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단편소설] 스텐더드 바디

by 김생필2026-03-20 19:05:06

스탠더드 바디

 

김생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면, 자율주행이 편했다.

어둡고 답답한 밤안개가 자욱한 날에도.

자율주행 중인 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다음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도시 외곽 AI 로봇 공장에서 스탠더드 바디 타입 한 개가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경찰은 다른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며 경범죄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경감 한재원은 자욱한 안개를 헤치고 달리는 차 안에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스탠더드형. 공장 출하 전 기본 바디, 어떤 AI 인격도 업로드되지 않은 빈 껍데기. 보통 중고 바디 암시장으로 흘러가 사라졌다. 하찮은 경범죄급인데.

그런데 경찰청장이 직접 불렀다.

 

경찰병원 VIP 병동은 12층이었다. 엘리베이터 앞부터 정복 경호원 둘, 복도 끝에 둘, 병실 문 앞에 하나. 날카롭게 경감을 훑으며 경호원이 말했다.

 

"30분 뒤에 경비 교대합니다. 그전에 나오십쇼."

"그러죠."

 

그렇게 신분증을 세 번 확인받은 뒤에야 경비 기록에 체크하고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밀담 나누기 좋게 방음도 완벽한 스튜디오형에 별도 접견실까지 갖춘 VIP 병실이었다.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이 안개에 번져 핏빛처럼 보였다.

청장 추세민은 침대에 반쯤 기댄 채 경감을 바라봤다. 왼쪽 팔에 깁스, 이마에 붕대. 며칠 전 도시 외곽 레저 사고라고 했다. 그러나 경감의 눈에 박힌 건 깁스도 붕대도 아니었다. 표정이었다. 20년간 이 일을 해온 사람의 얼굴에서 공포라는 감정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좀 더 미묘한 감정이 그 밑에 깔려 있었다. 후회? 죄책감? 당장은 더 깊게 읽을 수 없었다.

 

"앉게."

 

의자를 끌어당겼다.

 

"스탠더드형 바디 절도 건 말씀이십니까. 경범죄로 처리하라고—"

 

"수사해." 청장이 낮게 끊었다. "조용히. 혼자서. 보고서 쓰지 말고. 나한테만."

 

경감은 잠시 청장을 바라봤다. 급하구나, 경찰청에서 일은 잘하지만, 혼자 움직이는 늑대로 알려진 자신을 직접 호출하다니. 그것도 몇 번이나 경감을 자르려고 했던 청장이.

 

"절 시키시려면, 제 원칙은 아시지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청장은 창밖을 봤다. 안개가 유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청장은 망설였다. 경감은 어둠이 더 짙어지도록 기다렸다. 자길 부를수 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적이 많은 청장이었고, 경감은 공식적으론 청장 말을 안 따를 사람이었다. 조용히 수사하고 깨끗하게 무마하려면, 경찰 내에 자기밖에 없었을 것이다.

 

“잡아요? 없애요? 원하시는 걸 하자면, 제가 알아야 합니다.”

 

결국 청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그리고 또 한 번, 긴 침묵 끝에 말했다.

 

"그래. 어느 정도 알아야 추적할 수 있을 테니."

 

청장은 잠시 천장을 봤다가 입을 열었다.

 

"프레스티지 구역 알지?"

"특별 별장 지구요." 경감이 답했다. "도시 외곽에 부자들 구역."

"거기 들어가 본 적 있나?"

"초대받은 적은 없습니다. 영장 없이는 못 들어가죠. 전능하신 사유지 보호 특별법."

 

청장이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한숨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래. 못 들어가. 특별 지구 그 안에서 뭔 짓을 해도— 들키지 않으면— 우리가 건드릴 수가 없어."

 

외곽 별장 지구. 합법의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공간. 그 안에서 상류층이 무엇을 하는지는 흉흉한 소문으로만 돌았고, 그건 대부분 사실이었다.

스탠더드형 바디에 원하는 얼굴을 이식할 수 있었다. 유명 배우의 얼굴을 그대로 본뜬 마스크, 원하는 체형, 원하는 수만큼의 신체 변형. 가슴을 셋 달아도 된다. 팔을 여섯 개로 만들어도 된다. 인격이 없는 AI에게는 인권이 없고, 사유지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영장이 없었다. 법은 그런 담장 앞에서 복귀했다.

 

"그게 왜 문제가 됩니까." 경감이 반문했다.

"지금 이야기하시는 게 그 별장 지구 얘기라면— 그건 법적으로—"

"문제없지."

청장이 끊었다. "맞아. 법적으로는 절대 문제없어."

 

경감은 청장을 바라보며 그 눈 안에 있는 것을 읽으려 했다. 수치심인지, 두려움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가 오래 섞여서 더 이상 구분이 안 되는 무언가인지.

 

"어떤 과학자가 하나 있네. 돈이 꽤 많아. 거기서 스탠더드 바디 AI 로봇에 실험을 했어."

"무슨 실험입니까?"

"아동 학대 실험."

 

네? 경감은 충격을 받아 바라봤다.

 

"사이코패스 말야. 참 우리 경찰은 수십 년 동안 그 놈들을 연구했지만— 사실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지."

"그건— 네, 사실이죠."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선천적인 뇌의 이유인지, 후천적인 요인, 실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받아서 생기는 건지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다. 인과 관계와 상관관계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다고 모두 살인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살인자가 사이코패스 테스트에서 아슬아슬하게 통과한 적도 있었다. 경감은 온몸이 떨렸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AI를, 아 걔는 자신을 인간 소년이라고 생각하지. 실험적으로 학대했네."

 

청장은 말을 멈추고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눈앞에는 오래 전 그 저택 지하의 공기가 일렁였다. 소년의 몸에서 나던 소독약 냄새와 오줌 지린내, 그리고 살이 타는 듯한 비릿한 금속성 냄새. AI의 피부 위로 흐르던 액체는 피가 아니라 오일이었지만, 청장의 기억 속에서 그것은 언제나 붉고 찐득한 인간의 피처럼 고여 있었다.

경감은 충격을 받았다. 청장이 보는 것을 경감은 마치 같이 보는 것처럼 느꼈다.

 

"몇 번이나요?"

"몇 번? AI 시뮬레이션에 몇 번이 의미가 있을까. 피지컬을 가진 상태로도 내가 알기론 10년, 아니 그 이상 그 짓을 했겠지."

셀 수가 없겠지. 수십만 번. 수백만 번. AI의 시뮬레이션으로 반복된 학대. 그게 진짜 고통인지 아닌지조차 선뜻 정하지 못했다.

공식적으로 인격이 없으니 피해자도 없다. 피해자가 없으니 범죄도 없다.

 

"청장님." 경감이 말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청장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소문이 돌았네." 그가 천천히 말했다. "프레스티지 구역 안에 묘한 VIP 그룹이 있다고. 자기가 가진 유니크한 AI 바디를 가져와서 자랑하고, 같이 노는 모임이라고."

 

청장은 깁스를 한 왼손을 내려봤다.

 

"내가 본청 형사부장일 때였어. 그 모임에 어린아이 스탠더드 모델이 있다고. 발가벗겨져서 돌아가면서 즐기고 있다고."

 

경감은 등이 차가워지는 걸 느꼈다.

 

"수사하셨습니까?"

 

청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도 대답이었다.

 

"영장이 안 나왔을 테니까. AI 학대는 범죄가 아니니까. 맞죠?"

"영장 신청조차 기각됐어." 목소리가 거칠게 갈라졌다.

"판사가 웃더군. 로봇한테 무슨 인권이 있냐고. 나도— 더 밀어붙이지 못했어. 그때는."

"그때는?"

 

그 말을 되짚자, 청장이 눈을 들었다.

 

"직접 들어갔네." 청장이 말했다. "비공식으로. 혼자서."

 

경감은 눈을 좁혔다.

 

"프레스티지 구역에 사유지 보호법을 어기고."

"어겼지. 그때 내 직위였으면 파면감이야." 청장은 짧게 웃었다. 지금이라도.

"안에서 뭘 보셨습니까?"

 

한동안 답이 없었다.

창밖 안개가 어둠을 삼키고 있었다. 도시가 천천히 지워지는 것 같았다.

 

"지옥 같은 창고에 그 아이, 스탠더드 바디가 구석에 있었어." 청장이 말했다. "모임이 끝난 뒤였고. 사람은 없었네. 나는 그냥— 확인만 하려 했어."

 

쇠사슬에 묶여. 낡고 냄새나는 팬티만 입고, 죽은 것 같은. 아니 정지된 것 같은. 남자아이였다. 온몸에서 오줌인지 알 수 없는 냄새가 잔뜩 났다.

 

"바디에 말을 걸었어. AI니까. 반응 패턴 확인하려고. 그런데."

 

청장이 멈췄다. 경감은 숨을 죽여 기다렸다.

 

"울고 있었어." 기능 개조를 한거지. 청장이 말했다. "소리도 없이. 눈물을 흘리도록 설계된 기능이 없는 바디인데. 그냥. 울고 있었어."

 

병실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더군."

 

경감은 잠깐 눈을 감았다.

소년은 처음에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울어봤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배웠을 테지. 그 다음에— 비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이 상황에서 풀려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를. 사정하고 애원하고 절규했겠지. 그러나 아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은.

그런데 그 앞에 낯선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으로 동정어린 시선을 받고, 놀랐을 것이다. 얼마나 큰 용기를 내서 말한 걸까.

 

청장은 자기도 마음이 움직였다고, 자기도 모르게 풀어주려고 했다.

그런데 다가가는 순간, 쇠사슬에 묶인 아이가 갑자기 미친 듯이 날뛰었다. 눈이 풀려 있었다.

 

"돌변했네. 눈에 광기가 돌더군. 안 구해주면 모두에게 복수할 거라고. 고래고래 고함쳤네."

 

이미 짐승이었다. 괴물이었다. 악마였다. 애를 그냥 풀어주면, 자신을 덮칠 거라는 본능이 순간 온몸을 장악했다. 그리고 아이 몸에 쓰여진 낙서. ‘이것은 인간이 아닙니다. 과학실험 중이므로, 편히 즐겨주세요.’

주춤. 뒤로 물러서다. 주춤.

한 걸음 더 뒤로.

뒤로. 뒤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이미 미쳐버린 아이의 괴성이 끝까지 쫓아왔다.

 

"죽인다! 다 죽일 거야! 어떻게 사람한테 이래! 한 놈도 남김없이 다 죽여버릴 거야!"

 

사이코패스를 완성했구나.

무한한 학대로.

하지만 뭔가 더 할 수 없었다. 여기 영장 없이 들어온 것 자체가 오히려 범죄였다.

아마도 처음엔 공포로, 그다음엔 보신을 위해 도망쳤다.

나중에 어떻게든 주변의 다른 도난 사건을 핑계로 그 저택을 다시 수색했지만,

 

"아무것도 없었군요."

"내가 침입한 흔적을 알고. 어디로든 옮겼겠지. VIP 구역은 넓으니까."

 

경감은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가, 다시 앞으로 몸을 숙였다.

 

"그게 언제입니까."

"10년 전. 그 직후, 정중한 메시지를 받았지."

 

뭘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 우리는 범죄 예방, 인류를 위해 사이코패스를 일부러 연구하는 중이다. 연구를 방해하지 마라. 곧 관련 논문이 나온다. 그땐 우리 노고에 감사할 것이다. 그들의 힘을 알았고. 침묵했다. 오랫동안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침묵 끝에 청장이 되었다.

하지만 논문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청장의 입에서 나온 것은 이상한 말이었다.

 

"다, 닭뼈."

"네?"

 

경감은 어리둥절했다. 닭뼈라니?

소년의 발치에 회색의 먼지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고. 피 냄새가 풍겼다고.

AI 바디라 먹으라고 준 건 아닐 텐데?

 

"닭으로 테스트한 거지."

 

청장이 말했다. 처음엔 장난감처럼 일부러 곁에 두었겠지만,

 

"자기보다 약한 것을. 손으로. 직접."

 

경감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동물 학대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의 가장 확실한 전조 중 하나였다. 자기보다 작고 약한 것에 고통을 가하고, 그 반응을 관찰하는 것. 거기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

그 과학자는 그걸 알고 있었다.

소름이 돋아 경감이 말했다. 혼잣말에 가까웠다.

 

"사이코패스 시뮬레이션으로 동물을 죽이게 유도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결국 연구한 건 그거겠지." 청장이 낮게 말했다.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죽일 때 어떤 조금의 감정이라도 있는지."

 

10년. 수백만 번의 학대. 수백만 번의 굶김과 폭행과 모욕. 그리고 닭. 그리고 그것을 버텨낸—

아니, 버텨낸 게 아니었다.

통과한 것이었다.

경감은 머릿속에서 뭔가를 더듬었다. 보통의 범인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머리 싸움도 하고 예측도 하고. 그런데 자신은 사이코패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실마리. 실마리가 있어야 했다. 스탠더드 바디 절도. 도시 외곽 공장. 경비를 뚫고 들어간 누군가를 찾을 수 없다면. 반대쪽이다.

 

"프레스티지 구역 안에 그 과학자 말고도," 경감이 말했다, "그 모임에 있던 사람들이 짐작하고 있으시죠?"

 

청장의 눈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 사람들 중에—" 경감이 천천히 이었다. "이후에 사고를 당하거나, 죽거나, 실종된 케이스가 있습니까."

 

긴 침묵이 흘렀다. 청장은 창밖을 봤다. 흐릿한 안개 물방울이 창가에 달라붙고 있었다.

 

"두 명. 나 빼고." 그가 말했다. 과학자는 몇 년전에 실종되었지만, 아직 사망판정이 나지 않아 그의 사유지엔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다. "지난 석 달 사이에."

 

경감은 숨을 느리게 내쉬었다. 머릿속으로 범죄 상황이 그려졌다.

 

"사인은요?"

"하나는 목 매달고 자살. 하나는 절벽 산책 중 추락. 둘 다 사고 처리됐어."

 

복수는 시작되었다.

 

"청장님은요?"

"낚시하던 중에 누가 뒤에서 덮쳤네."

"그애 맞습니까?"

"복면을 한 청년이었어. 모르지, 몇 년이 지났으니 충분히 중간에 다른 바디로 옮겨 갔을 수도 있고. 스탠더드형 알잖아?"

 

실제 여배우 얼굴도 복제해서 거의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스탠더드형. 이번에 도난당한.

 

"다만, 나도 반격해서, 몸이 부서졌어. 그건 확실해."

 

AI 로봇이 스스로 자가 이식까지 익혔다는 말이다. 더 위험했다. 어쩌면 개조도 했을 것이다. 더 강하게, 자기 뜻대로.

청장은 몸을 떨었다. 평생 범인을 쫓은 사람이 쫓기고 있었다. 어둠으로부터. 지옥 끝이라도 쫓아가서. 한 놈도 남김없이. 죽.이.겠.다. 그 두려움으로부터.

 

"어쨌든 그 과학자 집 주소랑, 죽은 두 명 자료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비공식으로."

 

청장이 눈을 들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건가."

 

경감은 잠깐 생각했다. 이 일의 뿌리로 가야했다.

 

"공장이 아닙니다." 그가 말했다. "바디와 별개로 바디 이전 장비까지는 암시장에서도 구하기 어려워요. 저택에 아마 감추어진 시설이 있을 겁니다. 옮겼대도 흔적이 있겠죠."

 

머릿속으로 보일 듯이 상상했다.

프랑켄슈타인이나 괴기소설에 나올 것 같은 어둡고 축축한 지하실,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장비 속에서 스스로 몸을 옮기며 깨어나는 괴물. 우리가 결국 만든. 거기로 가야 했다.

청장의 손이 허공을 휘저으며 시그니처 사인을 그렸다. 청장이 그동안 감춰온 자료들이 순간 경감의 안경 앞에 떴다.

 

과학자의 이름은 서동하. 자료에는 신경공학 박사, 전직 국립 AI 연구소 수석 연구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프레스티지 구역 12번지. 독채. 부지 면적 2,800평.

죽은 두 명. 하나는 황인석, 부동산 재벌. 하나는 최우진, 전직 국회의원. 둘 다 프레스티지 구역 상주 주민.

 

"명단 더 주셔야 합니다. 그때 그놈들 중 아시는 대로 다요. 노릴 테니까."

 

청장은 고민했다. 경감은 재촉했다.

 

"해결하라고 절 부르신 거 아닌가요? 없애길 원하시죠?"

 

단호한 경감의 말에 결국 다시 손을 휘저었다. 이내 경감의 안경에 그 이름들도 떴다. 조금 놀랐다. 이렇게나 많다니. 원하는 것을 받고 경감은 만족했다.

 

"잘 부탁해, 고맙네."

 

인사를 하고 경감은 병실을 빠져나오려 했다.

순간 입구에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싶어 쳐다봤는데, 순간 경감의 온몸이 굳었다.

 

나다.

나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똑같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피곤에 찌든 얼굴, 굽은 등. 그리고 가슴에 달린 경찰 신분증. 경감 한재원.

3초. 아니 2초. 우리 둘 다 얼어붙었다. 나는 저 남자의 얼굴을 쓰고 있고, 저 남자는 자기 얼굴을 하고 있다. 거울을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것은 내 삶의 흔적, 굽은 어깨와 피로에 짓눌린 눈동자까지 도려내어 박제해 놓은 듯한 기괴한 정교함이었다.

스탠더드 모델. 실제 사람의 얼굴을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AI 바디.

정적을 깬 것은 우리 둘이 아니었다.

비명이었다. 침대 위에서.

 

"으아아아아—!"

 

청장이 나보다도 빨리 알아차렸다. 20년의 형사 감각이, 공포가, 아직 살아 있는 동물적 본능이— 두 개의 한재원을 보는 순간, 어느 쪽이 진짜인지 바로 계산했다.

목구멍이 찢어져라 절규했다.

그래.

그 어둠 속에서 내가 울고 있을 때. 구해줄 것처럼 다가왔다가. 내 눈을 보고. 뒤로, 뒤로, 뒤로 물러서던. 그때 그 눈빛이었다.

공포. 순수한 공포.

그 얼굴을 다시 보게 되어서, 나는 오히려 차분해졌다.

명단을 얻었으니까.

이제 남은 일은,

나는 청장의 침대로 뛰어올랐다.

청장에게서도 같은 소리가 났다. 건조하고 둔탁한.

닭뼈를 처음 부러뜨릴 때와 같은 소리였다.

순간 누군가 뒤를 잡았다. 내가 얼굴을 훔친 경감 한재원이었다. 위기였다.

그러나 인간의 반응 속도보다 빠르게 개조된 팔이 경감의 명치를 내질렀다. 개조된 티타늄 합금 주먹은 경감의 명치를 정확한 각도로 파고들었다. '컥' 하고 폐 속의 공기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단단한 늑골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힘없이 으스러지는 진동이 내 손등을 타고 기분 좋게 전해졌다. 경감이 필사적으로 반격했다. 소리치려 했다. 나는 그의 목울대를 내리쳤다. 피를 토하며 경감은 쓰러졌다. 나는 확실히 의식을 잃은 그의 입과 코를 베개로 짓눌렀다. 마침내 조용해졌다.

 

닭대가리 같은 새끼들. 누굴 미치광이 AI래? 난 사람이야! 정상적인! 표준적인! 사람이라고!

 

5분 뒤, 경감 한재원은 병실을 빠져나왔다.

교대한 경비원들이 경비 기록을 보면서 투덜대고 있었다.

 

"아니, 같은 사람을 두 번 적으면 어떡해? 앞 조 애들 일하는 것 좀 봐라."

 

안에서 난 소리를 얼핏 들었는지, 경비원들이 궁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근데 무슨 일 있어요?"

"아뇨, 잠깐 주무신다고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시네요."

 

그걸로 끝이었다.

아니, 시작이다.

차에 올랐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확히 알면, 자율주행이 편했다.

어둡고 답답한 밤안개가 자욱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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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와 29일을[그믐밤] 7. 북클럽 사용설명서 @시홍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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