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규 산문집 『창밖에 사체가 보였다』(나무옆의자)
2025-08-06 20:10:42
우리나라에 아마도 박진규 작가만큼 경찰을 잘 아는 소설가는 없을 테다.
작가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수사연구'는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사 전문 잡지이고 경찰 사이에선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다.
기자는 경찰서에서 형사들에게 귀찮은 똥파리 취급을 받는데, '수사연구' 기자는 다른 취급을 받았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디테일한 내용이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는 실제 사건 12건에 관한 사실관계와 뒷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가 사건을 취재하며 느꼈던 감정과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여기에 소개된 사건은 하나 같이 인류애를 의심하게 만들고, 인간의 밑바닥 of 밑바닥, 그야말로 심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윤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범죄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소개되는데, 이를 마냥 선악 구도로 바라보고 한쪽만 욕하기가 어렵다.
특히 작가가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지 물을 땐 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아...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로구나.
나처럼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라면 경찰서는 애증의 공간일 테다.
내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0년대 말에는 일선 경찰서가 수습 기자 교육의 장이었다.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은 수습기자를 무작정 경찰서로 보내 기사거리를 찾게 하는, 대단히 야만적인 형태의 교육이 이뤄졌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경찰서 기자실에서 쪽잠을 자며 24시간 대기하고 사수에게 수시로 깨지는 일상이 몇 달 동안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그런 교육에 과연 효과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효과는 있었다.
만날 경찰서에 출입하고 형사들을 만나다 보니, 길에서 경찰을 마주칠 때 아무 죄도 없는데 긴하는 일은 사라졌다.
수습기자 시절에 이런 산문집을 읽었다면 몸은 고되어도 조금은 즐겁게 일하지 않았을까.
사회부 경찰 기자 업무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언론사에 수습기자를 위한 교재로 이 산문집을 추천하고 싶다.
이 산문집을 읽고 오랜만에 경찰서에서 긴장한 채 사건 기록을 살피던 수습기자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그 시절에 운 좋게(이 산문집에선 조심스럽게 쓰이는 표현인데, 읽으면 안다) 읽었던 대마 재배 현장 수사결과보고서가 떠올라 흥분했다.
더불어 언젠가 제대로 수사 현장을 다룬 소설이 작가의 손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