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밤은 흐른다] 1일차
2026-07-14 12:47:12
이 책이 읽기 좋다는 댓글을 어디서 봐서 오늘 처음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뭔가 생각하기엔 좋다. 하지만 관점은 좀 다른 듯.
현재 2개 챕터만 봤는데, 내용은 대략 이랬다.
사람을 대할 땐 (심지어 그게 자기 자신일지라도) 단정짓지 말고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느낌으로 다가갈 것. 이 세상이 개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설사 본인에게 책임이 주어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견해에 확신을 가질 것.
하지만 작가는 그런 현상이 왜 발생하는지를 더 세밀하게 파악했어야 했다. 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그런 가치를 설파하기엔 너무 서로 붙어 살고, 매분 매초가 기록된다.
어디서 봤는데 인간은 최대 100명까지만 인간관계를 직접 관리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인간이 만나는 사람은 총 몇 명일까. 어린 시절 학교에서 마주친 전교생이 수천 명, 거쳐가는 학교만 최소 3군데, 대부분 4군데다. 그 이후엔 학원, 직장, 스쳐가는 거리의 사람들과 가게들, 동호회… 사회를 관통하는 거대한 정치적 이벤트가 열리면 수십만 명이 참여하지. 이런 환경에서 일일이 ‘알아가려는’ 노력을 했다간 과도한 스트레스로 탈진해버리고 말 거다. 사람들은 이럴 때 크게 2가지 선택을 한다. 남들을 크게 몇 가지 분류로 뭉뚱그리고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가거나, 모두에게 통용되는 기본 매뉴얼만 만들어 쓰고 그 이상의 교류를 거부하거나. 한 명 한 명에게 적용되는 맞춤형 대응은 가까운, 혹은 가까워지고 싶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적용된다.
작가라면 지금의 사회가 스캔들 한 번만으로 개개인에게 얼마나 돌이킬 수 없는 후폭풍이 몰아치는지 알 것이다. 대개는 연예계의 일이라 치부하지만, 꼭 유명인이나 상류사회에 속하지 않더라도 도시의 생리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학교에서의 소문, 이직할 때나 입사지원자를 거를 때 동원하는 인맥과 레퍼런스, 지금은 인터넷과 방송에 박제되는 자신의 기록들까지. 침대에서 일어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모든 것이 한 번의 선택 내지는 실수로 갈린다.
이러한 현상을 한국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단연 대입 준비 과정일 것이다. AI가 무섭게 발전하는 지금은 곧 과거의 유물이 될 모습으로만 보이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능이란 단어 하나엔 수많은 고통, 불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유발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들이 있었다. 학부모들은 그 복잡하게 갈라진 선로 위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한 선로를 골라 자식들에게 강요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확신은 필요없었다. 오직 충실한 수행만이 필요한 모든 것이었다. 그러면서 부모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자식과 함께 지게 됐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선택을 부모에게 맡긴 자식은 이후의 결과에 따라 부모를 원망하거나, 수능 이후의 선택까지도 부모에게 일정 부분 맡긴다.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한 세대가 그 반동으로 책임도 거부하는 세대가 된 셈이다. 이러한 현상은 80년대 불법과외가 성행한 시절부터 쭉 심해져가기만 했고, 지금은 뭐 알다시피.
현대인이 서로를 알려 하지 않고, 확신에 찬 행동을 자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너무 많은 사람을 만나면 일일이 기억할 수조차 없다. 매분 매초가 기록되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고 심지어 다시 들춰진다면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더욱이 한국은 성장기에 선택권을 박탈당하며 크는 나라 아닌가. 선택이 제한된 인생에 책임이 주어질 순 없는 것이다. 작가가 비판하는 인생의 모습들은 이 사회의 병폐에 최적화된 생존방식이다.
물론, 작가가 제시한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는 매우 고결하다. 현대인이 어쩔 수 없이 깊은 교류를 거부하고 책임을 회피한다 해서, 사람을 알아가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자세가 가치를 잃진 않는다. 다만 나는 작가가 제시하는 방식에도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작가는 어떤 사람을 대하든 조심스럽게, 편견을 갖지 말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에 확신을 가지며,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만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모든 일에는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나는 반대로, 어떤 사람이든 일단 만나고 부딪쳐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본인의 입장이 확실해지기 전까지 많이 듣고 보라고 하고 싶다. 실전은 언제나 언어가 아닌 감각의 영역이다. 신중하라는 말을 들어봤자 경험이 없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워지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경험을 쌓아야만 한다. 그 다음에 복기하는 과정만 충실히 거치면 된다. 자신의 견해를 확립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선택해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의견을 관철하고 책임을 질 것인가.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선택을 수없이 쌓아봐야만 한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면 확실해지기 전까지 많이 들어두기만 해도 좋다. 경험이 쌓이면 의견이 쌓이고, 의견이 쌓일수록 확신이 된다. 확신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뭐…암튼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방법론도 별로 동의가 안된단 말이다.
…까지 썼는데 바로 다음 챕터가 너무 내 생각이랑 똑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