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아사이 료
2026-07-28 10:32:22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몰래 만날 수 밖에 없는 누군가이다.
"좋겠어요.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인생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여주는 시대에 우리는 서로를 찾아내서 더 이야기하고 연대할 수 있을까?
책의 초반부까지만 해도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하는 일본식 소설의 유형이겠거니 생각했다.
일본의 소아성애자, 변태들 이야기라니 소재가 파격적이긴 한데, 에이섹슈얼, 범성애자, 폴리아모리, 이상성욕자 같은 부류는 트위터를 통해 꽤나 접해왔기에 띠지에 적힌 "이 책을 읽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정도의 충격적일 것은 없어보인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었다.
소아성애자로 오인받아 체포된 세명의 특이성욕자(스포를 하지 않기 위해 밝히지 않겠다.)들은 변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비슷한 표정으로 체념해버린다. 아무도 우리의 이야기를 믿어주지조차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며.
무엇이 '바른 욕망'일까? 그 선을 가르는 것은 누구인가?
개인이 포용할 수 있는 '다양성'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내가 말하는 '다양성'과 당신이 생각하는 '다양성'이 너무나 달라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라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욕구를 가진 자신과 외롭게 한평생 살아가야 한다는 것의 무게는?
내가 당연하게 여기며 말하고 범주화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무례함, 침해, 억압, 불안이 될 수도 있는 것임을 자각하게 해준 소설이었다.
아마 나는 소설 속에서 모로하시 다이야가 단순히 동성애자일 것이라고 단정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간베 아야코 정도의 포지션일 것이다.
나름대로 진보적이고 젠더 다양성도 인정하는 트위터리안. 얼마나 시혜적인 시선이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세상에는 내가 넘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않은 선이 얼마나 많이 그어져있을까.
'아사이 료는 고약하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정욕을 자각하라고 재촉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 평만 봐도 알 수 있다. 많은 독자가 바르게 존재하고 싶은 자신의 추함을 깨닫고 큰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깊은 죄책감을 고백하는 글 자체가 결국은 정욕의 산물로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자실했다.'
-소설 <정욕> 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