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안윤 소설집 『모린』(문학동네)
2025-05-11 19:42:06모린

몇 년 전 작가의 데뷔작 장편소설 『남겨진 이름들』을 읽고 감탄했었다.
키르기스스탄을 배경으로 현지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소설은 상상해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섬세하면서도 우아한 문장이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이 소설집의 분위기는 데뷔작과 다르지만, 일상적인 소재를 일상적이지 않게 다루는 방식이 좋았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묘사하는 문장 역시 데뷔작처럼 섬세하고 우아하다.
장애에 가로막혀 쉽게 소통하기 어려운 마음을 들여다보고(모린), 가장 가까운 사람에 관해 과연 얼마나 아는지 묻기도 하며(핀홀), 오랜 세월 놓지 못한 마음이 끝내 가닿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작은 눈덩이 하나).
소설의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차분한데 그 아래에 깔린 정서는 격정적일 때가 많아서 놀랐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많은 말을 상상하게 만드는 데 탁월한 단편들이었다.
가장 압권이었던 작품은 「담담」이었다.
이 단편은 긴 연애를 끝내고 방황하는 양성애자와 배우자와 사별한 이성애자가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을 말 그대로 '담담'하게 그리는데,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등장인물의 모습이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애틋했다.
근래 읽은 단편 중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슬펐다.
책을 덮을 때 문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박동훈'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이 그렇게 한 겹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