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45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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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진영 장편소설 『미래의 자리』(창비)

독서도 중독되는 기분이 들어서 당분간 하지 않으려 했는데, 무심코 집어 들었다가 결국 다 읽었다.

이 작품은 갑작스러운 친구의 죽음이라는 마음의 상처를 공유하는 20대 끄트머리 여성 셋의 일상을 따라간다.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제목에 '미래'라는 단어가 있는데, 죽은 친구의 이름도 '미래'다.

'미래'가 세상에 없다는 슬픔을 느끼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남은 이들의 모습이 안쓰럽고 애틋했다.


욕망, 죄책감, 자의식, 좌절감, 그리고 사랑.

청춘 하면 떠오르는 다양한 단어가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스쳐 지나갔다.

작가는 여기에 세월호 침몰 사고, 이태원 압사 사고 등 등장인물들이 청소년기에 겪었을 집단 트라우마를 엮으며 기억으로 연결하는 따뜻한 연대의 힘을 엷게 보여준다.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 거라면서.


책을 덮은 뒤 들었던 감정은 어이없지만 '사랑스러움'이었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끼진 않을 것 같다.

작품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 반복 재생된 노래 한 곡이 있었다.



하비누아주 '청춘'


기억이 나지 않아

내 의지와 다르게

모든 게 멈춰 버린 것 같아

앞이 보이지 않고

땅은 내 머리를 향해 오네


이 목적 없는 청춘엔

냉기가 흐르지

도망치는 청춘은

눈물도 차가워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

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

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

달리던 커다랗고 짙은

나의 슬픔을


목적 없는 청춘엔

냉기가 흐르지

도망치는 청춘은

눈물도 차가워


큰 다리를 건너는 그림자를 봤어

그 언젠가 어둡고 황량한 길에서

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

달리던 커다랗고 거친

나의 슬픔을


기억해 줘


기억해 줘


이 적막을 지나면 어디든 닿을까

아무런 대답 없는 물음 속을

달리는 커다랗고 짙은

나의 슬픔을

미래의 자리
미래의 자리
서유미 소설집 『밤이 영원할 것처럼』(문학동네)

감정을 울렁이게 만드는 책이 있고, 감정을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에 가까웠다.

오래전 습작 시절에 읽은 작가의 장편에서 느껴졌던 톡톡 튀는 발랄함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작은 것을 다룰지라도 다각도로 들여다보는 깊은 시선이 있다.

그게 작가의 짬밥인가 보다.


이 소설집에는 일곱 개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들을 하나로 엮는 키워드는 '밤'이다.

그중 두 편은 동인지와 문예지로 먼저 읽은 구면이어서 반가웠고, 다섯 편은 새로 읽는 단편이어서 반가웠다.

소설집이라는 게 재미있다.

소설집에 실리는 단편은 저마다 작가가 다른 때에 쓴 서로 별 관련 없는 작품인데, 특정 키워드를 매개로 엮이면 마치 완성된 퍼즐 조각처럼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니 말이다.


밤은 고요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과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숨어서 내밀한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누군가에게는 지친 노동에서 겨우 벗어나는 짧은 휴식 시간이고(밤의 벤치), 누군가에게는 조금씩 무너지는 가족 관계를 지켜봐야 하는 괴로운 시간이다(그것으로 충분한 밤).


세상 사는 게 가끔 참 더럽고 치사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갑자기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인생 경로를 수정해야 하고(토요일 밤의 로건),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친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지나가는 사람).

정말 하기 싫어 미치겠는데, 오랜만에 전 남편에게 연락해 위자료를 내놓으라고 요구할 일도 생긴다(기다리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겪을 수 있는 더럽고 치사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졸음은 찾아오는데, 한숨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조금 나아지지 않던가.

파도로 뛰어들어 몸을 적시면 옷이 젖어 난감해질지라도 잠시나마 후련함을 느낄 수 있고(다른 미래), 치료를 받고 충분히 쉬며 여러 밤을 견디면 몸과 마음도 나아지듯이(밤이 영원할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소설집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밝음이 어둠을 밀어내듯이 늘 나쁘기만 한 삶은 없다고.

밤이 영원할 것처럼
밤이 영원할 것처럼
김탁환 장편소설 『참 좋았더라』(남해의봄날)

그림을 잘 모르는 나는 이중섭 하면 그의 비극적인 삶부터 떠올리게 된다.

여러 명작을 남겼으나 당대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좌절했고, 일본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하다가 말년에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무연고자로 요절한 비운의 천재 화가.

대표작인 '소' 시리즈를 제외하면 이중섭의 다른 작품은 그의 비극적인 삶에 가려진 감이 없지 않다.


이 작품은 바로 이 맹점을 찌른다.

삶이 비극으로 점철된 화가가 과연 여러 명작을 남길 수 있었을까?

작가가 이중섭의 생애에서 주목한 부분은 통영에서 보낸 반년이다.

이중섭은 그 짦았던 시절에 <달과 까마귀> <도원> <흰소> <황소> 등 대표작을 그렸고 통영 곳곳의 모습을 담은 풍경화도 여럿 남겼다.

그 시절이 이중섭이 창작에 집중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평화로운 시절이 아니었을까?


전후 문화예술인들의 이야기를 그린 EBS 드라마 「명동백작」의 무대를 통영으로 옮겨 소설로 읽는 기분을 느꼈다.

통영은 여행은 물론 준면 씨가 드라마 「슈룹」을 촬영 때도 동행해 여러 차례 들른 곳이어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더 쉬웠다.

작품 속에서 충렬사, 세병관, 동피랑, 강구항, 해저터널, 욕지도 등 익숙한 공간이 등장할 때마다 나도 50년대 통영의 어딘가를 함께 경험하는 듯했다.

더불어 활판 인쇄물을 닮은 폰트는 마치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매력은 사실과 허구를 재구성하는 사이에 이중섭이 남긴 여러 작품을 절묘하게 엮는다는 점이다.

이 작품의 독자는 <달과 까마귀>를 감상하면 전쟁과 분단 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사람을 되짚게 될 테고, <춤추는 가족>을 감상하면 나체로 춤을 추는 네 가족의 모습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눈을 붉히게 될 테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저 그림이구나 하고 넘겼던 이중섭의 작품이 생생하게 다가오고, 그 시절에 붓을 들었던 이중섭의 시간이 눈부시다.

이 작품은 장편소설임과 동시에 이중섭의 그림을 이해하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여기에 유강렬, 유치환, 김춘수 등 통영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당대 예술가들의 모습이 동북 방언과 동남 방언에 실려 생생하게 되살아나 현장감을 더한다.

통영이 '예술의 도시'라는 수식어를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예술인이 활동하며 지금까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 작품은 이중섭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다루지는 않는다.

부제인 '이중섭의 화양연화'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예술혼을 불태웠던 시절의 이중섭에 집중할 뿐이다.

그래서 더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작품으로 다뤄지지 않은 이중섭의 마지막을 알고 있으니까.

활짝 핀 벚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곧 진다는 걸 알기 때문 아니던가.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음악을 만들든 무언가를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남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자기 삶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는지, 지나갔는지, 아직 다가오지 않은 건 아닌지 되짚어보게 될 테니까.

부디 내 화양연화는 아직 지나가지 않았기를 빈다.

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조해진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문학동네)

5년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은 지금도 내게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소외된 곳과 그곳에 속한 사람들을 그저 작품 소재로 다루지 않는 사려 깊은 마음이 느껴졌고, 인간을 향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서 좋았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시선을 대한민국 바깥으로 넓힌다.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으로.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향하는 영국으로.


소설로 다루는 공간이 광범위해진 만큼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스케일도 커졌다.

같은 반 아이가 굶을까 봐 돈이 될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집에서 몰래 가져와 건네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시작이다.

그 마음이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오가며 끔찍한 현장을 기록해 전달하는 행동으로 이어지고, 그 행동으로 맺은 인연은 전장에서 목숨을 위협받는 이들의 생명을 구하며, 그렇게 구원을 받은 이들은 절망에 빠진 또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나비효과.

이들의 마음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연결돼 새로운 삶을 이어갈 힘을 주는 빛으로, 그리고 멜로디로 공명한다.


작품 속 등장인물 모두 국가, 사회, 가족 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버려진 채 절망한 경험이 있지만, 이 그 어떤 보답을 바라지 않고 선의를 보여주고 연대한다.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진심』 속 등장인물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국적과 문화를 초월하는 보편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동시에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평화로운 일상은 언제든지 깨질 수 있으며, 삶과 죽음의 차이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점도 경고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분쟁을 소설과 엮어서 설득력 있게.

작품을 읽다 보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억만금을 들여도 꺼진 생명을 되살릴 수는 없다.

그렇다면 사람 살리는 일보다 중한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 당연한 이치를 소설로 다시 한번 배웠다.

빛과 멜로디
빛과 멜로디
정유정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데이터로 만든 기억과 정신을 온라인 세계로 옮겨 육신 없이 영생하는 세상.

여러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 쓰인 매력적인 소재다.

나 역시 「시간을 되돌리면」이라는 단편소설로 다뤘던 소재이기도 하고.

이 작품은 이 같은 SF소재에 작가의 주특기인 스릴러를 엮은 하이브리드다.


솔직히 뻔하고 흔한 소재다.

뻔하고 흔하다는 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생전의 모든 기억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육신으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상 세계 '롤라'의 등장이 임박하고, '롤라' 행 티켓이 유심 형태로 무작위로 뿌려진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티켓을 찾으려는 자, 거래하려는 자, 빼앗으려는 자들이 물밑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며 아수라장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살아생전의 모든 기억과 정신을 가지고 영생하는 세상이 과연 천국일까?

글쎄, 지루하지 않을까?

그래서 작가는 여기에 변화구를 던진다.

가상 세계에서 그저 영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 보도록 말이다.

마치 시뮬레이션 게임 「대항해시대」처럼 한 캐릭터로 엔딩을 본 뒤 다른 캐릭터로 플레이하면서 엔딩을 보며 다채롭게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말이다.

영원한 삶에 다양한 서사를 더하는 구조, 과연 소설가다운 발상이다.


제목과 달리 영원한 천국은 없다는 게 작가의 생각으로 읽힌다.

'롤라' 같은 세상에서 산다고 해도, 인간은 끝까지 자기 욕망을 끌어안고 버티며 괴로워할 존재라고.

인간은 설계된 안락한 삶 속에서도 끝끝내 설계도 밖을 벗어나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존재라고.

그런 '야성'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니냐고 작가는 묻는다.

동시에 우리가 '야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작가의 생각에 동의한다.


마냥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다.

전작들과 비교하면 구조가 다소 복잡한 데다,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가도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다시 수십 페이지 전으로 돌아가는 일도 잦았다.

하지만 전작들이 그래왔듯이 이 작품 또한 두껍긴 해도 그 두꺼움을 잊어버릴 만큼 잘 읽히고, 결말이 미칠 듯이 궁금할 정도로 흥미롭다는 건 여전하다.


간만에 거장이 거장답게 쓴 장편소설을 만났다.

리스펙!!!

영원한 천국
영원한 천국
유은지 장편소설 『귀매』(문학동네)

읽으면서 영화 「파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파묘」의 소재는 일본 요괴인 '오니'이고, 이 작품의 소재 역시 요괴의 일종으로 우리에겐 낯선 '귀매'다.

또한 이 작품도 「파묘」처럼 무속 신앙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등을 다루기 때문에 기시감이 많이 들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출간된 원작의 개정판이니, 「파묘」가 이 작품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이 작품은 우연히(알고 보면 철저한 계획에 따라) 마을 제의 연구를 위해 부산 다대포를 찾았다가 초자연적인 사건에 얽힌 대학생들의 개고생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다대포에서 벌어진 비극과 누군가의 거대한 탐욕이 드러나고, 이에 따라 마을에 쌓인 원한이 넘쳐흘러 위험수위에 다다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영능력과 문화인류학이라는 전공지식(전통문화, 민속, 무속 등)을 살려 난관을 헤쳐 나간다.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공포스럽기보다 축축하고 음산하다.

더운 날 밤에 홀로 조용히 방에 앉아서 이 작품을 읽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작품 속 설정이 허구가 아니라 실제 전통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마냥 미신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파묘」 이전에도 이미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오컬트 호러물이 있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미가 있겠다.

재미있게 읽었지만, 꽤 큰 기대를 하고 읽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없진 않다는 말은 보태야겠다.

「파묘」 이전에 이 작품이 있었지만, 이 작품 이전에 이미 『퇴마록』이 있었으니 말이다.

이 작품을 덮으며 『퇴마록』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인지 새삼 느꼈다.

한국 오컬트의 시조새가 『퇴마록』인데, 이를 능가하는 작품이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귀매
귀매
정민 장편소설 『아바나 리브레』(리브레)

일단 배경과 설정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한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나라였던(참고로 올해 2월에 수교했다) 쿠바다.

북한과 오랜 세월 우호 관계를 맺어왔고, 외교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는 사회주의 국가. 

그곳에 북한 최고 존엄의 불알친구가 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국정원 요원이 최고 존엄의 불알 친구을 대상으로 한 비밀공작을 진행하겠다는 핑계로 쿠바로 건너가 놀고먹으려고 한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작전명은 칵테일 이름과 비슷한 '아바나 리브레'.

끌리지 않는가?


한국 소설의 배경이 대부분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그냥 외국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대단히 낯선 쿠바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맡아보지도 못한 시가 향기와 아바나의 열기가 뒤섞여 느껴진다.

쿠바 현지 문화와 생활상 묘사가 정말 실감 난다.

그리고 대단히 관능적이다.

구체적으로 야한 장면을 묘사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국정원 요원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첩보물 성격을 가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다.

하지만 주인공이 꽤 날티가 나는 캐릭터여서 이야기가 결코 무겁게 흘러가진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다.

오는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요원이 주인공인데 이야기가 심각하게 흘러갈 리가 있나. 

근래에 읽은 첩보물로 김경욱 작가의 장편소설 『나라가 당신 것이니』가 있는데, 미안하지만 그 작품보다 훨씬 재미있고 디테일도 살아있다.

분량이 상당한 장편소설인데, 그 분량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독성이 훌륭하다.

반전도 유쾌한데, 끝까지 그 반전을 눈치채지 못해서 책을 덮을 때 더 유쾌했다.

아바나 리브레
아바나 리브레
박솔뫼 산문집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위즈덤하우스)

작가가 사랑하는 여러 국내외 여러 작가와 작품에 관해 쓴 독서 산문집이다.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다소 길지만 장바구니에 집어넣도록 강력하게 유혹하는 제목이다.


어떤 책이든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산문집의 주제는 작가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여야 한다.

다른 책은 몰라도 산문집은 그런 주제가 아니면 절대 편안하고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전화』를 시작으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료 등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준 다양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놓는다.


여기서 방점은 '즐겁게'에 찍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작가가 이 산문집에 인용한 작품을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어떤 책은 어떻게 읽는 게 좋은지 알려주는 독서 가이드북이기도 하다.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참고할 부분이 많은 산문집이다.


이 산문집이 내가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보다 훨씬 잘 읽히고 만족스러웠다.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
최수진 연작소설 『점거당한 집』(사계절)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식만 보면 최근에 읽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소설과 미술의 경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도 없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세 편은 분명히 허구이지만 마냥 허구라고 볼 수가 없다.

십수 년 뒤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원전 사고, 사고 이후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여기에 절묘하게 엮이는 예술 작품과 작가의 삶.

익숙한 서사 구조를 기대하고 읽으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현장 기록(물론 허구다)을 나열하는 형태로 전개되다가, 인터뷰(역시 허구다)가 튀어나오는데,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과 실존하는 예술 작품을 바탕으로 소설에서 펼쳐지는 근미래가 낯설지 않다.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보다는 특유의 분위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아 돌고 있다.

무엇을 읽었는지 선명하게 기억에 남진 않는데, 그 특유의 분위기가 압도한다.

현대음악 같은 전위예술을 소설로 경험했다.


호불호가 대단히 갈릴 작품이다.

솔직히 내 입장은 불호에 가깝다.

나는 서사가 소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독자니까.

하지만 최근에 읽은 모든 한국 소설 중에서 이보다 확실하게 개성이 느껴지는 소설은 없었다.

주목해야 할 신인이 나왔다.

그래. 이런 소설도 있어야지.

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이 작품은 김애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무려 13년 만에 내놓는 새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10대 청소년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성장소설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등장인물들의 선생님이 제안한 게임으로, 자신에 관한 다섯 가지 정보를 말하면서 거짓말 하나를 끼워 넣는 게 규칙이다.

등장인물들은 거짓말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이해하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글이라는 게 그렇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과 글에는 발화하거나 쓰는 사람이 묻어난다.

감추려 애쓰면 드러나고, 드러내려고 애를 쓰면 감춰진다.

서로의 거짓말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그리는 작가의 필치가 간결하면서도 섬세하다.


즐겁게 읽었다.

가독성도 훌륭하고 작가 특유의 문장이 주는 여운도 길다.

하지만 만족스러웠느냐는 물음에는 그렇다고 답하지 못하겠다.

전작 『두근두근 내 인생』도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니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화제를 모았겠지.

다만 이른 나이에 화려하게 등단해 받을 수 있는 모든 문학상을 휩쓴 '젊은 거장'의 첫 장편소설이라기엔 가볍다는 인상을 지우긴 어려웠다.


13년이라는 세월에서 작가의 부담감이 느껴졌다.

제목에서 긴장감이 느껴져, 작가가 새 장편소설로 그 인상을 뒤집어주길 바랐는데, 아쉽게도 뒤집진 못했다.

담긴 내용은 많은데 뭔가 허전하다.

단편이 훨씬 매력적인 작가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이중 하나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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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0일, 극단 '족연'이 돌아옵니다~
[그믐밤] 40. 달밤에 낭독, 체호프 1탄 <갈매기>[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모두를 위한 그림책 🎨
[도서 증정] 《조선 궁궐 일본 요괴》읽고 책 속에 수록되지 않은 그림 함께 감상하기![그믐밤] 27. 2025년은 그림책의 해, 그림책 추천하고 이야기해요. [책증정] 언제나 나를 위로해주는 그림책 세계. 에세이 『다정하게, 토닥토닥』 편집자와함께"이동" 이사 와타나베 / 글없는 그림책, 혼자읽기 시작합니다. (참여가능)
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사랑은 증명할 수 없지만, 증명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29. 구의 증명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읽기[부국모독서모임] 최진영의<구의 증명>, 폴 블룸의<최선의 고통>을 읽고 책대화 해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축하합니다!
[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이달의 소설] 1월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어요(신간읽기클럽 )1.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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