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바보다 』 셔우드 앤더슨 단편집 / 아고라
2025-09-07 16:47:41
『 나는 바보다 』 셔우드 앤더슨 단편집
아고라
책을 읽고 난 후, 제목의 의미가 다시 보인다. 나는 바보라고 스스로를 희생함으로써
단순한 자기 비하적 표현을 넘어, 작품의 주제와 인물 심리를 집약하는 상징적 장치로 볼 수 있겠다.
뛰어난 작가들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 벡, 스콧 피츠제럴드가 셔우드 앤더슨을 극찬했으며 일부는 그를 문학적 스승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셔우드 앤더슨의 단편소설 『달걀』, 『슬픈 나팔수들』, 『숲속의 죽음』 등 가장 빼어난 작품 12편을 모은 것으로, 이제 막 산업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전통적인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형태를 갈망하게 된 현대인들의 좌절과 소외, 외로움을 그리고 있다. 프로이트적 심리 분석과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인간의 욕구불만과 고독을 밀도 높게 묘사하는 작가다.
개인적으로 가장 와닿았던 작품은 《숲속의 죽음》이다. 제목이 이미 죽음이 언급된 이 소설!!
최근 '죽음' 소재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 점, 삶과 죽음은 너무 닮아있다. 그 어느 시대에도 죽음으로부터 비켜날 수 없는 우리 인간의 유한성.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설의 문장을 읽으며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의 낸시가 떠오른다 ㅠ 인간 사회에서 버려진 이들이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은 참으로 먹먹하다.
이 시대 사회 취약계층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삶은 비참했다. 소설은 역사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는 늙은 여자였기로 시작하는 첫 문장, 노파에게는 이름이 없다. 그라임스라는 이름은 남편 제이크 그라임스의 성을 따와서 그라임스 부인이 된 것뿐이다. 익명성은 더 슬프다. 소설의 결말을 읽으면 왜 작가가 여자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는지 알게 된다.
《어느 현대인의 승리: 변호사 불러줘요》를 읽다 보면 잘 쓴 편지 한 장으로 인해 고모님의 유언장을 되돌리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 체홉의 짧은 단편을 볼 때 느끼는 쾌감과 비슷했다.
후반부에 수록된 《전쟁》을 읽다 보면 저자의 문자이 얼마나 빼어난 지 실감할 수 있다. 물웅덩이에 비친 달빛 묘사, 전쟁통에 폴란드를 빠져나오는 여자의 모습, 두 영혼이 싸우고 마침내 영혼이 바뀌는 서사... 이 짧은 소설이 주는 강렬한 임팩트라니!!!
작가는 단편소설을 플롯 중심의 종래 방식에서 해방시켰고, 당대 청교도풍의 금욕주의에 반대하여 인간을 육체적인 그 자체로 바라보았다.
인간의 욕망, 좌절, 소외, 고독을 낱낱이 드러내면서도, 그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해 오래 여운을 남기는 작품집이다. 각 단편마다 하나씩 리뷰를 써도 무방할 만큼 매력적인 책이다.
그믐에서 함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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