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맥주의 블로그
제 독서 메모는 마음대로 퍼 가셔도 괜찮습니다. 상업적으로 이용하셔도 됩니다.한국 작가 100명이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나 사상가들이 활동했던 장소를 찾아 그 인물들의 작업을 소개하고 자신의 여행 에세이도 곁들이는 내용인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스콧 피츠제럴드는 최민석 작가가 맡았다. 피츠제럴드의 삶에서 훌륭한 소설가가 되려면 신체, 정신, 가계, 평판 등 여러 방면에 있어서 성실히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는 반면교사를 얻는다. 그런데 인간이 하루에 맥주 서른 캔을 마실 수가 있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실천윤리학자이자 동물해방론자인 피터 싱어와 농부 겸 변호사인 짐 메이슨이 함께 썼다. 르포와 논 평으로 이뤄져 있는데 아마도 르포는 메이슨이, 논평은 싱어가 맡지 않았을까 싶다. 르포 부분은 나쁘지 않았지만 같은 분야의 다른 책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비교해 크게 다른 점은 없었고, ‘윤리적인 식단’을 꾸리는 가족들은 전혀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논평 부분에서는 자신들이 제시하는 방향을 명확히 밝히면서도 관련된 다른 담론들을 비교적 공정하게 논의한다.


조선일보에 ‘근미래의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STS SF 초단편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9회는 ‘가상 전망’ 이야기입니다. 원문 링크는 아래에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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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STS(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연구) SF’라는 이름으로 소설을 써온 장강명 작가가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보게 될지도 모를 기묘한 풍경을 픽션으로 전달합니다.
근미래의 풍경 9회 #가상 전망
한국의 IT 대기업 네카팡의 가상 유리창 ‘전망 좋은 집’은 처음에는 개인 고객에게도, 한국 고객에게도 판매하지 않았다. 탁월한 전략이었다. 네카팡이 택한 기업 고객은 고급 아파트 임대업자들이었고, 네카팡이 택한 두 도시는 뉴욕과 런던이었다. 뉴욕과 런던에는 고소득 직장인이 많지만 그곳의 집값은 어지간한 고소득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런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들이 이 두 대도시에서 엄청난 월세를 내며 살았다. 시간이 곧 돈인 이들이라 아파트를 고를 때 교통접근성을 가장 중시했고, 다음 고려사항은 집 크기와 상태, 치안과 주변 환경, 계약 조건 등이었다. 이들이라고 탁 트인 뷰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으나 그런 부동산은 구매도 임대도 너무 비쌌다. 전망 좋은 식당이나 카페를 가는 걸로, 혹은 여행지에서 그런 호텔에 묵는 걸로 욕구를 달래는 수밖에.
그런 때 시장에 나온 네카팡의 가상 유리창은 기존 제품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로 그 시각 바깥 날씨를 반영해 탁 트인 전망을 제공했는데, 단순히 화질만 좋은 게 아니었다. 정말 자연광이 들어오는 듯한 느낌이라 ‘창밖 풍경’을 오래 봐도 눈이 피곤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그 앞에서 걸어 다녀도 풍경이 각각의 시선에 맞춰 조정돼 가짜임을 눈치 챌 수 없었다. 설치된 장소의 100층 높이 전망을 기본으로 제공했지만, 원한다면 다른 도시 상공이나 해저 풍경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네카팡의 기업 고객이 된 뉴욕과 런던의 부동산 임대업자들은 가상 유리창을 자신들이 소유한 저층 아파트에 설치하고 대신 임대료를 인상했다. 그래도 전망 좋은 고층 아파트 임대료에 비하면 경쟁력 있는 가격이었다. 게다가 가상 유리창이 보여주는 전망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원한다면 우주정거장에서 내려다보는 지구의 모습을 창밖에 띄울 수도 있었다. 대형 TV나 모니터도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지 창 일부분을 TV 모드로 바꿀 수 있었다.
뉴욕과 런던의 전문직 종사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가상 유리창은 핫한 아이템이 됐다. 네카팡은 파리, 도쿄, 홍콩, 상하이 등 다른 도시의 부동산 임대업자들과도 계약을 맺었다. 그즈음 경쟁업체들도 네카팡의 기술 수준을 따라잡은 모방품들을 내놨다.
사람들이 서울에서는 왜 ‘전망 좋은 집’을 서비스하지 않는지 궁금해 할 때 네카팡은 새 비즈니스 모델을 선보였다. 서울 곳곳의 초역세권 건물들을 사들인 뒤 재건축하면서 창문이 하나도 없는 빌딩을 지은 것이다. 이 방식으로 막대한 개발 이익을 거둔 네카팡은 아파트 재건축에도 뛰어들었다. 네카팡의 이매리 의장이 조합원 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말했다.
“과거 방식으로 재건축을 해서 추첨으로 동․호수를 배정하면 몇 세대나 ‘로얄층’을 받을 수 있죠? 그게 납득이 되십니까. 몇 억 짜리 도박 아닌가요. 저희는 모든 세대에게 최고의 전망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유리창 없이 건물을 지으면 훨씬 저렴하게 빨리 지을 수 있고, 그로 인한 이익은 고스란히 조합원님들이 가져가십니다. 유리가 얼마나 단열이 안 되고 충격에 약한 소재인지 아시나요? 저희가 짓는 아파트는 에너지효율이 높아 관리비도 저렴합니다. 중앙냉난방을 24시간 가동하니 환기 염려는 안 하셔도 됩니다.”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창문 없는 아파트가 대세가 됐다. 네카팡은 ‘뷰맛집’이라는 서비스도 개시했다. 식당과 숙박시설의 진짜 유리창을 가상 유리창으로 교체해주고 이후 매출에서 일정액을 가져가는 사업 모델이었다. 식당과 숙박시설은 가상 유리창을 천장에 설치해 ‘가상 하늘’을 꾸미기도 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가상 유리창 기술 때문에 고층아파트 주민들의 자산이 폭락했고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창호회사가 문을 닫았다’는 질문을 받은 이매리 의장은 피식 웃었다.
“파괴 없는 혁신은 없어요. ‘전망 민주화’에 대해서는 왜 말하지 않는 거죠? 극소수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좋은 전망을 이제 많은 사람이 누려요. 저희 목표는 저층 빌라, 반지하 주택, 고시원에도 좋은 전망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겁니다.”
이매리 의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던 시각,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는 젊은 커플이 데이트 중이었다.
“막상 올라와 보니 별 거 없네. 남산타워 전망을 남산타워에서 보면 별로라더니 진짜구나. 하늘도 뿌옇고 경치가 몇십 분째 변함이 없어.”
“왜, 나름 신선한데. 요즘은 어딜 가도 창밖이 똑같잖아. 난 파스타 집에서 노을이랑 오로라 좀 그만 보면 좋겠더라.”
커플은 서울시에서 짓는 남산 청년임대주택에 입주할 예정이었다. 용적률이 1200%인 단지에, 지하 17층 세대였다. 창문을 만들지 않으니 건물을 빽빽하게 배치해도, 지하층에 가구가 있어도 괜찮았다. 서울시는 이 건물 고층 외벽에 초대형 가상 유리창을 둘러 행인들에게도 멋진 남산 경관을 선사하겠다고 밝혔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5/03/04/RCFXRDEGIJEWRFVWLBTVOMACNM/


좋은 재료로 진심 담아 만든 담백한 가정식 같은 에세이. 저자도 부모님도 모두 멋진 사람들이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좋은 삶에는 반드시 서로 사랑하는 가족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깨닫게 된다. 독자의 죄책감이나 눈물샘을 억지로 자극하지 않아서 좋았다. 책 한번 써보자는 강연을 하면서 여러 번 이 책을 사례로 들었다.


2006~2008년까지 프레시안이 미국, 영국, 인도, 일본, 프랑스, 캐나다의 로컬 푸드 운동을 취재해서 기사로 연재하고 책으로 펴냈다. 그 시절에는 인터넷신문도 패기 있게 해외 취재를 했었구나 싶다. 20년 가까이 세월이 지났는데 학교 급식 같은 부문을 제외한 한국인 대부분의 밥상은 더 세계화되었다. 음식 윤리라는 게 어떤 걸까,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 어떤 마음이나 필요를 동력으로 삼아야 할까 고민하며 읽었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이고 국어국문학과 교수인 저자가 K-드라마와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이런저런 해석을 시도한다. 이런 시도도 2020년대 들어서는 좀처럼 보지 못하는 것 같다. 문단에서도 서브컬처 팬덤에서도 수요가 없어서? 다 같이 보는 작품 자체가 없는 시대에 작품으로 알 수 있는 사회상도 별로 없어서?


책을 읽다 보니 그동안 국사 시간에 배운 역사가 얼마나 세계사의 흐름이나 기후환경 변화와 동떨어진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꼭 국수적인 정서 때문만은 아니고 당시까지 쌓인 연구 결과가 부족한 탓도 있었겠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눈이 트이는 것 같은 경험도 몇 번 했다.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2021년 미국에서 ‘게임스탑 주가 폭등 사태’라고 불리기도 하고 ‘레딧발 밈 주식 광풍’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사건이 있었다. 한 시대의(그리고 한 세대의) 상징적 사건이 될 거라 직감하지만 아직 그 의미를 명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사건의 주역들인 젊은 남성들을 옹호하지 않지만, 그들을 얄팍한 악당이나 공감 능력이 없는 괴물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기이한 정의감이나 유치한 인정욕구만큼이나 좌절감과 무력감, 외로움, 두려움, 곤궁함도 잘 전달한다.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변하고 있는 걸까? 나만 이런 의문을 품은 건 아니지?


해법에서는 한 걸음 물러나 그냥 육식의 매혹과 그 역사를 설명하는 책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에 대안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런데 그 대안들이 현실적으로, 설득력 있게 들렸다. 플렉시테리언을 장려하자는 ‘축소주의’와 육류세 도입 아이디어에 끌린다. 인도가 실은 소고기 수출 대국이라거나 오후 6시까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VB6’라는 개념 등을 들으니 확실히 인간이 고기를 끊는 건 어렵긴 하다는 생각이 드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