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함께 읽기를 모른다
2025-07-01 17:08:20
1. 독서 모임을 만들 때 모임을 이끌 모임지기를 구하는 것은 참여 멤버를 구하는 것보다 ( )배 어렵다.
2. 책의 두께가 2배로 증가하면 그 책을 함께 읽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의 수는 ( )분의 1로 감소한다/[혹은] ( )배로 증가한다.
3. 다음 중 독서 모임을 가장 잘 이끌 사람은?
① 그 책을 쓴 사람
② 그 책을 만든 사람
③ 동네서점 주인
④ 도서관 사서
⑤ 학교 선생님
⑥ 일반 독자
4.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 )
2022년에 나는 저 문제들의 답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만들고 나서 2년 반 동안 한 문제 한 문제 천천히 풀이법을 배웠다(울면서). 지금도 내가 적어낸 답안이 아주 정확한 정답인지는 자신 없다. 하지만 그믐에서 2,100개가 넘는 독서 모임이 생기고, 1만 5,000명 회원의 글 19만 건을 지켜보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했으니, 어떤 감각은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먼저 1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약 0.25배 어렵다’이다. 다시 말해 어떤 책을 읽자고 제안하는 사람을 찾는 건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제안에 따라서 책을 읽을 사람을 구하는 게 그보다 4배가량 어렵다.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것은 그믐처럼 누구나 모임지기가 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트레바리나 독파와 같은 독서 커뮤니티에서는 운영 주체인 플랫폼이 모임지기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모임지기와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을 모집한다. 모임지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작가나 문화계 안팎의 유명 인사들이다. 대체로 모임지기의 인지도가 높을수록 참가 희망자의 수도 늘어난다. 플랫폼의 성공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모임지기를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실제로 이들 플랫폼은 모임지기 섭외에 대단한 정성을 쏟는다.
나는 그믐을 창업하기 전 트레바리 모임에 참여하며 독서 커뮤니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살폈고,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로부터 직접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서 커뮤니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모임지기라고 생각했다. 오픈형 플랫폼을 구상하면서 나의 가장 큰 걱정은 ‘트레바리처럼 수익을 제공하는 게 아닌데도 과연 모임지기로 나서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베타테스트를 석 달 남짓 하는 동안 모임지기를 맡아줄 사람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모임 한 건당 얼마가 적당할지 잘 몰라 사람들에게 물으며 알맞은 비용을 찾아갔다. 그런데 베타테스트가 끝나기 전 누군가 자발적으로 모임을 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지인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 첫 외부 모임지기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후에도 모임지기로 나서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독서가들 사이에는 동네서점 개업에 대한 로망만큼이나 자기가 운영하는 북클럽에 대한 로망도 은근히 있는 것 같다.
정작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을 모으는 게 더 어려웠다. 진지한 독서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쿠폰 제공 같은 이벤트에 반응하지 않는다. SNS에서 커피 쿠폰을 뿌려서 가입시킨 회원들은 대부분 진지한 독서가가 아니라는 의미다. 독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스타트업들이 초기에 빠르게 회원을 모았다가 그만큼 빠르게 몰락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커피 쿠폰으로 가입시킨 회원들은 커피 쿠폰이 사라지면 떠나며, 커피 쿠폰을 받는 동안에도 진지하게 책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믐은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정공법으로 진지한 독자들을 회원으로 모았다. 회원 수 1만 명이 넘었을 때 즈음 그믐에서 독서 모임을 연 한 대형 출판사 마케터로부터 “이런 ‘고급 독자’들을 어떻게 모으신 거예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우리 사이트에 진지한 독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 하는 자부심도 느꼈고, 이런 회원을 모으는 건 큰 출판사에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함께 했다.
다음 2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1.5-~2배로 증가한다’이다. 얇고 가벼운 책을 읽자고 하면 사람이 더 모이지 않겠느냐고? 커피 쿠폰으로 유혹할 수 없는 진지한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말로도 유혹할 수 없다. ‘신상품(신간)’이라는 말에도 그들은 시큰둥하다. ‘이 책으로 과연 멤버를 몇 명이나 모을 수 있을까’ 싶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읽겠다고 손을 드는 이들이 오히려 많았다.
실제로 그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임 중 하나가 ‘벽돌책 읽기 모임’이다.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모임은 지금 21회째인데, 현재 셰익스피어의 인생과 작품을 다룬 696쪽짜리 논픽션 『세계를 향한 의지』를 49명이 함께, 활발히 읽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23일 동안 올라온 감상은 모두 1,625건.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서평단처럼 책을 무료로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다 읽었다고 따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 뒤풀이도 없다. 그런데도 늘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1,040쪽짜리 과학 교양서 『행동』을 읽을 때에는 61명이 참여해 29일 동안 2,107건의 감상을 남겼다. 나는 이런 독서 모임은 그믐 외에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이전에 이런 독서 모임을 못 봤기 때문에, 나는 오해를 했다. 그리고 나처럼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독서 장려’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책을 읽지 않는 잠재 독자’를 향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읽기 어려운 책보다 쉬운 책을 권하고, 독서에 대한 보상을 강조한다. 가볍고 얇은 책이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잠재 독자가 아닌 ‘찐독자’들에게 가장 큰 보상은 독서 그 자체다. 그들을 유혹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책’이지, ‘가벼운 책’이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두껍고 어려운 책은 읽기 버겁고, 그래서 ‘함께 읽자’는 권유가 더 먹히는 것 같다.
다음 3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① 그 책을 쓴 사람, 그리고 ② 그 책을 만든 사람이다. 복수 정답이다. 작가들은 모임을 정말 잘 이끈다. 자기 책을 읽는 모임에 한해서만큼은 매우 열정적이며, 독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오프라인에서는 내성적으로 보이던 작가가 온라인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모습에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아카식』의 해원 작가는 SF 장르에 상당한 내공을 갖추었다. 실시간으로 독자와 채팅하는 그믐 라이브 챗에서 그가 들려준 타임머신 이야기는 꽤나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상당수 작가들이 독자들의 진심 어린 반응에 감격하는 것 같다. 특히 신인 작가는 더 그렇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쓴 이인규 작가는 직접 팟캐스트 <스몰포켓>에 출연하여 그믐을 언급하기도 했 하였다. “같이 책을 읽는 그믐이라는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어나가고 있거든요,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제 살 것 같아요. 책 내고 한 달 정도는 조금 약간 불행한 느낌이었어요. 그전까지는 내가 애써서 한 게...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을 쓴 건 아닐까 약간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후기 정말 사랑해요.”
『에이징 솔로』의 김희경 저자 역시 자신의 책을 읽는 그믐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가 기고한 글의 일부다. “나는 이 토론의 링크를 저장해 두고 지금도 가끔 들어가서 책을 함께 읽은 분들이 올린 토론을 읽어보고는 한다. 삶의 다양한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는’ 것의 정수를 경험했던 시·공간이었고, 작가가 책을 세상으로 내보낸 뒤에는 책이 자신만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독자들과 만나며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을 절감했다.”
출판계 편집자, 마케터들도 독서 모임을 활발히 이끈다. 제한된 마케팅 예산을 가진 출판사들이 흔히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온라인 서평단 운영이다. 이러한 서평단은 대개 정형화된 패턴을 따른다. 1.온라인 서점에 리뷰 게시하기, 2.개인 SNS에 서평 올리기.
그믐은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모이는 공간이기에, 잠재 독자층과 소통하고 싶은 출판사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전통적인 온라인 서평은 본래 책을 완독하지 않고도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었으나, ChatGPT 등장 이후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의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와 달리 그믐은 독서 모임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더욱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는 책 대화의 장을 펼쳐낸다. 참여자 입장에서는 서평단이 더 간단하고 할 일이 적지만 우연찮게 서평단과 독서 모임이 함께 올라오면 단연코 독서 모임을 하겠다는 참여자가 더 많다.
동네서점도 상당히 적극적인데,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 때문인 듯하다. 다만 아무래도 물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이기에 전국적 인지도보다는 실제 방문객이 매출로 이어지는 오프라인 모임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반면 도서관이나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담당자마다 모임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책 이야기에 열의를 쏟는 사람과 업무 지시 때문에 마지못해 모임지기를 맡은 사람이 운영하는 모임 분위기가 같을 리 없다.
일반 독자가 운영하는 모임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성실하게 모임을 운영해 신뢰를 쌓아 이제는 쉽게 다른 참여자를 모으는 모임지기도 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책임감 없이 모임을 종료하는 이도 있다.
마지막 4번 문제. 그믐에서건, 다른 독서 모임에서건 정답은 ‘자기 이야기’다.
그믐을 시작하기 전, 나는 다양한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전문가의 정교한 작품 해설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참가자들의 눈빛은 달라진다. 문학 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여러 책이나 강연에서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감정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일상에서 찾기 어렵다.
'그믐밤'이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매월 진행하기에 참여하는 강사들이 종종 조언을 구한다. 34회 강사였던 정윤지 피아니스트에게 내가 유일하게 부탁한 것은 참가자 모두가 돌아가며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35회를 이끄는 정명섭 작가에게도 서울 서촌 문학 답사 후 실내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고 요청했다. 답사 후 그대로 거리에서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서 모임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때 비로소 참가자들은 자신이 이 모임에 참여한 진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그믐'을 만든 이유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연뮤클럽'처럼 원작을 먼저 읽고 함께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한 후, 들뜬 마음으로 뒤풀이 자리에 모여 맥주 한 잔과 함께 나누는 공연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그믐은 온라인 공간이다. 모든 대화는 전부 공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지 걱정스러웠다. 초기 그믐의 대화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줄거리 나눔조차 허덕였다. 역시나 공개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꺼리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참가자가 큰 아이의 자해로 병원에 가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는 글을 남긴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모임에 털어놓는 모습이 반가웠고 사람들이 이 공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요즘 나의 고민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다. 그믐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단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믐을 앞으로 어떻게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나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김새섬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에 좀 더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2022년 9월, 느슨한 연대를 표방하는 온라인 북클럽 플랫폼 ‘그믐’을 열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다 보면 밀도 높은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혼자서는 독서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 함께 읽는 재미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