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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부지런히 읽고 흔적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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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 소설집 『여기서 울지 마세요』(문학동네)

아 기몽 자까의 신작이 요기잉네?

횬재 Hankuk 무낙계에서 최고의 '구라쟁이'는 기몽! 이라는 데 쏜모가지(누구의 것인지 주어는 없다)를 걸지.

요태까지 기몽 자까의 작품을 미앵해왔다.

그럴수록 자까는 도망가뤼요는 굿또 알고 있치.


몬가를 일낀 일겄는데, 그게 Korean인지 quṙān인지 감이 자퓌질 않아.

온통 구라야.

심쥐어 각주에도 구라를 치네?

본인 소설까지 인용해가며?

우끼긴 우낀데, 서글퍼서 우슬 수가 업서.


가굑까지 예사롭지 않치.

종까는 1만6500원에 10% 하륀하면 1만4850원.

고작! 150원 차이로 무료 배송 조껀(1만5000원)에서 삣나가.

이 췍을 온라인 서점에서 무료배송으로 사려면 다른 췍도 인질로 좌봐야 해.

난 한 권만으로도 행보카고 시픙데 왜 나는 햄보칼 수가 업서!

이 말도 안 되는 하륀까는 누구 만든 거야!

하! 젠장 되는 일이 하나도 없허.


그래도 나눈 당시눌 차좌갈 것(소설집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는 부커상을 받았다)이다.

만냑 구룩케 못하맨...

나눈...

읽눈 재미를 일케 되겠지.

여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솤.

나눈... 자유에 모미 아냐.

여기서 울지 마세요
여기서 울지 마세요
하승민 장편소설 『멜라닌』(한겨레출판)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어렸을 때 한국에서 살다가 사춘기 무렵 아버지와 미국으로 이주, 미국으로 함께 오기로 했던 어머니와는 연락 두절, 그리고 피부는 파란색.

이 작품 속 주인공은 설정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수자 of 소수자 of 소수자이다.

소설을 읽지 않아도 주인공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지독한 차별과 혐오에 시달려 왔을지 짐작할 수 있는 설정이다.


이 작품은 21세기 들어 미국에서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과 한국에서 벌어졌던 굵직한 사건을 교차해 시간순으로 보여주며,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반복돼 왔는지 처절하게 보여준다.

읽는 내내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녀석들은 어려서 철이 없다고 치자.

동네 어른들뿐만 아니라 보안관, 심지어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까지 차별과 혐오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면 인류애가 바삭바삭 부서진다.

주인공을 아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은 모두 비참하게 죽거나 크게 다치며 곁에서 사라진다.

주위 상황은 온통 주인공이 제정신을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들뿐이다.

주인공의 한국 이름이 영어로 '감옥'을 뜻하는 'Jail'과 발음이 비슷한 '재일'이라는 설정도 예사롭지 않다.


C8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싶다가도 문득, 인정하기 싫은데 익숙한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자문하게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차별과 혐오에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동참했던 경험이 없는가?

부끄럽지만 그렇다는 말은 못 하겠다.

그것이 이 작품의 힘이다.


이 암울해 보이는 작품이 마지막까지 비극으로 흐르지 않는 이유는, 현실에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어떻게든 존엄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주인공의 태도 때문이다.

홀로 넓은 세상으로 나온 주인공은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한계를 확장하며 자기만의 깨달음에 도달한다.


"나는 더 이상 백인을 우러르지도, 흑인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선망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았다. 인간을 무채색으로 만들고 나면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일터와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 애국심과 규율로 무장한 벙커에 숨어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였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291페이지)


세상에는 파란 피부를 가진 사람이 더 많이 태어나 무시할 수 없는 규모로 성장하고, 미흡하나마 이들이 다른 인종과 특별히 다른 점이 없다는 사실도 밝혀지기 시작한다.

앞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이들과 연대할 주인공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까.

만만치 않겠지만 희망이 엿보인다.

메시지와 읽는 즐거움 모두를 갖춘 훌륭한 장편소설이었다.

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필 장편소설 『어제 만나자』(서랍의날씨)

장편소설이 장편답지 않게 점점 짧아지는 세상에서, 어지간한 장편소설 두 권 이상 분량의 작품이라니.

그런데 경장편소설보다 빨리 읽히고,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간다.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께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인공은 50대 퇴물 건달로 마약 범죄에 얽혀 동생을 잃은 채 산채로 관에 갇혀 죽음만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 있다.

어이없게도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뜨니 전날 아침에 깨어나고, 다시 잠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이틀 전 아침이다.

한번 잠이 들 때마다 주인공은 하루씩 과거로 역행한다.

미래를 아는 주인공은 과거로 돌아가 동생을 죽인 원수와 자신에게 엿을 먹인 놈들에게 복수를 시도하려 하나 문제가 있다.

아직 동생을 죽이지 않은 과거의 원수를 미리 죽이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어떤 명분을 만들어야 원수를 죽일 수 있을지를 두고 주인공은 나름 치열한 두뇌 게임을 벌인다.


설정이 이러하니 판타지나 타임슬립물이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애매하고 서글프다(왜 그런지는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 설정에 관한 설명은 스포일러여서 생략하겠는데, 무척 신선하고 동시에 무척 허무하다.

이런 복수가 과연 무슨 의미일까.

과연 복수이기나 한 걸까.

 

읽는 내내 땀 냄새와 피 냄새가 진동하는 피카레스크였다.

정을 줄 만한 등장인물이 하나도 없다.

폭력이나 마약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저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비정한 모습만 보여줄 뿐이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샘 패킨파의 「와일드 번치」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더럽고 찝찝한데 흥미롭다.

어제 만나자
어제 만나자
박산호 산문집 『긍정의 말들』(유유)

17년 전 봄, 고향에서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에 있는 고시원으로 돌아온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소였다.

20대 전부를 함께 했던 연인에게서 이별 통보를 받은 날에도 나는 반지하 원룸을 청소했다.


이 산문집에 담긴 문장 "어떻게 '여자들'은 항상 더러워진 것을 바꿀 힘이 있을까(마이아 에켈뢰브 『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와 이에 얽힌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방바닥을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으며 괴로움을 삭이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나는 괴로운 일이 있으면 청소를 하곤 했다.

생활 공간이 어지러워지면 마음도 어지러워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청소는 내가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해준 일종의 의식이었다.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긍정적인 감정이 여러모로 사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산문집은 고전, 애니메이션, 문학, 산문집, 드라마 등에서 발췌한 100가지 문장을 재료로 삼아 작가가 삶을 통해 깨달은 긍정적 사고의 힘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때로는 자학하고, 때로는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긍정적 사고가 작가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줬는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창작 활동을 하는 독자라면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을 터다.


편집자가 굳이 출판사로 작가를 불러 망신에 가까운 피드백을 전할 때 작가는 "인생에서 성공하는 한 가지 비결은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힘내서 싸우는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새기며 와신상담하고, 언제나 상상 그 이하를 보여주는 인세 앞에서 "체념이란 하루하루 자살하는 것과 같다"는 오노레 드 발자크의 말을 새기며 전의를 다진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에 좌절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다음 뒤로 한 발 물러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차차차를 추는 것"(로버트 브롤트)이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쓰겠다고 다짐한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려 스트레스를 받기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게 건강에 좋다"(앨라니스 모리셋)는 말도 쉽게 넘기기 어렵다


자기 확신이 부족할 땐 "긍정은 길을 찾는다"(UCLA 모토)와 "괴물은 실재한다. 유령 또한 실재한다. 그것들은 우리 안에 살고 있고 때로 우리를 이긴다"(스티븐 킹) 같은 문장과 작가의 경험이 꽤 힘이 퇼 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위안과 함께.


가장 마음속에 깊이 들어왔던 문장은 "성공의 전략은 간단하다. 최대한 집적거려라"(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였다.

공저를 빼고 내 이름으로 낸 단행본이 10권인데, 대놓고 베스트셀러라고 말할 작품이 솔직히 하나도 없다.

초쇄나 소화하면 감사할 일이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스러운 결과가 나오면 의기소침해지는데, 이 산문집을 읽고 할 수 있는 데까지 집적거려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졌다.

더불어 진심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응원해 그 복을 나눠 받아야겠다는 생각도 함께.

긍정의 말들
긍정의 말들
정은경·이동은·오세연 『여름을 달려 너에게 점프!』(안전가옥)



영화계 출신 소설가들이 많아졌다.

장편소설 『고래』를 쓴 천명관 작가,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 『불편한 편의점』을 쓴 김호연 작가, 『급류』를 쓴 정대건 작가, 『미러볼 아래서』를 쓴 강진아 작가 등 당장 떠오르는 이름만 헤아려 봐도 손가락이 모자란다.

서사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영상이 눈앞에 바로 떠오른다는 점에서 영화계 출신 소설가들이 쓴 작품을 좋아한다.


이 앤솔로지는 참여 작가 모두가 영화감독 출신이라는 점에서 독특하다.

영화감독 출신 작가의 작품만을 모은 앤솔로지는 아마도 이 책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정은경 감독이 쓴 「두근두근 꾸륵꾸륵」은 90년대를 배경으로 10대 고등학생 소녀 탁구 선수들을 등장인물로로 내세워 그 시절 사랑의 복잡미묘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다. 88올림픽, 드라마 「질투」, 가수 강수지, 탁구선수 현정화 등 그 시절의 아이콘을 매개로 제대로 추억 여행을 했다. '급똥'이 꽤 중요한 소재인데 전혀 더럽지 않다. 몹시 귀엽다.


이동은 감독이 쓴 「여름을 찾아서」는 가상현실 체험이라는 소재를 통해 주인공의 불완전한 기억을 복원하고 상처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그린 SF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1세기 소년」 후반부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체험을 연상케 하는 연출이었는데, 그보다 훨씬 아름답고 애절한 묘사가 돋보였다. 


오세연 감독이 쓴 「매실과 짝피구」는 첫사랑의 열병을 앓는 10대의 마음을 간지럽게 표현한 로맨스다. 주인공의 일기장을 몰래 엿보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구성, 체육 선생님과 짝꿍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영화감독들이 쓴 소설인 만큼 작품 하나하나의 질감이 기존 앤솔로지와 꽤 다르다.

마치 하이틴 로맨스 영화 세 편을 옴니버스로 감상한 기분이 들었다(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썼음이 확실하다).

시원한 색감의 표지만큼 상큼하고 동시에 애틋하다.

기분 좋게 책을 덮었다.

간질간질한 기분을 오랜만에 느껴봤다.

여름을 달려 너에게 점프!
여름을 달려 너에게 점프!
김설아 외 4인 『환상의 댄스 배틀』(책담)

춤에는 젬병이다.

내 기억 속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췄던 춤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에 뭣도 모르고 운동권 선배들 손에 이끌려 꽃다지의 노래 '바위처럼'에 맞춰 따라 했던 율동이다.

율동을 따라 할 때 무척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 오락실에서 DDR이나 펌프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쳐다보지도 않았음은 물론이다.

최근에 '스우파'가 화제를 모았을 때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래도 궁금하긴 했다.

도대체 무슨 매력 때문에 춤에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지 말이다.


이 앤솔로지는 춤 좀 춰봤다는 작가 다섯 명이 쓴 단편소설을 모았다.

다섯 단편 모두 현재의 고민과 결핍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춤을 내세운다는 점은 같지만, 저마다 다른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쓴 작품인 만큼 이야기가 다채롭다.


피아노 연주자를 꿈꾸다가 기연을 만나 댄서를 꿈꾸며 행복을 찾기도 하고(춤추는 동전), 쌍둥이 동생 대신 꿈꾸던 무대에 올라 아슬아슬한 상황을 겪기도 한다(꿈을 꾸며).

발레리나로서 가지지 못한 장점에 좌절하는 대신 자신만의 장점을 살려 한 발 나아가기도 하고(비 플러스), 누군가에겐 평범함에서 벗어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걸 파이터).

그중에서도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어린 시절과 딸이 탭 댄스를 매개로 조우하는 「유성우가 내리는 날」이 인상적이었다. 유성우라는 배경 아래에서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연출이 환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풋풋한 성장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어서 상큼했다.

작가들이 왜 춤을 추고 왜 소설을 썼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환상의 댄스 배틀
환상의 댄스 배틀
박재영 산문집 『K를 팝니다』(난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쓴 『고려도경』은 당대 고려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지만, 왕실 계보 서술이 엉망이고 고구려와 고려의 역사가 뒤섞여있는 등 오류가 적지 않다.

외국인이 외국인의 시각으로 쓴 책의 한계다.

오류 없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전달할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직접 외국의 언어로 우리를 설명하는 방법일 테다.


몰랐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출판된 한국 여행 관련 서적 중에 한국인이 쓴 책이 지금까지 단 한 권도 없었다는 사실을.

이 산문집은 '네이티브 코리안'이 외국인 독자를 대상으로 두고 영어로 쓴 첫 번째 한국 여행 서적이다.


어처구니없긴 한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한국 작가 중에 유창한 영어 문장으로 책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한국의 출판사 중에서 영어로 쓰인 책을 출간할 곳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저자는 여러 책을 써서 출간한 작가임과 동시에, 여러 책을 번역한 경력을 가진 번역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외국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한국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일은 다르지 않은가.

놀랍게도 이 책에는 역자의 이름이 따로 없다.

작가는 번역가를 찾는 대신 딥엘(DeepL)과 챗GPT 등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는 새로운 길을 택했다.

기획부터 집필, 번역 과정까지 모두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 책은 꽤 두꺼운 편이어서(647페이지) 집어 들면 무기로 쓰기에 좋을 정도로 묵직한데, 막상 펼치면 읽기에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이 책은 한국어로 서술한 부분과 같은 내용을 영어로 서술한 부분을 20여 챕터에 걸쳐 번갈아 배치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한국어 부분만 읽으면 분량이 딱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다, 가독성도 매우 훌륭하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방대하고 자세한 여러 음식 설명이다.

작가가 도입부에 삼겹살을 가장 먼처 추천하는 이유와 한국인이 소주를 많이 마시는 이유에 관한 챕터를 배치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성격을 알만 하다.

맛집 설명도 구체적이어서 필동면옥, 우래옥, 나리의 집, 연타발, 화해당 등의 상호가 대놓고 나온다.

홍어, 낙지, 깻잎, 골뱅이 등 외국인에게 낯선 음식에 관한 서술 분량도 상당하다.

작가는 음식을 바탕으로 한국의 문화와 한국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치맥과 한국의 야구 응원 문화를 연결해 설명하다가, IMF 외환위기와 한일 월드컵을 엮는 식이다.

물론 한국 최고의 야구 명문 구단은 두산 베어스라고 대놓고 팬심을 드러내는 부분은 그냥 '스킵'하면 된다.


아쉬운 부분이 없진 않다.

서울 바깥 지역에 관한 서술이 많이 부족하다.

심지어 몇몇 광역자치단체는 아예 서술조차 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음식 서술이 많다.

여행보다는 음식 가이드 같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단 하나만 꼽자면 재미다.

이 책은 대단히 재미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만 한 내용인데도 이를 재미있게 서술해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작가의 유머 감각이 탁월하다.

게다가 한국인이 읽어도 재미있고 새로운 내용이 많다.

한국인이 줄을 설 때 가깝게 붙는 이유를 좁은 국토와 연결 지어 설명하는 부분, 교도소에서 출소한 사람에게 두부를 먹이는 이유에 관한 부분은 읽으며 무릎을 치게 만든 탁월한 분석이었다.

한국인 독자도 외국인 독자도 모두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강력 추천한다.

K를 팝니다 - 다 아는데 왜 재밌을까 싶은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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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장편소설 『폐월; 초선전』(은행나무)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 중 분량에 비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캐릭터는 '초선' 아닐까.

초선이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는 판짜기가 없었다면, 『삼국지연의』는 꽤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테다.

초선은 남성 호르몬으로 가득 찬 『삼국지연의』의 초반을 주도하는 여성 캐릭터이지만, 이후 행적은 캐릭터의 존재감에 맞지 않게 묘연하다.


박서련 작가는 한국 문학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다.

등단한 지 10년이 안 됐는데, 그사이에 내놓은 단행본 수가 10개가 넘는다.

무시무시한 생산력이다.

그만큼 쓸 이야기도 많고, 관심사도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작가가 메가 임팩트만 남기고 빠르게 『삼국지연의』에서 퇴장한 초선에 주목한 건 우연이 아닐 테다. 


『삼국지연의』에서 초선은 사도 왕윤의 명을 받아 연환계를 펼쳤다고 나온다.

초선이 직접 동탁과 여포 사이를 이간질하긴 해도, 어디까지나 이 계책은 왕윤의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초선이라는 캐릭터를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기 위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캐릭터로 새롭게 연출한다.

사극인데도 한반도에 존재했던 왕조가 아닌 중국의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다뤘다는 점도 매우 신선하다.

이런 시도는 학창 시절에 즐겨 읽었던 무협지 이후로 처음 본다.


이 작품 속 초선은 냉정해야 할 땐 망설이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손에 넣기 어려운 높은 지위를 욕망하고, 성적인 욕망(그게 여자든 남자든)도 숨기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생존 그 자체에 특화된 캐릭터다.

주변인 모두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사라져도 초선만큼은 끝까지 살아남아 뒷이야기를 전한다.


초선과 더불어 '중국 4대 미녀'로 불리는 서시, 왕소군, 양귀비의 삶은 모두 비극으로 끝났다.

그런데 초선은 나머지 셋과 달리 정사에는 등장하지 않는 가공인물이다.

마침 『삼국지연의』에는 연환계 이후 초선의 삶은 나오지 않으니 작가가 상상력을 더할 여지가 많았을 테다.

작품 마지막에 뒷이야기를 전하는 초선은 예상치 못한 모습이어서 파격적이었다.

그래서 대단히 인간적이었다.

스타일리시한 장편소설이다.


폐월; 초선전
폐월; 초선전
전건우 장편소설 『어두운 물』(앤드)

평소 유튜브에서 온갖 괴담을 택시기사가 라디오 청취하듯이 듣는 편이서 공포, 무속, 오컬트 요소에 넓고 얕게 익숙한 편이다.

지금까지 들은 괴담을 종합해 보면 가장 무서운 귀신은 셋으로 압축된다.

바로 물귀신, 웃는 귀신, 무당 귀신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귀신이 몽땅 합쳐진 귀신이 등장하면 얼마나 무서울까.

이 작품 속 귀신이 그런 귀신이다.

무당 귀신이며 물귀신이고, 자주 소름 끼치게 웃는다.


오랜만에 웹툰, 드라마, 영화가 아닌 소설로 공포물을 접했다.

뜬금없는 설정도 있었고, 무리한 설정도 있었고, 갑작스러운 설정도 있었고, 이건 아닌데 싶은 설정도 있었다.

하지만 긴장감과 재미는 확실했다.

영화 <파묘>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여름밤에 그거면 충분한 것 아닌가?

일부러 자정이 넘은 고요한 밤에 이 작품을 읽었는데. 정말 등골이 서늘하고 오싹했다. 

시각 효과가 아닌 글만 읽고 상상했을 때 느껴지는 순수한 공포를 간만에 경험했다.

소설이 묘사하는 여러 기괴한 상황을 상상하면서 읽으니 어우...


납량특집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싶은데 마땅한 게 없다면 이 작품을 읽어 보자.

한동안 물가에 가까이 가기 싫어질 것이다.

비가 오는 날도 싫어질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면 더 싫어질 것이다.

어두운 물
어두운 물
김화진 장편소설 『동경』(문학동네)

오래전에 여자 후배와 술을 마시다가 낯설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 친구인 여자 세 명이 모였을 때 생기는 미묘한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다.

셋이 자주 함께 모여도, 그중 둘이 따로 만나는 경우가 많아서 나머지 하나가 소외감을 느끼는 일이 많다더라.

셋이 만나는 자리인데도 둘이 같이 만나 함께 오고, 둘만 아는 이야기를 웃으며 나누고, 식당에서도 둘이 나란히 앉아 나머지 하나와 마주 보고.

나머지 하나는 따를 당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내색하진 못하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면 서먹서먹해져 멀어지는 일이 많다더라.

나는 주변 사람에 관해 별로 관심이 없고(소설가 자격이 없다), 관계에도 크게 연연하지 않아서 가볍게 흘려들었는데, 그런 미묘한 관계가 여자들 사이에선 대단히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니 신기했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 오래전에 여자 후배가 해줬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구석이 많은 서른 언저리의 여성 셋이 꼭짓점을 이루는 삼각형이 1년 동안 이등변삼각형, 직각삼각형으로 변형되다가 마침내 정삼각형 모양을 찾아가는 과정을 다룬다.

사랑하고, 서운해하고, 멀어지고, 가까워지고, 동경하고...셋의 관계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심리 묘사가 집요할 정도로 섬세하다.

여자 후배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던 여성 독자라면 이 작품을 읽고 "맞아! 맞아!" "그래! 그래!"를 수시로 외치지 않을까 싶다. 

작가가 첫 소설집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유 역시 그런 여성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건드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뜬금없긴 한데, 이 작품을 읽고 최근에 읽은 김이설 작가의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떠올렸다.

『동경』의 주인공이 마흔아홉 살까지 나이를 먹으면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속 세 주인공과 비슷한 사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란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쉽게 읽히는 작품은 아니었다.

세심한 묘사가 길어서 자주 읽는 흐름이 끊겨 전에 무엇을 읽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했다.

비유하자면 숲을 봐야 하는데 특정 나무의 껍질까지 하나하나 살피다 보니 숲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중편 정도로 압축했다면 훨씬 나았을 장편이다.

동경
동경
[책나눔 이벤트] 지금 모집중!
[책증정]《내 삶에 찾아온 역사 속 한 문장 필사노트 독립운동가편》저자, 편집자와 合讀하기[📚수북플러스] 4. 나를 구독해줘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도서증정-고전읽기] 셔우드 앤더슨의 『나는 바보다』
💡독서모임에 관심있는 출판사들을 위한 안내
출판사 협업 문의 관련 안내
그믐 새내기를 위한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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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와 나 사이 중심잡기 [김영사] 북클럽
[김영사/책증정] 일과 나 사이에 바로 서는 법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함께 읽기[김영사/책증정] 천만 직장인의 멘토 신수정의 <커넥팅> 함께 읽어요![김영사/책증정] 구글은 어떻게 월드 클래스 조직을 만들었는가? <모닥불 타임> [김영사/책증정]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편집자와 함께 읽기
같이 연극 보고 원작 읽고
[그믐연뮤클럽] 7. 시대와 성별을 뛰어넘은 진정한 성장,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그믐연뮤클럽] 6. 우리 소중한 기억 속에 간직할 아름다운 청년, "태일"[그믐연뮤클럽] 5. 의심, 균열, 파국 x 추리소설과 연극무대가 함께 하는 "붉은 낙엽"[그믐연뮤클럽] 4. 다시 찾아온 도박사의 세계 x 진실한 사랑과 구원의 "백치"
같이 그믐달 찾아요 🌜
자 다시 그믐달 사냥을 시작해 볼까? <오징어 게임> x <그믐달 사냥 게임> o <전생에 그믐달>
8월에도 셰익스피어의 작품 이어 낭독합니다
[그믐밤] 38.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4탄 <오셀로>[그믐밤] 37.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3탄 <리어 왕> [그믐밤] 36.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2탄 <맥베스> [그믐밤] 35. 달밤에 낭독, 셰익스피어 1탄 <햄릿>
🐷 꿀돼지님의 꿀같은 독서 기록들
은모든 장편소설 『애주가의 결심』(은행나무)최현숙 『할매의 탄생』(글항아리)조영주 소설·윤남윤 그림 『조선 궁궐 일본 요괴』(공출판사)서동원 장편소설 『눈물토끼가 떨어진 날』(한끼)
이디스 워튼의 책들, 지금 읽고 있습니다.
[그믐클래식 2025] 8월, 순수의 시대[휴머니스트 세계문학전집 읽기] 3. 석류의 씨
공 출판사의 '어떤' 시리즈
[도서 증정] 응원이 필요한 분들 모이세요. <어떤, 응원> 함께 읽어요.[꿈꾸는 책들의 특급변소] 차무진 작가와 <어떤, 클래식>을 읽어 보아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가요?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5. <일인 분의 안락함>기후위기 얘기 좀 해요![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11. <화석 자본>무룡,한여름의 책읽기ㅡ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8월 7일(목) 오후 7시 30분 / 저자 배예람X클레이븐 동시 참여 라이브 채팅⭐
[텍스티] 텍스티의 히든카드🔥 『당신의 잘린, 손』같이 읽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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