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산독서님의 블로그
글로 남기는 나만의 기록장1993년 가을 전역하고 복학을 준비할 때쯤이었다.
시골에서 시내인 대구 '동성로'로 가끔 놀러가면 꼭 들리는 곳이 있는데, 지금은 없어진 "제일서적"이다.
그 당시 삼덕파출소 옆에 있었던 제일서적은 약속장소로 유명했다.
휴대폰도 없고, 삐삐도 없던 시절 약속시간을 잡으면 무작정 약속시간까지 제일서적에서 죽치고 있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시계도 없는 나로서는 제일서적의 시계만이 유일한 믿을만한 친구였다. 약속시간이 30분 정도 지나면 안 오는구나하고 돌아서면 되는게 그 당시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왜 안나온거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고, 다음 약속을 잡고 만나면 되는 것이고,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이야기 할꺼리가 별로 없는 시대였다. 그냥 만남이 목적이지, 미주알 고주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참 아나로그적이다. 그 당시 누구와의 약속도 아닌데 그냥 심심해서 시내로 갔다가 우연히 제일서적의 서가를 살피는데 소설로 분류된 서가에서 “죽음의 한 연구” 라는 책이 눈에 띄였다. 1993년 가을 전역한 나는 도올 김용옥의 책에 심취해 있었다. 전역하고 누나가 읽고 있든 책 “도올세설”을 읽고 팍 가슴으로 뭔가 꽂혔다. 그래서 서점에 가면 도올 책을 많이 펼쳐 보았다. 그때도 도올 책을 몇 권 골랐다가, 우연히 소설 서가로 가는데 “ 이게 소설이라구?” 같은 반응으로 이 책을 골랐던 기억이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40일간 사막에서 낚시를 하는 돌중의 이야기다. 시간적 공간적으로는 구체적인 것은 알수 없었다.
그리고 곧장 집으로 와서 책을 펼쳐 읽었다. 1990년 대학 입학해서 나름 소설책을 읽었지만 이런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내가 읽은 소설이래봤자, 김승옥의 서울 1964,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젊은날의 초상, 금시조, 칼레타파칼라, 필론의 돼지, 그대다시는고향에가지 않으리 등 여러단편들, 이외수의 화려한 단편들, 이병주의 지리산, 이승우의 소설 들이었으니까..
이건 완전히 새로운데!오히려 그동안 읽었던 이문열, 이외수의 소설이 아니라 도올 김용옥의 글과 가까운 것이었다. 뭔가 소설같지 않고, 형이상학같은 그런 이야기였다. 나중에 읽은 최인훈의 광장이 차라리 이 '죽음의 한 연구'와 가까운 소설류였다. 좌우지간에 복학하기 전에 1번은 읽었지만, 다 아는것처럼 재미있지도, 감동적이지도, 교훈적이지도, 지적이지도 않은 장황한 소리같았다.
정말 문자가 소리같이 들렸다.
특히 김현이 그렇게 감동했다는 소설의 첫문장 정말 노래같았다. 아니 이제 생각하니 소설이 아니라 시처럼 들렸다. 그것은 박상륭 소설의 특징인 운율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나중에 도올 김용옥은 박상륭을 일컬어 끊어진 칠조가 “그”다라고 말하며 박상륭은 칠조가 되려한다고 주절되었던게 생각난다. 그렇게 1993년은 나에게 의미있는 해였다. 도올 김용옥을 알게되었고, 박상륭을 알았으니 말이다. 1994년 복학하고 학업에 몰두하려고 했으나, 이미 군생활 3년간의 나태함과 어떤 절실함이 없었던 나로서는 수업에 흥미를 잃고 만다. 개강한지 한 달도 안되어 말이다. 사실 20살 대학초년생부터 잘못 선택한 학과에 대한 실망으로 쫓기듯 군입대를 감행하였고, 군생활을 통해 뭔가 삶의 의지를 찾으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너무나 자연스러운 군생활로 인해, 즐거운 군생활로 인해 1991년에서 1993년은 내 인생의 독이 되어버린 시절이었다.
그 당시 24살에 불과했지만 복학생 아저씨라는 선입관에 늙다리 노인처럼 생활했던 기억이 있다. 수업은 항상 제일 뒷자리였고, 복학생이라 도서관에 있었지만 결코 공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내 책가방에는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와 이걸 필사할 대학노트 한권이 있었고, 읽고 필사하고 읽고..장작 6개월동안 필사한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정말 느꼈다. 이 소설 쉽지는 않다라는 것을 말이다. 1993년으로 다시 돌아가면 우리나라 불교계의 큰 스님인 성철스님이 입적한 해였다. 그 당시 성철 스님의 큰 가르침이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요'라는 법어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성철스님의 그 말이 뭐야!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말이 아닌가 했지만. 나중에 성철스님이 행한 수련과 공부, 면벽수행등을 알고는 정말 금과옥조같은 말이고 가슴에 뭉클 와 닿은 기억이 있다.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똑같이 필사하고 나니, 아 이건 사람이 쓴 소설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났다. 물론 쉽게 읽힌다고 쉬운 소설이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이문열의 소설은 술술 읽혀지지만 결코 낮은 소설이 아닌 굉장히 주제도 있고, 소설구조가 탄탄하고, 의미가 있는 소설이다. 최근에 다시 읽은 '시인'은 이문열 소설의 정수였다. 물론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처럼 굉장히 무거우면서도 심도있는 소설도 있다. 그런데 박상륭의 소설은 그와 결이 다른 소설이었다. 다른 것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난 사실 이런류의 소설에 익숙치 않았다. 사건위주의 소설을 주로 읽었는데, 심리위주의 소설은 생소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슷하냐면 또 다른 차이가 있다. 특히 읇조리듯 말하는 중의 말들.. 이것은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그렇게 소설 한 번 필사 했는데도 아직 이해가 안된다. 태어나서 소설 통째로 필사한건 죽음의 한 연구가 처음이고, 두 번째는 한강의 채식주의자였다. 한강의 소설은 워낙 쇼킹해서 필사해보았다. 세 번째 소설은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소설 중 첫 문장이 가장 유명한 이 소설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공문(空門)의 안뜰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바깥뜰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수도도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상살이의 정도에 들어선 것도 아니어서, 중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중(俗衆)도 아니어서, 그냥 걸사(乞士)라거나 돌팔이중이라고 해야 할 것들 중의 어떤 것들은, 그 영봉을 구름에 머리 감기는 동녘 운산으로나, 사철 눈에 덮여 천년 동정스런 북녘 눈뫼로나, 미친 년 오줌 누듯 여덟 달간이나 비가 내리지만 겨울 또한 혹독한 법 없는 서녘 비골로도 찾아가지만, 별로 찌는 듯한 더위는 아니라도 갈증이 계속되며 그늘도 또한 없고 해가 떠 있어도 그렇게 눈부신 법 없는데다, 우계에는 안개비나 조금 오다 그친다는 남녘 유리로도 모인다.(소설 도입부)
박상륭의 소설은 그 후 칠조어론 열명길, 아겔다마 등을 구입하여 읽으려고 했지만 아직 책장에 고히 묻혀두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는 마음에 말이다. 그리고는 이인성의 소설들, 조이스의 소설, 프루스트의 소설 등 이런 계통의 소설로 빠져들었고, 결코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읽기는 몇 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소설읽기를 그만두고 다른길을 파기 시작했다. 철학 사상에 한동안 빠져있었다. 철학책에 관심이 있어 들뢰즈, 하이데거, 니체, 김용옥, 강신주, 도킨스, 서인국, 신영복 등의 책을 찾아 헤맸다.
2020년 들어 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힘들 때 읽은 책들은 역시 향수를 자극한다. 죽음의 한 연구의 첫장은 낙서로 얼룩져있다. 알지 못하는 글씨조차 그 시절 1990년대 방황했던 내 인생이 오롯이 스며들어 반가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