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설을 계속 읽을 수만 있다면...!
2025-12-16 17:22:29
오랜만에 읽은 범죄/추리소설. 마이클 코넬리는 이 장르에서 (나만의) 최고 작가인데, 2013년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로 이 작가를 처음 접한 이후 12년 동안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의 작품엔 내가 소설에 바라는 거의 모든 것, 가령 완벽한 기승전결, 뚜렷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심리묘사, 사건을 정확히 전달하는 필력, 무엇보다도 재미, 재미, 재미! 까지, 그 모든 게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크로싱』은 10년 가까이 기다린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2015년 출간 다음 해에 영어 공부와 덕질 모두를 잡겠다며 덥썩 원서를 사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실패했고, 이제서야 작품을 읽게 된 것이다. 기다리느라 강제 탈출한 안구를 주워 담은 후에.
운 좋게 서평단에 당첨되어서 우리나라에서 (거의 제일) 빨리 읽게 된 『크로싱』, 그 초반부는 다소 실망이었다. 진작 출간된 두 권의 미키 할러 시리즈 『변론의 법칙』과 『회생의 갈림』에서 공개된 설정이 이 작품 초반부의 긴장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작가와 출판사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원서를 읽을 수 없는 내 탓이라 생각하자).
그 정도 아쉬움을 털어내고 초중반을 넘어가면, 이 작가 특유의 매력이 넘쳐나기 시작한다. 읽을 때마다 경찰관 체험을 안겨주는 해리 보슈의 수사 디테일은 방금 건진 방어처럼 생생하고, 사건 해결에 필요한 ‘떡밥’을 던지는 타이밍과 던진 ‘떡밥’을 절대 놓치지 않는 완벽한 서사 전개, 해리 보슈의 심경 변화를 최면을 걸듯 설득해내는 필력, 그 무엇보다도 다음 날 6시 30분 기상 일정을 잊고 새벽 2시 30분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까지….
무엇보다도 이 장르의 태생적 결함, 그러니까 ‘필연적인 주인공의 승리’를 아쉽지 않게 만드는 폭발적인 마무리 덕분에 내 아드레날린도 함께 터졌다. 책장을 덮은 후에 ‘그래, 이런 소설만 계속 읽을 수 있으면 행복한 인생이야’라고 생각했다. 찬사를 더 쏟아내고 싶은데, 기대치를 아파트 옥상까지 높일까봐, 또는 과한 호들갑처럼 보일까봐 여기에서 관두련다.
마이클 코넬리의 팬이라면 필독서. 범죄/추리 마니아에게도 필독서. 하지만 범죄물에 관심 많은 초보자들에게 추천하기엔 솔직히 좀 꺼려진다. 해리 보슈 시리즈(미키 할러 시리즈 포함)는 이전 시리즈 사건이 다음 작품의 설정이 되곤 하는데, 이게 또 깨알 재미이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배경 설명이 충분하기 때문에 몰입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긴 하다.
어쨌든 끝내주는 독서였다. 아니, 독서라는 말은 너무 얌전한 것 같고, 책 한 권 들고 재미있게 놀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 일부러 소설 스토리를 요약하진 않았는데, 초반에 등장하는 몇몇 설정조차 미리 알면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토리의 진입 장벽이 높은 것도 아니니, 일단 독서부터 추천해보겠다.
※ 이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 중 아홉 권이 국내 미출간작으로 남았는데, 가뜩이나 출판 시장이 어려운 마당에 출판사에 독촉할 수도 없고 이래저래 어렵다. 『크로싱』을 시작으로 출간 계약이 활명수 들이부은 것처럼 원활해지길 바라는 수밖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