르 부인과 날마다 와서 잔일을 무료로 도와주는 벌루시커입니다. 에스테르 교수에게 눈 생성 공정이 없는 임무를 중단한 자연은 이미 파멸한 세상의 증거이며, 달에 도착했다가 다시 돌아온 인간의 역사는 실패의 기록입니다. 그렇듯 이미 세상이 종말이라고 여기는 에스테르는에게 천사가 있음을 방증하는 존재가 바로 벌루시커입니다. 에스테르는 나비학자가 희귀한 나비를 보듯 벌루시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벌루시커는 전 아내의 편지를 가지고 옵니다. 청결사업을 책임지고 맡지 않으면 당장 저녁을 먹으러 오겠다는, 다시 함께 살겠다는 협박입니다. 이 요구에 굴복해 집 밖으로 나선 에스테르 교수는 종말의 냄새를 풍기는 도시의 모습에 충격을 받습니다. 도로 구분 없이 쌓여 있는 쓰레기와 도시를 점령한 듯한 길고양이들. 길에서 만난 세 사람에게 얼렁뚱땅 자신의 임무를 넘긴 뒤, 에스테르 교수는 이 무질서한 상황 속에서 벌루시커가 가장 취약한 존재일 수 있음을 처음으로 자각합니다. 이 지점에서 그는 지적인 관찰자의 위치에서 이제는 실질적 보호자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홀로 집에 돌아온 에스테르는 빗장과 덧창을 만드느라 못에 망치질을 하는 과정에서 이성과 추상적인 철학이 아닌행동을 통해 체득되는 지혜에 도달하는 혁명적인 생각을 경험합니다. 그렇게 사물에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보금자리를 단단히 꾸미고 벌루스커를 기다리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다음 날 나타난 사람은 하레르 부인이었습니다. 태곳적 얘기부터 늘어놓는 듯한 이 아주머니의 기나긴 이야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에스테르 교수는 병든 몸에도 외투를 챙겨 망설임 없이 다시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벌루스키가 폭도들의 명단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나간 집에 홀로 남겨된 하레를 부인은 에스테르가 완성한 요새 - 안덧창을 보고 한마디를 남기죠 ‘이런 일은 밖에서 했어야지, 이 안에서가 아니라!’ 덧창을 바깥에 설치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의 노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를 드러내는 말로도 읽힙니다.
그 외에도 에스테르에게 인생을 바꿀 만한 일이었던 음악의 순정률과 평균율(모임에서도 꽤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서커스 단장과 대공의 대화를 엿들으며 그제서야 붕괴를 직감하게 되는 벌루스커가 결국 에스테르를 지키려 그의 집앞에서 보초를 서다 폭동의 무리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에피소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