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규 장편소설 『검은 곳을 입은 자들』(문학수첩)
2025-05-04 08:44:25
범죄스릴러에 철학, 오컬트, 음모론, 첨단 기술(?)을 버무린 종합 선물 세트다.
흡인력이 장난 아니다.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야기는 건실한 기업의 탈을 쓴 범죄 조직의 간부가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자살이 속출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고 지금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뻔한 설정이지만, 이 설정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찌라시에 가까운 자극적인 기사로 연명하는 한 언론사의 기자가 계속되는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이 죽음에 얽힌 범죄 조직은 경쟁 조직을 의심하며 진상 조사에 나선다.
이들은 마침내 공통점을 발견한다.
자살자들 모두 죽기 전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자살자들에게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라"는 말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기자와 범죄 조직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강력 범죄 피해자들의 자조 모임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난다.
특이하게도 그는 묵자의 사상을 따르고 있고, 믿기 어렵지만 귀신을 부려 사람을 죽인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역시 무서운 건 귀신보다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의 결말이 궁금해 미칠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불만인 부분도 있다.
언론사 묘사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마치 강의를 하는 듯 지나치게 설명이 긴 부분에선 "굳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드러나는 음모론에선 "아아..."하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런데도 작품을 읽으며 만족했던 부분이 훨씬 많았던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인간쓰레기라는 말로도 모자란 범죄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현실이 분통을 터트리게 하지만, 그런 자들을 사적 제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작가는 현재진행형인 이 오래된 질문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지면 더 나은 세상이 오는 게 가능한지 묻는다.
여기에 고대 사상과 철학까지 끌어오다니.
덕분에 공부 많이 했다.
그렇다고 머리 아픈 소설 아니니 피하지 않아도 된다.
순수하게 읽는 재미,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