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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맥주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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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 신곡: 천국편 (단테 알리기에리)

뭘 느껴야 하는 걸까? 그냥 ‘중세 서양인들은 구원과 내세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구나, 이 묘사 정말 대단하구나’ 하면 되는 거 아닐까? 박물관을 둘러보는 기분으로.

신곡 -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천국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51. 애드넘스 고스트쉽과 항포포구

협재해수욕장의 게스트하우스 다음으로 묵은 곳은 애월리와 제주공항 중간 즈음에 있는 캠핑카 야영장이었다. 캠핑카를 9대 갖추고 숙박 체험을 제공하는 작은 단지였다. 우리는 12제곱미터짜리 2인용 독일식 캐러밴을 빌렸는데, 이번 제주 여행에서 이용한 숙소 중 가장 좁았고, 가격은 세 번째로 비쌌다.

한번쯤 이런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며 HJ가 예약했는데, 말 그대로 딱 한번 정도 해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우리는 2박 3일을 보냈는데, 하루 더 묵었다면 불편했을 것 같다. 캐러밴 안에 화장실은 있었지만 매우 비좁았고 냄새가 밸까봐 사용하기 어려웠고, 제대로 된 변기와 샤워 설비는 캐러밴 밖 공용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그래도 캠핑카에서 지내는 시간은 즐거웠다. 모든 공간이 감탄스럽게 효율적으로 설계되어 있었고, 그런 설계에 우리 생활을 맞추는 경험이 신선했다. 캐러밴에 들어가기 전에 하루는 맑고 하루는 비가 왔으면 좋겠다고 농담을 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되었다. 또 캐러밴 앞은 야트막한 바위 언덕 아래로 바다가 잘 보이는 전망이었다.

특히 각 캠핑카마다 바다 쪽으로 앞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좌우로 나무가 울타리처럼 심어져 있어 이웃 투숙객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거기서 바비큐를 해 먹지는 않았지만 바다를 내려다보며 차를 마시고 스트레칭을 하고 저녁도 먹었다.

첫째 날에는 항포 포구로 가서, SNS에서 유명한 두부요리 전문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가게 영업 개시 전부터 사람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섰고, 우리는 그 줄에서 두 번째였다. 손님들은 엄청나게 밀려 왔고 종업원들도 부산스러웠는데 정작 요리는 평범했다. 두부함박스테이크와 아게다시도후, 그리고 아게다시도후와는 다소 다른 두부튀김을 먹었다.

근처 마트 두 곳에서 족발, 빙떡, 컵라면, 맥주, 사과, 팝콘을 사왔다. 족발은 HJ가 그날 저녁으로 먹고 싶다고 해서 샀고, 다음날 한 끼는 빙떡으로 때울 생각이었다.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를 읽고 맛이 궁금해지기도 했고. 제주에 있는 동안 너무 잘 먹고 다녀서 체중이 슬슬 걱정이 되었다. HJ도 마찬가지였다.

컵라면은 흑돼지로 국물을 냈다고 하는 제주 제품이었는데 기념품 가게에서 계속 보다 보니 맛이 궁금해졌다. 사과는 HJ가 샀다. HJ는 여행 중에 종종 마트에 들러 바나나, 사과, 딸기, 당근, 오이를 사서 내게 먹였다. 사실 서울에 있을 때도 그랬다. 나는 야채는 그럭저럭 먹는 편인데, 과일은 싫어한다. 특히 딸기.

서울에서 출발할 때 신발을 두 켤레 챙겼는데, 둘 다 샌들이었다. 그 중 한 켤레는 밑창이 거의 떨어져서 버렸고, 신고 있던 다른 한 켤레도 밑이 반쯤 갈라졌다. 샌들을 한 켤레 사고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마트 앞에 옷과 신발 재고품을 할인해서 파는 크고 허름한 매장이 있었다. 거기서 마음에 드는 샌들을 한 켤레 샀다.

이날 저녁에는 캐러밴 앞 작은 개별 마당에서 족발을 먹었다. 코딱지만 한 크기인 주제에 캐러밴은 전자레인지도 갖추고 있었다. 바람이 세고 날벌레가 성가시기는 했지만 그렇게 바다 위로 지는 해를 감상하며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흥겨웠다. 마트에서 파는 제품인데도 예상 외로 맛있는 족발이었다.

우리 캠핑카 뒤에는 큰 스피커가 있었는데, 야영장 운영자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온갖 버전으로 몇 번이나 틀어줬다. 우리도 좋아하는 노래니까 처음에는 흠뻑 정취에 젖었는데, 나중에는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뿐〉도 여러 번 나왔다. 결국 다음날 담당자에게 음악 소리를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앤드루 솔로몬의 『부모와 다른 아이들』 1권을 읽었다. 이 책은 두 권짜리인데, 1권이 872쪽, 2권이 760쪽이다. 아직 절반만 읽은 셈이지만, 정말 엄청난 책이다. 읽는 내내 감탄하고 감동했다. 올해 읽은 것 중에 가장 대단한 책이 될 것 같다. 앤드루 솔로몬의 다른 저작도 모두 찾아 읽을 생각이다.

캐러밴 숙박 둘째 날 오전에는 HJ가 작은 마당에서 차를 마시는 동안 나는 안에서 신문 칼럼을 마감했다. 낮에는 항포포구에 있는 거대한 커피점에 갔다. 밖에서 보기에도 컸지만 안에 들어가 보니 짐작하던 것보다 더 넓었다. 게다가 전망도 대단했다. 고래를 모티브로 했다는 독특한 모양의 건물 2, 3층에 여러 방향으로 대형 유리창이 나 있었고 각각의 방향으로 포구와 바다가 보였다. HJ는 건축가의 안목을 여러 번 칭찬했다.

그러나 그 카페에서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가격이었다. 오전 11시 전에는 아메리카노를 1400원이라는 경악할 만한 가격에 팔았다. 테이크아웃에만 매기는 금액도 아니었다. 오전 11시 이후에도 4000~5000원대의 커피를 주문하면 반값 할인을 받거나 샐러드, 샌드위치, 디저트 중 하나를 무료로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HJ와 내가 멋진 전망을 즐기며 아메리카노, 카페 라테, 샌드위치, 핫도그를 먹고 마셨는데도 만 원 남짓밖에 안 들었다.

뭐지? 입소문을 내야 해서 한동안 밑지고 장사하는 건가? 대기업의 사회공헌 사업인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봤더니 제주에서 새로 생겨 사세를 무섭게 넓히고 있는 신생 프랜차이즈라고 했다. ‘제주의 스타벅스’라는 별명까지 붙었다나. 서울과 부산에도 매장을 냈다고 한다.

이날 낮부터 비가 왔다. 카페에서 돌아와서는 캐러밴에 틀어박혀 IPTV로 영화 《조선명탐정: 흡혈괴마의 비밀》과 《베이비 드라이버》를 봤다. 조선명탐정 3편은 전작들과 달리 판타지 요소를 가미했는데, 그건 상관없었지만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너무 연기를 못해서 몰입이 어려웠다. 《베이비 드라이버》는 나쁘지 않았고 개성도 있었지만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을 정도인가 싶었다. 그냥 둘 다 팝콘 먹으며 보기 딱 좋은 영화였다.

저녁으로는 빙떡, 컵라면, 남은 족발을 먹었다. 흑돼지 분말을 넣었다는 컵라면에서는 다소 탄 맛이 났다. 저녁을 먹으며 마트에서 사 온 애드넘스 고스트쉽과 버드와이저를 마셨다. 애드넘스 고스트쉽은 영국 애드넘스 양조장에서 만드는 페일에일인데, 유령선이라는 이름과 라벨 디자인이 재미있다. 그러나 밀어 붙이는 듯한 강한 향과 가벼운 바디는 다소 따로 논다는 느낌이었다.

밖에서는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밤이 되자 캐러밴이 덜컹거렸고 바닷물이 육지 반대편으로 쓸려 올라가는 듯 보이기까지 했다. 우리는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그날 밤 항포포구 주변 최대 풍속을 검색하고, 그 정도 바람이면 나무가 뽑히거나 차가 뒤집어지지 않을지 확인했다. 인터넷 설명에 따르면 그 정도는 산들바람이라고 했다.

 

비바람이 치던 바다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고

우린 유령선을 마시네


632. 신곡: 연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질투를 속죄하는 이들은 눈썹이 철사로 꿰매져 고통 받는다. 질투가 시각에서 비롯되는 거라면, 현대인들은 훨씬 더 쉽고 크게 그 죄에 빠져들 테지. 인터넷 덕분에.

신곡 : 연옥편
신곡 : 연옥편
631. 신곡: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

분노를 이기지 못한 이들은 스틱스 강의 진창에서 서로 물어뜯고 온몸으로 난투를 벌인다. 그러나 늪에 빠져 있기에 그들의 외침은 단테에게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신곡 - 지옥편 -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630. 인간의 위대한 여정 (배철현)

인문학자가 본 인류의 초기 역사. 도킨스를 대차게 깐다. 농업혁명 전에 이미 정착문화가 있었다는 최근의 고고학 발견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유물사관에 치명타를 가하는 얘기 아닌가?

인간의 위대한 여정(양장본 HardCover)
인간의 위대한 여정(양장본 HardCover)
629.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배철현)

샤갈의 ‘십자가 처형’ 시리즈도 비중 있게 다루는데, 창세기 회화보다 더 흥미롭다. 유대인인 샤갈은 이 주제에 매혹됐고, 메시아가 아닌 ‘고통 받는 유대인 순교자’로서 예수를 그렸다고.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창세기 샤갈이 그림으로 말하다
628. 인간의 위대한 질문 (배철현)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던진 질문들을 주로 다루지만, 현대 기독교의 위상도 주요 주제다. 현대인이 종교를 통해 얻으려는 ‘영성’은 소속감이라기보다는 자기 삶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그에 따른 변화라고.

인간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
627. 신의 위대한 질문 (배철현)

구약에서 신이 던진 질문들을 살핀다. 이삭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을 묘사한 화가들의 그림에 대한 해석이 흥미진진하다. 카라바조는 그 일화에서 광기와 폭력을 읽었고, 샤갈은 울부짖는 어머니를 상상했다.

신의 위대한 질문
신의 위대한 질문
626.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다케우치 가오루, 마루야마 아쓰시)

12가지 문제들이 다 흥미진진한데, 양자역학이나 초끈이론에 대한 설명보다 뱀장어들이 알을 어디에 낳는지, 전신마취약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같은 작은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다. ‘소파 옮기기 문제’의 답을 아직 과학과 수학이 풀 수 없다니!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625. 피아니스트의 뇌 (후루야 신이치)

뇌과학과 예술, 전통과 현대의 공학기술이 만나는 ‘음악연주과학’이라는 현장. 모든 것이 새로운, 흥미진진한 미개척지다. 지금 뇌과학 연구자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 중 하나가 예술가의 뇌라는데, 머지않아 문학도 이런 연구 대상이 되겠지. 흥분해야 할 일인지 두려워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피아니스트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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