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좋은 안목을 갖고 있으면 종종 괴롭다.
대놓고 좋은 안목을 갖고 있다고 말하니 살짝 민망하지만, 나는 좋은 건 기가 막히게 알아본다.
그래서 괴롭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부지런히 방구석에서 음악을 만들다가 포기한 이유도 이 안목 때문이었다.
많이 듣고 만들어 경험치가 쌓이다 보니 어떤 음악이 좋은지 동물적으로 알겠는데, 나는 그런 음악을 만들지 못했으니 말이다.
작가로서도 이 안목 때문에 괴롭긴 마찬가지다.
많이 읽고 쓰다 보니 어떤 글이 좋은지 바로 감이 오는데,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하니 말이다.
최근에는 내가 이도 저도 아닌 무가치한 작가란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오랫동안 밥벌이하던 일을 때려치우고 나왔는데, 여기서도 실패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들고.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 위로가 되는데, 누군가 함께 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란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패했다고 느꼈을 때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비슷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실패한 사람을 상담하는 사람이 경험한 실패, 가족 공동체의 실패, 공들여 준비한 자살마저 실패, 실패를 연구하는 사람의 실패 등 다채로운 실패담을 담은 이 인터뷰집이 적어도 읽는 동안에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기분을 느끼며 살고 있진 않음을 깨달으면 덜 외로워지니 말이다.
작년에 출간한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실패한 뒤 깊은 열패감을 느꼈다.
단독 저서를 10권쯤 쓰면 내 차례도 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오랫동안 해왔는데, 10권째에도 달라진 게 없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쓴 장편소설 중에서 취재에 가장 공을 들였던 데다, 기대 이상으로 잘 뽑힌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에 스크래치가 정말 많이 났다.
인터뷰집을 읽다가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의 말이 꽤 힘이 됐다.
"실패했다고 슬퍼하거나 기분 나빠할 겨를이 없어요. 오히려 실패하지 않는 걸 좋게 보지 않죠. 그만큼 도전해 보지 않았다는 거니까."
돌이켜보니 안목이 나를 괴롭게만 하진 않았다.
신문사에서 음악 기자로 일할 때 그랬다.
음악을 들으면 바로 감이 오니까 아무리 신인이나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이어도 발 빠르고 자신 있게 인터뷰를 섭외하거나 앨범을 소개할 수 있었다.
잔나비를 비롯해 여러 뮤지션(준면 씨도 여기에 포함된다)이 인터뷰로 만난 첫 기자가 나였고, 그들 상당수가 나중에 한국대중음악상에 이름을 올리거나 명실상부한 스타가 됐다.
언젠가는 내 작가 경력에도 이 안목이 힘이 돼주지 않을까.
책을 덮을 때쯤에는 '실패'라는 단어가 '시도'라고 읽힌다.


우리나라에 아마도 박진규 작가만큼 경찰을 잘 아는 소설가는 없을 테다.
작가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수사연구'는 4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사 전문 잡지이고 경찰 사이에선 오래된 친구 같은 존재다.
기자는 경찰서에서 형사들에게 귀찮은 똥파리 취급을 받는데, '수사연구' 기자는 다른 취급을 받았을 거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았다.
그만큼 디테일한 내용이 돋보이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에는 실제 사건 12건에 관한 사실관계와 뒷이야기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작가가 사건을 취재하며 느꼈던 감정과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다.
여기에 소개된 사건은 하나 같이 인류애를 의심하게 만들고, 인간의 밑바닥 of 밑바닥, 그야말로 심연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비윤리적'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범죄가 줄줄이 비엔나처럼 소개되는데, 이를 마냥 선악 구도로 바라보고 한쪽만 욕하기가 어렵다.
특히 작가가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지 물을 땐 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어서 머뭇거렸다.
아... 인간이란 참으로 복잡한 존재로구나.
나처럼 기자로 일했던 사람이라면 경찰서는 애증의 공간일 테다.
내가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던 2000년대 말에는 일선 경찰서가 수습 기자 교육의 장이었다.
제대로 준비돼 있지 않은 수습기자를 무작정 경찰서로 보내 기사거리를 찾게 하는, 대단히 야만적인 형태의 교육이 이뤄졌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 채 경찰서 기자실에서 쪽잠을 자며 24시간 대기하고 사수에게 수시로 깨지는 일상이 몇 달 동안 반복됐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전혀 낭만적이지 않고, 그런 교육에 과연 효과가 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그래도 한 가지 효과는 있었다.
만날 경찰서에 출입하고 형사들을 만나다 보니, 길에서 경찰을 마주칠 때 아무 죄도 없는데 긴하는 일은 사라졌다.
수습기자 시절에 이런 산문집을 읽었다면 몸은 고되어도 조금은 즐겁게 일하지 않았을까.
사회부 경찰 기자 업무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언론사에 수습기자를 위한 교재로 이 산문집을 추천하고 싶다.
이 산문집을 읽고 오랜만에 경찰서에서 긴장한 채 사건 기록을 살피던 수습기자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반가웠다.
그 시절에 운 좋게(이 산문집에선 조심스럽게 쓰이는 표현인데, 읽으면 안다) 읽었던 대마 재배 현장 수사결과보고서가 떠올라 흥분했다.
더불어 언젠가 제대로 수사 현장을 다룬 소설이 작가의 손에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작품이 다루는 소재와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일본의 전설 속 요괴 '캇파'를 주인공으로 다룬 한국 콘텐츠가 이 작품 외에 또 있는지 모르겠다.
경회루에 오이밭이 있었다는 설정과 캇파가 오이에 환장한다는 전설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는다.
여기에 삼신할매, 조왕신, 성주신, 측간신 등 한반도의 신화 속 존재들이 전통화풍의 풍성한 그림으로 재현돼 어우러지니 읽는 맛과 보는 맛이 함께 쏠쏠하다.
그보다 더 신선하고 흥미로웠던 점은 또 다른 주인공인 조선의 왕 선조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선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또 긍정적으로 묘사한 콘텐츠가 이전에 더 있었는지 모르겠다.
인조와 더불어 암군의 대표주자 취급을 받아왔고, 심지어 왕자 시절에 받은 군호인 '하성군'이라고 부르며 왕 취급도 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선조, 참 입체적인 인물이다.
인성은 몰라도 능력 면으로는 조선에서 손꼽을 왕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다만 인조는 레알 암군이다).
당시 인재풀은 조선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었고, 선조는 그 인재를 알아볼 줄 아는 왕이었다.
용인술 하나는 조선 최고였다.
당장 이순신부터 선조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 중용되지 못했을 인물이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보여준 행동은 찌질하지 이를 데 없었지만 말이다.
임진왜란에서 보여준 행동은 정말 두고두고 까일 만한데, 그때 만약 재빠르게 분조하고 런을 치지 않았다면 조선이 종묘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이란 건 없지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임진왜란의 책임을 선조에게 온전히 돌리는 건 무리가 있고.
내가 여러 책으로 접한 선조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소시오패스 기질이 농후한 왕이었다.
인성과 별개로 선조는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명군 평가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임진왜란 전 선조의 행적은 명군 소리를 들을 만했고, 왜란 후에도 전후 복구에 꽤 능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내가 선조에 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이런 작품을 한국형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러도 될까.
만화 「은비 까비의 옛날 옛적에」와 「배추도사 무도사의 옛날 옛적에」를 책으로 읽는 듯한 친근한 느낌이 좋았다.


김선영 작가의 장편소설 『시간을 파는 상점』과 손원평 작가의 장편소설 『아몬드』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작품이다.
영어덜트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아몬드』보다는 『시간을 파는 상점』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훌륭한 청소년 문학은 성인 독자에게도 소구력이 있음을 『아몬드』가 이미 보여주지 않았던가.
어쩌면 이 작품은 청소년보다 성인 독자에게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 모두 감정 표현에 어려움을 겪어 오해를 쌓는데, 사실 청소년보다는 성인이 감정 표현에 더 어려움을 느끼지 않던가?
청소년 시절의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반면, 성인인 나는 감정 표현 자체를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걸 안 지 오래됐으니까.
그렇다고 표현하지 않은 감정이 사라지진 않는다.
오히려 뒤틀리고 못생겨진다.
술 한 잔이 들어가면 억눌려 있던 여러 감정이 섞인 말이 필터 없이 쏟아져 나오고, 다음 날에는 그 말들을 떠올리며 후회하고, 그런 약점을 보이지 않으려고 가능하면 사람과 만나기를 피하는 패턴이 반복됐다.
이 작품의 메시지는 뻔하다면 뻔하다.
눈물은 약점이 아니라,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용기의 증거이며, 진심은 통한다.
이 뻔한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내미는 무기는 '친절'과 '배려'다.
언젠가 온라인상에서 봤던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한 취객이 버스에 올라 기사에게 반말로 소리치며 시비를 걸더란다.
그러자 기사는 따뜻한 목소리로 취객에게 "오늘 많이 힘드셨습니까?"로 물었단다.
결과는? 당황한 취객의 말투가 존댓말로 바뀌고 진상짓을 멈추더란다.
'친절'과 '배려'... 뻔한 무기인데 꽤 효과적으로 통한다.
이 작품을 읽었다고 내가 딱히 달라지진 않았을 테다.
그래도 지금 내 주변 상황을 잠시나마 돌아볼 계기는 됐다.
읽고 나면 마음이 착해지는 작품이다.


책을 읽고 흔적을 남길 때면 습관처럼 소설인지, 산문집인지, 시집인지 먼저 책의 성격을 정의하고 시작한다.
이 책은 뭐라고 정의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북리뷰집이라고 불러도, 비평집이라고 불러도 만족스럽지 않다.
그렇다고 산문집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에는 뭔가 이상하다.
서점 홈페이지에는 인문교양서로 분류돼 있으니 그냥 저자 이름 뒤에 '저'(著)라고만 붙이는 게 낫겠다.
저자는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국내 최장수 북팟캐스트 <YG와 JYP의 책걸상>의 진행자 중 한 명이다.
이 책에 인용된 18편의 SF의 제목만으로도 저자 엄청난 독서 편력을 실감했다('함께 읽기' 챕터에 소개된 참고 도서 목록을 보면 더 기가 죽는다).
부끄럽게도 나는 이 책에 인용된 작품 대부분을 읽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읽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으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심지어 재미도 있고 유익하다.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똑똑해진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에 국내외 여러 저자의 SF를 거울삼아 현재를 읽고, 다가올 미래와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를 다각도로 예견하고 질문을 던진다.
SF를 다루지만 이를 통해 다루는 주제는 인문, 과학, 사회학, 역사 등 다채롭다.
예를 들어 AI가 화이트칼라 전문직의 업무를 대체하는 현상이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원인이 높은 임금 때문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 주목하고(킴 스탠리 로빈슨 『쌀과 소금의 시대』), 불평등 문제를 다루면서 서울 집중화와 지방 소멸 문제를 다루는 식(필립 리브 『모털 엔진』)이다.
당연히 현재 노동시장이 직면한 AI와 일자리 문제(장강명 『저희도 운전 잘합니다』)도 다루는데, 예전에 노동 담당 기자로 일했기에 더 꼼꼼하게 읽었다.
기사를 쓰면서 기술 발전이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긴 하겠지만, 지금 세대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으므로 공허함과 박탈감을 느낄 거라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결론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생겨 씁쓸해졌다.
나는 이 문제가 앞으로 우리 사회를 크게 뒤흔들 거라고 보는데, 정부는 이에 관한 대책을 얼마나 마련했는지 의문이다.
과학전문기자라는 저자의 이력답게 과학을 주제로 현재 세계가 직면한 위기를 살피는 일도 잊지 않는다.
오펜하이머와 핵무기를 언급하며 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강력한 무기로 전쟁을 막겠다는 발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꼬집고(조 홀드먼 『영원한 전쟁』), 한국의 중앙 집중도가 높은 전력망이 얼마나 위험에 취약한지(마스 엘스베르크 『블랙아웃』) 보여준다.
백인이 유럽게 등장한 시기가 1만 년도 안 됐다며 피부색 차이에 따른 인종 차별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지적하고(옥타비아 버틀러 『킨』), 현생인류는 네안데르탈인과 호모사피엔스의 잡종이라며 왜 다양성이 왜 중요한지 살피는 대목에선(타카노 가즈아키 『제노사이드』) 스산해진다.
다채로운 주제가 종횡해도 어지럽진 않다.
결국 기술이 세상에 미치는 변화를 돌아보고 그 변화의 파도 속에서 인간이 나아갈 길을 묻는다는 점에서 일관성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망가진 세계를 신랄하게 까발리면서도, 동시에 더 망가지지 않기를 원하는 간절한 바람이 모든 챕터에서 느껴진다.
문장이 경쾌하게 읽히지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그 기술을 만든 존재는 인간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을 살펴야 한다는 메시지가 무겁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용된 SF를 몰라도 이해하기 전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읽지 못한 SF에 많은 흥미가 생길 테다.
나도 몇 작품은 리스트를 따로 정리해 뒀다.
읽고 나면 읽기 전보다 조금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좋은 책이다.


내 읽기 습관과 쓰기 습관은 그리 건강하지 못한 편이다.
읽을 때는 읽는 일이 지겨워질 때까지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책을 읽다가 지쳐서 나가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읽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읽고 싶지 않아진다.
마치 음식물이 목구멍 아래에 차오를 때까지 먹고 체한 사람처럼.
대신 미친 듯이 무언가를 쓰고 싶어진다.
쓸 때는 낮과 밤도, 휴일도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다가 지쳐서 나가 떨어진다.
그렇게 한두 달 쓰고 나면 한동안 아무 것도 쓰고 싶지 않아진다.
대신 미친듯이 무언가를 읽고 싶어진다.
마치 며칠 굶은 노숙자가 바깥에 놓인 짜장면 그릇을 미친 듯이 살피듯.
실제로도 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걸 느낀다.
장편소설 초고를 쓰면 살이 4~5kg은 기본으로 빠지는 걸 보니 말이다.
건강하지 못한 습관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봤다.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기분이 싫었던 게 아닌가 싶다.
많이 읽거나 쓰면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예전에는 많이 읽거나 쓰면 기분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많이 읽거나 써도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딱히 나은 사람이 되진 않았으니 말이다.
작년에 낸 장편소설 『왓 어 원더풀 월드』가 트리거였다.
지금까지 쓴 소설 중 가장 많은 품을 들인 소설이었는데 반응이 미미했다.
소설 내용과 반대로 나는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다.
사두고 아직 읽지 않은 많은 책을 살피다가 무심코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아무것도 읽고 싶지도 쓰고 싶지도 않았는데, 제목에 이끌렸다.
"그래도 너 지금 잘하고 있어"라는 말을 듣고 싶었나 보다.
이 책은 어떤 계기로 새로운 길로 들어선 여성 11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인터뷰를 모은 책이라면 읽는 재미도, 감동도 덜 했을 테다.
이 책의 성격은 '인터뷰+에세이'다
인터뷰이 11명의 목소리와 삶에 작가의 목소리와 삶이 수시로 끼어든다.
그런데 끼어드는 태도가 전혀 성가시지 않고 오히려 인터뷰이의 목소리를 돋보이게 한다.
독특한 형식인데, 거부감 없이 읽힌다.
'사이다' 스토리나 대단한 성공담은 없다.
대신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있다.
저마다 걸어온 길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내 이야기 같은 친근함이 있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얄팍하지도, 납작하지도 않다. 각자가 걸어온 긴 여정은 이력서 속 짧은 몇 줄로 모두 요약될 수 없다."(130p)는 문장이 책을 덮고도 오래 남았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내일이 크게 달라질 거라고 믿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자괴감에 시달릴 테고, 길을 잃은 기분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할 테다.
그래도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외로움이 덜어진다.
적어도 읽는 동안만큼은 많은 응원이 돼줬던 책이다.


MLB파크, 네이트판, 보배드림, 펨코, 더쿠, 클리앙, 일베 등...
나는 평소에 여러 온라인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게시물을 살핀다.
평소에 대놓고 밝힐 수 없는 속내와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어서 이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들어가서 확인하는 온라인 게시판 중에 디씨인사이드 문학 갤러리, 문예 갤러리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는 이용자가 주로 모이는 몇 안 되는 커뮤니티인데, 온갖 근거 없는 추측과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게시물이 난무해 흥미롭다.
이곳에서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는 흥미로운 유형의 게시물이 있다.
챗GPT로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등단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인데, 그 반응이 꽤 진지하다.
자신의 창작물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인공지능에 묻는 세상이라니.
심지어 챗GPT는 점수까지 매겨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게시물을 읽으며 AI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문학에도 피할 수 없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체감했다.
변화가 가져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솔직히 감이 안 잡힌다.
하지만 『먼저 온 미래』를 통해 간접적으로 엿볼 수는 있었다.
작가는 2016년 알파고의 등장이 바둑계에 어떤 충격과 변화를 불러일으켰는지 돌아보고, 인공지능이 개인과 사회에 미칠 영향을 깊게 들여다본다.
무려 전현직 기사 29명과 바둑전문가 6명을 인터뷰한 작가는 그들의 입을 통해 인공지능으로 변화한 바둑계의 현재를 다각도로 조망한다.
나는 바둑을 잘 알진 못하지만, 『고스트 바둑왕』 『바둑삼국지』 등 바둑을 다룬 만화를 통해 바둑이 게임보다는 예술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서봉수 명인이 진로배 SBS 세계 바둑 최강전에서 파죽의 9연승을 기록했던 이야기를 뒤늦게 접했을 땐 어마어마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지난 몇 년 동안 바둑계에서 벌어진 변화는 내 예상보다 훨씬 컸다.
새롭게 변화한 환경을 받아들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둑을 바라보고 대하는 자세와 가치를 비롯해 모든 게 근본부터 흔들렸다.
누군가는 바둑계를 떠났고, 누군가는 마지못해 적응했고, 누군가는 환영하며 기회로 바라봤다.
작가는 바둑계에서 벌어졌던 일이 앞으로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벌어지리라고 전망한다.
그것도 무척 서늘하게.
특히 후반부에 작가가 몰아붙이듯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들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다.
페이지를 넘기다가 정신이 멍해져서 입을 벌린 채 눈만 끔뻑거릴 때가 많았다.
이 르포르타주는 내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소설을 쓰는 걸까.
피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더 나아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
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치듯 대답하기 어려운 온갖 질문이 맴돌았다.
꽤 충격이 오래갈 듯하다.
올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단요 작가의 장편소설 『피와 기름』이었는데 바꿔야겠다.
『먼저 온 미래』는 올해 대한민국에 나올 모든 책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평가받지 않을까 예언해본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모든 소설, 논픽션, 산문집 등을 통틀어 최고작이다.


월급사실주의의 세 번째 동인지다.
첫 번째, 두 번째 동인지가 그랬듯이 이번에 참여한 작가 모두 새 얼굴이다.
첫 번째 동인지는 분량과 내용이 다소 무거워 한 번에 읽기 버거웠던 반면, 두 번째 동인지는 다소 가벼워지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게 진화했다.
세 번째 동인지는 두 번째 동인지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월급사실주의의 동인지 중 최고다.
참여 작가 역시 빵빵하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여럿 목격했다.
온라인 게임의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환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머를 통해 청년 실업 문제마저 도둑맞는 현실을 꼬집고(쌀먹:키보드 농사꾼), 정치적 올바름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해외의 근로 현장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올바른 크리스마스).
직업이 밥벌이 차원을 넘어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하다가도(아무 사이), 을이 또 다른 을에게 갑질을 하고(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계약직과 정규직을 나누는 편 가르기가 조직원 사이의 관계를 좀 먹게 하는 광경을 볼 때면(일괄 비일괄), 일하며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아프게 깨닫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중증장애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일일업무 보고서」다.
기업의 장애인의무고용할당제를 따르기 위해 채용돼 쓸모없는 업무로 하루를 보내고,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없는 처지여서 일부러 적게 먹으며 겨우 버티는데, 가족은 주인공의 사고 보상금을 호시탐탐 노리며 '이기적인 인간'이라고 주인공을 가스라이팅한다.
결말은 그야말로 더러워서(말 그대로 정말 더럽다) 더 서글펐다.
남의 돈 벌기가 제일 어렵고 치사하다지만, 그래도 먹고 사는 문제가 더는 구차하게 느껴지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
근데 그런 세상이 쉽게 올 것 같진 않다.
그래서 이런 소설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적어도 이 동인지에 여기 실린 작품을 읽은 사람은, 이 작품 속 주인공이 종사하는 직업을 대하는 태도가 잔인해지진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책을 살 때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편이다.
사더라도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일이 많다.
남들 다 읽는 책을 굳이 나까지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꼬인 심리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길 바라니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 심보 때문에 뒤늦게 이 작품을 펼쳤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80년대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을 데리고 석탄을 팔며 살아가는 30대 남성이다.
주인공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평온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사실 이게 이야기의 전부다.
얇은 책인데도 서사가 내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잔잔해서 지루했다.
몇 페이지 남지 않았는데도 잔잔하기 그지없어서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다섯 페이지를 읽고 경악했다.
방망이로 뒷머리를 사정없이 두들겨 맞은 기분이랄까.
이런 결말을 만들어내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전개한 거였다니.
기가 막혔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인 데엔 다 이유가 있구나.
더 보탤 이야기가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결말이었다.
사소해 보이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거대한 용기를 보여준 거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인류애가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는 페이지터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가족을 모두 잃은 조선의 엘리트 선비인 주인공.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임명됐지만, 이대로 암행을 떠나면 이야기가 진행되겠는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가 '초년 출세'라지 않던가.
주인공은 가장 행복한 날에 살인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더 한 갑갑한 처지에 놓인다.
여기서 끝나면 소설이 아니지.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은 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얻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헤매야만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얻은 힘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복수에 한 발짝 다가선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복수극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만큼 읽히는 이야기 구조도 없다.
무엇보다도 주변 풍경 묘사가 생생하고 액션도 실감 난다.
묘사에 필요한 배경 묘사를 위해 여기저기 답사를 많이 다녔겠구나 싶었다.
텍스트라는 표현의 한계를 편집으로 타개하는 시도도 인상적이다.
이야기의 톤이 바뀔 때마다 페이지의 톤도 바뀌는데, 그런 편집이 마치 영화의 CG를 닮았다.
그저 텍스트일 뿐인데 CG로 만든 영상이 눈앞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니 말이다.
불만이라면 "이대로 끝이라고?" 싶은 굵고 짧은 마무리 정도다.
정세랑 작가의 '설자은' 시리즈처럼 후속작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이렇게 끝내진 않았을 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