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누구나 대체로 듣기 싫어하면서도 자기 입으로 내뱉기 좋아하는 말은 자랑이다.
특히 해준 것도 없는 사람이 앞에서 늘어놓는 자랑만큼 꼴불견은 없다.
자랑하고 뒷말을 듣지 않으려면 지갑을 열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뒷말만 겨우 듣지 않을 뿐이지 진심 어린 축하를 듣긴 쉽지 않다.
막상 내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꼴불견 짓을 참으로 많이 저질렀다.
그래서 요즘에는 되도록 사람 만날 기회를 잡지 않는다.
나이 들어 정신적으로 성숙해져 생긴 변화라기 보다는, 입을 열면 내 바닥이 드러난다는 걸 알고 알아서 숨는 거다.
생존 전략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떠들어도 욕을 많이 먹기는커녕 오히려 관심을 집중시키는 자랑이 있다.
바로 맛집 자랑이다.
맛집 찾기는 본능적으로 즐겁고, 어딜 여행하더라도 추억은 대부분 맛집에서 먹은 음식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맛집을 자랑했을 때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산문집을 읽고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순수하게 맛집 소개를 원한다면 다른 책을 찾자.
이 책은 일단 산문집이다.
곳곳에서 맛집을 소개하지만, '생생정보통' 같은 걸 기대하면 곤란하다.
미식가로 유명한 이탈리의 작곡가 로시니 이야기를 꺼내며 자연스럽게 작가 본인의 오랜 맛집인 이탈리안 레스토랑 '로씨니'와 얽힌 추억을 언급하는 식이니, 글맛을 즐기는 방향으로 읽는 게 옳다.
아재스러움(아재이니 당연하지만)이 물씬 풍기는 문장이지만, 곳곳에서 개그감이 넘쳐나서 지루하지 않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태도가 없다는 점도 솔직해서 좋다.
하얏트 호텔과 신라 호텔의 레스토랑을 비교해 손님 접대와 서비스도 국격에 맞게 개선돼야 한다고 꼬집으며 한 곳을 대놓고 '디스'할 땐 속이 시원했다.
음식을 두고 벌이는 갈등은 맛집에 진심인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남의 맛집을 탓하면 안 된다는 통찰도 공감이 가면서도 날카롭다.
'맛집'이란 단어가 국립국어원이 만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는 식의 깨알 정보도 유익하다.
'필동면옥'과 '우래옥'처럼 내 맛집과 겹치는 곳이 나오면 반가워서 군침을 흘렸다(나는 '진미냉면'을 훨씬 사랑하지만 뭐).
해외 맛집을 예약하겠다고 국제전화를 120통이나 걸었다는 대목에선 '미저리' 같은 집착을 느껴서 조금 공포스럽긴 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아무튼' 시리즈를 읽었다.
이 시리즈는 책마다 기복이 좀 있어서 뽑기를 하는 기분이다.
'아무튼, 장국영'처럼 가슴이 먹먹해지는 책도 있었고, '아무튼, 인기가요'처럼 "고작?"이라는 의문이 든 책도 있었다.
이번에는 뽑기를 잘했다.
누가 읽든 미워하기 어려운 산문집이다.


작품을 펼쳐 초반부를 읽으며 들었던 감정은 당혹감이었다.
차라리 대중교양서라고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 "이걸 과연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따라왔다.
기시감이 들어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 문득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이 작품과 내용과 결이 다른 데도 불구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니 희한한 일이었다.
며칠에 걸쳐 모두 읽은 뒤 내린 결론은 "그래, 이것 역시 소설이다"였다.
『82년생 김지영』은 여전히 소설인지 의문이지만, 이 작품의 2권은 부정할 수 없는(심지어 가슴 먹먹해지는) 소설이기에 소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작품은 수천만 년 전 황해의 탄생을 시작으로 2014년 아시안 게임까지 인천 지역에서 벌어졌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펼쳐내며 그 안에 살았던 여러 인물의 삶을 따라간다.
요즘에는 보기 드문 분량의 장~~~편이지만, 내용만 보면 대하소설로 다뤄야 할 정도로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다.
오히려 원고량을 줄이려고 많은 부분을 요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뼈대는 변방의식이다.
작가는 이른바 4대 문명 중에서 시작이 가장 늦었던 중국은 변방이었고 그 변방에 한반도가 있음을 강조한다.
'국뽕'이 강한 독자에겐 반발심이 들 내용이 곳곳에 넘쳐난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변방의식이 열등감의 표출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사고하는 메타인지에 가깝다.
나는 이 작품이 강조하는 변방 의식이 메타인지를 통한 냉정한 현실 인식의 다른 표현이라고 받아들였다.
특히 낙랑이 우리 고대사에 미친 영향에 관한 서술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이를 식민지 근대화론과 연결해 해석하는 건 비약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이 밖에도 꽤 논쟁적인 내용이 많다(특히 이승만 관련).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독자의 몫이다.
나 역시 작가의 조지프 매카시에 관한 인식에는 절대 동의하지 않으니까.
내 욕심인데, 5대에 걸쳐 떡장사를 하는 가족의 장대한 서사를 담은 2권만을 따로 떼어내 단행본으로 엮었다면 접근성이 훨씬 쉬운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변방 of 변방의 인물들이 제물포항 개항부터 러일전쟁, 3.1운동, 일제강점기, 해방정국, 6.25, 경인고속도로 건설, 인천아시안게임 등 여러 역사 현장에서 겪는 온갖 고초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 듯해 울컥했다.
물론 작가는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을 테지만.
형식과 내용에 관한 호불호가 갈릴지는 몰라도, 작가가 얼마나 많이 공부하고 치열하게 작품을 썼는지는 일독만 해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작품 요즘에 찾기 쉽지 않다.
대형 작가가 각 잡고 제대로 쓴 대형 작품이다.
![[세트] 미추홀, 제물포, 인천 1~2 세트-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97/51/cover150/k142030585_1.jpg)
![[세트] 미추홀, 제물포, 인천 1~2 세트- 전2권](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97/51/cover150/k142030585_1.jpg)
작가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의 계엄 선포 이후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 심판을 선고했던 4월 이후까지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그 사이에 정치권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관한 생각, 광장에서 바라본 풍경 등을 상세하고 담고 있다.
일기라는 형식답게 직설적이고 감정을 억지로 숨기지도 않는다.
페이지 곳곳에서 조용하게 불안과 분노를 표출하고 때로는 절망하면서 동시에 그 안에서 작은 희망의 씨앗을 찾는다.
작가의 의견에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지만(특히 2030 남성을 바라보는 시선), 계엄에 분노하고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이라면 이 산문집이 남의 일기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험악한 시간이 최근에 있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1. 음악을 대하는 내 태도가 진지해진 때는 지난 1995년 봄 솔리드 2집 [The Magic of 8 Ball] 정품 테이프를 산 뒤부터다.
그 시절 내 용돈은 하루 1000원을 넘지 않았는데, 정품 테이프 가격은 3500~5500원 사이였다.
용돈을 일주일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살 수 있는 정품 테이프를 산 이유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길보드'로 부르던 불법복제 테이프를 국민학교 시절부터 가끔 사서 들었지만, 좋아하는 노래를 '길보드'로 들으면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왠지 떳떳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학창 시절 내내 용돈이 부족했지만, 테이프를 사서 비닐 포장을 뜯을 때 쏟아지는 도파민 때문에 부족한 용돈을 모으고 또 모았다.
공짜로 받은 비싼 물건보다 '내돈내산'한 저렴한 물건에 더 애착이 가는 법 아닌가.
신중하게 산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고, 내 방에 하나둘 모인 테이프는 최고의 보물이 됐다.
2. 테이프로 음악을 듣는 일은 자연스럽게 앨범 전체를 듣게 하는 습관을 만든다.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 다음 곡을 듣기 위해 워크맨의 빨리 감기 버튼이나, 이전 곡을 듣기 위해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 수십 초 동안 기다리는 일은 번거롭다.
그럴 바엔 그냥 순서대로 앨범을 듣는 게 속 편하다.
그렇게 나는 반강제로 앨범 단위로 음악을 듣는 매력을 배웠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가 되면서 클릭 한 번이면 쉽게 트랙을 바꿀 수 있는 세상이 된 지 오래됐지만, 나는 지금도 그냥 앨범을 통째로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순서대로 듣는다.
그래야 음악을 듣는 맛이 난다.
싱글과 앨범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메탈리카의 멤버 각각은 최고의 연주자라고 부를 수 없지만, 하나로 모이면 세계 최강이 되듯 말이다.
나는 지금도 뮤지션은 싱글이 아닌 앨범(최소한 EP로라도)으로 자기를 증명해야 한다고 믿는다.
3. 영화광의 3단계가 있다지 않던가.
첫 번째 단계는 한 영화 두 번 보기, 두 번째 단계는 영화평 쓰기, 그리고 세 번째 단계는 영화 찍기.
음악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단계는 한 앨범을 듣고 또 듣고, 두 번째 단계는 음악 이야기를 쏟아내고, 세 번째 단계는 음악을 직접 만든다.
나도 결국 세 번째 단계까지 왔고, 학창 시절 내내 공부는 안 하고 하찮은 사양의 데스크톱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 만들기만 해선 의미가 없다.
누군가에게 들려줘야 한다.
집에 있는 전축의 더블데크가 음반 공장 역할을 했다.
나는 컴퓨터 사운드카드의 라인 아웃을 전축의 마이크 단자(이 얼마나 무식한 발상인가)에 연결해 내 첫 앨범을 녹음했다.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음질이어서 들었던 친구들의 평은 영 좋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내 앨범을 가진 뮤지션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해했다.
지금도 그 앨범이 집 어딘가에 봉인돼 있다.
4. 이 산문집을 읽고 꽤 많은 추억을 되새겼다.
음악을 사랑했던 독자라면 이 산문집에 담긴 이야기가 모두 자기 이야기처럼 느껴질 테다.
그렇지 않은 독자여도 이런 세계가 있었구나 하며 흥미로울 테고.
특히 작가와 비슷한 또래의 독자라면 공감하는 부분이 정말 많아 읽는 즐거움이 클 것이다.


나는 작가가 지난 2022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 후 내놓은 모든 싱글과 EP를 따라 들어왔다.
매주 EP 단위 이상인 앨범을 꼬박꼬박 챙겨 듣고 있고, 그 과정에서 나름 필터링된 뮤지션은 싱글까지 챙겨 듣는데, 작가는 내가 싱글까지 챙겨 듣는 몇 안 되는 뮤지션이었다.
지금 활동하는 젊은 뮤지션 중에서 백아와 더불어 가장 좋은 가사를 쓰는 싱어송라이터다.
포크에 음유시인으로 백아가 있다면, 록에는 한로로가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최근 발표한 동명의 EP와 함께 나왔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은 최근에 읽은 백은별 작가의 장편소설 『시한부』와 같은 소재(청소년 자살)를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는데, 『시한부』보다는 경쾌하고 '딥'하진 않다.
하지만 결말은 『시한부』보다 훨씬 처참하고 급작스러워서 당황했다.
앨범을 들을 땐 이 정도 수준의 파국을 상상하진 못했는데...
아니다.
작가가 부른 노래 대부분의 끝이 씁쓸했었지...
이 작품은 내게 내용보다는 시장에 불러일으킨 현상이 훨씬 흥미롭다.
오늘 교보문고 기준, 이 작품은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소설 부문 1위이고 종합 부문 2위이다.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가 소설을 써서 이 정도 반응을 끌어내는 걸 보긴 처음이다.
언니네이발관의 이석원처럼 성공한 뮤지션 출신 작가가 없진 않았지만, 이 정도로 시장에서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사후 분석인데 작가가 뮤지션으로 활동하며 보여준 성과, BTS의 RM을 비롯해 여러 셀럽의 샤라웃, 작지만 열성적인 팬덤 등이 종합해 시너지를 낸 결과다.
그리고 이런 시너지로 출판 시장이 출렁일 만큼 시장이 정말 작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작품의 성공을 보며, 앞으로 나는 어떤 전략을 써서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이 몹시 깊어졌다.
확실한 건 소설만 잘 쓴다고 해서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란 거다.
내가 소설 외에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은 뭘까.
없네?
큰일 났다.


중학생 작가가 쓴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을 잊은 채 읽으려고 노력했다.
오래전에 귀여니의 소설 몇 편을 읽고 강력한 문화적 충격을 받은 일이 있어서, 10대 작가를 향한 선입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여니의 소설과 비교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었다.
청소년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확실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어서 놀랐다.
절망과 맞닥뜨리면 다양한 선택지를 따져보지 않는다는 아이들의 조용한 절규에 가슴이 먹먹했다.
나 역시 가족을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다 보니, 등장인물의 심리와 행동을 따라가면서 어느새 내 이야기처럼 소설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난 2011년부터 1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고, 매년 청소년 자살이 급증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0대(10~19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7.9명이다.
참고로 2015년에는 10만 명당 4.2명이었다.
불과 10년도 안 되는 세월 동안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출산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10대는 계속 죽어 나가고 있다.
이거 정말 미친 세상 아닌가.
통계로 드러나는 숫자로는 심각성이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 배경 설명까지 해주진 않으니 말이다.
나는 정부가 청소년 자살 예방 정책을 마련하기 전에 이 작품을 꼭 참고하길 바란다.
이 작품은 10대 청소년의 시선으로 또래의 자살 원인과 그 심각성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어떤 보고서나 통계보다도 생생하다.
소설은 사실이 아니어도 진실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좋은 안목을 갖고 있으면 종종 괴롭다.
대놓고 좋은 안목을 갖고 있다고 말하니 살짝 민망하지만, 나는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그래서 괴롭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부지런히 방구석에서 음악을 만들다가 포기한 이유도 이 안목 때문이었다.
많이 듣고 만들어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어떤 음악이 좋은지 동물적으로 알겠는데, 나는 그런 음악을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작가로서도 이 안목 때문에 괴롭긴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쓰다 보니 어떤 글이 좋은지 바로 감이 오는데,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하니 말이다.
최근에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무가치한 작가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밥벌이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여기서도 실패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고.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위로가 되는데, 누군가 함께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고 느꼈을 때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실패한 사람을 상담하는 사람이 경험한 실패, 가족 공동체의 실패, 공들여 준비한 자살마저 실패, 실패를 연구하는 사람의 실패 등 다채로운 실패담을 담은 이 인터뷰집이 적어도 읽는 동안에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음을 깨달으면 덜 외로워지니 말이다.
작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실패한 뒤 깊은 열패감을 느꼈다.
단독 저서를 10권쯤 쓰면 내 차례도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10권째에도 달라진 게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쓴 장편소설 중에서 취재에 가장 공을 들였던 데다, 기대 이상으로 잘 뽑힌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에 스크래치가 정말 많이 났다.
인터뷰집을 읽다가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의 말이 꽤 힘이 됐다.
"실패했다고 슬퍼하거나 기분 나빠할 겨를이 없어요. 오히려 실패하지 않는 걸 좋게 보지 않죠. 그만큼 도전해 보지 않았다는 거니까."
돌이켜보니 안목이 나를 괴롭게만 하진 않았다.
신문사에서 음악 기자로 일할 때 그랬다.
음악을 들으면 바로 감이 오니까 아무리 신인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어도 발 빠르고 자신 있게 인터뷰를 섭외하거나 앨범을 소개할 수 있었다.
잔나비를 비롯해 여러 뮤지션(준면 씨도 여기에 포함된다)이 인터뷰로 만난 첫 기자가 나였고, 그들 상당수가 나중에 한국대중음악상에 이름을 올리거나 명실상부한 스타가 됐다.
언젠가는 내 작가 경력에도 이 안목이 힘이 돼주지 않을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시도'라고 읽힌다.


우리나라에 아마도 박진규 작가만큼 경찰을 잘 아는 소설가는 없을 테다.
작가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수사연구'는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사 전문 잡지이고 경찰 사이에선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다.
기자는 경찰서에서 형사들에게 귀찮은 똥파리 취급을 받는데, '수사연구' 기자는 다른 취급을 받았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디테일한 내용이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는 실제 사건 12건에 관한 사실관계와 뒷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가 사건을 취재하며 느꼈던 감정과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여기에 소개된 사건은 하나 같이 인류애를 의심하게 만들고, 인간의 밑바닥 of 밑바닥, 그야말로 심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윤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범죄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소개되는데, 이를 마냥 선악 구도로 바라보고 한쪽만 욕하기가 어렵다.
특히 작가가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지 물을 땐 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아...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로구나.
나처럼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라면 경찰서는 애증의 공간일 테다.
내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0년대 말에는 일선 경찰서가 수습 기자 교육의 장이었다.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은 수습기자를 무작정 경찰서로 보내 기사거리를 찾게 하는, 대단히 야만적인 형태의 교육이 이뤄졌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경찰서 기자실에서 쪽잠을 자며 24시간 대기하고 사수에게 수시로 깨지는 일상이 몇 달 동안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그런 교육에 과연 효과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효과는 있었다.
만날 경찰서에 출입하고 형사들을 만나다 보니, 길에서 경찰을 마주칠 때 아무 죄도 없는데 긴하는 일은 사라졌다.
수습기자 시절에 이런 산문집을 읽었다면 몸은 고되어도 조금은 즐겁게 일하지 않았을까.
사회부 경찰 기자 업무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언론사에 수습기자를 위한 교재로 이 산문집을 추천하고 싶다.
이 산문집을 읽고 오랜만에 경찰서에서 긴장한 채 사건 기록을 살피던 수습기자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그 시절에 운 좋게(이 산문집에선 조심스럽게 쓰이는 표현인데, 읽으면 안다) 읽었던 대마 재배 현장 수사결과보고서가 떠올라 흥분했다.
더불어 언젠가 제대로 수사 현장을 다룬 소설이 작가의 손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작품이 다루는 소재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일본의 전설 속 요괴 '캇파'를 주인공으로 다룬 한국 콘텐츠가 이 작품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경회루에 오이밭이 있었다는 설정과 캇파가 오이에 환장한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는다.
여기에 삼신할매, 조왕신, 성주신, 측간신 등 한반도의 신화 속 존재들이 전통화풍의 풍성한 그림으로 재현돼 어우러지니 읽는 맛과 보는 맛이 함께 쏠쏠하다.
그보다 더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점은 또 다른 주인공인 조선의 왕 선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선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또 긍정적으로 묘사한 콘텐츠가 이전에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조와 더불어 암군의 대표주자 취급을 받아왔고, 심지어 왕자 시절에 받은 군호인 '하성군'이라고 부르며 왕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선조, 참 입체적인 인물이다.
인성은 몰라도 능력 면으로는 조선에서 손꼽을 왕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다만 인조는 레알 암군이다).
당시 인재풀은 조선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었고, 선조는 그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왕이었다.
용인술 하나는 조선 최고였다.
당장 이순신부터 선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중용되지 못했을 인물이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여준 행동은 찌질하지 이를 데 없었지만 말이다.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행동은 정말 두고두고 까일 만한데, 그때 만약 재빠르게 분조하고 런을 치지 않았다면 조선이 종묘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임진왜란의 책임을 선조에게 온전히 돌리는 건 무리가 있고.
내가 여러 책으로 접한 선조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 기질이 농후한 왕이었다.
인성과 별개로 선조는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명군 평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전 선조의 행적은 명군 소리를 들을 만했고, 왜란 후에도 전후 복구에 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선조에 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을 한국형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도 될까.
만화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를 책으로 읽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좋았다.


김선영 작가의 장편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과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작품이다.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아몬드』보다는 『시간을 파는 상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청소년 문학은 성인 독자에게도 소구력이 있음을 『아몬드』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 작품은 청소년보다 성인 독자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 모두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어 오해를 쌓는데, 사실 청소년보다는 성인이 감정 표현에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던가?
청소년 시절의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반면, 성인인 나는 감정 표현 자체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걸 안 지 오래됐으니까.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뒤틀리고 못생겨진다.
술 한 잔이 들어가면 억눌려 있던 여러 감정이 섞인 말이 필터 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음 날에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그런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사람과 만나기를 피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뻔하다면 뻔하다.
눈물은 약점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용기의 증거이며, 진심은 통한다.
이 뻔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내미는 무기는 '친절'과 '배려'다.
언젠가 온라인상에서 봤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한 취객이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반말로 소리치며 시비를 걸더란다.
그러자 기사는 따뜻한 목소리로 취객에게 "오늘 많이 힘드셨습니까?"로 물었단다.
결과는? 당황한 취객의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고 진상짓을 멈추더란다.
'친절'과 '배려'... 뻔한 무기인데 꽤 효과적으로 통한다.
이 작품을 읽었다고 내가 딱히 달라지진 않았을 테다.
그래도 지금 내 주변 상황을 잠시나마 돌아볼 계기는 됐다.
읽고 나면 마음이 착해지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