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해나 소설집 『혼모노』(창비)
2026-01-21 00:28:46
지난해 봄에 산 책을 이제야 읽었다.
2025년 한국 문학에서 최고의 화제작이었는데도 이상하게 손이 가질 않았다.
너도나도 읽으니 유행에 편승하고 싶지 않은 청개구리 같은 심리 때문이었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해가 바뀐 요즘에도 이 책은 여전히 베스트셀러이고 앞으로도 당분간 그 위치에서 내려올 일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펼쳤다.
내가 장편소설을 선호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다.
단편으로만 채워진 소설집을 읽고 "잘 썼네"라는 기분은 많이 느껴봤지만, "재미있네"라는 기분을 느껴본 적은 드물다.
단편을 그리 선호하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
이 소설집은 잘 썼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재미있었다.
소재도 매우 다채롭고 가독성까지 좋은데 얄팍하지 않았다.
한국 문학에 으레 등장하는 소재(페미, 퀴어 등)가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 점도 이채로웠다.
「구의 집:갈월동 98번지」이나 「메탈」 같은 소설을 어떻게 쓸 생각을 했을까.
이 모든 걸 다 경험해 본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묘사가 생생하면서도 집요한데, 완급 조절까지 좋아 지루할 틈이 없었다.
특히 표제작 「혼모노」 앞에선 완전히 패배한 기분을 느꼈다.
기술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순수하게 피지컬로 찍어누르는 압도적인 기분이랄까.
어떻게 이런 소재를 이렇게 밀어붙여 이런 결론을 내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이분법 앞에서 패배할 걸 알면서도 진정한 진짜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려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주인공 앞에서 전율했다.
마치 영화 「위플래쉬」의 마지막 부분을 감상했을 때처럼.
이 소설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던 박정민 배우의 추천사다.
대한민국 출판 역사상 이보다 영향력 있는 추천사가 또 있었나 싶다.
이 추천사 덕분에 이 소설집이 더 큰 화제를 모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고, 추천사를 쓴 박정민 배우 또한 한국 문학을 흔드는 큰 손이 됐다.
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는 추천사에 살짝 오버가 섞인 건 아닐지 의심했는데, 다 읽고 나니 충분히 '익스큐즈'할 만한 추천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 읽은 모든 소설집을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소설집이었다.
나는 이런 소설집을 쓰고 내놓을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