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의 멜랑콜리 3
2026-01-28 12:40:21
아직도 이름을 못 외우는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작품 저항의 멜랑콜리를 마쳤습니다. 마지막 3장은 인물별로 진행된다고 봐도 되겠네요.
폭도들에 껴서 폭력과 그 기록을 보면서 자신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속세의 현실을 깨닫는 벌루시커가 먼저 나옵니다.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한채 폭도들과 동행하는 중에 벌루시커는 우주의 질서의 선을 믿으며 살았던 자신이 얼마나 환상속에 살았나를 깨달으며 비늘이 벗겨지는 각성을 하고 세상은 절대적인 권력을 쥔 강자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며 그 안에서 자신의 자아는 무(無)로 졸아든 실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러며 주변인들과의 과거를 잊고 관계를 끊어내고자 하는 고립의 전조를 보입니다.
다음장은 자신이 보호하기로 마음먹은 벌루시커를 찾아나선 에스테르 박사의 에피소드입니다. 사람들에게 벌루시커의 행방을 묻지만 사람들은 답변을 거부하며 석연찮은 태도를 보입니다. 혹시나 벌루시커의 죽음을 암시하는 그의 소유물을 발견할까 두려워 하면서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다 벌루시커의 어머니이자 소설 시작을 담당했던 플라우프 부인의 주검을 맞이합니다. 멍청한 아들의 귀를 끌어 데리고 오려 나갔던 부인이 농락을 당하고 교살을 당한 것이었죠. 벌루시커의 주검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시청으로 간 에스테르는 그곳에서 관군들이 폭도들을 심문하는 과정을 목도하게 됩니다. 그곳에 부재한 벌루시커에게 군법재판 대신에 정신병원행이 내려집니다. 벌루시커의 무죄를 타원하러 간 에스테르였지만 정신병원행이면 그래도 살아는 있으니 다행이라 여기며 에스테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곳에서 에스테르는 안에 덧대어 놓았던 바리케이트를 치워버립니다. 열린 창을 통해 고장나버린 자신의 손목시계 대신 시계탑의 시간을 보고 맞춰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토록 집착해왔던 순정률 대신에 평균률로 조율한 피아노로 바흐를 하모니에 맞춰 연주합니다. 그 후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벌루시커에게 날마다 면회를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옵니다.
마지막 장은 결론 추도사라는 소제목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14일만에 별것 없는 무슨 위원장에서 그 마을의 최고 권력을 지닌 자가 되어버린 에스테르 부인이 나옵니다. 그는 관군의 중령에게 한눈에 반하며 처음 사랑의 감정을 갖고 그와 관계를 맺게됩니다. 중령이 다시 방문해주기를 바라긴 하지만 그런 사랑조차도 부인의 권력에 대한 갈망을 늦추지는 못합니다. 플라우프 부인의 죽음을 열사로 둔갑시켜 군중의 감정을 고양하는 추도사를 정치적 선전으로 능숙하게 이용합니다. 쓰레기를 치워 '깔끔한 정원 말끔한 가정'로 만들고 질서를 잡아나가고 경제도 부양시키는 그는 등장인물 중 가장 유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읽는 독자는 숨길 수 없는 그의 독재자적인 모습을 느끼며 곧 다가올 전체주의적 사회를 떠올리게 됩니다.
에스테르는 평균률로 타협하는 세상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자연의 법칙, 진리인 순정률로 음악을 연주하는 - 비록 그것이 속죄일지라도 - 것으로 저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항은 벌루시커를 면회하기 위한 준비, 바리케이트를 없애고 창을 열어 시계를 맞추고 피아노를 평균률로 다시 조율해서 바흐의 곡을 조화롭게 연주함으로 세상과 협상하게 되는 것으로 끝이납니다. 즉 그의 저항은 실패했습니다. 벌루시커는 존재자체가 저항이었습니다. 천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선이었으나 폭동을 통해서 그 선함이 깨지고 자아가 없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결국은 정신병원에서 무기력하게 정말 정신병자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도 따져보면 이상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저항도 성공하지 못합니다. 라슬로의 세상은 그런 저항이 성공할 수도 끝내 존재할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패배적인데 분노하지 않고 비관적인데 비탄에 잠기지 않고 허무의 심연에서 실존이나 혁명을 좇지 않습니다. 대신 질서의 왕국이 해체된 후에 남는 영원한 혼돈을 주시하고 세상의 부조리를 인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할 수 있는 다라고 무언의 선언을 하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