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미겔 데 우나무노)
2026-06-23 10:57:20
서문이 있고 그 서문의 저자를 저격하는 실제 저자(와 이름이 같은)의 서문이 있는 이상하고 헷갈리는 시작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그 후 일련의 이야기들은 주인공 아우구스토가 에우헤니아를 향한 짝사랑을 중심으로 여러 가욋 에피소드들로 구성됩니다. 끝에가서는 아우구스토가 실제 작가인 우나무노를 찾아가 자살에 조언을 구하려했을때 우나무노가 자신이 창조주인 작가이며 아우구스토는 소설의 허구적 인물이라 존재 자체가 없으니 자살을 못 한다고 말하죠. 이때 우리의 주인공 - 그동안 이러저리 휩쓸리던 호구선생 아우구스토가 갑자기 생존권을 주장하며 자신의 창조주에게 대들어버립니다. 우나무도 조차 더 큰 존재의 피조물이고 역시 허무로 돌아갈 것이라고..
그에 관한 복선은 이미 앞에서 노벨라(소설)을 니볼라(소셜)이라며 설명하는 빅토르의 말을 듣고 난 후 아우구스토가 독백으로 표현 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내 삶은 소설인가 소셜인가, 아니면 그 무엇인가? 나와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현실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이 모든 것은 신 아니면 누군가의 꿈은 아닌가? 그래서 그가 깨자마자 사라져 버릴 것은 아닌가?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잠들게 하고 꿈꾸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기도하고 찬미의 노래로 경배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종교의 모든 예배와 의식은 신이 깨어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꿈꾸도록 하기 위한 방식은 아닌가?"
종교 의식으로 신을 잠속에 가둬 우리의 존재를 지속시킨다는 상상은 잠시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이 문장만으로 하나의 소설이 탄생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멋진 상상력이라고 느꼈습니다.
우나무노는 이 책을 통해 확실한 실체 대신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무는 것 같은 "안개" 같은 효과를 선사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꿈일수 있을까요? 우리의 자유의지는 이미 정해진 문장은 아닐까요? 아우구스토처럼 이런 존재에 대한 의구심과 불안이 생생한 실존의 감각을 일깨울 수 있을까요? 이 책을 읽는 독자도 다 죽을 것이라는 아우구스토의 저주(?)를 읽으며 '그럼~ 사람은 다 죽지' 라고 웃고 넘어간 저는 이 책에서는 그 명제를 동어반복의 순환론의 오류라고 일축해 버렸지만 역설적으로 데카르트의 Cogito, ergo sum 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