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이 연작소설의 작가의 말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습니다."
책 하드커버를 덮은 뒤 들었던 내 기분도 작가의 말과 같았다.
나 역시 읽는 내내 어렵고 괴롭고 부끄러웠으니 말이다.
이 연작소설은 서울 소재 가상의 동네인 '서영동 동아1차 아파트'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주민과 주변인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 7편을 묶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아파트 단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주민 간 담합을 유도하고, 층간소음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고 있지만 상승하는 아파트 가치를 포기할 수 없고, 아파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하철 통로를 뚫으려고 수시로 시위를 벌이며 악다구니를 부리고, 단지 가치를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노인요양시설을 반대하고, 아파트 경비원에 갑질을 하면서도 갑질이란 걸 인식하지 못하고, 같은 단지 안에서도 평수로 서로의 급을 나누고...
작가는 아파트(를 포함한 부동산)를 바라보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까발리며 독자에게 묻는다.
우리 정말 잘살고 있는 거 맞느냐고.
노동 시장의 민낯을 들여다본 장강명 작가의 연작소설 <산 자들>과 더불어 현재 대한민국의 먹고사니즘을 돌아보기에 훌륭한 르포다.
조남주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 게 정말 오랜만이다.
데뷔작 <귀를 기울이면>과 <고마네치를 위하여> 이후 작가가 내놓은 작품들이 워낙 당황스러웠던 터라.
<82년생 김지영>은 화제성을 떠나 과연 이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인 작품이었다.
지나치게 메시지를 앞세우고 읽는 재미를 도외시한 <사하맨션>도 실망스러웠고.
이번 연작소설은 읽는 재미와 메시지를 조화롭게 살린 결과물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블랙코미디로 시작해 사회 문제 비판을 지나 사랑으로 끝나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이야기 모음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에 "이것도 좋아할 것 같고 저것도 좋아할 것 같아서 다 준비해봤는데 어때?"라는 질문을 받은 기분이다.
나는 "아주 좋았어!"라고 대답하고 싶다.
'살아 있는 조상님들의 밤'은 설날에 가족끼리 모여서 돌려 읽기에 딱 좋은 단편이 아닐까?
근래 읽은 단편 중 가장 웃긴 단편이었는데, 꼰대의 끝이 어디인지 펼쳐내는 상상력이 유쾌하다.
'신체강탈자의 침과 입'도 읽는 내내 미친놈처럼 키득키득 웃게 한 단편이었다
정말 하찮은 외계인이 등장하는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을 닮아 있어 더 웃겼다.
끝까지 진지해 보였던 '바벨의 도서관'을 읽을 때도 마지막에 인공지능이 죽어라 찾아 헤매던 책의 제목을 확인하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마냥 유쾌하기만 했다면 새벽이 가까워져 오는 이 시간에 잡설을 끼적이진 않았을 테다.
우주에서 벌어지는 파업 문제를 다룬 '우리가 멈추면'을 읽을 때는 고용노동부 출입 기자로 일했던 2년여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노동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르포 기사 이상으로 진지하고 날카로운 이야기다.
작가가 묘사하는 우주의 풍경과 기술이 정말 그럴듯해서 실감 나는 작품이었다
'다층 구조로 감싸인 입체적 거래의 위험성'은 욕망의 근원을 들여다보며 자유와 속박의 차이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마지막에 실린 '저 먼 미래의 유크로니아'였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이 이상적인 미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장대한 스케일로 그려낸 절절한 사랑 이야기다.
개인적인 사랑이 어떻게 편견과 차별을 넘어 보편적인 인류애 나아가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여운이 깊게 남았던 작품이다.
최근에 챙겨 읽는 한국문학 신간 중에 SF의 비중이 늘었다.
SF라는 장르를 떠나, 그 자체로 좋은 메시지와 이야기를 담은 신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SF 붐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 단계는 넘어선 듯하다.


표지를 보고 달콤 살벌한 이야기를 담은 장르 소설이 아닌가 예상했는데, 예상과 달리 달콤을 뺀 살벌한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페이지 곳곳에서 음습한 기운을 느꼈다.
과거에 비슷한 기운을 느꼈던 듯해서 그게 언제인지 생각해보니 이토 준지의 작품을 봤을 때였다.
생활 밀착형 서사에서 밑바닥에 고인 상상력을 끌어내는 집요함이 흥미로웠다.
집요함은 흔들리는 부부 관계, 불륜, 외모지상주의,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의 불화, 좀비, 사이코패스 등 익숙한 소재를 익숙하지 않게 변주하는 힘이다.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라는 모순이 어색하지 않게 동거한다.
읽는 내내 "솔직히 너도 그런 생각 안 해봤어?"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받아 뜨끔했다.
질질 끌지 않는 문장과 다음 내용을 굳이 숨기지 않는 돌직구 전개가 읽는 데 경쾌함을 더한다.
수시로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살풍경이 등장하는데도, 마냥 끔찍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경쾌함 때문이었다.
집요함만 있었다면 읽는 재미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색깔과 냄새가 선명하게 느껴져서 눈앞에 자주 영상이 떠올랐다.
'초신당'이나 '뒤로 가는 사람들' 같은 작품은 영상화되면 꽤 괜찮은 결과물로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연휴를 함께 하기에 즐거운 소설집이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 지나치게 붙어 지내다 자살로 생을 마친 사업가.
대통령의 비호를 받아 대통령의 입맛에 맞게 검찰 개혁을 추진하는 총장.
이에 반발해 사업가와 총장 억지로 엮어 보내버리려는 특수부 부장검사.
이 과정에서 칼로 쓰이는 아웃사이더 출신 평검사.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자세로 총장과 부장검사 사이를 저울질하는 정치인 출신 법무부장관.
그리고 관망하는 대통령.
이 작품은 대검찰청이 있는 서초동을 배경으로 검찰 내부의 권력 투쟁을 그린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저마다 철저하게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가독성이 훌륭한 데다 분량도 적어 앉은 자리에서 짧은 시간에 완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주원규 작가의 작품을 데뷔작부터 꽤 많이 챙겨 읽어왔다.
대한민국 사회의 다양한 부조리를 시의성 있게 다루고, '방구석 소설'을 쓰지 않는 작가가 한국 문학에서 귀한 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작품이 실제 검찰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담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기자 시절에 검찰 출입을 한 일이 없지만, 술자리에서 출입 기자 말을 들어보면 정말 폐쇄적이고 취재하기 어려운 조직이란 건 알겠더라.
고공 취재가 정말 안 되는 출입처가 검찰이더라.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핵전쟁 이후 지하로 파고든 인류.
평생 일해도 갚기 어려운 세금을 짊어진 채 절망하며 마약에 중독된 복제인간.
지금의 삶 외에는 다른 삶을 전혀 상상해보지 못한 채 착취당하는 그들을 철저하게 도구로 이용하는 엘리트.
작가는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던 복제인간이 각성하는 과정을 긴박하게 그리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질문을 던진다.
아울러 사회의 다양한 층위에 있는 주변 인물들이 이 질문 앞에서 저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도 보여준다.
작품 속에서 부조리와 엘리트의 독재를 무너뜨리는 힘은 연대다.
이 작품은 부조리한 사회에서 구성원이 존엄을 지키는 일은, 소수의 엘리트에 합류하고자 노력하는 게 아니라 부조리에 의문을 제기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메시지는 날카롭지만, 곳곳에서 기시감이 느껴져 신선함은 덜했다.
문명과 야만이 기형적으로 공존하는 디스토피아는 영화 <매드 맥스> 시리즈를, 복제인간의 등장으로 만들어진 신분제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했다.
사회 구성원 다수를 우매하다며 인격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엘리트의 모습에선 "대중은 개돼지"라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내부자들>이 연상됐다.
이 작품 바로 전에 나온 안전가옥 오리지널 시리즈인 해도연 작가의 작품이 무척 마음에 들어 관심을 가지고 읽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이 작품은 당분간 마지막으로 읽은 소설이 될 듯하다.
연초에는 봄에 발표할 단편을 쓰고, 상반기에 발표할 장편을 다듬는 일에 집중할 생각이다.
p.s. 여담인데 편집 과정에서 발생한 두 가지 실수가 유난히 커서 눈에 띄었다.
35페이지 맨 아래에 두 문장이 이유 없이 중복된다.
105페이지에도 줄 바꿈에 오류가 있다.
이 밖에도 자잘한 오타가 꽤 보였는데 체크를 못 했다.
2쇄를 찍는 날이 오면 부디 꼭 고쳐지기를.


최근 한국 소설 신간을 살피는 동안 눈에 띄는 현상은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한 치유계 소설이 자주 눈에 띈다는 점이다.
현재 소설 베스트셀러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이미예 작가의 장편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 김호연 작가의 장편 <불편한 편의점>이 대표적이다.
김초엽, 천선란 작가 등이 보여준 소프트 SF도 넓게 보면 치유계 속성을 가진 작품들이다.
<불편한 편의점>이 무슨 환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느냐는 반론도 있겠지만, 그런 골목에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설정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 판타지 아닌가.
각설하고, <그림자 상점> 또한 이 같은 흐름에서 나온 치유계 소설 중 하나다.
이 작품에는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여고생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림자를 세 개나 가진 주인공은 남들과 다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끝에 그림자 둘을 스스로 끊어낸다.
평범해졌다는 생각은 잠시, 끊어냈던 그림자 둘이 2년 후 사람이 돼 주인공을 찾아온다.
그림자 둘은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미지의 장소인 '그림자 상점'을 찾아 온전한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과 두 그림자가 '그림자 상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다.
그림자는 관용적으로 아픔이나 상처를 은유하는 표현으로 쓰인다.
주인공이 두 그림자와 함께 하는 여정은 아픔과 상처 너머에 있는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아픔과 상처를 언제까지 외면할 수는 없으며, 용기를 내 이를 직면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부드럽게 전한다.
상상 속의 세계를 묘사하는 문장이 생생해 머릿속에 쉽게 장면이 그려졌다.
페이지 여러 곳에 소설 속 장면을 묘사한 흑백 삽화가 담겨 있는데, 채색 삽화보다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해 상상을 돕는다.
새 소설을 쓰지 않을 때면 신간을 많이 사서 챙겨 읽고 가능한 한 흐름을 파악하려 애를 쓰는 편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동료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지는 건 작가로서 윤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 요즘 어떤 소설이 세상에 나오는지도 모르면서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헛소리를 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문학계에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듯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창작자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느낌을 이 작품을 통해 받았다.
균열은 여기저기서 많이 일어날수록 좋다.


이 작품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조선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겨우 삶을 이어가는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재해석한다.
쥘 베른의 작품처럼 과거를 배경으로 SF의 요소를 도입한 독특한 형식의 작품이다.
작가는 철과 불로 무엇이든 만들어낼 줄 아는 소녀, 그 소녀의 단 하나뿐인 친구인 도깨비를 축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식민지 조선의 일상을 상상력을 더해 펼쳐낸다.
경복궁에 처음으로 전등이 켜지고, 한성에 전차가 운행되는 등 세상이 숨 가쁘게 변하는 가운데 나라를 잃은 민초의 삶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작가는 여성성을 감추고 생존의 길을 찾는 소녀, 소멸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로봇이 된 도깨비의 선택을 흥미롭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제의 식량 수탈,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동원 등 당대의 참상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아울러 작가는 당대 신여성이 겪었던 고초를 조명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은 과거와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게 한다.
읽는 내내 즐거움보다는 안타까움과 서글픔을 더 많이 느꼈다.
가벼운 분량이지만 내용까지 가벼운 소설은 아니었다.


현실과 꿈이 뒤섞이고,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기 어려운 세상.
처음부터 끝까지 몽롱한 분위기의 연속.
뚜렷한 줄기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이어지는 서사.
페이지의 양은 적지만 좀처럼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운 작품이다.
정지돈, 박솔뫼 작가의 작품처럼 읽었으되 무엇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작품을 읽은 뒤 진심으로 이해한 독자가 있을지 궁금해진다.
더불어 작가 또한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알고 썼는지 궁금해진다.


흡인력이 대단한 작품이다.
읽는 내내 불편하고 낯설었는데, 페이지를 넘길수록 뒷부분이 궁금해져 몸이 달았다.
작품의 배경은 광산의 폐쇄로 쇠락한 지 오래된 시골 마을이다.
마을은 화성을 연상케 하는 황폐한 풍경 때문에 화성을 배경으로 하는 SF 영화의 촬영 부지가 된다.
마을에는 화성 우주기지가 세트장이 만들어지고, 주민은 영화에 엑스트라로 참여해 황폐한 풍경과 하나가 된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이라는 호재도 이어진다.
마을에 부자연스러운 활기가 도는 가운데, 한 노인이 기괴한 방식으로 자살하고 야산에서 여러 시신이 발견되는 등 불길한 사건이 계속 벌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과 음모가 읽는 동안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와 은폐하려는 자의 시선이 교차하고, 파편화한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가상의 SF 영화 시나리오 속에서 교묘하게 뒤섞여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존재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작품을 읽는 내내 제목처럼 무언가 위험한 게 뒤를 따라오는 듯해 등골이 서늘했다.
작가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위험한 욕망이 잠재돼 있고, 누구도 그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SF 영화에 엑스트라로 참여해 똑같은 우주복을 입고 무리지어 "하나가 되자"라고 외치는 마을 사람의 모습이 섬뜩했다.
내 안의 욕망은 진짜 내 의지로 만들어진 욕망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쩌면 테마파크 같은 공간이 아닐까?
독자에게 분명한 해답을 주기보다는 생각의 여지를 많이 남기는 작품이다.
찝찝하지만 정말 재미있었다.
잘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한 시즌을 쉬지 않고 감상한 느낌이다.


과거와 미래, 지구와 우주의 중심을 오가는 장엄한 대서사.
읽는 내내 무한한 공간감과 몽환적인 기분을 느꼈다.
그 느낌이 오래전에 올라프 스태플든의 고전 SF <이상한 존>을 읽으며 느낀 경이감과 비슷했다면 과찬이려나.
핑크 플로이드의 걸작 [The Dark Side of The Moon]의 재킷 이미지를 닮은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실제로 작품 속 이야기의 주된 배경이 달이기도 하고.
작품 속 세 이야기는 네트워크를 통한 확장 현실의 발달이 인류의 미래를 어떤 형태로 이끌어갈지 탐구한다.
이야기 속에서 구현되는 여러 기술은 논리적이면서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돼 현실감을 자아낸다.
이야기의 시간과 배경은 달라도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어 연작소설보다는 장편소설 읽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간의 기억과 의식이 디지털 신호로 바뀌어 네트워크에 업로드된다면, 그 디지털 신호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자신을 인간이라고 믿는 인공지능을 인간이 아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작가는 발전한 기술을 통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보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같은 질문은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우주는 과연 하나만 존재하는지, 완벽한 우주는 생명조차 필요 없는 우주 그 자체가 아닌지, 신은 과연 존재하는지 등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곳곳에서 불교적 사유가 엿보인다.
붓다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곧 세상의 중심이므로, 다른 곳에서 세상의 중심을 찾지 말라는 메시지가 묘하게 위로가 됐다.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보잘것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메시지 같아서 말이다.
중간에 익숙하지 않은 용어와 기술도 많고, 작가가 창조한 개념도 종종 등장해 읽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온전히 소설을 이해했다는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니 진입장벽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최근에 문학계에 대세로 떠오른 소프트 SF에 익숙해져 있다가, 진입장벽이 있는 SF를 읽으니 신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