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요.(시그리드 누네즈)
이 소설은 형식이 좀 독특합니다. 작은 소챕터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하나의 메인 이야기가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동시에 각 장마다 다른 얘기를 끌어와 특정한 주제를 다룹니다. 또한 그 안에 스릴러 장르 소설이 액자구성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분량이 많지 않은데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이 들어있습니다. 주요 줄거리는 화자가 암에 걸린 친구를 방문하고 그 친구가 화자에게 안락사의 마지막을 같이 보내달라는 부탁을하고 그에 따른 일련의 과정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도 현대를 사는 여성들이 가부장적 행위를 대하는 모순된 반응 및 관점들과 노년, 특히 여성들의 노화와 그로인한 불편한 현상들을 냉소적으로 그려냅니다.
이 흩어진 이야기들을 묶어주는 하나의 주제는 바로 책의 모티프인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유의 말 "이웃을 향한 온전한 사랑은 '당신은 무슨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Quel est ton tourment?)'라고 물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입니다. 그렇게 묻는 이유는 그들이 나름대로의 고통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인생들이라서 입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모든 인물들에게 계획대로 되어 가는 일은 없습니다. 멸망해가는 지구를 지키려는 지식인 남자는 반출생주의자여서 자신의 3번째 손자가 생겼다는 소식에 탄식을 합니다. 안락사를 하려는 친구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이 키워준 조부모와 자신을 멀리하자 차라리 부모님을 기쁘게 할 다른 자식 하나를 더 낳았어야했다는 기묘한 논리를 불러옵니다. 안락사를 위해 얻었던 AirBnB에서는 욕조가 넘쳐 흘러 그만 나와야 했지요.
그런데도 마지막은 포크너가 말한 보편적 진리 -사랑과 명예와 연민과 자부심과 공감과 희생—을 위해 애를 썼다며, 실패해도 상관없다고 하면 끝을 내는데요, 이게 냉소적으로 들리지 않고 어느 정도 내려놓은 안정된 느낌을 줍니다. 소설속의 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안타깝고 우울한데, 이상하게도 읽고나면 그냥 덤덤히 일상을 터벅터벅 걸어 갈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을 깨닫게하거든요. 특이한 소설입니다. 가독성이 엄청 좋지는 않은데 재미있게 읽힙니다.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할머니 작가의 다른 책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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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What are you going through 시그리드 누네즈
2026-05-19 02:11:00“인도 북동부 지역의 보도Bodo 종족이 사용하는 언어인 보도어에는, 서로를 향해 품고 있던 사랑이 지속되지 못할 운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의 사무치는 감정을 나타내는 ‘온스라onsra’ 라는 단어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뜻을 그대로 옮길 영어 단어가 없었기에 ‘마지막 사랑’으로 번역되었다. 오해의 소지가 있다. 영어 사용자 대부분은 ‘마지막 사랑’을 마침내 만나게 된 진정한 사랑, 영원히 지속될 사랑으로 이해할 것이다. 캐럴 킹의 노래 <마지막 사랑>도 그렇지 않은가. 처음 온스라라는 단어의 뜻을 알았을 때 난 그 뜻이 완전히 다른 의미라고 보았다. 너무나 압도적인 사랑, 너무나 강렬하고 깊은 사랑을 경험하여 이후로 결코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
『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