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2026-04-21 11:44:33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의 저자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문학상도 거부한채 은돈자의 삶을 살고 심지어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지인들은 친구나 가족이라도 절교한다는 기이한 작가라고 합니다. 그런 철저한 침잠이 이런 특이한 어쩌면 변태적이라고 까지 느낄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밑거름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파리의 가장 악취나는 곳에서도 오물과 생선대가리 속에 버려진 아기 그루누이는 울음을 '선택'함으로써 어머니를 사형장으로 보냈으며, 사랑대신 생명을 선택했습니다. 작가는 그 갓난아이가 괴물로 태어났고, 오로지 반항심과 사악함 때문에 생명을 선택한 것이라고 기술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는 그르누이는 태어나서 그저 울었을 뿐이었습니다. 가장 인간적인 행위였을 뿐이었단 말이죠.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이 전지적 작가가 그르누이가 괴물이라는데요. 자신이 체취가 없는 인간이란 것을 알아채고 느끼는 공포와 그것을 가려보겠다는 궁극적인 목표가 결국에 이루어졌는데 바로 그 성공의 순간에 그 향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에서 또다른 실존의 한계를 깨닫게 됩니다. 무취의 자신 즉 증오로 뭉쳐진 자신을 증오로 보아줄 타자가 한 사람도 없다는 절대적 고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자신이 스스로 택했던 7년의 동굴속에서의 환상의 자줏빛 성과 같은 고독이 아닌 인생을 뒤흔드는 존재의 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뜯어먹히게 하는 타살적 자살을 택했던 것이겠죠. 카뮈가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자살이라고 했는데 그르누이는 삶이라는 부조리에 반항을 택할 만큼 자아가 건강한 사람도 자존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인간이 되기를 갈망했을 뿐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인간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어떤 존재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 중의 하나로 인식이 안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아 이렇게 말하고 보니 그르누이를 위해서 연민의 눈물 한 방울 정도는 빚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드네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유미주의적 글은 언제나 읽는 재미가 있죠. 저는 철학적 문제를 너무 어렵게 끌고 가지 않은 면도 좋았습니다. 생각할 거리, 이야기 할 거리를 많이 주는 책인 것도 좋았고요. 쥐스킨트의 다른 작품들도 흥미가 가더군요. 좀머씨 이야기라는 또 다른 유명한 책도 있고 비둘기, 콘트라베이스 등등 더 읽어보고픈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