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순 장편소설 『빛들의 환대』(나무옆의자)
2025-12-01 00:38:14
얼마 전 안경점에서 새로운 안경을 맞추다가 노안이라는 말을 들었다.
노안이 오기에는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닌 데다, 고도 근시는 늦게 노안이 온다는 말을 들어서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안경점 사장은 내가 지난해 안경 렌즈를 교체했을 때 이미 노안이었다고 말해줘 충격을 받았다.
다시 노안인지 아닌지 검사를 받아봤는데, 부정할 수 없는 노안이었다.
사장은 내게 평소에 운전을 많이 하느냐고 물었다.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다고 답하니 앞으로도 그러는 게 좋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장은 내게 지금 안경 렌즈로는 가까운 건 잘 보이나 먼 건 흐리게 보일 거라며, 운전을 오래 하면 눈이 금방 피로해져 힘들 거라고 말해줬다.
오래 운전을 하면 눈이 지나치게 피로해졌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됐다.
코털이 하얗게 세고, 치아가 벌어지는 사소한 변화부터 기억력이 두려울 정도로 감퇴하는 심각한 변화까지 몸이 점점 예전 같지 않아 나이 들고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노안 판정은 내게 "자넨 이제 늙었어!"라고 쐐기를 박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나보다 나이 든 사람 앞에서 엄살이긴 한데, 요즘 들어 죽음에 관해 자주 생각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수명은 만 80.6세다.
평균에 따르면 내가 앞으로 살아갈 날은 살아온 날보다 짧고, 죽음은 언젠가 다가올 확실한 미래다.
생각한다고 해서 죽음이 두려워지지 않거나 익숙해질 리가 없지만, 그래도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대책 없이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 죽음 관련 콘텐츠를 자주 찾아보곤 한다.
이 장편소설도 그런 콘텐츠였는데, 생각보다 내게 꽤 많은 위안이 됐다.
이 작품은 소멸을 걱정하는 지방 소도시의 임종체험관을 배경으로 그 안에서 일하는 네 직원, 그리고 그들과 얽힌 사람들에 관한 다채로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사회가 앓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를 촘촘하게 엮는다.
대체로 비루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살아내는 것이 삶이고, 그리고 그렇기에 삶은 아름답다는 역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가독성이 좋다는 말은 빈말로도 못 하겠다.
등장 인물이 많은데, 그 관계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아 자주 읽는 흐름이 끊겼다.
등장 인물의 생각과 행동 역시 무척 답답해서, 초중반부에 꽤 인내심이 필요하다.
읽다가 못 참고 덮었을 독자가 꽤 많았을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넘어가면 몰입감이 상당하므로 이왕 펼쳤다면 끝까지 보는 게 보람이 있다.
다소 어지러웠던 초중반부가 후반부에 정교하고 치밀하게 어우러져 묵직하게 다가오니 말이다.
죽음을 앞둔(혹은 죽은 후의) 상황을 이보다 실감 나게 체험하게 하는 콘텐츠도 드물지 않을까 싶다.
유튜브로 정말 많은 죽음을 다룬 콘텐츠를 봤는데, 그 어떤 콘텐츠보다도 이 작품에서 더 생생하게 죽음을 간접경험했다.
서글프지만 따뜻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