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황석영 장편소설 『할매』(창비)
2026-07-04 08:53:53할매

수백 년을 살아온 팽나무를 중심으로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연대기순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분량이 많지 않은 소설임에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주는 호흡이 완전히 달라, 마치 전혀 다른 두 권의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초반부에 펼쳐지는 자연 풍경 묘사가 압도적이다.
미문과 거리가 먼 담백한 문장인데도 묘사의 스케일이 웅장하고 넓었다.
페이지를 쉽게 넘기지 못하고 오래 눈을 멈출 때가 많았다.
특히 새를 다룬 서사 대목에선 괜히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그 압도적인 묘사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이미 책값은 아깝지 않다.
다만 후반부는 전작들을 떠올려볼 때 아쉬움이 남는다.
얇은 두께에 비해 다루는 시간 범위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주목하기 보다는, 한 시대를 증언하는 데 등장인물을 도구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잦다.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해방과 한국전쟁 이후의 서사도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여든을 훌쩍 넘긴 나이에 끊임없이 신작을 내놓으며 건재함을 증명하는 작가의 행보는 그 자체로 경이롭다.
나 역시 이 나이에 현역으로 신작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간만에 큰 자극을 받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