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식만 보면 최근에 읽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소설과 미술의 경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도 없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세 편은 분명히 허구이지만 마냥 허구라고 볼 수가 없다.
십수 년 뒤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원전 사고, 사고 이후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여기에 절묘하게 엮이는 예술 작품과 작가의 삶.
익숙한 서사 구조를 기대하고 읽으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현장 기록(물론 허구다)을 나열하는 형태로 전개되다가, 인터뷰(역시 허구다)가 튀어나오는데,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과 실존하는 예술 작품을 바탕으로 소설에서 펼쳐지는 근미래가 낯설지 않다.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보다는 특유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진 않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압도한다.
현대음악 같은 전위예술을 소설로 경험했다.
호불호가 대단히 갈릴 작품이다.
솔직히 내 입장은 불호에 가깝다.
나는 서사가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니까.
하지만 최근에 읽은 모든 한국 소설 중에서 이보다 확실하게 개성이 느껴지는 소설은 없었다.
주목해야 할 신인이 나왔다.
그래. 이런 소설도 있어야지.


이 작품은 김애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무려 13년 만에 내놓는 새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10대 청소년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성장소설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등장인물들의 선생님이 제안한 게임으로, 자신에 관한 다섯 가지 정보를 말하면서 거짓말 하나를 끼워 넣는 게 규칙이다.
등장인물들은 거짓말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이해하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글이라는 게 그렇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과 글에는 발화하거나 쓰는 사람이 묻어난다.
감추려 애쓰면 드러나고, 드러내려고 애를 쓰면 감춰진다.
서로의 거짓말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그리는 작가의 필치가 간결하면서도 섬세하다.
즐겁게 읽었다.
가독성도 훌륭하고 작가 특유의 문장이 주는 여운도 길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겠다.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도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니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화제를 모았겠지.
다만 이른 나이에 화려하게 등단해 받을 수 있는 모든 문학상을 휩쓴 '젊은 거장'의 첫 장편소설이라기엔 가볍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려웠다.
13년이라는 세월에서 작가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제목에서 긴장감이 느껴져, 작가가 새 장편소설로 그 인상을 뒤집어주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뒤집진 못했다.
담긴 내용은 많은데 뭔가 허전하다.
단편이 훨씬 매력적인 작가다.


차 작가가 쓴 『여우의 계절』은 올해 들어 읽은 모든 장편소설 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 진중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외계인과 딱히 지구를 지킬 마음은 없는데 지키게 된 소년의 어색한 브로맨스를 다룬다.
해양 오염, 펜데믹, 가족 문제 등 묵직한 소재가 브로맨스와 엮이니 묵직함은 줄어들고 유쾌함이 더해진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여우의 계절』을 과 『인더백』을 쓴 작가라고 상상하기 쉽지 않을 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외계인이다.
'새우탕 큰사발'에 환장하는 외계인이라니.
앉은 자리에서 '새우탕' 서너 개를 까는 외계인을 본 일이 있는가.
어처구니없긴 한데, 그걸 보는 나도 침을 질질 흘리다가 자정 넘어 '새우탕'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작년에 작가가 쓴 『엄마는 좀비』를 먼저 읽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다면 "오잉?" 하면서 이 작품을 읽지 않았을까 싶다.
클래식 음악에 깊은 조예를 가진 작가의 지식 플렉스는 덤이다.
게다가 돌고래 울음소리가 그렇게 무서운 소리였다니.
영화 「화성침공」이 떠올라 킥킥거렸다.
한 가지 주제에 천착해 우직하게 자기 스타일을 밀어붙이는 작가도 좋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가도 좋아한다.
일종의 '갭모에'를 느낀다고나 할까.
밤에 자기 전에는 읽지 말자.
감상하면 '짜파게티' 생각이 나 미쳐버리는 영화 「김씨 표류기」처럼, 이 작품을 읽으면 '새우탕' 포장을 뜯지 않기 어려울 테니 말이다.
나는 경고했다.


이 작품이 박현욱 작가가 무려 18년 만에 내놓는 새 장편소설이라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렇게 긴 세월이 흘렀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여전히 박현욱 작가는 내게 가장 도발적인 질문을 했던 작가로 남아 있다.
데뷔작 『동정 없는 세상』과 최근작(?) 『아내가 결혼했다』만큼 파격적이고 논쟁적이고 이야깃거리가 많았던 장편소설이 또 있었나.
하나같이 통념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캐릭터들인데, 반발심이 들다가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미워할 수가 없었다.
신간을 확인할 때 박현욱이라는 이름을 정말 오랜만에 발견하고 1초도 고민 없이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 작품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대학 동창 태주와 재하, 재하의 여자친구 명 사이에서 벌어지는 연애담을 그린다.
태주는 재하와 딱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명에게 끌려 매번 셋이 함께 만나자고 연락하는 재하를 억지로 만난다.
태주는 명과 연인 사이인 재하를 부러워하고, 재하는 태주에게 미묘한 과시욕을 보여주는데 아뿔싸...
태주는 아무런 기대 없이 지르듯 명에게 고백했는데, 명은 그런 태주를 받아들이면서, 재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된다.
그런데 태주의 태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여기서 이 작품의 제목을 다시 눈여겨보게 된다.
이 환승연애는 어떻게 끝날까.
안 그래도 얇은 책의 페이지가 빨리 줄어든다.
재미있다.
하지만 아쉬웠다.
'신라면 레드'인 줄 알고 먹었는데, '진라면 매운맛'이었다고나 할까.
전작들과 비교하면 순한 맛이다.
다른 작가가 이런 작품을 썼다면 꽤 도발적이라고 느꼈을 텐데,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은 터라 셋의 심리가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도 오래 기다려온 작가의 신간이어서 반가웠다.
다음에는 작가가 요리한 '열라면 마라맛'을 맛보고 싶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 시대 쟁송제도, 그중에서도 민사소송에 해당하는 사송(詞訟) 절차를 실제 역사 속 사건과 엮어 흥미롭게 다룬다.
주인공은 '법꾸라지'가 판 함정 때문에 아버지가 화병으로 억울하게 죽자 규방 여인에서 약자를 돕는 남장여자 외지부(변호사)로 각성해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 작품이 다루는 사건 모두 실제 역사에 기록된 사건이 바탕이다.
그 때문에 오래된 과거의 사건인데도 현장감이 상당하다.
죄가 있든 없든 일단 잡아들인 뒤 "네 죄를 네가 알렸다!"고 호통치며 주리를 틀고 인두로 지지는 '원님재판'이 사극이 묘사하는 사법절차의 클리셰다.
그러다 보니 근대 이전 한반도에서 법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학부 전공이 법학이어서 근대 이전 소송 절차에 관해서도 살짝 맛보기로 배웠는데, 그 절차가 현대 못지않게 정교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고려 초 '복수법'처럼 미친 법률이 시행된 흑역사가 있긴 하지만, 조선 시대는 전제군주제라는 한계 내에서 작동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사법절차가 작동했던 시대다.
무려 600년 전인 태종 6년(1406년) 6월 한 달에만 노비 문제로 낸 소장이 1만2797건이었다니, 그야말로 '소송의 민족'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 작품에서도 노비 소송은 큰 비중으로 다뤄지는 데다,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는 덕분에 페이지 넘어가는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주인공은 가능한 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이지만, 필요할 땐 협박과 폭행 등 사적제재를 동원하는 등 '사이다'를 연출하기도 한다(이쯤 되면 '빈센조'의 순한 맛인가).
소설로서도 재미있지만, 당대 사법 절차를 엿보기에 훌륭한 참고 자료이기도 하다.


산문집 두 권을 출간한 경력이 있고, 내년에도 새로운 산문집을 낼 계획이다 보니, 산문집을 쓸 때 고충을 나름 안다.
어떤 산문집이든 주제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이 산문집의 주제는 술이다.
명확한 주제다.
주제가 명확할수록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의외로 쉽지 않더라.
주제에 관한 지식과 정보 제공이 앞서면 읽는 재미가 떨어지고, 지나치게 감상만 늘어놓으면 글이 느끼해져 소화하기가 버겁다.
그래서 이 산문집을 기대했다.
작가가 오랫동안 좋은 작품을 써 왔던 소설가이면서 동시에 술에 관해 조예가 깊은 프로페셔널(내눈에는 그렇다)이니까.
이런 교집합을 가진 작가는 내 데이터베이스에는 단 한 명뿐이다.
읽은 소감을 단 한 단어로 요약하면 '말모'다.
몰랐던 훌륭한 우리 술 위에 국내외 문학 명작이 절묘하게 엮이고 그 위에 작가의 삶이 슬그머니 겹친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득도한 부처를 다룬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소개하며 보리수 열매를 넣어 빚은 '보리수 헤는 밤'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청준의 단편 「눈길」의 한 장면을 언급하며 청주 '서설'을 소개하고, 그 위에 작가를 다룬 기사 하나하나를 스크랩하던 어머니의 마음이 아름답다.
그렇다고 지식과 정보 제공이 부족하지도 않다.
약주 '강쇠'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어처구니없는 청주와 약주의 차이를 알게 된다.
충주 담을술공방 '주향소주'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옹기의 우수성을 알게 돼 괜히 어깨에 국뽕이 차오른다. 황순원의 소설 「독 짓는 늙은이」를 리마인드하는 과정은 덤이다.
탁주에서 단양주, 이양주, 삼양주의 차이를 이 산문집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소개하는 우리 술이 다채롭다 보니 그중 하나쯤은 독자의 삶과도 직간접적으로 엮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나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고향에 멋진 청포도 와인 '264'가 있음을 이 산문집을 읽고 처음 알았다.
이 산문집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고향인 논산에 '여유소주'라는 훌륭한 증류주가 있다는 사실도 몰랐을 테다.
안동 맹개마을 '진맥소주'를 소개할 땐 내가 속초에서 사랑하는 술집인 '아프리카'가 등장하고, 내 몇몇 장편소설을 마무리했던 제주 선흘리가 등장하고, '희양산 막걸리'를 소개할 땐 친애하는 최유안 작가가 등장하니 이쯤 되면 대놓고 책을 읽으며 친목질하는 기분까지 든다.
덕분에 맨정신으로 다채로운 술을 즐겁게 시음했다.
이 산문집은 사진이나 별점 하나 없지만, 우리 술을 다룬 그 어떤 가이드북보다 훌륭한 가이드북이다.
스토리텔링 마케팅만큼 강력하고 오래가는 마케팅도 드무니 말이다.
여기에 소개된 다양한 술과 양조장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술 하나쯤은 얻어걸릴 테다.
주류 시장에서 이 산문집에 꽤 민감하게 반응하리라고 예언해 보겠다.
작가는 '건축가가 빚은 막걸리'를 소개하며 소설가가 빚은 막걸리를 시중에 내놓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이 잘하면 꼭 현실이 됐으면 좋겠다.
무슨 맛의 술이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p.s. 작가가 순창 '지란지교' 탁주를 소개할 때 쑥스럽지만 내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류가 있어서 수정한다. 작가는 나를 불의를 보면 크게 분노하고 저항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틀렸다. 나는 불의를 보면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사람이다.


김훈은 신간이 나오면 습관처럼 사서 읽는 작가이지만, 공개적으로 읽었다는 티를 내기가 부담스럽다.
예나 지금이나 구름 위 높은 곳에 머무는 존재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서 말이다.
그래도 조심스럽게 한마디 보태자면, 김훈은 소설보다 산문이 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 산문집의 문장 역시 휘황해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눈 호강을 하며 감탄했다.
더불어 깊은 한숨도 자주 터져 나왔다.
작가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음이 곳곳에서 엿보였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 사이의 어딘가를 집요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파고드는 문장을 볼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나보다 더 나이 먹은 이들이 보면 가소롭겠지만, 40대 중반에 들어서니 부쩍 몸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예전보다 적게 먹는데도(물론 내 기준이다) 달라붙는 군살은 더 많아졌고, 소화력이 예전 같지 않아 속은 늘 더부룩하다.
언젠가부터 눈이 침침해져 안약을 상비하기 시작했고, 술을 마시는 양이 줄어들었는데도 빨리 취한다.
관절과 근육이 자주 쑤시고, 길게 자도 피로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홀로 앉아 생로병사에 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세상을 떠난 피붙이가 적지 않다 보니 더 그렇다.
그러던 중 이 산문집을 읽었기 때문인가.
책을 덮은 뒤 순식간에 30년은 늙어버린 듯 몸이 쑤셨다.
이런 쑤심이라면 견딜만하다.
작가가 조금 더 오래 글을 써줬으면 좋겠고, 나도 작가의 글을 더 오래 읽고 싶다.
p.s. 초쇄임을 고려해도 대놓고 눈에 띄는 오자가 있어 당황스러웠다. 작가의 전작에선 이런 경우를 못 봤다. 나남출판사가 이렇게 허술한 출판사였나. 진즉 새로운 쇄를 찍었을 테니 수정됐겠지만 내가 붙잡은 흔적을 남긴다.
* 133페이지
신경준(1721~14781) → 신경준(1721~1781)
* 230페이지
정약용은 1979년 임금에게 → 정약용은 1797년 임금에게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다.
동시에 무척 씁쓸하다.
그리고 미세하게 통쾌하다.
장류진 작가의 소설에서 씁쓸함의 농도를 확 끌어올리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책을 덮으니 드림카카오 82% 한 통을 입안에 털어놓고 우적우적 씹어먹은 듯한 기분이 든다.
상당히 독한 하이퍼리얼리즘 소설의 모음이다.
이 소설집에는 자만, 착각, 상심, 오만, 기대, 망각이라는 주제로 쓴 여섯 단편이 실려 있다.
마치 가톨릭이 규정하는 칠죄종(교만, 인색, 질투, 분노, 색욕, 탐욕, 나태)을 연상케 하는 콘셉트다.
단편마다 주제는 달라도 어떤 형태로든 일하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같다.
직장 생활을 오래 해 봤거나 관련 직종에 관해 상세하게 취재한 작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디테일이 가득하다.
자만으로 가득한 꼰대를 취재하는 기자를 그린 「이달의 인물」을 읽으면서 나도 다시 기자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느꼈다.
실제로 나는 이와 비슷한 일을 경험했고 소설을 읽으며 당시의 불쾌했던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렸다(여담인데 나중에 그 취재원은 나락 갔다).
주인공 심리와 주변 상황 묘사도 훌륭하다.
착각을 주제로 다룬 「폭력적인 호의」는 회사에서 상하 관계와 지위가 끼어든 고백 공격을 받은 주인공의 멘붕 심리를 상세하게 묘사해 읽는 내내 분통을 터트리게 한다.
상심을 주제로 다룬 「진로발달이론의 재해석」과 기대를 주제로 다룬 「불필요한 만남」는 어떤 형태로 조직이 청년 세대를 착취하는지 실감 나게 보여준다.
오만을 주제로 다룬 「물류센터에 있던 그 생수는 어디로」처럼 나름 사이다처럼 보이는 복수를 보여주는 주인공도 있는데, 그게 과연 정말 사이다일까.
읽는 내내 마음속에 수시로 파도가 쳤다.
소설이 대개 그러하듯 읽는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저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다각도로 보여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종종 본인도 몰랐던 문제가 무엇이고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소설이 알려줄 때도 있으니까.
덤으로 나만 구질구질하게 살아가고 있지 않음을 알면 괜히 위안이 되지 않던가.
이 소설집의 제목을 수록 작품에서 따오지 않고 따로 지은 이유를 알겠다.
도망치고 싶을 때 읽으면 딱이다.


아 기몽 자까의 신작이 요기잉네?
횬재 Hankuk 무낙계에서 최고의 '구라쟁이'는 기몽! 이라는 데 쏜모가지(누구의 것인지 주어는 없다)를 걸지.
요태까지 기몽 자까의 작품을 미앵해왔다.
그럴수록 자까는 도망가뤼요는 굿또 알고 있치.
몬가를 일낀 일겄는데, 그게 Korean인지 quṙān인지 감이 자퓌질 않아.
온통 구라야.
심쥐어 각주에도 구라를 치네?
본인 소설까지 인용해가며?
우끼긴 우낀데, 서글퍼서 우슬 수가 업서.
가굑까지 예사롭지 않치.
종까는 1만6500원에 10% 하륀하면 1만4850원.
고작! 150원 차이로 무료 배송 조껀(1만5000원)에서 삣나가.
이 췍을 온라인 서점에서 무료배송으로 사려면 다른 췍도 인질로 좌봐야 해.
난 한 권만으로도 행보카고 시픙데 왜 나는 햄보칼 수가 업서!
이 말도 안 되는 하륀까는 누구 만든 거야!
하!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허.
그래도 나눈 당시눌 차좌갈 것(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는 부커상을 받았다)이다.
만냑 구룩케 못하맨...
나눈...
읽눈 재미를 일케 되겠지.
여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솤.
나눈... 자유에 모미 아냐.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어렸을 때 한국에서 살다가 사춘기 무렵 아버지와 미국으로 이주, 미국으로 함께 오기로 했던 어머니와는 연락 두절, 그리고 피부는 파란색.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수자 of 소수자 of 소수자이다.
소설을 읽지 않아도 주인공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지독한 차별과 혐오에 시달려 왔을지 짐작할 수 있는 설정이다.
이 작품은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과 한국에서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을 교차해 시간순으로 보여주며,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반복돼 왔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녀석들은 어려서 철이 없다고 치자.
동네 어른들뿐만 아니라 보안관, 심지어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까지 차별과 혐오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 인류애가 바삭바삭 부서진다.
주인공을 아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거나 크게 다치며 곁에서 사라진다.
주위 상황은 온통 주인공이 제정신을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뿐이다.
주인공의 한국 이름이 영어로 '감옥'을 뜻하는 'Jail'과 발음이 비슷한 '재일'이라는 설정도 예사롭지 않다.
C8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싶다가도 문득, 인정하기 싫은데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자문하게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차별과 혐오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동참했던 경험이 없는가?
부끄럽지만 그렇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이 암울해 보이는 작품이 마지막까지 비극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어떻게든 존엄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의 태도 때문이다.
홀로 넓은 세상으로 나온 주인공은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한계를 확장하며 자기만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나는 더 이상 백인을 우러르지도, 흑인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인간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나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터와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 애국심과 규율로 무장한 벙커에 숨어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291페이지)
세상에는 파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이 태어나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하고, 미흡하나마 이들이 다른 인종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이들과 연대할 주인공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만만치 않겠지만 희망이 엿보인다.
메시지와 읽는 즐거움 모두를 갖춘 훌륭한 장편소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