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5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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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장편소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해냄)

강원도 평창의 산골에 자리 잡은 펜션이 작품의 배경이다.

도라지꽃이 흔하게 보일 때 이야기가 시작돼서 질 때쯤 끝나는 걸 보니, 소설 속 계절은 여름과 가을 사이로 짐작된다.

때죽나무, 꽝꽝나무, 구절초, 기생초, 파드득나물 등 다양한 식물이 작품에 소품으로 등장한다.

서정적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 수 없는 설정이다.


여기에 음식 솜씨가 좋은 펜션 주인과 애늙은이 같은 여섯 살 꼬마, 아흔을 앞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출신 미국인 노인과 한국인 아내, 귀촌을 꿈꾸는 부부가 모여 얽히고설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과 상처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어깨를 보듬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참 다정한 작품이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짙은 숲의 냄새, 소박하지만 깊은 음식 냄새가 느껴졌다.

책을 덮은 뒤, 먼 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음식을 먹으며 치유라도 받은 듯 기분이 편안해졌다.

내 머릿속에 있는 구효서 작가의 이미지는 무거운 주제를 담은 난해한 이야기를 쓰는 몹시 진지한 사람이다.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쓸 수도 있다는 게 놀랍고도 신선했다.


통행량이 많은 도로에서 신호등이 보이지 않을 때,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건 앞차의 후미등이다.

앞날이 불투명한 나 같은 무명 작가에게 신호등 역할을 해주는 건 선배 작가의 행보다.

60대 중반이라는 나이에도 부지런히 작품을 내고 변신을 마다하지 않는 작가의 모습은 내게 많은 용기와 자극을 줬다.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 파드득나물밥과 도라지꽃
옆에 앉아서 좀 울어도 돼요? - 파드득나물밥과 도라지꽃
허남훈 장편소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은행나무)

현실과 밀착도가 대단히 강한 작품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유망한 전문직이라는 CFP(국제공인 재무설계사) 응시에 필요한 금융기관 재직 경력을 쌓기 위해 보험사에 입사한 전직 기자다.

언론계 이야기와 보험업계 이야기가 반복해 교차하며 서사를 쌓아가는데, '방구석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생생한 업계 묘사가 일품이다.


언론계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내게 익숙한 내용이어서 자주 한숨이 새 나왔다.

주인공은 지역지 기자 출신으로 새로 창간한 서울의 한 연예 일간지에 경력 기자로 합류했다.

지역지에서 일하다가 낯선 조직에서 낯선 일을 하니까 기사 발굴은커녕 기본적인 취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무의미한 특종과 속보 경쟁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결국 공황장애를 진단을 받게 되고, 행복해지기 위해(아니 살기 위해) 무작정 퇴사한다.

나 또한 기자로 일하던 시절에 매일 기사 마감에 시달리면서도, 동시에 신문 구독 부수와 협찬 및 광고비 확장에 압박을 느꼈던 터라 소설에 몰입해 공감할 수 있었다.


보험업계 이야기를 읽을 때는 낯선 내용인데도 마치 실적에 몰린 영업사원에 빙의한 듯 숨이 막혔다.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도망친 끝에 도달한 곳은 모양만 다른 또 다른 지옥이다.

이 작품이 묘사하는 영업사원의 일상은 날마다 거절의 연속이다.

매일 거절을 당한다고 거절에 익숙해지는 건 아니다.

그사이에 느낀 자괴감과 모멸감은 자신 안에 차곡차곡 쌓인다.

남의 돈을 버는 게 얼마나 치사하고 힘든 일인지, 현재 청년층이 취업전선에서 얼마나 힘겨운 상황에 내몰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묘사가 날카롭다.


세월이 흐른 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각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적당히 버티며 살아간다.

시원한 사이다 엔딩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다들 밥벌이에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사는지는 의문이다.

수많은 '거절'을 견디고 앞날을 '개척'하면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작가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내 나이는 40대 중반이다.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젊은 나이도 아니다.

이제는 만으로도 30대라고 우기지 못하는 나이이니 말이다.

지금까지 살다 보니까 조금은 보이더라.

인생이란 한정된 자원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하는 일의 연속임을.

지금 걷고 있는 길 외에도 다른 길이 있음을.

그리고 어떤 길로 가든 시행착오를 피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무슨 거창한 결론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그저 우리가 홀로 외롭게 길을 걸어가고 있지 않음을 잠시나마 상기시킬 뿐이다.

소설이 할 수 있는 위로는 딱 그 정도가 좋다.


책날개로 파악할 수 있는 작가의 나이 역시 40대 중반이다.

소설 곳곳에서 짬에서 나온 바이브가 넘쳐나는데, 이는 작가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전에 사회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소설에서는 어린 천재가 나오지 않는다.

소설에 설득력을 부여하고 풍성함을 더하는 건 경험임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 -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우리가 거절을 거절하는 방식 - 2021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박상 장편소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작가정신)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한 상황과 뻔뻔한 농담의 연속이다.

소설의 배경은 지중해 어딘가에 있는 '삼탈리아'이고, 그 나라에선 한국의 현대시가 대중문화이며 화폐처럼 쓰이기도 하는데, 주인공은 비밀 레시피를 입수하러 삼탈리아로 밀입국한 요리사로 한때 시인이 되기를 갈망했던 인물이다.

양자역학을 비롯해 다양한 과학 용어도 튀어나오지만 SF는 아니다. 작가도 그 용어를 이해하지 않고 남발한다는 게 눈에 보이니 말이다.

각주에도 진지하게 구라가 달려있어 이해를 방해한다.

이 같은 설정만 봐도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튈지 궁금해지지 않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담은 이 작품에서 무언가 대단한 의미를 찾고 이해하려고 들면 곤란하다.

흉기를 든 아이들이 주인공에게 돈 대신 시를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사태 앞에서 이해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심지어 '작가의 말'에도 '구라'가 쏟아지는 걸 보고 두손 두발을 들었으니 말이다.


시시덕거리며 책을 덮었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자 은근한 여운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여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피곤해 잠들었는데, 깨어나 보니 정체가 짐작됐다.

자신만의 예술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열정은 아름답다는 것.

작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기꺼이 광대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그런 결론에 이르니 이 소설이 기상천외한 모험담이 아니라 문학을 향한 연가이자 헌사로 느껴졌다.

소설 곳곳에 작가가 애정을 담아 인용했다는 게 보이는 최승자, 심보선, 진은영 등 여러 유명 시인의 시는 그 명백한 증거다.

이 작품의 제목에 왜 '서정'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포함돼 있는지 잠에서 깨어난 뒤에야 이해할 수 있었다.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복고풍 요리사의 서정
곽재식 연작소설 『ㅁㅇㅇㅅ: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아작)

다양한 과학 개념과 용어가 등장하지만, 법칙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기대하거나 상상하면 곤란하다.

"SF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나 고민을 제쳐 두고 자유롭게 쓴 이야기의 연속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중심에는 의뢰받은 온갖 잡일을 처리하는 ‘은하행성서비스센터’의 사장 이미영과 이사 김양식이 있다.

작가는 둘이 티격태격하며 의뢰받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점을 풍자한다.


지적 생명체를 인간의 기준으로 판단해 보호하느냐 마느냐를 따지는 '인간적으로 따져보기'는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존재인지 돌아보게 한다.

'칼리스토 법정의 역전극'은 로봇 판사를 동원한 재판에서 알고리즘을 파악해 재판 승률을 높이는 과정을 그리며 법을 미꾸라지처럼 피하는 고위층과 전관예우를 꼬집는다.

정신과 신체 중 어느 것이 인간의 본질인가를 묻는 '비행접시의 지니', 시간여행이 과연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묻는 '미노타우로스의 비전'과 '16년 후에서 온 시간여행자', 인공지능으로 창조하는 예술을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묻는 '은하수 풍경의 효과적 공유'도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가상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정신적 폭력을 그린 '말버릇과 태도의 우아함'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메타버스의 미래를 상상해보게 했다.

즐겁게 읽으면서도 많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작품이었다.


조금 엉뚱하지만, 이 책에서 가장 공감한 부분은 '작가의 말'이다.

'작가의 말'에는 작가가 이른바 등단 작가가 아니어서 경험한 고충과 아무도 찾아주지 않던 시절의 막막함이 솔직하게 담겨 있다.

자신이 과연 작가가 맞는지 고민하며 절필까지 생각했던 그때, 작가에게 힘이 된 건 결국 새로운 소설을 쓰는 일이었다.

작가는 그 소설을 밧줄 삼아 늪에서 한 발짝씩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결국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건 부지런히 쓰는 일뿐이다.

작가의 고백은 내게도 많은 위안이 됐다.

ㅁㅇㅇㅅ -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
ㅁㅇㅇㅅ - 미영과 양식의 은하행성서비스센터
김홍 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문학동네)

매일 다양한 장르의 새 앨범을 챙겨듣는 생활을 오래 했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재킷 이미지만 봐도 장르가 보이고, 심지어 들을 만한 음악인지도 구별할 수 있게 됐다.

내 경험상 재킷이 구리면 음악도 구리다.

뭐라고 딱히 설명하긴 어려운데, 예외는 없었다.

내게 재킷은 모니터할 앨범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책은 표지만 봐선 내용이 괜찮은지 판단하기가 무척 어렵다.

특히 한국문학 단행본은 표지만으로는 도저히 내용을 판단하지 못하겠다.

출판사에는 미안한 말인데 대부분 구리고 정형화돼 있다.

이 소설집은 올해 들어 처음으로 표지만으로 내용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띠지에 '문학계의 주성치'라는 문구까지 인쇄돼 있어 궁금증이 더 커졌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후 느낌은 '주성치'보다는 '버스터 키튼'에 가까웠다.

웃음이 나오기는 하는데, 유쾌한 웃음은 아니다.

'웃픈'이라는 수식어도 그리 적당하지 않다.

'웃기는데 쓸쓸한' 혹은 '웃기는데 씁쓸한'이라는 수식어가 적당하겠다.

나는 '웃기는데 쓸쓸한'에 방점을 찍겠다.


소설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루저이고, 이들이 처한 현실은 비루하다.

비현실인 상황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펼쳐지는데,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진지해서 피식 웃음이 새 나오게 한다.

등장인물 모두 세속적인 성공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렇다고 좌절하거나 무너지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런 능청스러움과 고집이 이 소설집 전체를 감싸는 힘이다.

다음에 무슨 소재로 어떤 작품을 쓸지 궁금해지는 작가다.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임국영 소설집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자음과모음)

제목에 눈길이 가서 선택한 소설집이다.

제목만으로도 이 소설집에 담긴 이야기의 성격과 작가에 관해 많은 걸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마도 90년 말에서 2000년대 초반에 그 시절을 보냈을 것이며, 유년 시절과 청소년기를 다룬 소설이 실려 있을 테다.

서브컬쳐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고, 김세희 작가의 장편소설 <항구의 사랑>처럼 당시 예민한 10대가 경험했을 법한 BL이나 퀴어 서사가 적절하게 들어가 있을 것이다.

과거가 그저 과거로만 끝나지 않으며, 현재의 일부임을 보여줄 것이다.

예상은 거의 빗나가지 않았다.


나보다 약간 아랫세대의 이야기이지만, 당대 문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내 경험과 겹치는 이야기도 꽤 있어서, 이 소설집을 읽는 시간은 내 지난 시절을 추억하고 복기해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런 표현이 적당할지 모르겠는데,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과 박상영 작가의 소설을 뒤섞어 본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유쾌하면서도 때로는 쌉쌀했던 이야기였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어크로스 더 투니버스
장진영 소설집 『마음만 먹으면』(자음과모음)

밥을 먹다가 모래를 한 알 씹었는데, 뱉자니 아깝고, 삼키자니 찝찝하다.

이 소설집을 읽고 든 기분이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설고, 차분한 듯하면서도 위태롭다.

작가는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 우리가 베푼다고 생각하는 선의와 친절의 이면에서 권력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주목한다.

읽는 내내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꼈다.

대한민국 사회가 약자를 바라보는 편견과 다루는 방식에 깃든 폭력성을 꽤 불편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작은 분량인데 쉽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다.


이 소설집은 신인의 단편 3편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로 출간됐다.

신인이 단행본을 내기까지의 과정은 꽤 험난하다.

소설집에는 보통 7~10편 정도의 단편이 실린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은 예나 지금이나 부족하고, 청탁을 받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등단 후 첫 소설집을 내는데 몇 년 이상 걸리는 일이 보통이다.

'트리플' 시리즈는 신인 입장에선 발표한 소설이 많지 않아도 빨리 단행본을 출간해 독자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서 좋고, 문예지를 챙겨 볼 일이 없는 일반 독자 입장에선 조금 더 자주 신인을 접할 수 있어 괜찮은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만 먹으면
마음만 먹으면
서장원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다산책방)

작가에 관한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여성 작가가 쓴 작품으로 오해할 뻔했다.

그만큼 문장이 섬세하고, 시선에서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부분을 감지하는 예민함이 느껴졌다.

여기에 언뜻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슬아슬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익숙한 풍경과 섞여 긴장감을 형성한다.

문장이 매우 단정해서 신인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작가가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자라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이 소설집을 샀다.

단편소설로 등단한 신인 작가가 단행본으로 엮을 분량의 작품을 발표하는 데에는 최소한 몇 년이 걸린다.

등단 이후 꾸준히 청탁을 받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등단 이듬해에 자기 이름으로 단행본을 냈다는 건, 문학계에서 주목을 받아 작품을 발표할 기회를 많이 얻었다는 의미다.

이 소설집이 현재 한국문학계(일반 독자의 취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의 트렌드를 가늠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
정세랑 장편소설 『시선으로부터,』(문학동네)

최근 몇 년 사이에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다룬 한국 소설이 많이 출간됐다.

그런 작품을 꽤 많이 챙겨 읽었는데, 이 작품은 그중에서 가장 건강하다는 느낌을 줬다.

자기연민이나 피해 의식에 경도되지 않고, 현실에 맞서며 끝까지 당당한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아름다웠다.

곳곳에서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잃지 않는 유쾌한 분위기가 끝까지 흥미롭게 책을 붙들게 했다.


조남주 작가의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사회적 파급력과 별개로 '소설'로서 매력적인 작품이었는지는 의문이다(나는 작가의 데뷔작인 <귀를 기울이면>이 '소설'로서 훨씬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 작품은 '소설'로서 매력적이었다.

한 작품에 담기 어려워 보이는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와 소재를 끝까지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설득력 있게 엮어내는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금까지 정세랑 작가의 작품 대부분을 읽었고, 그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피프티피플>이었다.

이 작품을 읽은 뒤 <피프티피플>의 순위는 한 칸 아래로 내려왔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는데, 이전 작품들과 비교해 레벨이 달랐다

작가도 이 작품을 쓴 뒤 "인생작을 썼다!"며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시선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창비)

이 작품의 중심에는 한국전쟁 이후 질곡의 현대사를 버티며 살아낸 70대 할머니 '순자'가 있고, 그녀의 딸들이 이야기에 가지를 뻗어 나간다.

얼핏 등장인물만 보면 영화 <국제시장> 같은 가족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그런 느낌이 사라지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연출에서 비롯된 효과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이 작품에선 역으로 '개인'에게 관계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장치로 쓰인다.

이 같은 연출은 등장인물을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게 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담담한 듯하면서도 묵직하고, 때로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문장이 놀라웠다.


사실 나는 이 작품을 사다 놓고 책장에 꽂아둔 뒤 꽤 오래 방치했다.

작가의 전작인 <디디의 우산>을 읽고 고개를 갸우뚱했었기 때문이다.

<디디의 우산>은 마치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처럼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줬다.

그런 기억 때문에 <연년세세>에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서사나 플롯이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소설에 거부감을 느끼는 내 취향도 뒤늦게 책장을 펼치는 데 한몫을 했다.

하지만 작가들이 좋은 소설이라고 치켜세우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에, 뒤늦게 책장을 펼쳤다.

늦게나마 책장을 잘 펼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고백하자면,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은 작가 소개다.

이름만 적혀 있고, 사진이나 그 어떤 이력의 나열도 없는 작가 소개.

멋있었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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