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2026-07-03 21:12:14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빨간 벽돌의 어느 건물을 지난 것 같다. 대학로의 소극장 어딘가... 그땐 연극표를 꽤 사곤 했던 것 같다. 뭐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떨어지는 낙엽에 괜히 하늘 한번 쳐다봤나? 휘~잉 바람불던 날에는... 괜스레 옷깃도 한번 추스려봤나?
시몬, 너는 아느냐... 낙엽 밟는 소리가...
괜히 폼도 잡아봤던 것 같다. 두꺼운 책 한 권 괜히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것도 같다. 아마도 군대 입대를 앞두고 였던가? 조그만 입구를 지나서, 어두운 좁은 계단을 내려가 작은 소극장의 어느 한 켠을 자리잡던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렇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만났던 것 같다. 한 숨 섞어가며 나름 해석해 보려고 끙끙대던 곱슬머리의 청년이 뭐 좀 아는 척(?), 연신 어리둥절해 하던 모습이 떠 오른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이 제목이 낯이 익었나보다. 지금에서야 손가락 굽혀가며 가늠하니, 30년은 훌쩍 넘은 세월이군! 제법 반백년이 넘은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이 책을 손에 쥔다. 희곡작품을 글로 읽어보는, 그래서 중간중간 쉬어갈 수 있는, 서른 해가 훌쩍 넘은 이제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를 만난다. 잠깐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얼마전의 연극 소식을 접한다. 아! 한국에 있었더라면, 살짝 아쉬운 마음이 스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책 읽는 나의 중년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 분명했었기에, 그나마 이곳 미국에 있는 것이 더 낫다고 스스로 토닥여준다.
https://youtu.be/8WQqldWdMx8?si=VMNf7vBD4nuuXR2H
누구든 앉아서 조금만 집중하면 금방 한 권을 읽어낼 수 있는 적은 분량이다. 그러나, 누구든 책의 마지막을 덮고 나면, 읽은 것 이상으로 멍해지거나 사색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아차! 했던 나의 삶을 본다. 그랬어! 했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그래! 라며 동의하는 나를 보지는 않을까?
자, 가자.
갈 순 없어.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작품에서는 만나지도 않는 고도(Godot)를 기다림으로 시작해서, 떠나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기다림으로 끝을 맺는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 간의 대화도 잊지 말자. 그들의 대화에는 기승전결 또는 인과(因果)도 뚜렷하지 않다. 그런 식으로 대화의 줄기를 엮어간다. 왜 그럴까?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습은 아닌가? 혹여 순간의 조각들을 붙혀가며 살고 있는 걸 말하고 싶은건가? 마치 서로 연관없는 조각을 이어 놓으니 어떻게든 대화가 되어가는 것처럼... 그저 지금 당장 주위에서 생겨나는 일들, 그저 외로워서 내 옆의 누군가에게 뭐라도 소리를 내어 연결하려는 존재, 게다가 정해진 시간도 모른 채 무언가를 기다리는 우리 인생을 뒤돌아 보게 한다. 그렇게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기다리는 우리의 내면을 보게 한다.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다뤘던 시지프스의 형벌을 떠 올린다. 그럼에도 시지프스는 돌을 굴려 올리고, 내려가면 또다시 굴려 올리고, 끊임없이 반복하듯 말이다.
중간에 우리는 새로운 등장인물, 푸조와 럭키를 마주한다. '나'와 '너'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로소 우리는 제3자를 만나게 된다.
카인! 카인! - (중략)
아벨! 아벨! -(중략)
그러면 인류 전체다. -(중략)
푸조를 '카인'이라고 불러보고, '아벨'이라고도 짚어보고, 결국 작가는 그들로 하여금 타인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누군가는 지배인으로 누군가는 피지배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공동체말이다. 그 안에서 푸조는 푸조대로, 럭키는 럭키대로 계급적 통념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처음엔 다소 측은하게도 생각되어졌던 럭키를 마치 그래야 하는 양, 럭키를 다루는 푸조의 모습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서서히 스며들어 살아간다. 나도 모르게... 어느덧...
그러다가, 우리는 고도의 소식을 전달하는 소년을 만난다. 그리고 소년은 이렇게 전한다.
고도 씨가 오늘 밤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랬어요.
고도는 오늘도, 내일이 다시 오늘이 되어도, 그 다음 내일이 되어도 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서로 떠나자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자리에 서 있다. 고도를 기다리면서... 기다림에 무료해 진 것인지 목숨을 끊자고까지 한다. 결국 그들은 죽음을 뒤로하고 고도를 기다린다. 당신의 고도는 무엇인가? 과연 하나만 있을까? 정해진 시간이나 날짜도 없이 당신이 기다려 왔고, 앞으로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인가? 혹자는 희망이라고, 신이라고, 죽음이라고, 각양각색의 고도가 우리에게 모두 있으리라. 고도가 왔어도 그것이 정말 고도인지는 인지할 수 있을까?
작가 사뮈엘 베케트에게 누군가 질문을 했더랬다. 당신이 말하는 "고도는 무엇인가요?" "내가 그것을 알았더라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고 말하며 고도의 정체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새삼 고도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기다리고 있는 그 인생길을 지나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건 어떨까? 그렇게 기다리는 나의 인생 또는 당신의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지를, 어떻게 살고 있는 지를, 과연 즐기고 있는 지에 초점을 맞추는 건 어떨까? 그저 바로 지금을... CARPE DIEM(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이렇게나마 간략하게 <고도를 기다리며>의 독서일기를 마치고, 몇몇 기억하고 싶던 대사들을 남긴다. <고도를 기다리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간다.
넌 늘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 / (꿈꾸듯이) 마지막 순간이라... (생각에 잠긴다.) 그건 멀지만, 좋은 걸 거다. / (중략) / 그래도 그건 오고 말 거라고 가끔 생각해 보지. 그런 생각이 들면 기분이 묘해지거든.
그럼 어제 우리가 뭘 했다는 거야? / 우리가 어제 뭘 했느냐고? / 그래. / 나 참...(화를 내며) 남을 헷갈리게 하는 데는 널 따라갈 사람이 없을 거다.
그럼 우리에겐 아무 권리도 없게 됐단 말이냐?
우릴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니냔 말이다. / 묶여 있다고? / 그래. 묶-여-있단 말이야. /묶여 있다니 어떻게? / 손발이 다. / 도대체 묶긴 누가 묶고, 누구에게 묶여 있다는 거야? / 네가 말하는 그 작자에게. / 고도에게? 고도에게 묶여 있다고? 무슨 소리야?
밤이 밀려와 (목소리가 더욱 떨린다.) 우리에게 달려든단 말이오. (손가락들을 소리내어 꺾으며) 이렇게 와락! (영감이 사라진다.) 우리가 전혀 예상 못한 순간에 말이오.(침묵. 침통한 목소리로) 이 빌어먹을 땅덩어리 위에서는 모든 게 이렇게 되고 마는 거지.
우린 늘 이렇게 뭔가를 찾아내는 거야. 그래서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구나.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간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그럼 갈까? / 가자. /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