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퓨굿맨, 내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사람들에 대하여...
2026-04-10 13:28:46
어느 날 새벽, 반가운 사람이 꿈에 나와 잠에서 깨었다. 과거의 현재의 상황이 묘하게 얽혀 만들어낸 상황 속에 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이 고마웠다. 그리고 내 인생에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몇 사람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한때는' 그러했지만 지금은 낯설고 불편하고 데면데면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인 경우라면 더욱 그랬다. 그래도 어렵사리 기억 속에서 건져올린 그 사람들에게 '어퓨굿맨' 이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렇다 같은 이름의 영화가 있었다. 정확히 제목과 매칭되는 내용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말이다.
걔중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가장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만났다. 서른 중반 직업을 바꾼 후로 엄청난 혼란과 어려움을 겪었다. 새로이 시작한 일은 거대한 벽처럼 내 인생을 막아서고 있었고, 그때 만난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친구는 새벽 2,3시 무렵, 마감을 끝낸 후에 소주 한 잔을 사이에 놓고 내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하지만 그 친구가 굳이 그럴 이유는 없었다. 10살의 나이 차, 사고하고 글을 쓰는 방식이 달라 일에서는 충돌이 많았다. 하지만 소주 한 잔을 놓고 얘기를 하다보면 언제나 마음이 눈처럼 녹아 내렸다. 같은 남자임에도 이런 편안함을 느꼈으니 그 당시 여자 친구가 많은 것도 납득이 간다. 중요한 것은 그가 나이 많은 동료를 위해 그렇게 애써 얘기를 들어줄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10여 년이 흐른 어느 날 우리는 만나기로 했다. 나는 그때보다 벌이도 삶도 나아졌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약속이 꼬이기 시작했다. 나는 약속 장소에 1시간 넘게 늦게 나타났고 그 친구는 나와 장소를 맞추느라 그 시간 동안 계속 걸어다녀야 했다.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으나 버스 터미널 근처에 그런 집은 없었다. 아무튼 우리는 만났고 회포를 풀었고 기분 좋게 헤어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기억 속에 도움을 청했던 나의 기억이 선명하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달라졌음'을 보여주려 애쓰는 내 모습이 어쩌면 조금은 딱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뭐 크게 상관할 게 없었다. 비혼을 선택한 그의 삶은 윤택했지만 조금은 건조해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삶과 선택을 존중했다. 문제가 될 일은 없었다.
사고는 그 다음에 터졌다. 정부 기관과 일하다보니 부득불 외주를 줄 일이 생겼다. 걔중엔 일을 주지 않고 매출만 만들어낼 상황도 있었다. 그 와중에 급하게 떠올린 이름이 그 친구였다. 나는 당연히 도와줄 줄 알고 카톡으로 부탁을 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뜻밖에 '노no'였다. 친절하지만 지켜야할 선도 분명한 친구인줄은 알았다. 관례지만 불법의 요소도 있음을 모르진 않아 더욱 미안했다. 그러면서 서운함도 컸다. 같은 부탁을 함께 일했던 다른 동료는 들어주었기 때문일까? 나는 나도 모르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단톡방을 나왔다. 물론 그 순간 아차 싶은 생각을 했지만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의 시간이 다시 흘렀다.
그 해 연말의 어느 날, 나는 전화번호 목록을 뒤지다가 우연히 그 친구의 이름을 다시 만났다. 마음이 불편해 견딜 수 없어 연락을 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연락을 받아주었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친구가 왜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금융회사에 다니는 그 친구는 만일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경우 인사 고과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미안해 견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라면 기꺼이 다시 만나주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용기를 내서 연락을 했다고. 1년에 한 번쯤은 소주 한 잔 하며 회포를 풀 수 있는 관계로 남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말했고 우리는 다시 헤어졌다.
살다 보면 이런 경우를 자주 만난다. 아주 작은 오해와 사소한 실수가 겉잡을 수 없는 상태의 관계로 우리를 몰아간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 들 중에 나도 있었다. 하지만 성숙한 소수의 사람들은, 어쩌면 인연으로 이어졌을 그들은 그 순간을 참아주고 또 기다려 주었다. 거기엔 성별도 나이도 종교의 유무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그것이 그 사람이 가진 그릇의 크기로 생각하고 있다. 거기에 약간의 타이밍과 운이 따라준다면 이 연약한 관계는 약하지만 길게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그런 관계들은 줄어만 간다. 나이 들수록 사소한 이유로, 실수로 멀어지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나의 관계에 대한 기준은 점점 더 엄격해져만 간다.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들도 필요한 소수의 관계를 향해 나아가는 길이니까.
그래서 내게 '어퓨굿맨'은 소중하다. 노력으로 다다를 수 없는, 천운처럼 선물처럼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적어보기로 했다. 생은 유한하지만 관계는 영원하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기억이 다음의 생애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는 아주 소수일 거라 장담할 수 있다. 그저 함께함으로도 충분했던 젊은 시절을 지나, 나는 어쩌면 그 수가 늘기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가족, 지인, 친구, 동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이번 생에 담아낼 '나다움'의 전부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디 그대들의 위로와 용기가 나에게도 타인들에게도 꾸준히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진정으로 그때, 고마웠었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