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우 장편소설 『도깨비 복덕방』(나무옆의자)
2025-05-18 23:00:22
다음 행보가 정말 궁금했던 작가다.
국내 굴지의 장편소설 공모인 세계문학상과 문학동네 소설상을 동시에 받아 화제를 모았던 작가이니 말이다.
단편소설로 응모하는 신춘문예에선 다관왕이 가끔 등장하지만, 장편소설 공모 다관왕은 그야말로 천운에 가깝다.
장편소설 집필은 단편소설 집필보다 훨씬 품과 많은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장편소설 공모 경쟁률은 신춘문예보다 낮은 편이지만, 못해도 100대 1은 넘어간다.
단편소설 집필보다 물리적인 진입 장벽이 높아서 허수도 적다.
천운은 물론 실력까지 따라줘야 한다.
21세기 들어와 장편소설 공모에서 이 정도 임팩트를 보여준 작가는 서유미, 장강명뿐이다.
그런 작가의 신작 소식이 지나치게 뜸해서 의아했다.
단편을 전혀 안 쓰는지 문예지나 앤설러지에서도 이름을 볼 수 없었다.
지난해 말에 신간을 살피다가 작가의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바로 작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읽기까진 반년 넘게 걸렸지만.
이 작품은 작가의 전작 『모조사회』 이후 5년 만의 신작이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동명이인 작가가 쓴 작품인 줄 알았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유행한 가게를 배경으로 다룬 힐링소설임이 분명했으니까.
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결이 많이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이 다른 세 가지 이야기로 이뤄져 있다.
벼랑 끝에 몰린 주인공 앞에 느닷없이 복덕방이 등장하고, 그 복덕방에서 매력적인 제안을 받은 주인공은 낯선 공간에서 '한달살기'와 비슷한 체험을 한다.
깊은 절망 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던 주인공들은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깨닫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나간다.
형식만 보면 연작소설과 비슷한데, 다른 연작소설보다 연결 강도는 강한 편이다.
연작소설과 장편소설 사이의 어딘가에 놓인 형식이 독특했다.
신선한 이야기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술술 읽히고 재미도 있다.
그리고 교훈도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주인공 저마다 마음속에 품은 오해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로 말 한마디만 제대로 나눴어도 풀렸을 오해인데, 그걸 못해서 파국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답답했다.
나 역시 그런 일이 꽤 있었기 때문에 작품을 읽으며 공감했다.
인간관계에서 손쉽게 손절을 권하는 사회가 옳은지 묻는 대목에선 머릿속에 큰 종이 울리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을 손절해왔다.
인간관계에 딱히 기대가 없다 보니 내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 싶으면 바로 관계를 끊어버리곤 했다(물론 상대방은 알 턱이 없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내 오해였다면?
내가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었다면?
그런 질문을 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는 시간이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