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 흑 2부 31-45
2026-02-03 13:23:25
쥘리앙은 코라소프 공작에게 전해받은 밀당의 연애기술로 마틸드를 완전히 사로잡게 되고 결국 마틸드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분노하던 라 몰 후작도 사랑하는 딸의 미래를 위해 쥘리앙에게 귀족의 이름과 영지를 내어주고 둘의 결혼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러나 레날 부인에게서 온 한통의 편지가 이 모든 것을 수포로 돌립니다. 쥘리앙을 귀족 영애를 유혹해 부와 명예를 노리는 비열한 탐욕가라고 비난한 편지였습니다 (교구 신부의 강압아래 편지를 베껴 썼다고 하죠). 이에 큰 모욕을 느낌 쥘리앙은 바로 베리에르로 내려가 일요일 성당미사에 참석한 레날 부인을 총으로 가격하게 됩니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쥘리앙은 본인이 저지른 죄값을 사형으로 치루리라 기대하는데 레날 부인이 어깨 부상만 당했을뿐 목숨에 지장이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자 새삼 레날 부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진실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마틸드와 진정한 친구인 푸케가 모든 수단(돈, 인력)을 동원해 배심원들이 쥘리앙에게 무죄를 선언하도록 일을 꾸며놓습니다. 레날 부인도 배심원들에게 쥘리앙이 얼마나 영리하고 신앙적인지 설명하는 탄원서를 보냅니다.(아이러니 하죠...처음부터 라 몰 후작에게 그 편지를 안보냈으면 되는데)
재판 당일에도 많은 인파가 몰리고 쥘리앙의 수려한 얼굴과 변호사의 언변에 재판정의 많은 인물들이 쥘리앙을 동정하고 분위기가 무죄로 흘러가는 듯하였으나 (이렇게 끝나면 너무 헐리우드겠죠 ㅎㅎ) 피고 쥘리앙은 소신 발언을 합니다.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 즉 '운명에 반항한 일개 농부'가 운 좋게 좋은 교육을 받고 부유한 자들의 사교계에 대담하게 끼어들고자 한 것이 진짜 죄인 것이었다는 발언을 합니다. 즉 이것은 신분상승을 꿈꾸는 하층 계급의 용기를 꺾는 사회적 징벌인 재판이라고 비판하며 설상가상 농민은 없고 부르주아들로만 이우러진 배심원단의 편향성을 지적하고 맙니다. 프랑스 복고 왕정 시대의 계급 고착화된 당대 사회에 스탕달이 말하고 싶었던 메세지였나 봅니다. 이런 작가의 회심의 발언 덕분에 주인공인 쥘리앙은 사형선고를 받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게 됩니다. 마틸드는 상복을 입고 기념했던 자신의 선조의 머리를 들고 갔던 마르크리트 왕비 전설을 재현하게 됩니다. (드디어 그녀의 비극적 영웅 서사가 완성되었습니다!) 레날 부인은 쥘리앙의 죽음 후 3일 후에 (아마도 슬픔과 정신적 충격 때문에?) 죽고 맙니다.
영리하고 잘생기고 야심찼던 우리의 쥘리앙은 사실 열정의 포로였나 봅니다. 그의 야심조차 열정의 한가닥이었고, 임무나 자존심으로 시작했던 그의 사랑은 때때로 말 그대로 목숨을 걸 정도로 정열적이었습니다. 그런 불같은 성격으로 감옥에 갇혔는데 생의 마지막이라는 시기가 갖는 무게감 때문인지 갑자기 성숙해진 그는 그러한 열정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토록 싫어했던 베리에르 작은 마을에서 부족하나마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소득으로 소소한 삶을 사는 것이 이제야 의미가 있어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죠. 그래도 끝까지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쥘리앙은 평면적이지만은 않은 나름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진 것 같네요.
시몬는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에서 스탕달을 진정한 페미니스트적 시각을 가진 작가로 분류했다고 하는데, 역시 여성 캐릭터들의 주체적 역할과 타자화되지 않은 여성상이 당대의 고전들과 비교되는 지점입니다. 전략적이고 심지어 교묘히 주위사람들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던 레날 부인이 신부의 강압에 자신의 의지를 저버린 여인으로 묘사된 것이 개인적으로 아쉬웠지만 마틸드의 강한 성격을 마녀적으로 몰아버리지 않고 (비록 부정적이지만) 표현한 것 등이 보봐르의 견해에 동의되는 부분입니다.
고전이라서 살짝 흐린 눈으로 지나치는 부분도 있지만 고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인간 감정의 역사적 파편들이 고전을 읽는 이유 아닌가 싶은데요. 적과 흑도 그런 작품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