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책을 읽고 흔적을 남길 때면 습관처럼 소설인지,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먼저 책의 성격을 정의하고 시작한다.
이 책은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북리뷰집이라고 불러도, 비평집이라고 불러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산문집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서점 홈페이지에는 인문교양서로 분류돼 있으니 그냥 저자 이름 뒤에 '저'(著)라고만 붙이는 게 낫겠다.
저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국내 최장수 북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의 진행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에 인용된 18편의 SF의 제목만으로도 저자 엄청난 독서 편력을 실감했다('함께 읽기' 챕터에 소개된 참고 도서 목록을 보면 더 기가 죽는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에 인용된 작품 대부분을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심지어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똑똑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에 국내외 여러 저자의 SF를 거울삼아 현재를 읽고, 다가올 미래와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를 다각도로 예견하고 질문을 던진다.
SF를 다루지만 이를 통해 다루는 주제는 인문, 과학, 사회학, 역사 등 다채롭다.
예를 들어 AI가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업무를 대체하는 현상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이 높은 임금 때문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킴 스탠리 로빈슨 『쌀과 소금의 시대』), 불평등 문제를 다루면서 서울 집중화와 지방 소멸 문제를 다루는 식(필립 리브 『모털 엔진』)이다.
당연히 현재 노동시장이 직면한 AI와 일자리 문제(장강명 『저희도 운전 잘합니다』)도 다루는데, 예전에 노동 담당 기자로 일했기에 더 꼼꼼하게 읽었다.
기사를 쓰면서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긴 하겠지만, 지금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으므로 공허함과 박탈감을 느낄 거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결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겨 씁쓸해졌다.
나는 이 문제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 거라고 보는데, 정부는 이에 관한 대책을 얼마나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과학전문기자라는 저자의 이력답게 과학을 주제로 현재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살피는 일도 잊지 않는다.
오펜하이머와 핵무기를 언급하며 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무기로 전쟁을 막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꼬집고(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한국의 중앙 집중도가 높은 전력망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마스 엘스베르크 『블랙아웃』) 보여준다.
백인이 유럽게 등장한 시기가 1만 년도 안 됐다며 피부색 차이에 따른 인종 차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지적하고(옥타비아 버틀러 『킨』),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잡종이라며 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살피는 대목에선(타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스산해진다.
다채로운 주제가 종횡해도 어지럽진 않다.
결국 기술이 세상에 미치는 변화를 돌아보고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묻는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망가진 세계를 신랄하게 까발리면서도, 동시에 더 망가지지 않기를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모든 챕터에서 느껴진다.
문장이 경쾌하게 읽히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 기술을 만든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을 살펴야 한다는 메시지가 무겁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용된 SF를 몰라도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읽지 못한 SF에 많은 흥미가 생길 테다.
나도 몇 작품은 리스트를 따로 정리해 뒀다.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좋은 책이다.


내 읽기 습관과 쓰기 습관은 그리 건강하지 못한 편이다.
읽을 때는 읽는 일이 지겨워질 때까지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책을 읽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읽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아진다.
마치 음식물이 목구멍 아래에 차오를 때까지 먹고 체한 사람처럼.
대신 미친 듯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쓸 때는 낮과 밤도, 휴일도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쓰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쓰고 싶지 않아진다.
대신 미친듯이 무언가를 읽고 싶어진다.
마치 며칠 굶은 노숙자가 바깥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미친 듯이 살피듯.
실제로도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장편소설 초고를 쓰면 살이 4~5kg은 기본으로 빠지는 걸 보니 말이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기분이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많이 읽거나 쓰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예전에는 많이 읽거나 쓰면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많이 읽거나 써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딱히 나은 사람이 되진 않았으니 말이다.
작년에 낸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트리거였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많은 품을 들인 소설이었는데 반응이 미미했다.
소설 내용과 반대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많은 책을 살피다가 무심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았는데, 제목에 이끌렸다.
"그래도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이 책은 어떤 계기로 새로운 길로 들어선 여성 11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면 읽는 재미도, 감동도 덜 했을 테다.
이 책의 성격은 '인터뷰+에세이'다
인터뷰이 11명의 목소리와 삶에 작가의 목소리와 삶이 수시로 끼어든다.
그런데 끼어드는 태도가 전혀 성가시지 않고 오히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다.
독특한 형식인데, 거부감 없이 읽힌다.
'사이다' 스토리나 대단한 성공담은 없다.
대신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내 이야기 같은 친근함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얄팍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각자가 걸어온 긴 여정은 이력서 속 짧은 몇 줄로 모두 요약될 수 없다."(130p)는 문장이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일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믿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자괴감에 시달릴 테고, 길을 잃은 기분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테다.
그래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외로움이 덜어진다.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많은 응원이 돼줬던 책이다.


MLB파크, 네이트판, 보배드림, 펨코, 더쿠, 클리앙, 일베 등...
나는 평소에 여러 온라인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게시물을 살핀다.
평소에 대놓고 밝힐 수 없는 속내와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어서 이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들어가서 확인하는 온라인 게시판 중에 디씨인사이드 문학 갤러리, 문예 갤러리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는 이용자가 주로 모이는 몇 안 되는 커뮤니티인데, 온갖 근거 없는 추측과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게시물이 난무해 흥미롭다.
이곳에서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는 흥미로운 유형의 게시물이 있다.
챗GPT로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등단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인데, 그 반응이 꽤 진지하다.
자신의 창작물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인공지능에 묻는 세상이라니.
심지어 챗GPT는 점수까지 매겨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게시물을 읽으며 AI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문학에도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체감했다.
변화가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먼저 온 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는 있었다.
작가는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이 바둑계에 어떤 충격과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깊게 들여다본다.
무려 전현직 기사 29명과 바둑전문가 6명을 인터뷰한 작가는 그들의 입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변화한 바둑계의 현재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나는 바둑을 잘 알진 못하지만, 『고스트 바둑왕』 『바둑삼국지』 등 바둑을 다룬 만화를 통해 바둑이 게임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서봉수 명인이 진로배 SBS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파죽의 9연승을 기록했던 이야기를 뒤늦게 접했을 땐 어마어마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둑계에서 벌어진 변화는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새롭게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둑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와 가치를 비롯해 모든 게 근본부터 흔들렸다.
누군가는 바둑계를 떠났고, 누군가는 마지못해 적응했고, 누군가는 환영하며 기회로 바라봤다.
작가는 바둑계에서 벌어졌던 일이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리라고 전망한다.
그것도 무척 서늘하게.
특히 후반부에 작가가 몰아붙이듯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들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정신이 멍해져서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뻑거릴 때가 많았다.
이 르포르타주는 내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듯 대답하기 어려운 온갖 질문이 맴돌았다.
꽤 충격이 오래갈 듯하다.
올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피와 기름』이었는데 바꿔야겠다.
『먼저 온 미래』는 올해 대한민국에 나올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평가받지 않을까 예언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모든 소설, 논픽션, 산문집 등을 통틀어 최고작이다.


월급사실주의의 세 번째 동인지다.
첫 번째, 두 번째 동인지가 그랬듯이 이번에 참여한 작가 모두 새 얼굴이다.
첫 번째 동인지는 분량과 내용이 다소 무거워 한 번에 읽기 버거웠던 반면, 두 번째 동인지는 다소 가벼워지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게 진화했다.
세 번째 동인지는 두 번째 동인지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월급사실주의의 동인지 중 최고다.
참여 작가 역시 빵빵하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여럿 목격했다.
온라인 게임의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환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머를 통해 청년 실업 문제마저 도둑맞는 현실을 꼬집고(쌀먹:키보드 농사꾼), 정치적 올바름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해외의 근로 현장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올바른 크리스마스).
직업이 밥벌이 차원을 넘어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다가도(아무 사이), 을이 또 다른 을에게 갑질을 하고(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계약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편 가르기가 조직원 사이의 관계를 좀 먹게 하는 광경을 볼 때면(일괄 비일괄), 일하며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아프게 깨닫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중증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일일업무 보고서」다.
기업의 장애인의무고용할당제를 따르기 위해 채용돼 쓸모없는 업무로 하루를 보내고,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없는 처지여서 일부러 적게 먹으며 겨우 버티는데, 가족은 주인공의 사고 보상금을 호시탐탐 노리며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주인공을 가스라이팅한다.
결말은 그야말로 더러워서(말 그대로 정말 더럽다) 더 서글펐다.
남의 돈 벌기가 제일 어렵고 치사하다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더는 구차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근데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적어도 이 동인지에 여기 실린 작품을 읽은 사람은, 이 작품 속 주인공이 종사하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잔인해지진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편이다.
사더라도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일이 많다.
남들 다 읽는 책을 굳이 나까지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꼬인 심리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길 바라니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 심보 때문에 뒤늦게 이 작품을 펼쳤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80년대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을 데리고 석탄을 팔며 살아가는 30대 남성이다.
주인공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평온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사실 이게 이야기의 전부다.
얇은 책인데도 서사가 내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잔잔해서 지루했다.
몇 페이지 남지 않았는데도 잔잔하기 그지없어서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다섯 페이지를 읽고 경악했다.
방망이로 뒷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기분이랄까.
이런 결말을 만들어내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거였다니.
기가 막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데엔 다 이유가 있구나.
더 보탤 이야기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결말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거대한 용기를 보여준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류애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는 페이지터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가족을 모두 잃은 조선의 엘리트 선비인 주인공.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임명됐지만, 이대로 암행을 떠나면 이야기가 진행되겠는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가 '초년 출세'라지 않던가.
주인공은 가장 행복한 날에 살인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더 한 갑갑한 처지에 놓인다.
여기서 끝나면 소설이 아니지.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은 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얻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헤매야만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얻은 힘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복수에 한 발짝 다가선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복수극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만큼 읽히는 이야기 구조도 없다.
무엇보다도 주변 풍경 묘사가 생생하고 액션도 실감 난다.
묘사에 필요한 배경 묘사를 위해 여기저기 답사를 많이 다녔겠구나 싶었다.
텍스트라는 표현의 한계를 편집으로 타개하는 시도도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톤이 바뀔 때마다 페이지의 톤도 바뀌는데, 그런 편집이 마치 영화의 CG를 닮았다.
그저 텍스트일 뿐인데 CG로 만든 영상이 눈앞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니 말이다.
불만이라면 "이대로 끝이라고?" 싶은 굵고 짧은 마무리 정도다.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시리즈처럼 후속작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끝내진 않았을 터.


요즘에는 어떤지 몰라도 내 어린 시절에는 학교와 관련한 괴담이 참 많았다.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칼을 휘두르고 세종대왕 동상은 책을 던진다느니,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뒤집어서 보면 끔찍하게 변한다느니, 책 읽는 어린이 동상이 실제 어린이 시체로 만들어졌다느니...
국민학교 3학년 때 살았던 단칸방 근처의 중학교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있었는데, 그 옆 공터에서 공사를 하다가 오래 묵은 인골이 발견돼 동네가 뒤숭숭해지기도 했었다.
학교란 공간은 은근히 '백룸'을 닮았다.
낮의 학교는 밝고 시끌벅적한 공간인데, 밤의 학교는 몹시 을씨년스러우니 말이다.
이 작품은 밤의 학교 특유의 분위기에 타임슬립 요소를 가미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세 학생의 모험을 다룬다.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붙어있지만, 청소년 판타지 소설이라고 말하는 게 이 작품의 성격을 드러내기에 딱 적당할 듯싶다.
세 주인공은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하얼빈역, 안 의사와 동료들이 갇혀 있던 뤼순 감옥, 재판이 아닌 개판이 이뤄졌던 법정에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여러 중요한 순간을 직접 목격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비행사였던 권기옥을 만나고 백범 김구 선생, 윤동주 시인과 인연을 맺으며 현재가 과거와 어떻게 이어지는지 몸과 마음으로 깨달아나간다.
세 주인공이 직접 그 현장의 중심에 서서 실제 역사 인물들과 시간과 경험을 공유하는 모습은 상상인데도 생생하게 다가왔다.
교과서와 문제집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허구적 진실의 힘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역사인데도 새롭게 읽혔다.
일선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할 때 보조 교재로 사용하면 학생들의 호응이 상당하리라고 본다.


내용은 다르지만, 룰루 밀러의 논픽션 산문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설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의 괴로운 과거가 방대한 시간에 걸친 누군가의 과거, 그리고 실제 역사와 엮여서 다시 개인으로 연결돼 돌아오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주인공은 창경궁 대온실의 보수공사 백서 작성을 위해 건축사무소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대온실과 가까운 곳에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머물렀던 하숙집이 있는데, 그 하숙집은 주인공에게 지금까지 아픔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백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과거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대온실과 시대의 아픔이 촘촘하게 얽히고, 업무 때문에 다시 그 공간과 엮이면서 세월에 묻어뒀던 기억과 감정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숨겨졌던 아픈 역사가 다시 쓰이고, 더불어 상처로만 기억되던 주인공의 과거도 조용히 단단하게 재정리된다.
장편소설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를 역행하는 두꺼운 분량, 그 분량을 느끼지 못할 만큼 훌륭한 가독성, 끝까지 독자와 밀당하는 미스테리, 적당히 나쁜 빌런과 적당히 좋은 조력자, 페이지를 넘길수록 강해지는 흡인력과 가슴 뭉클한 결말...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꽤 복잡한 구성인데도 이를 체감할 수 없게 매끄럽게 엮어 놀랐다.
자칫 정치적 대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역사를 다룬 작품인데, 어떤 입장에도 경도되지 않고 아픈 과거와 역사는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태도가 건강하고 아름다웠다.
쉽게 빨리 쓴 글은 쉽게 빨리 쓴 티가 나고, 오랫동안 곱씹어 쓴 글은 오랫동안 곱씹어 쓴 티가 난다.
작가가 얼마나 오랜시간에 걸쳐 자료를 조사하고 답사하고 이 주제에 관해 고민했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역작이었다.
사다 놓은 지 반년이 넘은 뒤에야 펼친 걸 많이 후회했을 정도로 감탄한 작품이다.
독자로서도,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도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래, 이런 작품이 바로 장편소설다운 장편소설이지.


표제작에서 소설집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집은 따로 지은 제목을 달고 있어서 신선했다.
『조금 망한 사랑』보다는 『조금 망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더 낫지 않았을까.
뒤늦게 다시 펼쳐 끝까지 읽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 망한 인생』이었다면 이 소설집의 인상이 꽤 달라졌겠지.
그래. 『조금 망한 사랑』이 낫겠다.
수록작 중 「반려빚」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소설집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산재에 교통사고에 전세사기에 자연재해까지...
그중에서도 「반려빚」이 가장 노골적이다.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전 문제와 여기에 얽히고설킨 감정 문제를 엮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능청스럽다.
제목부터 '반려'에 '빚'을 더한 조어다.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뿜어내는 힘이 대단하다.
사실 나는 이 소설집을 다 읽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 꽤 오래 처박아뒀었다.
두 번째 수록작인 「경기 지역 밖에서 사망」을 읽고, 젠더 문제에 관해 편파적이며 불공정한 시각을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통계로 의견을 말하겠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자살대국이다.
'2023년 성별&연령대별 자살현황'을 살펴보면 남성 자살자가 여성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20대의 경우 인구 10만 명당 남성은 26.4명, 여성은 17.6명이다.
30대의 경우 남성은 33.7명, 여성은 18.6명으로 남성이 거의 2배다.
20~30대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그 이상 연령대로 가면 비교 불가다.
젠더 문제 해결은 각 성별이 겪는 어려움을 균형잡힌 시각에서 진지하게 고민할 때 비로소 돌파구가 마련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각에서 벗어나면 어떤 명분을 들이대도 그저 개싸움으로 끝날 뿐이다.
이번 대선에서 이준석 후보를 가장 많이 지지한 유권자가 왜 20대 남성이었는지 곱씹어 봐야 할 터다.
인정하고 싶든, 싶지 않든 간에 그들이 미래의 대한민국 허리다.


표지처럼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서사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난해해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 어 가독성이 가장 떨어진다.
그러다 보니 처지는 기분이 들어 후반부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지만 느끼며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보물은 있다.
염장이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뼈의 기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 연출은 흔하긴 해도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다.
안드로이드가 생전에 친분을 나눴던 장례식장 청소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염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사람은 저마다 살아온 삶을 통해 다른 뼈 모양을 가지게 되며, 인간이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하고 변형된다는 메시지가 뒤통수를 쳤다.
이 단편 하나로 소설집을 읽으며 느꼈던 지루함과 아쉬움을 보상받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대표작인 장편소설 『천 개의 파랑』이 보여줬던 장점이 잘 드러나는 단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