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아스
2026-07-03 21:16:18
<일리아스>의 마지막 문장을 읽은 지, 꼬박 2주일이 지났다. 읽었던 감정이 또는 머릿 속을 스치는 찰나의 감동이 산화되기 전, 빨리 손가락을 움직였여야 했는 데 말이다. 하루, 이틀이 지나가더니 금새 한 주, 또 다른 한 주가 지나가려 하기에 늦은 밤 졸음을 참아보며 책상 앞에 앉는다. 몇 자라도 남기지 않으면 꼬박 다음 주가 되기 일쑤이니 말이다. 참, 무엇이든지 빼먹고 넘기는 건 쉽기도 할 뿐더러, 자칫하면 가속도가 붙어 그냥 지워버리게 된다. 후~~~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손가락을 움직인다. 이제 흩어졌던 기억을 추스려 모아봐야 할 때다.
일리아스! 책 두께를 보고는 바로 등을 지고, 멀찌감치 잊고 있던 작품이다. 나오는 인명, 지명 등의 낯설음뿐만 아니라, 수많은 등장인물만으로도 읽어보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게다가, 그리스 신화의 각 신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기본지식도 없던 내가 <일리아스>를 읽는 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운전대를 잡고 운전해 보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렇게 마음 속 한쪽 귀퉁이에 모셔져 있던 책이었다고나 할까?
왜 그런지 딱히 이유는 없다. 그저 일반적인 독서모임에서 다루지 못했던 두꺼운 책들을 만나고 싶었다. 흔히, 너무 두꺼워서... 너무 오래되어서... 너무 어려워서... 뭐 그런 책들을 읽어보고 싶었다. 자칫 지루하고 인내의 씨름을 해야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누군가와 같이 읽어볼 수 있다면 어떨까? 자연스레 피어나는 호기심 반, 의욕 반으로 흔히 일컬어지는 벽돌책을 읽어보자는 오픈 채팅방을 열어본다.
'인연이 닿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겠지...'
세월의 흔적이 가르쳐 준 대로, 억지로 하기보다 자연스런 물결마냥 힘을 빼고 있어본다. 그렇게 일주일이 되니, 누군가의 방문이 이어지고,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일리아스>가 선택되어진다.
'혹시 나처럼 기존 독서모임에세 관심있어하는 멤버들이 있지는 않을까?'
독서모임에 알려보고, 그렇게 '하루'님과 '봄비'님의 참여가 이어지더니, 이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지금, 스스로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뿌듯해 하며 토닥여 준다.
'정말 잘 해 왔구나...!'
처음의 시작은 그리 쉽지는 않았다. Youtube에서 관련한 강의자료도 살펴봐야 했더랬다. 그 내용도 2~3시간이 훌쩍 넘어갈 만한 방대한 분량이다. 듣는 순간부터 지루한 강의같은 영상도 넘겨보고, Helen of Troy라는 영화도 보곤 했고, 책을 접하기에 앞서, 충분한 워밍업차원의 공부가 필요했다. 1권부터 부딪히는 많은 주석의 내용을 따라가야 하는 부담의 장벽을 경험하고, 신들의 이름을 적어가며, 그들과 인간들의 족보를 따라가며, 어느 지역을 얘기하는 지 지도상의 위치(물론, 고대 그리스 당시의 지명으로)도 짚어가다보니, 독서가 아닌 공부가 되어 가는 듯 했다. 아마도 혼자서 읽었다면, 쉽사리 손을 들지 않았을까?
온라인으로의 모임은 매주 일정분량을 읽고, 만나기로 한다. 처음엔 작은 분량으로 시작하다가, 점차적으로 읽는 속도도, 내용의 이해도도 적응되어 깊어지는 맛을 본다. 나눔의 시간에선 주로 읽은 분량의 내용을 다시 짚어본다.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은 문구나 감상들, 또는 의문점들을 자유롭게 주고 받는다. 그런 식으로 정리하다보니, 몇 십장의 질문이나 요약자료들이 남게 된다. 모인 자료를 토대로 이제 어디가서 <일리아스>라고 하면 조금은 썰을 풀 수 있지는 않을까? 그래도 먼 미래에, 이 질문들을 훑어보면서 지나왔던 시간들을, 노력했던 기억들을, 또 함께 했던 사람들이 떠오를 것을 생각해 보면 굳은 얼굴에 살포시 미소가 얹어 진다.
독서일기의 막바지를 뭘로 채울까? 그래도 책에 대한 언급은 해 놓아야 나중에라도 <일리아스>를 읽었던 순간의 나의 세포들을 깨울 수 있지 않겠는가. 아래와 같이 모임에서 다뤘던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요약하여 남기며 <일리아스>의 독서일기를 마친다. 펜으로 직접 써 갔던 깨알같은 글씨들이 남겨져 있는 노트를 보면서...
아가멤논의 리더쉽
인간들이 창, 칼, 화살 등에 찔려 죽어가는 자세한 묘사
호메로스가 테르시테스가 말하는 아가멤논에 대한 비판을 남긴 이유는 뭘까?
파리스와 헥토르를 비교해 보자. (상징: 아름다움 vs 책임 / 욕망 vs 의무 / 개인행복 vs 공동체)
신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성경, 코란 등과 같은 종교계에서 말하는 범접할 수 없는 신의 개념과는 다른 차원
각 권에 나오는 등장인물 중에서 서로 대립되는 인물들을 비교하면서 보자
(아킬레우스 vs 아가멤논 / 파리스 vs 메넬라오스 / 아가멤논 vs 헥토르 등)
각 권에 계속해서 언급되는 신의 인간에 대해 개입하는 장면들 또는 인간들이 신에게 어떻게 매달리는지
신의 관점에서 인간들을 어떻게 보는가? 혹시 컴퓨터 게임이 생각나지 않는가?
헥토르와 안드로마케가 서로 이별하는 장면...
헥토르와 아이아스간 싸움을 하다, 선물을 교환하고 끝냄. 그 선물이 나중에 어떻게 쓰이는가?
제우스의 저울과 운명... 이미 결정된 운명이 있다면, 운명에 대한 개척 운운할 수 있을까?
아킬레우스에게 간 세 명의 사절단(오딧세우스, 포이닉스, 아이아스)
파트로클로스의 등장과 활약을 보고, 특히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
헤라의 제우스를 속이는 계략
신들간의 시기, 질투 또는 싸움 (제우스 vs 포세이돈, 헤라&아테나 vs 아프로디테,
아킬레우스의 분노의 상대가 변화되는 것을 보고, 그의 분노가 없어질 때 <일리아스>가 끝나는 걸 보자.
헤파이스토스의 무구 제작 (아킬레우스의 방패...)
신들간의 전투 (헤라vs아르테미스, 아테나vs아레스, 포세이돈vs아폴론, 헤파이스토스vs크산토스 등)
바람끼 많았던 제우스의 아내로서의 헤라가 갖고 있을 법했던 히스테리
헥토르의 죽음, 헥토르가 아킬레우스에 쫓겨 도망다니는 모습을 담은 이유?
파트로클로스를 위한 장례 경기를 하면서 아킬레우스의 분노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일리아스>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시작되었다면, 그 끝은 무엇으로 끝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