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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데칼코마니의 미학

by 제리제2026-06-02 10:27:03
오! 수정오! 수정

데칼코마니 기법에서는 종이를 반으로 접고, 그 두 반쪽 사이에 물감을 꾹 누른 뒤 다시 펼친다. 그 결과물은 언뜻 완벽하게 대칭적인 형상처럼 보인다. 하지만 눈을 바짝 들이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순간, 왼쪽과 오른쪽은 결코 같지 않고, 애초에 같았던 적도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같을 수 없다는 서늘한 진실이 드러난다. 종이에는 그 자체의 고유한 결이 존재하고, 한쪽 면의 결은 반대쪽 면의 결과 미세하게 다르게 흐르기 때문이다. 접힌 틈 사이로 강하게 짓눌린 물감은, 인간의 육안이 적당히 뭉뚱그려 무시하도록 설계된 그 모든 미세한 차이들을 기어코 낱낱이 등록해 버린다. 홍상수의 《오! 수정》(2000)은 바로 이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다. 2부("어쩌면 우연")와 4부("어쩌면 의도")는 완전히 똑같은 사건을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이야기한다. 관객은 으레 이것을 거울상으로, 혹은 남자의 버전과 여자의 버전으로, 그것도 아니면 기억 대 기억의 대결로 섣불리 읽어내려 한다. 그러나 영화는 종이 위에 눌어붙은 물감처럼, 자신의 구조가 번듯하게 약속하는 듯한 그 얄팍한 대칭성을 단호히 거부한다. 2부에서는 재훈이 첫 점심 식사 도중 화장실에 간다. 반면 4부에서는 영수가 화장실에 간다. 이것은 단순한 기억의 오류나 불일치가 아니다. 둘 중 하나만 진짜일 수 없다는 말은 곧 둘 다 진짜라는 뜻이며, 이는 영화가 뻔한 기억 영화의 장르적 틀을 일찌감치 내다 버리고 훨씬 더 기괴한 영역으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이것은 명백한 결의 불일치다. 종이에는 엄연히 두 개의 면이 존재하며, 그중 어느 쪽도 진짜 원본이 아니라는 뼈아픈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미학은 같음에도 다름에도 있지 않다. 오직 똑같기를 의도했던 것과, 막상 쫙 펼쳐보았을 때 비가역적이고 물질적이며 너무도 아름답게 같지 않은 것 사이의 지독한 어긋남에 존재할 뿐이다. 이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즐거움(한 번, 두 번, 세 번 볼 때마다 영화는 무섭게 증식한다. 마치 얼굴을 종이에 바짝 갖다 댈수록 새로운 불일치를 끊임없이 폭로하는 데칼코마니처럼 말이다)은, 그 어긋난 결을 손끝으로 쓰다듬을 때마다 피부에 닿는 낯선 감촉이 매번 다르게 변주되는 것을 발견하는 서늘한 쾌락이다.


이 영화는 흑백으로 촬영된 홍상수의 첫 번째 장편이다.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이은주는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관찰되어야만 하는 얄궂은 역할을 맡았다. 남자가 엉성하게 직조해 낸 환상 속 여자의 모습과, 여자가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직조해 낼 때의 진짜 모습 사이의 징그러운 간극을 오롯이 제 얼굴 위에 등록해야만 했던 것이다. 이는 베테랑 배우에게조차 버거운 요구이며, 십 대 소녀에게 요구하기에는 거의 폭력에 가까운 비합리적인 과제다. 그러나 이은주는 과제를 출제한 감독보다 그 본질을 훨씬 더 꿰뚫고 있는 듯한, 보는 이를 등골 서늘하게 만드는 정밀함으로 이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 낸다. 영화는 친절하게도 다섯 개의 타이틀 카드와 함께 분절되어 있다. "하루종일 기다리다"(재훈(정보석)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여자를 멍하니 기다리며 호텔 방의 조명과 환기구 따위를 강박적으로 점검하는 시퀀스다. 시간이 지연될 때 발생하는 잉여의 가구들에 집착하는 홍상수 특유의 시선이 너무나 정확해서, 영화 좀 본다는 관객들은 으레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쩌면 우연", "매달린 케이블카", "어쩌면 의도", 마지막으로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 이어진다. 이 영화의 건축술은 단순한 이중 구조가 아니다. 케이블카가 화려한 샹들리에처럼 허공에 덜렁 매달린 다섯 개 방짜리 저택이다. 그리고 그 중앙을 기점으로 양옆에 놓인 두 개의 방(2부와 4부)이 바로 데칼코마니다. 방 저만치 건너편에서 힐끔 보면 완벽하게 똑같아 보이지만, 그 미세한 결이 보일 만큼 바짝 다가가면 아예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접힌 페이지인 것이다. 재훈은 애타게 기다리는 남자다. 수정(이은주)은 마침내 도착하는 여자다. 영수(문성근)는 그 둘 사이의 비좁은 틈새에 기생하는 찌질한 유부남 감독이다. 그리고 영화는 이 세 사람을 제자리에 단단히 박아두면서도, 그들 중 누구도 똑같은 위치를 두 번 다시 점유하지 못하도록 옭아매는 거대한 접힘 현상 그 자체다.


가장 먼저 당도하는 첫 번째 독법은 마치 남의 집 안방을 제 방인 양 떵떵거리고 들어오는 불청객의 뻔뻔한 확신을 띠고 있다. 바로 2부와 4부가 각각 남성의 기억과 여성의 기억을 대변한다는 해석이다. 남자는 자기 편한 대로 사건을 기억하고, 여자는 또 그녀의 방식대로 기억하며, 진실(그토록 미끄럽고 교활한 단어여!)은 그 두 기억 사이 어딘가에 대충 머물고 있다는 식이다. 사실 이것은 홍상수가 일부러 깔아놓은 함정이다. 방심한 손님이 의자에 푹 주저앉으려는 찰나 의자를 휙 빼버리기 위해, 처음에는 간드러지게 환대하는 척하는 사기꾼의 꼼꼼함으로 심어놓은 매혹적인 유혹이다. 왜냐하면 이 독법을 산산조각 낼 반증들이 영화 곳곳에 지뢰처럼 매설되어 있기 때문이다. 건물의 핵심 하중을 견디는 내력벽에 폭약을 몰래 설치해 두고 누군가 몸을 기대기만을 기다리는 폭파 전문가의 섬뜩한 인내심으로 말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2부에서 수정은 재훈의 아파트에 혼자 남아 있다. 재훈이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동안(물도 틀지 않고 그저 멍하니 변기에 앉아만 있다는 것을 영화는 집요하게 묘사한다), 그녀는 몰래 브래지어를 벗어 가방 깊숙이 숨긴다. 재훈은 이 은밀한 행위를 결코 볼 수 없었다. 아니, 알 방법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이 장면은 뻔뻔하게도 표면상 재훈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2부에 떡하니 등장한다. 만약 2부가 온전히 재훈의 주관적 기억이라면, 그는 자신이 목격조차 못한 장면을 기억해 냈다는 기괴한 모순에 빠진다. 이것은 기억이 아니라 날조된 상상이다. 물론 상상이 기억으로 날조될수는 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진실을 찾는 기억 영화 따위가 아니다. 그저 기억이라는 낡은 공사판의 비계를 슬쩍 빌려 와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기괴한 건축 양식의 건물을 뻔뻔하게 쌓아 올리고 있는 무언가다. 화장실의 모순(누가 먼저 갔는가? 영화는 두 사람 모두 다른 시간, 다른 맥락에서 똑같이 절박하게 화장실에 갔다고 우긴다)은 데칼코마니의 접힌 틈새로 삐져나온 물감의 구조적 등가물이다. 완벽히 동일한 사건, 서로 엇갈리는 두 개의 결,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감촉. 그리고 그곳에 애당초 원본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갑 장면은 이 영화를 굴러가게 만드는 인식론적 심장이다. 단순히 겉멋 든 주제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거대한 터빈이 맹렬하게 돌아가며 전기를 토해내듯 영화의 주제의식을 쉴 새 없이 뿜어내는 장면이다. 재훈이 텅 빈 경복궁에서 장갑을 툭 흘린다. 수정이 그걸 주워다 돌려준다. 2부에서 이 사건은 그저 무해하고 순수한 우연처럼 그려진다. 한 여자가 마침 똑같은 장소에 우두커니 있었고, 운 좋게 장갑을 발견했으며, 별생각 없이 돌려준다. 이 풋풋한 만남에는 그 누구의 검은 속내도 연루되지 않은 우연 특유의 무작위성이 깃들어 있다. 그러나 4부로 넘어가면 이 순진한 우연은 서늘한 정보에 의해 무참히 침략당한다. 수정은 재훈이 매일같이 경복궁을 서성이며 점심을 먹는다는 사실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녀가 방송 촬영지를 굳이 고궁으로 밀어붙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가 그곳에 나타난 것은 결코 하늘이 점지한 우연이 아니라 치밀한 설계의 산물이다. 장갑 자체를 발견한 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그 장소에 도달한 과정은 철저히 의도된 동선이다. 영화가 내세운 두 개의 타이틀 카드("어쩌면 우연" / "어쩌면 의도")는 데칼코마니 양쪽에 들러붙은 라벨지다. 그리고 그 장갑은 양쪽 라벨 사이에 끈적하게 눌러 붙은 물감이다. 그것은 예측 불허의 사고이자 교활한 전략이며, 낭만적인 우연이자 차가운 계산이다. 그저 자연스레 일어난 일인 동시에 치밀하게 세팅된 사건으로 징그럽게 공존한다. 이 두 가지 독법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거부하는 영화의 불친절한 태도는 결코 감독의 모호함(작가가 스스로 뭘 말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핑계 대는 비겁한 단어)이 아니다. 그것은 양자역학의 파동 함수가 관찰자에 의해 붕괴되기 전까지 모든 상태가 동시에 겹쳐 있는 중첩이다. 그리고 홍상수는 여느 평범한 감독들과 달리, 그 관찰자의 자리에 앉아 섣불리 함수를 붕괴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


3부 "매달린 케이블카"는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으려 용을 쓰는 지렛대의 받침점처럼 영화의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언뜻 보면 전체 서사의 흐름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잉여의 파편 같다. 이 케이블카 챕터를 어떻게 볼 것인가? 도심 속 남산 계곡을 가로지르던 케이블카가 허공에서 갑자기 덜컹 멈춰 선다. 갇힌 승객들은 막연히 기다리고, 갓난아이는 신경질적으로 울어 젖힌다. 이윽고 케이블카는 자기가 닿을 수 있는 유일한 종착지, 즉 케이블의 반대편 끝자락을 향해 꾸역꾸역 전진을 재개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고립 상태는 인간의 지독한 성(性)적 본능에 대한 기막힌 은유다. 너무나 노골적이고 뼈 때리는 비유라 무뚝뚝하게 읊어줄 가치가 충분하다. 케이블카는 옆길로 샐 수 없는 외길의 탈것이다. 일단 그 안에 발을 들이밀면(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 없이 탑승한다. 세상 모든 인간은 처녀로 태어나니까. 영화의 영문 제목이 굳이 '신부(bride)'가 아닌 '처녀(virgin)'를 고집한 것도 개인의 특수성을 생물학적 보편성으로 잔인하게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도중에 내릴 출구도 없고 뒷걸음질 칠 방법도 없으며 빙 둘러갈 우회로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마지막 챕터의 징그러운 숙명론적 제목처럼 "짝만 찾으면 만사형통"이라는 결승점을 향한 단방향의 전진만이 허락될 뿐이다. 멈춰 선 철창 안에서 악을 쓰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는 거대한 밀폐 용기 속에 갇힌 유기체의 날것 그대로의 아우성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원초적 움직임이 갑자기 차단된 것에 대한 맹렬한 항의다. 그 항의에는 알량한 비극도 없고 얄팍한 희극도 없다. 그저 달리기 위해 설계된 궤도가 일시 정지했을 때 몸뚱이가 반사적으로 토해내는 생물학적 파찰음일 뿐이다. 낡은 호텔 방에서 하루 종일 애타게 수정을 기다리던 재훈 역시 그 좁디좁은 케이블카 안에 갇혀 있다. 수정의 팬티마저 벗기지 못했다며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자신의 찌질한 실패를 끊임없이 입 밖으로 꺼내어 기어코 그것을 '거의 성공할 뻔한 무용담'으로 둔갑시키려는 영수 역시 그 케이블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욕구를 해소시켜달라고 칭얼대는 수정의 친오빠는 매달린 케이블에서 우는 갓난아이 그 자체다. "어쩌면 우연"과 "어쩌면 의도"라는 아득한 심연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린 영화 자체도 결국 케이블카의 신세다. 그리고 알량한 우연이나 음흉한 의도 따위에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고 그저 이 지긋지긋한 운행이 빨리 재개되기만을 바라는 갓난아이만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정직하고 투명한 승객이다.


영수(문성근)는 구차한 유부남 감독이다. 당일치기 쪽 대본을 스태프들에게 던져주고, 흑심을 품은 후배 작가에게 기습 키스를 날리며, 싸구려 모텔 방에서 '우아한 유혹'이라 부르기엔 민망하고 그렇다고 '성폭행'이라 단정 짓기엔 묘하게 질척거리는 범죄적 행위를 뻔뻔하게 시도한다. 그러다 매몰차게 거절당하자 튀어나오는 대사가 가관이다. "팬티까지 벗기고 내가 안 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저지른 파렴치한 폭력의 순서를 그 도덕적 본질과 멋대로 뒤섞어버린 사내의 역겨운 자기연민이다. 그는 자신의 영화제작 팀원중에 한명인 트럭 운전수에게 뺨을 얻어맞고, 편집실에서 장난치지 말라는 훈계를 들으며, 사장 사위라는 알량한 꼬리표 덕에 겨우 목숨 부지하고 있다는 조롱을 견디며 산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독립영화"를 부르짖는데, 충무로의 생태계에서 이 단어는 예술적 야심을 가장한 찌질한 자아들의 안락한 조세 도피처로 기능할 뿐이다. 여기서 영화의 구조적 우아함이 번뜩인다. 영수가 그토록 낑낑대며 만들고 있는 영화가 실은 《오! 수정》 그 자체라는 소름 돋는 독법이다. 다시 말해 재훈과 수정은 모두 영수의 비루한 상상력이 빚어낸 피조물이다. 감독은 스크린 밖에서 팔짱 끼고 산비탈의 케이블카를 고상하게 관찰하는 자가 아니다. 그는 지옥 같은 케이블카 안에 함께 갇혀서, 차가 멈추면 갓난아이처럼 악을 쓰며 우는 찌질한 동승자다.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짊어지고 경복궁을 찾은 트럭 운전수가 꽁꽁 언 연못 위를 스케이트 타듯 철없이 미끄러지는 장면을 보라. 렌즈에 아무것도 담아내지 않고 그 어떤 생산적인 결과물도 내놓지 않은 채 오로지 텅 빈 얼음판의 쾌락만을 탐닉하는 이 남자야말로 영화 제작의 정수를 가장 처절하게 압축한 이미지다. 장비는 목적지에 도달하지만 현장은 계획대로 굴러가기를 단호히 거부한다. 대신 그 엇갈린 틈새에서 발생하는 무의미한 헛발질(미끄러짐, 얼음판, 텅 빈 환희) 자체가 오롯이 예술의 재료가 된다. 홍상수는 전지적 창작자와 찌질한 피조물 사이의 간격을 미친 듯한 고주파로 좁혀버린다. 거기서 피어나는 것은 투명한 명료함이 아니라 뭔가 해석되지 않는 공명이다. 너무 바짝 붙어 있어서 눈을 뜰 수조차 없는 모호함이 빚어내는 진동이다. 자신이 스크린 바깥의 안전지대에서 케이블카를 구경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영수는, 홍상수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바보 감독 중 그 첫 번째 스타트가 되었다. 


영화의 제목 '수정'은 세 개의 주파수를 넘나들며 동시에 윙윙거린다. 이 세 주파수를 동시에 감각하는 쾌락은, 그 어떤 음표도 지배적이지 않지만 단 하나의 음표도 버릴 수 없는 완벽한 화음을 들을 때의 전율과 같다. 첫 번째 주파수는 고유명사 '수정'이다. 5부의 섹스 씬에서 재훈이 짐승처럼 헐떡이며 부르는 여자의 이름. 징그러운 육체적 교미를 인간만이 견딜 수 있는 숭고한 행위로 둔갑시키는 마법의 주문이다. 지금 내 밑에 깔린 이 살덩어리가 그저 보편적인 생물학적 암컷이 아니라 '수정'이라는 고유한 우주를 지닌 특별한 인간이라고 악착같이 스스로를 세뇌하는 자기기만의 호명이다. 두 번째 주파수는 질 들뢰즈가 갈파했던 결정-이미지(Crystal-image)로서의 '수정(水晶)'이다. 현실태와 잠재태가 너무도 맹렬하게 위치를 뒤바꿔 도무지 어느 쪽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되는 몽롱한 상태다. 똑같은 점심 식사, 똑같은 저녁 막거리집, 똑같은 장갑의 낭만을 완전히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 버전으로 쪼개 놓은 2부와 4부는 이 영화가 품은 날카로운 수정체다. 각자의 단면이 서로를 투명하게 반사하지만 그 어디에도 진짜 원본의 그림자는 없다. 세 번째 주파수는 생물학적 목적지로서의 '수정(受精)'이다. 1부에서부터 줄기차게 산비탈을 기어올랐던 케이블카의 비루한 궤도가 기어이 가닿고야 마는 동물적 결승점. 기다림과 우연, 중단과 의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하는 육체적 완성이다. 감탄사 "오!"는 이 세 가지 주파수 모두에 찰싹 달라붙는다. 오, 네가 바로 수정(사람)이었구나. 오, 드디어 이미지가 수정(결정)을 맺었구나. 오, 마침내 유기체가 수컷의 임무를 수행(수정)했구나. "내가 가진 모든 결점들 목숨 걸고 고칠게요"라며 재훈이 처녀성을 확인하고 뱉어내는 대사를 보라. 육체의 점막이 부딪히는 원초적 순간 직후 내뱉는 가장 비릿한 결혼 서약이다. 생물학적 발정의 순간에 들이대는 계약서의 뻔뻔한 어휘다. 인간이라는 나약한 동물은 "사랑"이라는 거창한 오해 없이는 단 한 순간도 교미할 수 없다는 비극적 진실의 확인이다. 짐승들은 오해 없이도 쿨하게 짝을 짓는다. 하지만 인간은 거창한 이름과 얼굴, 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너가 내 운명이다"라는 처절한 착각을 연료로 삼아야만 비로소 발정할 수 있다. 홍상수는 바로 그 위선적인 착각의 건축술에 관한 영화를 만든 셈이다. 음흉한 목적이 축축한 침대에 다다르기 전까지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험난한 다섯 개의 곁방에 관한 씁쓸한 보고서다.


이 영화를 섣불리 눅눅한 비극으로 읽어내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건반의 울림은 깃털처럼 가볍고 명랑하며 묘하게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그 어떤 예술적 야심도 없이 텅 빈 공터에 무심하게 돋아나는 잡초들처럼, 그저 사뿐사뿐 도착하는 음표들의 행렬이다. 원문 텍스트가 지적하는 가장 서늘하고도 파괴적인 문장을 빌리자면 이렇다. 바람에 흔들리는 풀을 바라보는 주체 자신이 이미 보잘것없는 한 포기 풀에 불과하다면, 굳이 그 잡초의 삶에서 거창한 고통의 무게를 끄집어낼 필요가 있겠는가. 홍상수가 굳이 영화 제목에서 정숙한 '신부(bride)'를 날것의 '처녀(virgin)'로 비틀어버린 이유는 뻔하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처녀로 태어나 똑같이 삐걱거리는 케이블카에 구겨 타서, 반대편 종착역이라는 정해진 죽음을 향해 징그럽게 일방통행하는 비루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획득한 섬뜩한 보편성은 평론가들이 외부에서 덧칠한 철학적 상징이 아니다. 데칼코마니가 폭로하는 가장 물리적인 진실, 즉 누구나 한 번쯤 인생의 페이지를 반으로 접어보았고 그것을 다시 펼쳤을 때 양쪽 면이 지독하게도 어긋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자들의 구조적 현실이다. 2부에서 이은주의 뺨에 어리던 미세한 떨림은 4부의 그것과 결코 같지 않다. 여배우의 연기톤이 달라져서가 아니다. 종이의 결이 비틀어졌고 관찰자의 음침한 시선이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접힌 틈새를 비집고 터져 나온 물감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흔적를 남겼기 때문이다. 이 미세한 흔적을 육안으로 포착하려면 최소 두 번의 관람이 필요하고, 그 살짝 설레이고 흥분되는 감촉을 피부로 느끼려면 세 번의 관람이 필요하다. 더 바짝 눈을 들이댈수록 더 많은 다른 결의 흔적의 결을 끝없이 찍어내는 괴물 같은 데칼코마니. 그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 작품의 본질이자 한 인간이 지닌 얼굴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홍상수가 자신의 세 번째 장편영화에서 마침내 집어삼킨 진실이다. 완벽한 대칭도, 투명한 거울상도, 깔끔하게 포개지는 반쪽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뒤틀린 결과 구겨진 주름뿐이다. '어쩌면 우연'과 '어쩌면 의도' 사이, 발정 나서 부르는 달콤한 이름과 정작 쓰다듬고 있는 살덩어리 사이, 허공에 매달린 쇳덩이 케이블카와 그 안에서 숨넘어가게 우는 갓난아이 사이의 좁힐 수 없는 간극. 종이를 바싹 눈앞으로 끌어당겼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이 비루한 삶에서 단 한 번도 양쪽 면이 똑같이 포개어진 적 없다는 환원 불가능한 엇갈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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