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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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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장편소설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민음사)

독자는 자주 작품과 작가의 삶을 동일시한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작품 내용이 정말 본인의 경험이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자주 했다.

그때마다 나는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이라고 답할 뿐이다.

그 말이 가장 진실에 가깝기도 하고.

그런데 <초급 한국어>와 <중급 한국어>를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이지?

나는 일인칭 시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데도, 두 작품이 서사를 전개하는 방식이 꽤 신선하게 느껴졌다.

 

<초급 한국어>는 주인공 '문지혁'이 미국의 모 대학에서 현지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강의하는 일상을, <중급 한국어>는 주인공이 귀국해 강원도의 모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을 그린다.

 

나는 <초급 한국어>를 몇 년 전에 읽었다.

당시에는 그냥 가볍게 읽고 묻어뒀던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일탈 없이 바르게 살아오다가 어른이 된 모범생 같다는 인상을 줬기 때문이다.

내가 읽기엔 지나치게 착하고 무해한 글이었다.

가끔 소소한 아재 개그가 튀어나와 피식 웃게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중급 한국어>도 <초급 한국어>와 결이 크게 다르진 않다.

하지만 주인공이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상이 한국인이고, 결혼하고 아이까지 생겼기 때문에 일상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전작보다 더 깊고 생활에 밀착한다.

불안한 일자리를 붙들고 쉽지 않은 육아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중심을 지키고 자신만의 소설을 완성하려는 40대 가장의 분투.

나는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으로 느껴졌던 <초급>보다 핍진한 <중급>이 훨씬 더 좋았다.

특히 자신의 애매한 처지를 고백하고 또 극복하는 이야기에 많이 공감했다.

이미 알려졌듯이, 작가는 이른바 등단도 안 한 채 책을 낸 '무면허 작가'다.

책을 냈으니 작가는 작가인데, 이 바닥에서 인정하는 등단을 하진 못했으니 작가로 자칭하긴 겸연쩍은.

 

여러 차례 실패를 맛본 작가, 아니 주인공의 선택은 "그냥 내 이야기를 쓰자. 나를 쓰자"이다.

그리고 당당하게 말한다.

"일단 아무거나 쓰고, 그걸 소설이라고 우기세요."

최근에 읽은 모든 소설의 문장 중에서 가장 위로가 된 문장이었다.

초급 한국어
초급 한국어
이서수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은행나무)

올해 초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보수) 결과’를 보면, 2021년 12월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은 333만 원이다.

이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 평균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지난 2013년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평균 재산은 94억9000만 원이었다.

국회의원을 엄청난 자산가처럼 보이게 만든 원인은 정몽준 전 의원 때문이었다.

정몽준 한 사람의 재산이 전체 국회의원 재산 합계보다도 많았으니까.

그를 제외하고 평균을 내면 23억3000만 원으로 뚝 떨어졌다.


진짜 보통 사람의 소득 수준을 알아보려면, 평균소득이 아니라 임금근로자를 소득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하는 값인 중위소득을 살펴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중위소득은 250만원이다.

즉 대한민국 전체 근로자의 절반 이하는 250만원을 벌지 못한다는 말이다.

20대 청년 세대의 평균 소득은 윗세대보다 한참 낮아서 250만원 수준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중위소득은 그보다도 훨씬 이하일 테다.

그게 대한민국 청년 세대의 명백한 현실이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면 다들 골프를 치고, 오마카세를 먹고, 호캉스를 하고 돌아다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인스타그램뿐만이 아니다.

나는 동시대 한국 소설을 정말 많이 찾아 읽는 독자라고 자부하는데, 신간을 읽을 때마다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이서수 작가는 김의경 작가와 더불어 평균소득이 아니라 중위소득 이하에 속한 청년의 일상과 심리를 핍진하게 들여다보는 몇 안 되는 젊은 작가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역시 현재 대한민국을 사는 '진짜' 청년 세대의 주거, 노동 문제 등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그린다.

이 소설집 자체를 청년 세대를 위한 정책을 만들기 위한 사례집이나 보고서로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말이다.

소설 읽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실제 청년 세대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고 싶다면 이 소설집을 들여다보라.


젊은 근희의 행진
젊은 근희의 행진
이미상 소설집 『이중 작가 초롱』(문학동네)

책을 덮은 후 이런저런 감상을 쓰다가 한 단편에 실린 문장이 떠올라 멈췄다.


"MSG는 남자를 죽이겠다고 해놓고 여자를 죽였다.(중략)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든다. MSG는 처음부터 남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니까? (중략) 당신은 그런 부류가 되고 싶은가? 남자를 죽이기로 해놓고 여자를 죽이는, 아버지를 때리고 싶지만 어머니를 패는,"('살인자들의 무덤' 中)


참고로 MSG는 문세광이고 남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여자는 육영수 여사를 의미한다.


재일 교포인 문세광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암살을 시도했다.

사건 당시 문세광은 권총을 꺼내려다가 첫 탄환을 자기 허벅지에 오발했다.

놀란 문세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연단을 향해 뛰어나가면서 두 번째 탄환을 박정희에게 발사했는데 연탁에 맞았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문세광은 더 앞으로 달려 나가 탄환 세 발을 더 발사했고, 그중 한 발이 육영수의 머리에 맞았다.

문세광은 처음부터 박정희를 노렸으나 실패했다.

이게 당시 실제 상황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소설에서도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제목을 다 기억하진 못해도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도 이런 사례를 종종 목격했다.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은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등 굵직한 상을 받았다.

한국 문학이 가까운 미래에 코어 독자만 찾는 소수의 취미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생각이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그래도 소설집 전반부에 연작소설처럼 실린 '하긴', '그친구', '이중 작가 초롱'은 좋았다.

과거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의 내로남불과 도덕적 허위, 속물근성을 꼬집는 부분은 우습고 통쾌했다.

실제 독자의 항의 메일을 소설 안으로 끌어들인 '무릎을 붙이고 걸어라'는 신선했고.

이중 작가 초롱
이중 작가 초롱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곰출판)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이고, 사소하지만 거대하다. 

에세이를 이런 방식으로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감탄했다. 

읽는 동안에는 물론 읽은 후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맹목적인 자기 확신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보여준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이두온 장편소설 『러브 몬스터』(창비)

제목처럼 사랑에 미쳐 답이 없는 괴물들이 종합선물세트로 등장한다.

이들의 사랑은 하나 같이 기괴하고 불편한데, 한편으로는 안타깝다.

그런 이들이 모여 서로 적대하다가 연대하는 등 기묘한 관계를 형성하며, 슈퍼카 엔진을 달고 질주하는 불도저인 양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미쳐 버린 이들의 질주는 여럿이 죽어나가는 사고를 겪으며 파국으로 치닫는다.


다른 장편소설과 비교해 원고량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읽히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불륜으로 보였던 작은 이야기에 잔가지가 겪어 큰 나무를 닮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전개에 놀랐다.

그야말로 '괴물' 같은 소설이다.


책을 덮은 후 머릿속에 단 하나의 질문만 남는다.

도대체 사랑이 뭐 길래?


사랑은 도대체 어떤 감정이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을 미치게 하는가를 뻔하지 않게 보여주는 전개가 좋았다.

등장인물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나는 과연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보내준 만큼 돌아오지 않는 사랑으로 인한 갈증이 채워지지 않을 때 느끼는 절박함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러브 몬스터
러브 몬스터
김의경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

소설을 읽는 일이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가성비가 좋은 방법이란 걸 실감하게 해준 작품이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여성의 임신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다.

더 나아가 보자면 임신이라는 공통 분모로 여성이 연대하고 서로 위로하는 이야기라고 짐작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을 다룬 기사도 대부분 그런 논조였지만, 책을 덮은 뒤 감상은 "글쎄?"다.

책을 덮은 뒤 느낀 기분은 복잡했다.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우리가 과연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지 의문이 들었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난임 여성이다.

이들의 직업은 프리랜서 기자, 변호사, 수의사, 경찰, 가정주부 등 다양하다.

평소에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이들이 난임 여성이라는 공통 분모를 매개로 연결돼 유대를 맺는다.

작가는 각 등장인물의 사연을 옴니버스 형태로 보여주는데,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뉴스는 세계 최저 출산율을 경신했다며 위기라고 떠드는데, 뉴스 바깥에선 임신에 목숨을 걸고 병원을 드나드는 여성이 즐비하다.

그렇다고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곱진 않다.

시댁의 압박은 늘 여성에게로 향하고, 직장에서도 이들을 향한 시선이 싸늘하다.

같은 여성조차도 우군이 아니다.

미혼 여성뿐만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아 길렀던 여성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며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한 여자 선배가 내 앞에서 육아 휴직한 다른 여자 선배를 심하게 욕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남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남의 편이다.

심지어 같은 난임 여성 사이에서도 서로 입장이 다르다.

첩첩산중이다.


이 작품은 기혼 여성이 임신 이전과 이후에 겪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독자에게 묻는다.

아무리 저출산 시대여도 진심으로 아이를 낳고 싶고, 그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느냐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소설은 종종 저널리즘보다 더 저널리즘에 가까운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임신과 난임을 다룬 그 어떤 기사보다 생생하고 현실적이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은 도대체 왜 아이를 낳으려고 애를 쓰는 걸까.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그냥 '만나고 싶다'라는 말 외에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이보다 솔직하고 설득력 있는 고백이 있을까 싶다.


헬로 베이비
헬로 베이비
임국영 소설집 『헤드라이너』(창비)

70~90년대 록과 메탈을 좋아하는 모범생이 소싯적에 해보지 못한 일탈을 B급 감성으로 풀어내 소설로 엮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대형 록페스티벌에 난입해 소동을 일으키려는 음모를 꾸미는 허세만 가득한 유사 로커들, 술에 취해 자다가 토사물에 질식해 죽은 젊은 남자와 그 일당들, 공원을 전전하며 비둘기 흉내를 내는 소설가 지망생, 훔친 오토바이를 두고 미묘하게 갈등하는 소년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적당한 시기에 연애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고 30평 아파트에 사는 이른바 '평범한 삶'과 거리가 먼 청춘들이다.

그들은 대책 없으며 자기파괴적이면서 유약하고 겁이 많다. 

작가는 조금 과장된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날것의 질감으로 보여준다.

대단한 미래를 꿈꾸지 않는 대책 없는 놈들이 대책 없이 술을 마시다가 대취해 대책 없이 싸움박질을 벌이는 모습.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지만, 읽는 내내 우스우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우울한데 마냥 우울하지 않은 시끄러운 이야기의 연속이다.


이 소설집의 미덕은 억지로 등장인물들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성장하는 서사를 보여주지 않는 점이다.

우리 모두 대놓고 말을 안 해도 알지 않는가.

미래는 불투명하고 사람은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는 존재라는 점을.

다 읽고 나니 똥을 닦다가 만 기분인데, 그 기분이 마냥 나쁘진 않았다.


헤드라이너
헤드라이너
수상한커튼 산문집 『다시, 아마추어』(모로북스)

작가는 오랫동안 싱어송라이터이자 기타 강사로 활동해 온 베테랑 뮤지션임과 동시에, 나이 들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 아마추어 연주자이기도 하다.

아마추어를 가르치는 입장과 아마추어로서 배우는 입장을 오가며 진솔하게 자기 경험을 털어놓는다.

실력이 극적으로 늘지 않아도 좋으니, 느려도 함께 배우는 게 즐겁고 오래 간다고

손가락 힘이 세다고 F코드를 누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코드를 누르는 손가락 근육과 일상 생활에 쓰이는 손가락 근육은 다르다고.

연습하다가 막히면 그냥 기타를 들고만 있어도 좋다고.

가능한 한 힘을 빼라고.


이 산문집을 읽으며 내가 경험했던 많은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여 기타 코드를 바꾸던 첫 순간.

F코드를 잡았을 때 처음으로 맑은 소리를 냈던 순간.

처음으로 연주곡 '로망스'를 완전히 연주했던 순간.

겨우 잡은 B코드가 맑은 소리를 냈던 순간.

지루하게 크로매틱을 연습하던 중 처음으로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 멜로디를 들려주던 순간.

나는 기타를 독학한 데다 꾸준히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어느 단계를 넘어갔던 첫 순간만큼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돌이켜 보니 기타 연습을 포기하고 싶을 때쯤에 문득 원했던 소리가 짠하고 찾아왔다.

기타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쌓는 기술 대부분이 그렇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 뭔가 얻기는 얻는다.

물론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시기에 차이는 있다.

몇 년 동안 연습한 사람보다 몇 달 동안 연습한 사람이 더 기타 연주를 잘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한 번이라도 어느 단계에 올랐던 경험이니까.

그리고 그 경험이 다른 영역에서 성취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테니까.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데 망설이고 있다면, 시작에 앞서 마음을 다잡기에 좋은 산문집이다.

다시, 아마추어 - 오래 함께할 반려 악기를 찾아가는 여정
다시, 아마추어 - 오래 함께할 반려 악기를 찾아가는 여정
염기원 장편소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문학세계사)

제목 하나만 보고 펀딩까지 참여했던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전작인 <구디 얀다르크>를 재미있게 읽기도 했고.

<구디 얀다르크>는 한국 문학에서 보기 힘든 디테일을 가진 노동소설이어서 정독했던 작품이었다.

지난 2년 동안 작가가 두문불출하며 장편소설을 여덟 편이나 썼고, 이 작품이 그 첫 작품이라는 소개에 경악했다.

나는 퇴사 후 3년 동안 장편 세 편을 쓰는 일만으로도 완전히 진이 빠졌는데 세상에...


이 작품은 태백과 서울을 배경으로 오빠를 찾아 헤매는 여동생의 행보를 그린다.

주인공은 학창 시절에 투포환선수로 활동하다가 기록에 매달리며 살 수밖에 없는 신세가 싫어 공장에 취직한 노동자다.

아버지는 무책임한 가장의 표본이었고, 어머니는 엉망인 가정을 홀로 건사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책만 읽으며 허송세월하던 오빠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태백에서 사라졌다가 느닷없이 유명 유튜버 변신해 여동생의 레이더에 잡힌다.

여동생은 오빠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사기꾼이 됐다고 여기고, 오빠를 구하기 위해(라기 보다는 더 사고를 치지 못하도록 잡기 위해) 서울로 떠난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빠의 정체를 파고들면 들수록 사기꾼 같지 않다.

오빠 주변의 인물들은 그를 사기꾼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존경심을 드러낸다.

과연 오빠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군가의 꼭두각시일까, 현자일까, 정말 대단한 사기꾼일까?

더 이상의 스포는 생략한다.


제목만 보면 사고뭉치인 오빠를 잡으러 떠나는 여동생의 활극인데, 내 예상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다.

오빠를 만나면 바로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것 같이 구는 여동생은, 사실 오빠를 잃을까 봐 누구보다 걱정하는 가족이다.

지식으로 사기를 치는 세태를 주요 내용으로 다루고 있지만, 실은 신파를 뺀 가족 이야기다.

제목이 준 강렬함 때문에 호쾌한 이야기일 거라고 기대했는데, 기대보다 심심하게 끝나 조금 아쉬웠다.


p.s. 사실 이 작품에서 아쉬운 부분은 내용이 아니라 디자인과 편집이다.

주요 문학출판사가 아닌 출판사가 만든 소설 단행본에선 미묘한 가벼움이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단행본을 낸 문학세계사를 비롯해 문학사상, 실천문학 등이 그런 출판사다.

주요 문학출판사보다 규모가 작고 디자인과 편집을 맡은 내부인력의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디자인과 편집만으로도 단행본의 퀄리티가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모르는 걸까? 알면 외주를 활용하는 게 더 나을 텐데. 아쉽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김호연 산문집 『김호연의 작업실』(서랍의날씨)

리뷰보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려 한다.

2021년 봄, 내가 횡성 예버덩문학의집에 입주 작가로 머물고 있던 때다.

예버덩문학의집을 운영하는 조명 선생님께서 김호연 작가가 새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조명 선생님은 종종 김 작가가 예버덩문학의집에 머물렀던 시절을 회상하며 부지런히 활동하는 작가라고 칭찬하곤 했다.

마침 예버덩문학의집 서재에 김 작가의 데뷔작 <망원동 브라더스>가 꽂혀있어 꺼내 읽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왜 이제야 이 소설을 읽었나 싶었을 정도로.

순수하게 재미로만 따지면 <망원동 브라더스>보다 앞서는 장편을 그 이후 단 한 작품도 만나지 못했다.

이후 나는 <연적> <파우스터> 등 김 작가의 작품을 뒤늦게 찾아 읽으며 반가움을 느꼈다.

김 작가 또한 나처럼 소설은 서사가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후 내가 전국 곳곳의 작가 레지던시에서 머물며 글을 쓸때마다 김 작가의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김 작가는 내가 머무는 레지던시에 늘 나보다 먼저 흔적을 남긴 작가였다.

마침 <불편한 편의점>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기 시작하던 때여서 레지던시에 머무는 작가 사이에서도 김 작가는 늘 화제였다.

특히 지난해 여름 토지문화관에 머물 때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내 옆 방이 김 작가가 <불편한 편의점>을 쓴 공간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새 장편소설 <정치인>을 드라마 각본으로 각색하는 작업을 하던 나는, 그 방 앞을 오갈 때마다 내게도 대박의 운이 찾아오기를 빌었다.

내가 지난해 겨울에 머무른 담양 글을낳는집은 김 작가가 <불편한 편의점 2>를 쓴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도 나는 각색 작업을 하다가 김 작가가 머물렀다는 방 앞을 오가며 내게도 밀리언셀러의 기운이 찾아오기를 빌었다.


지난 2월 말, 나는 제주 '안녕, 릴라'에서 <정치인> 출간을 위한 최종 원고 작업을 하다가, 준면 씨에게서 뜻밖의 연락을 받았다.

김포에 있는 집에 생각지도 못한 작가의 신간 사인본이 도착했다는 소식이었다.

도착한 책은 김 작가의 새 산문집 <김호연의 작업실>이었다.

안면이 전혀 없는 작가가 내게 증정본을 보내는 경우는 드문데, 그 작가가 하필 김 작가라니.

아무래도 내 신작에 좋은 기운이 내려오려나 보다.


끝에 짧게 이 책을 리뷰하자면 작가 지망생에게 정말 좋은 내용이 많다.

작가는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자세, 지금까지 출간한 작품을 써 온 과정, 노동요 등 실전에 바로 써먹을 수 있는 팁을 자세하게 소개한다.

특히 내가 공감한 부분은 '작업실'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다.

왜 작가에게 작업실이 필요한지, 작업실이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생하게 그 이유를 밝힌다.

김 작가가 소개하는 작업실 상당수가 내가 머물렀던 곳과 겹쳐 더 공감하기 쉬웠다.


나 역시 작업실이 없었다면 소설을 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화촌기행>은 북한산 보덕사, <침묵주의보>는 광양 무등암,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는 토지문화관, <젠가>는 정읍 권번문화예술원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장편이다.

곧 나올 <정치인>은 유난히 많은 장소에 빚을 졌다.

예버덩문학의집, 프린스호텔, 글을낳는집, 안녕 릴라가 없었다면... 상상하기 싫다.


작가의 일상이 궁금한 독자라면 대단히 흥미로울 산문집이다.

소설 이상으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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