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5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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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 스톨렌하그 그래픽노블 『일렉트릭 스테이트』(황금가지)

'어벤저스' 시리즈를 제작한 루소 형제가 연출한 동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원작이다.

이 작품은 SF이면서 동시에 1997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 대체역사물이기도 하다.

7년 넘게 이어진 전쟁에서 드론과 조종사 간 지연 없는 데이터 처리를 위해 뇌를 연속적으로 연결하는 뉴로 기술이 발전한다.

레이더 장비 기술이 전자레인지 개발에 적용됐듯이 전쟁은 발명을 낳는다.

뉴로 기술은 현재 VR 기기와 유사한 '뉴로캐스터'라는 기술 개발로 이어진다.


하지만 '뉴로캐스터'의 대규모 업데이트 이후 이용자들이 온종일 여기에 연결돼 머무르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일어난다.

이용자들은 먹고 자는 일도 잊은 채 뉴로캐스터에 열중하다가 하나둘 죽어가고, 뉴로캐스터의 서버만이 황폐한 도시의 밤을 밝힌다.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에 홀로 던져진 소녀가 작은 로봇과 함께 동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을 그린다.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는 얼마나 따뜻하던가.

그럴 줄 알았거늘... 마지막 반전이 충격적이어서 힘이 빠졌다.

그래...

그런 결말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의 힘이 빠졌겠지.


내용을 떠나서 일러스트 감상만으로도 뭔가 새로운 체험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자멸한 인류의 모습을 담아낸 수십여 일러스트만으로 압도 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사진보다 생생하고 섬뜩하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이었다.

멸망한 세상이 눈앞에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렉트릭 스테이트
일렉트릭 스테이트
최석규 장편소설 『검은 곳을 입은 자들』(문학수첩)

범죄스릴러에 철학, 오컬트, 음모론, 첨단 기술(?)을 버무린 종합 선물 세트다.

흡인력이 장난 아니다.

뒤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이야기는 건실한 기업의 탈을 쓴 범죄 조직의 간부가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밖에도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의 자살이 속출하는데, 공교롭게도 그들 모두 천인공노할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고 지금 뻔뻔하게 잘살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뻔한 설정이지만, 이 설정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찌라시에 가까운 자극적인 기사로 연명하는 한 언론사의 기자가 계속되는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하고, 이 죽음에 얽힌 범죄 조직은 경쟁 조직을 의심하며 진상 조사에 나선다.

이들은 마침내 공통점을 발견한다.

자살자들 모두 죽기 전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는 자살자들에게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참회하라"는 말을 남겼다는 사실이다.

기자와 범죄 조직이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그가 강력 범죄 피해자들의 자조 모임과 관련이 있음이 드러난다.

특이하게도 그는 묵자의 사상을 따르고 있고, 믿기 어렵지만 귀신을 부려 사람을 죽인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하지만 역시 무서운 건 귀신보다 사람이었다.

이쯤 되면 이 작품의 결말이 궁금해 미칠 것 같지 않은가?


물론 불만인 부분도 있다.

언론사 묘사가 현실과 거리가 멀다.

마치 강의를 하는 듯 지나치게 설명이 긴 부분에선 "굳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마지막 부분에 드러나는 음모론에선 "아아..."하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그런데도 작품을 읽으며 만족했던 부분이 훨씬 많았던 이유는 끊임없이 질문하게 했기 때문이다.

인간쓰레기라는 말로도 모자란 범죄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현실이 분통을 터트리게 하지만, 그런 자들을 사적 제재로 처리하는 게 과연 정의로운 일인가?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작가는 현재진행형인 이 오래된 질문을 통해 세상의 모든 악이 사라지면 더 나은 세상이 오는 게 가능한지 묻는다.

여기에 고대 사상과 철학까지 끌어오다니.

덕분에 공부 많이 했다.


그렇다고 머리 아픈 소설 아니니 피하지 않아도 된다.

순수하게 읽는 재미,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작품이니까.

다른 건 몰라도 재미 하나는 확실하게 보장한다.

검은 옷을 입은 자들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이석원 산문집 『슬픔의 모양』(김영사)

내 취향은 아니지만 정말 글을 잘 쓴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작가가 몇 명 있다.

이석원 작가도 그런 작가 중 하나다.

그러다 보니 스토커도 아닌데 꼬박꼬박 작가의 책을 챙겨 읽고 있고, 그럴 때마다 "참 잘 쓰는데 내 취향은 아냐"라고 투덜거리며 책을 덮곤 한다.

그런데 이 산문집은 잘 쓴 책을 넘어 심지어 내 취향이기까지 했다.

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작가가 지금까지 쓴 모든 단행본 중 최고작이라는 게 내 의견이다.


이 산문집은 작가의 아버지가 코로나 펜데믹 당시 쓰러져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급박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버지는 이제 가족을 돌보는 대상이 아니라, 온 가족이 돌봐야 하는 존재로 바뀐다.

그날부터 작가뿐만 아니라 어머니, 두 명의 누나의 일상도 급격한 지형 변화를 겪는다.


가족이란 관계가 그렇지 않던가.

누구보다 가까우면서도 어쩔 땐 누구보다 먼.

마음만큼 가까워지거나 멀어질 수도 없는 존재.

이 산문집 속 "내게 가족이란 늘 행복한 지옥이거나 지옥 같은 천국 둘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한 한 번도 중간은 없었다”라는 문장은 가족이란 존재를 설명하는 훌륭한 문장이다.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 이후 벌어진 모든 자질구레한 일을 처리하며 느꼈던 감정이 이 산문집을 읽으며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작가의 아버지는 지금 기준은 물론 오래전 기준으로 봐도 좋은 아버지라고 부르긴 어렵다.

밖에선 호인이지만 안에선 고집불통이고, 작가에게 평생 다정한 말 한마디는커녕 스킨십조차 없던 사람이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가 생사의 고비를 오갈 때마다 가슴 아파하며 애절한 마음을 드러내면서도, 상태가 좋아진 아버지가 예전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 견디지 못하고 원망한다.

그야말로 애증 그 자체인 관계다.

"부모는 언제나 우리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교훈을 준다. 나는 저렇게 살아야지. 나는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라는 문장을 읽고 사무쳤다.


남은 가족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병간호 때문에 점점 예민해져 서로를 물어뜯다가도,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일사불란하게 뭉쳐 일을 해결한다.

그런 작가의 가족을 지켜보며, 저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했겠느냐는 질문을 내게 수시로 던졌다.

이 산문집을 읽는다고 해서 가족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마음이 크게 바뀌진 않을 테다.

기타노 다케시 감독이 "가족이란 아무도 보지 않는다면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는 명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래도 이 산문집을 읽으면 가족을 미워하는 마음에 살짝 균열이 생길 거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고(내용은 다급한데 참..)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흥미진진하다.


P.S. 이 산문집의 결말이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땐 전혀 예상치 못했던 형태여서 놀랐다. 기분이 복잡했다. 가족이란 늘 행복한 지옥이거나 지옥 같은 천국이로구나.

슬픔의 모양
슬픔의 모양
고다 아야 산문집 『나무』(책사람집)

이 산문집은 작가가 말년에 일본 곳곳의 나무를 찾아다니며 배우고 느낀 감정을 섬세하게 담고 있다.

문장만 읽는데도 이끼 냄새, 죽은 나무가 삭는 냄새, 흙냄새가 생생하다. 

식물을 다룬 다른 산문집처럼 특정 종(種)의 나무가 아니라 특정 장소에 있는 나무를 다룬다는 점이 독특하다.

홋카이도 자연림에서 쓰러져 죽은 나무 위로 새롭게 자라난 가문비나무를 통해 생사와 윤회의 질서를 실감하고, 도쿄 근방의 등나무를 보며 딸을 향한 미안함을 되새기고, 혹독한 환경인 야쿠섬에 자라는 삼나무를 가난한 삶을 이기는 강인함을 엿보는 식이다. 


작가의 시선은 자기 앞에 서 있는 나무를 넘어 그 나무를 지탱하는 자연과 인간으로 향한다.

작가가 바라본 나무의 삶은 인간 이상으로 치열하고 복잡하다.

조금 더 햇볕을 받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권력의 공백을 놓치지 않는다.

동시에 홀로 우뚝 설 수는 없고 함께 있어야 비바람을 버틸 수 있다.

뒤틀린 나무가 톱날에 반항하다가 끝내 폭발하듯 부서지는 걸 보며,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인간의 고집을 읽는다.

작가는 업혀서라도 나무를 보려는 등 지나치게 고집을 부리는데, 그 고집에서 남은 생이 길지 않아 살아있을 때 나무를 느끼려는 조바심과 간절함이 느껴져 애절하다. 

 

지난 2003년 봄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한 들꽃을 만났다.

겨우내 삭은 낙엽을 뚫고 올라온 작은 들꽃 한 송이의 하늘색 꽃잎.

그 들꽃의 이름을 알고 싶어 서점에 들러 식물도감을 뒤졌다.

쌍떡잎식물 용담목 용담과의 두해살이풀, 이름은 구슬봉이. 

다시 그 꽃을 보고 싶어 찾아갔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구슬봉이 주위에 피어 있던 냉이꽃, 꽃다지, 봄맞이꽃, 꽃마리 등 다양한 들꽃을 발견한 것이다.

그 순간 무채색의 세상이 총천연색으로 바뀌었다.

들꽃은 내게 계절과 시간을 가늠하는 기준이며, 동시에 이 세상이 살만하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매개이기도 하다.

구슬봉이는 내 들꽃 사랑의 시작이었다.


이 산문집을 읽으며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는 이런 산문집 한 권을 써보고 싶다.

나무
나무
조영주 장편소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마티스블루)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작가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 여행을 다룬 판타지이지만, 마냥 판타지로 느껴지진 않았다.

무심코 읽으면 동화 같지만, 한 꺼풀 들춰 보면 참으로 냉혹한 세상이다.

작가가 힘든 세월을 꽤 많이 겪어왔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했고, 그 세월 속에서 소설 쓰기는 천형이면서 동시에 구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의 첫 페이지에는 항상 힘든 기억이 놓여있는데, 그 추억이 현실이 고단함을 잠시 잊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되어주지 않던가.

책을 서재에 꽂아 넣으며 한강 작가가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거대 담론이 아니어도 유효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마다 인생 그릇이 다르듯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의 크기도 다른 법이다.

남에게 말 못 할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이 작품 속 이야기가 꽤 위로가 될 테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은달이 뜨는 밤, 죽기로 했다
김금희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무제)

출판사 무제를 운영하는 박정민 배우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으로 선공개된 작품이다.

오디오북 녹음에 준면 씨를 비롯해 고민시, 염정아, 최양락, 김도훈, 김의성, 배성우, 류현경 등 여러 배우가 재능 기부로 참여했다.

준면 씨 덕분에 이 작품을 출간 전에 읽고 들을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친한 언니에게 사기를 당한 주인공이 돈을 찾으려고 언니의 고향에 들렀다가 벌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를 그린다.

로그라인만 보면 복장 터지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 의외로 싱그럽고 상큼하다.

문장 곳곳에서 계절감이 느껴지고, 주인공의 일상이 눈앞에 수채화처럼 그려진다.

비 온 뒤 아침 공기 같은 작품이다.

어떻게 보면 뻔한 치유물인데, 그 특유의 계절감이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들어 준다.

다루는 계절과 이야기는 다르지만,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 오는 여름날, 카페에 앉아 페이지를 넘기면 잘 어울릴 매력적인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오디오북은 보통 도서 출간 후에 제작되는데, 이 작품은 처음부터 오디오북으로 제작을 염두에 둔 장편소설이다.

비디오 테이프나 DVD 콘셉트로 만든 표지와 케이스에도 '듣는 소설'이라는 이 작품의 성격이 드러난다.

텍스트 역시 소설과 각본 사이의 어딘가에 있다.

배우들의 캐릭터 연기 역시 생생하다.

그래서 단순히 성우가 텍스트를 읽는 다른 오디오북과 달리 오리지널 라디오 드라마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능청스러운 준면 씨의 연기도 일품이고.

첫 여름, 완주
첫 여름, 완주
문지혁 산문집 『소설 쓰고 앉아 있네』(해냄)

'채널예스'에 연재됐던 시절에 꼬박꼬박 챙겨 읽었던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당시 고정 독자 상당수는 작가와 작가 지망생이지 않았을까.

연재를 읽을 때마다 "나도 그래!"라며 로커처럼 헤드뱅잉을 했다.

웃기고 싶은데 겸연쩍어 대놓고 웃기지는 못하는 작가 특유의 유머도 좋았다.


읽으면서 꽤 많은 걸 새롭게 배웠다.

오토픽션을 비롯해 서사, 플롯, 이야기 등 희미하게 알고 있던 개념도 선명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왜 그렇게 소설을 써왔는지, 왜 1인칭 주인공 시점에 집착하는지, 왜 그런 플롯을 쓰는지 이 산문집을 통해 알았다.

교재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내용이 풍성하다.

다정하면서도 사려 깊은 선생님의 수업을 닮았다.


공감하며 따로 체크해둔 부분이 적지 않다.

우리가 쓰는 이야기는 우리의 평범함이 실은 위장된 비범함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조언을 읽고 무릎을 쳤다.

우리가 남이 잘된 이야기보다 잘못된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를 생존과 엮어 설명한 부분에선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잘된 이야기는 내게 남아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줄이기 때문에 도파민 분비 안 되고, 잘못된 이야기는 생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도파민이 분비된다니.

오랫동안 가졌던 의문이 명쾌하게 해결됐다.

희극을 만들고 싶다면 외면적 목표를 좌절시키고 내면적 목표를 성취시키라는 조언을 읽고 내가 해피엔딩을 쓰는 방식이 이거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욕망을 가진 주인공을 따라가다 보면 이야기는 저절로 완성되며, 최고의 플롯은 작가조차 이야기를 쓰다가 발견하는 플롯이라는 조언에도 격하게 공감했다.

현역 작가라면 3부 '책상 밖으로'가 흥미로울 테다.

그중에서도 문단을 '우동 거리'에 비유한 글이.


유독 기억에 오래 남는 문장이 있다.

실패를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재능이 있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착각도 아주 중요한 재능이라고.

돌이켜보니 나도 그 착각 덕분에 버텼다.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소설 쓰고 앉아 있네 - 문지혁 작가의 창작 수업
김애란 外 4명 소설집 『음악소설집』(프란츠)

음악소설집이라고 말하기에는 음악의 비중이 높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른 제목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전체적으로 따뜻하면서도 서늘하다.

'따뜻하다'와 '서늘하다'는 양립하기 어려운 단어인데, 이 소설집 위에선 그게 가능하다.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다.

봄보다는 여름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집이다.


소설집에 실린 단편 중 가장 짧았지만 윤성희 작가의 「자장가」가 가장 음악소설다웠다.

페이지를 넘기는 동안 이제 볼 수 없는 많은 사람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 아이유의 '무릎'을 소설로 읽으니 가슴이 뭉클했다.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음악소설집 音樂小說集
패노니카 드 쾨니그스워터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안목)

저자는 로스차일드 가문의 상속녀로 젊었을 땐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나치에 저항했고, 이후 뉴욕에서 살며 재즈 뮤지션들의 든든한 후원자로 활동했다.

이 책에는 저자가 폴라로이드로 촬영한 많은 재즈 뮤지션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 어떤 연출도 없이 자연스러운, 그래서 더 희귀한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의 일상이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가 사진으로 담은 뮤지션들에게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

대답 또한 날것 그대로다.

그야말로 전설 그 자체인 뮤지션들의 대답이 이렇게 속되고도 성스럽다니.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다.



* 존 콜트레인

1. 고갈되지 않는 신선한 음악을 갖는 것...난 지금 진부함.

2. 질병이나 건강 악화를 방지해 줄 면역력

3. 정력이 지금보다 세 배 강해지는 것


* 빌 에번스

소원을 들어주는 반지. 그걸 얻게 되면 나머지는 필요 없다.


* 스탠 게츠

1. 정의

2. 진실

3. 아름다움


* 루이 암스트롱

1. 일 년 동안 나팔을 내려놓고 나의 녹음테이프 전부를 들으며 분류하고 색인을 붙이는 것... 그렇게 하면 원가를 쓸 수 있을 텐데... 그러면 남은 인생이 좋을 것 같아요!

2. 그다음에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팬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해 연주하는 것.

3. 백 년쯤 사는 것! 그래서 다음 세대들이 연주하는 것을 즐기고 나도 그 음악을 해보는 것.


* 마일스 데이비스

백인이 되는 것!


저자가 내게 같은 질문을 했다고 가정해 봤다.

내 대답이다.


1. 모든 가족의 건강과 행복

2.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않을 만큼의 주머니 사정

3. 나보다 훨씬 오래 살아남을 장편소설 쓰기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
재즈 거장들의 세 가지 소원
남무성 음악 만화 산문집 『스윙라이프』(부커스)

작가의 전작인 『Paint It Rock』, 『Jazz It Up!』처럼 방대한 음악 지식과 뒷이야기를 흥미로우면서도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다루는 내용이 재즈처럼 즉흥적인 부분이 많다.

일반적인 칼럼처럼 글로 썰을 풀다가, 느닷없이 만화가 글을 대신한다.

때로는 "이런 것까지 굳이?" 싶을 정도로 깊이를 보여줄 때도 있다.

재즈와 추상화를 비교하며 긴장과 이완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관측하는 순간 변화한다"는 양자물리학을 호출해 재즈 역시 감상하는 순간 바뀐다고 썰을 푼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위에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겹치고, 죽음을 이야기하며 모차르트와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을 언급하다가 자연스럽게 루이 암스트롱의 레퀴엠 「St. James Infirmary」, 찰스 밍거스의 「Goodbye Pork Pie Hat」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짙은 재즈와 어울리는 술로 위스키 '아드벡'을 추천할 땐 순간 피트 향이 확 느껴져서 흠칫했다.


작가 개인사를 재즈와 엮어 풀어내는 부분이 좋았다.

자기를 양평까지 데려다준 대리기사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팻 매스니와 찰리 헤이든의 연주를 떠올리고,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에서도 재즈를 읽는다.

몰래 다량의 LP를 훔쳐 간 후배를 다룬 이야기에선 키득키득 웃음이 자동으로 새어 나왔다. 작가에게 못된 짓을 하면 이렇게 작품으로 박제된다.

음악 기자들(이니셜로 언급했지만 누구인지 다 알겠더라)을 디스하는 이야기도.

작가가 운영했던 재즈바 '가우초'(나도 한 번 가본 곳이다)에 얽힌 이야기도.


문장이나 단어가 낯설고 어려워진다 싶어질 때 어떻게든 쉽게 풀어내려는 태도가 엿보여서 좋았다.

괜히 있어 보이고 싶을 때 종종 쓰는 인용도 거의 보이지 않아 읽기 편했다.

나처럼 재즈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니,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 재미있을 테다.


P.S.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긴 해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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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교회가 궁금하다면...
[함께읽기] 갈증, 예수의 십자가형이 진행되기까지의 이틀간의 이야기이수호 선생님의 교육 에세이 <교사 예수> 함께 읽기[올디너리교회] 2025 수련회 - 소그룹리더
인터뷰 ; 누군가를 알게 되는 가장 좋은 방법
책 증정 [박산호 x 조영주] 인터뷰집 <다르게 걷기>를 함께 읽어요 [그믐북클럽Xsam] 24. <작가란 무엇인가> 읽고 답해요[그믐밤] 33. 나를 기록하는 인터뷰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
[그믐클래식] 1월1일부터 꾸준히 진행중입니다. 함께 해요!
[그믐클래식 2025] 한해 동안 12권 고전 읽기에 도전해요! [그믐클래식 2025] 1월, 일리아스 [그믐클래식 2025] 2월,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그믐클래식 2025] 3월, 군주론 [그믐클래식 2025] 4월, 프랑켄슈타인
6월의 그믐밤도 달밤에 낭독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수북탐독을 사랑하셨던 분들은 놓치지 마세요
[📚수북플러스] 2.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수북플러스] 1. 두리안의 맛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 벽돌책 같이 격파해요! (ft. YG)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3. <냉전>[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2. <어머니의 탄생>[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1. <세계를 향한 의지>[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0. <3월 1일의 밤>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
반가운 이 사람의 블로그 : )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과 함께 조용한 질문 하나씩[n회차 독서기록] 에리히 프롬 '건전한 사회'를 다시 펼치며, 두 번째 읽는 중간 단상
내일의 고전을 우리 손으로
[도서 증정] 내일의 고전 <불새>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도서 증정]내일의 고전 소설 <냉담>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이 계절의 소설_가을] 『냉담』 함께 읽기
제발디언들 여기 주목! 제발트 같이 읽어요.
[아티초크/책증정] 구병모 강력 추천! W.G. 제발트 『기억의 유령』 번역가와 함께해요.(8) [제발트 읽기] 『이민자들』 같이 읽어요(7) [제발트 읽기] 『토성의 고리』 같이 읽어요(6) [제발트 읽기] 『전원에서 머문 날들』 같이 읽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예제가 뭐에요?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2.어둠의 심장, 조지프 콘래드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1.노예선, 마커스 레디커[이 계절의 소설_가을]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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