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 장편소설 『세이프 시티』(창비)
2025-12-12 18:46:26
이 책을 덮고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불과 5년 전쯤의 우리가 챗지피티나 제미나이가 불러일으킨 생활의 변화를 상상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SF일 텐데, 그렇다고 본격적인 SF스럽진 않다.
근미래를 배경으로 다룬 SF가 많은데, 이 작품 속에선 딱히 지금 시점과 시차를 느끼기가 어렵다.
그런 점에선 초초초근미래에 다가올 풍경을 다룬 사회 고발물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인간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이뤄졌다.
문제는 이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이다.
인간 복제를 두고 윤리 문제 논란이 있었듯이, 기억 조작 기술도 마찬가지다.
기술 활용을 반대하는 의견을 찬성으로 바꾸려는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고 발 빠른 움직임이 일어나는 가운데, 휴직 중인 여성 경찰이 사건의 중심에 의도치 않게 뛰어든다.
이 과정에서 안전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과 충돌하고, 기술을 활용해 권력을 강화하려는 은밀한 시도가 어떻게 전방위로 이뤄지는지 추적한다.
술술 읽히고 집요한 심리 묘사가 인상적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더라도 기술을 활용해 사회 안전을 도모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누군가의 기억을 조작하는 행위에 과연 정당성이 있는지(그 대상이 비록 범죄자일지라도) 수시로 고민하게 만든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대한민국 곳곳을 비추는 CCTV를 떠올렸다.
CCTV가 각종 범죄 발생 비율을 과거보다 떨어뜨렸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치 지형이 바뀌어 독재에 가까운 권위주의 정부가 나타난다면 CCTV가 과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도구로 기능할까?
국민을 감시하는 도구로 기능하지 않을까?
기우가 아니다.
당장 옆 나라 중국에서 CCTV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보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