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몇 년 전 작가의 소설집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읽었는데, 따뜻하고 섬세하지만 내겐 심심했다.
그 기억 때문에 이 소설집이 독서 목록에서 자꾸 밀렸다.
어떻게든 읽어 보려고 연희문학창작촌에 들고 갔는데, 퇴실일자가 가까워져 오는데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퇴실해 집으로 돌아오면 읽을 책들이 쌓여있을 게 뻔해 다시 건드리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쳤다.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 속 주인공은 모두 욕심 없이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런 소박한 바람이 쉽게 허락되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저 천천히 자기만의 걸음을 걷고, 천천히 주위와 소통하며, 천천히 상처를 보듬을 뿐이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아파도 요란하게 굴지 않는다.
그렇게 일상을 회복해 다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뭉클하고 감동적이었다.
늦게 읽었지만, 좋았다.
내가 읽었던 작가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과 평범한 배경 위에 쓰인 따뜻하고 섬세한 이야기의 연속이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별로 대단한 사건이 아닌데, 읽고 나면 여운이 많이 남는다.
극적이지 않아 보이는 데 극적이고, 애틋하지만 신파스럽진 않다.
표제작의 제목이 소설집 전체를 정말 잘 아우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고 나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한 지인에게 괜히 연락해 멋쩍은 목소리로 "별일은 없고요?"라고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다정한 소설집이다.


출간 당시 구입했는데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손대지 않은 작품이다.
읽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백수린 작가가 지금까지 내놓은 소설집이 나와 결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소설집보다는 산문집이 더 읽을만했다.
그랬는데도 왜 이 작품을 구입한 이유는 단 하나, 표지가 예뻤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내가 지금까지 본 모든 책 표지 중에 이 작품 표지보다 예쁜 건 없었다.
문학동네가 디자인을 기가 막히게 한다고 감탄하며 책날개를 보니, 주유진 작가의 그림이었다.
이후 웹서핑으로 주 작가의 그림을 찾아 자주 감상하곤 했다.
그림을 모르는 사람인데도 주 작가의 그림이 주는 느낌이 정말 좋았다.
돌이켜 보니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여름의 빌라>도 표지에 혹해 구입했었다.
사설이 길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내가 지금까지 읽은 백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어린 시절에 사고로 언니를 잃은 주인공은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독일로 이주해 그곳에서 파독간호사 출신인 여러 '이모'들과 인연을 맺는다.
주인공이 오랜 세월에 걸쳐 그중 한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과정이 이 작품의 주된 서사다.
그 과정이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한데, 섬세하고 따뜻한 기운이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지 않아서 인상적이었다.
언니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안타까움과 서툰 거짓말 때문에 쌓인 죄책감이 이모의 첫사랑을 찾는 수수께끼가 풀릴 때 함께 시원하게 풀리는 서사 구조를 보며 감탄했다.
주인공의 뒤늦은 사랑 찾기도 예뻤고.
작가가 정말 많이 고민하며 작품을 썼구나 싶었다.
더불어 지금까지 잘 몰랐던 파독간호사의 삶과 당대 사회상도 엿볼 수 있어 마치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덕에 구체적인 사건과 서사가 엮여 작가가 지금까진 쓴 단편소설보다 훨씬 쉽게 눈앞에 이미지가 그려졌다.
안미옥 시인의 추천사처럼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 있는" 작품이었다.
정말 잘 읽었다.
다음에는 백 작가의 작품을 표지에 혹해 구입하지 않고, 내용이 궁금해서 구입할 것 같다.
p.s. 다만 반전은 내겐 조금 아쉬웠다.
작품을 반도 읽지 않았는데 반전이 예상됐고,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게 반전이었다.
그건 아니길 바랐는데...
하지만 그 반전이 아니었다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었을 테지.
스포라서 더 말 안 한다.


지난해 내가 읽은 모든 한국소설 중 최고작은 정은우 작가의 장편소설 <국자전>이었다.
이 소설집은 정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그래서 정말 많은 기대를 하며 이 소설집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작품은 대부분 상실과 회복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집을 모두 읽은 뒤 드는 느낌은 당혹스러움이다.
<국자전>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완전히 다른 작가가 쓴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로.
같은 작가가 장편과 단편의 결을 이렇게 다르게 쓸 수 있는지 신기했다.
전반적으로 정갈하고 차분하지만, 장편을 읽으며 감탄했던 부분이 거의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
나는 정 작가의 단편보다 장편이 훨씬 좋았다.


천 작가는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중에서 가장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다.
그런 문장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세상에서 어떻게든 무언가를 구해내려고 노력하고, 그 노력으로 희망을 일궈내는 서사와 결합하니 더 빛을 발한다.
연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진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꽃과 잎에 흙탕물을 묻히지 않기 때문이니까.
반대도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전작들과 비교해 서사보다 문장에 더 공을 많이 들인 인상을 준다.
문장이 좋긴 한데, 전작들보다 잘 읽히진 않았다.
전반적으로 전작들보다 서사가 난해했다.
읽는 도중에 흐름이 끊겨 앞 페이지로 돌아가 무슨 내용인지 다시 확인하는 일도 잦았고.
내겐 그런 문장이 양날의 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천 작가가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데엔 읽는 동안 문장이 주는 감흥과 따스한 분위기 때문일 테다.
거기에서 위로받는 독자도 많고.
여기에 우다영 작가의 작품 같은 신비로운 분위기가 더해지면 정말 대단한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가 단편을 바로 출간하는 '위픽' 시리즈로 나왔다.
'위픽' 시리즈는 이래저래 창비가 내놓았던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기획이다.
단편소설에 일러스트를 풍부하게 더한 '소설의 첫 만남'과 달리, '위픽'은 하드커버로 소장 가치를 높였다는 점이 다른 점이라고 하겠다.
이 작품은 놀이동산의 회전목마를 소재로 인생의 의미, 이방인의 삶, 가족의 의미를 따뜻한 필치로 다룬 단편이다.
단편 한 편만 실린 책이기 때문에 거창한 리뷰가 어울리진 않는다.
부담없이 가방에 챙겨 빠른 시간에 완독하기엔 좋은 책이다.
그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기도 하고.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처럼 시도는 새로운데, 독자를 얼마나 끌어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미 꽤 많은 작가의 책이 나왔는데 온라인 서점을 살펴보니 구병모, 조예은 작가처럼 일부 팬덤을 가진 작가의 책을 제외하면 의미 있는 판매량이 감지되지 않는다.
새로운 시도가 그래도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만 바랄 뿐이다.
그래야 작가들이 보폭을 넓힐 기회도 늘어날 테니 말이다.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남 부럽지 않게 많은 곳을 여행해 본 작가의 좌충우돌 여행기.
박상영 작가는 소설을 재미있게 잘 쓰지만 산문도 정말 재미있게 잘 쓰는 작가다.
박 작가의 산문을 보면 자학과 자뻑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귀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이 산문집에 실린 글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글이 '밀리의 서재'를 통해 먼저 접한 구면이지만, 책으로 묶여 실리니 읽는 맛이 또 다르다.
각을 잡고 읽지 않아도 휴식 같은 산문집이다.
독자를 자연스럽게 설득해 내 편으로 만들고 싶다면 유머러스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글이다.
그걸 읽고 깨달으면서도 나는 도저히 그렇게 못 하는 걸 보니, 유머는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하는 모양이다.
여러모로 부러운 작가다.


대기업 합숙 면접에서 취준생끼리 벌이는 치열한 경쟁(펀펀페스티벌), 지금까지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는데 운전에서만 막히는 회계사(연수), 신입사원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여성 간부의 시선으로 바라본 기업 문화(공모), 정직원 전환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현장을 취재하는 인턴기자(동계올림픽).
주변에서 흔히 보일 법한 캐릭터와 생활에 밀착한 주제가 작가 특유의 가독성 좋은 문장에 실려 후루룩 읽힌다.
작가의 전작들이 모두 그랬듯이 이 소설집 또한 페이지터너다.
자전거 동호회(라이딩크루)와 한 대학 국문과(미라와 라라)를 배경으로 미묘하게 갈등하는 인간 군상을 그리는 단편도 직장을 배경으로 다룬 다른 단편만큼 흥미롭다.
다만 책을 덮을 때 뭔가 의문이 남았다.
왜 장 작가의 소설은 노동을 다루는 다른 작가(ex : 이서수, 김의경 등)의 소설보다 발랄한 느낌이 드는 걸까.
현실적이긴 한데, 가끔 판타지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 주인공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자라 괜찮은 학력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되고 꽤 괜찮은 직장에서 일한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전체 수험생 중 '인서울' 대학 입학자는 10% 수준이고, 명문 소리를 듣는 대학 입학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우리나라 전체기업 종사자 10명 중 8명이 중소기업에서 일한다.
괜찮은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는 사람의 교집합이 그리 많지 않다.
많은 사람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사실 평범하지 않다는 말이다.
작가가 나중에 '좋좋소'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더 실감나고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겐세이'를 놓아봤다.


- 누구에게나 과거의 어느 순간을 선명하게 재생하는 노래가 있다.
내게도 그런 노래가 꽤 있는데, 그중에서도 학창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는 대부분 헤비메탈이다.
아껴 모은 용돈을 들고 음반 가게로 향하던 어느 여름날로 나를 이끄는 헬로윈의 'Eagle Fly Free', 같은 반 일진 때문에 괴로워서 홀로 음악에 기댔던 순간 위에 오버랩되는 사바티지의 'Believe', 그리고 교실 맨 뒷줄 구석 자리에 앉아 조용히 헤드뱅잉을 했던 야간자습 시간을 소환하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Painkiller'...
고등학교 시절에 나는 학교에 최소한 앨범 너댓 장을 들고 갔고, 그 앨범을 학교에서 다 들었다.
그중에서도 주다스 프리스트의 앨범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야간자습 시간을 버티게 해준 진통제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헤비메탈의 시대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고, 다시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머리를 흔드는 로커보다 헤드폰을 낀 채 턴테이블을 돌리는 DJ가 페스티벌에서도 더 환영받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 세상에 헤비메탈 밴드의 전기라니, 그것도 번역서가 아니라 한국인 저자가 쓴 전기라니.
저자는 이 전설적인 밴드의 연대기를 다채로운 참고 자료를 바탕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더해 친절하게 풀어놓는다.
이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주다스 프리스트의 모든 앨범을 정주행했다.
덕분에 20년 넘게 앨범을 들었으면서도 몰랐던 사실을 꽤 알게 됐고(특히 해퍼드의 연애사),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도 수정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K. K. 다우닝에 관해선 내가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이 꽤 많았다.
나는 밴드의 원년 멤버인 그의 탈퇴를 갑작스럽게 여겼는데, 실은 갈등의 역사가 꽤 오래됐다는 사실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멤버들의 과거와 밴드 결성 과정, 각 앨범 제작 당시 에피소드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문장으로 훑는 사이에 [TURBO] 등 몇몇 앨범에 관한 네 평가가 바뀌기도 했다.
헤비메탈의 불모지에서, 팔리는 책만 팔리는 출판시장의 불모지에서 이 책은 단언컨대 출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도다.
음악을 모르고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다.
헤비메탈이라는 한 우물만 파서 정점에 올라 현재진행형인 전설적인 밴드의 역사.
모르는 사람의 성공담도 들으면 재미있는데, 이런 이야기가 재미없겠는가.


우리가 타인에게 얼마나 쓸데없는 관심이 많고, 동시에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웃프게 보여주는 블랙코미디다.
이 작품은 사내 홍보팀의 에이스 '김 대리'가 갑자기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을 푸는 동료 직원들의 소동을 그린다.
'김 대리'는 이 작품에 실제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심지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실치 않다.
'김 대리'는 모두의 기억과 소문 속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동료 직원들의 이야기를 모아 놓고 보니 정말 존재했던 인물인지조차 의문이 든다.
'김 대리'에 의지해 모든 일을 처리해 온 동료 직원들은 그가 사라지자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한다.
실은 '김 대리'가 사실 나쁜놈이었다며 태세를 전환하는 동료 직원도 속출한다.
이 작품은 소문에 따라 부화뇌동하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세태를 지독하게 풍자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보고 싶어하는 세상만 보고 사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진실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으면서, 익숙한 거짓에 스스로를 길들여 진실이라고 믿는 척하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깊이 생각하며 읽지 않아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의 생각과 행동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코미디보다도 웃기니 말이다.


내세울 스펙 하나 없이 알바를 전전하며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는 주인공.
그런 그가 느닷없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업계 최고 대우’를 자랑하는 기업에 지원해 합격한다.
그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3교대로 벽에 붙은 시곗바늘만 바라보는 일뿐인데, 은행에선 지점장이 나와 그를 맞고 남들 연봉보다 많은 월급이 통장에 매달 꽂힌다.
도대체 자신이 하는 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일이 문명을 지탱하는 일이란다.
그리고 주인공은 매일 기묘한 꿈을 꾸며 자기 일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도대체 이 회사는 무슨 일을 하는 회사란 말인가.
설정과 분위기가 정말 매력적인 작품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 외엔 의문이 많은 작품이었다.
읽기에 친절한 소설은 아니다.
현재와 과거, 역사와 소문이 기묘하게 얽혀 있는데, 무엇도 확실한 답을 주지 않는다.
현대사의 비밀을 추적하는 듯하다가도 느닷없이 종교적인 분위기를 풍겨 당황스럽게 한다.
생략된 내용이 상당히 많다는 인상을 줬다.
많은 떡밥을 풀었는데 수습을 못 한 듯하다.
특히 주인공이 왜 주인공이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당위성을 찾기가 어려워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공과 함께 일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들과 세대를 교체하기 위한 은유인가?
그렇다고 해도 왜 하필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소설 전반을 감싼 특유의 분위기는 정말 매력적이었는데 아쉬웠다.
이 소설을 이해한 독자의 의견이 궁금하다.
나는 주인공과 함께 교대로 일하는 노인들을 보며 과거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떠올렸다.
특히 박 노인에게선 같은 성을 가진 그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