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돌봄의 기록
지난 4월 말, 몸이 좋지 않아 일찍 잠들었다가 속이 울렁거려 잠에서 깼다. 토사물로 범벅이 된 채 정신을 차렸고, 바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다. 정밀 검사 결과, '교모세포종'이라는 뇌종양 진단을 받았다. 즐겁게 활동하던 교보 북멘토를 멈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입원 기간 동안 어머니와 남편이 나를 돌봐주었다. 이 책의 저자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듯, 그렇게 다정하고 섬세하게. 다행히 지금은 많이 회복되어 다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돌보는 사람뿐만 아니라 돌봄을 받는 사람, 그 어느 쪽의 입장에서 읽어도 큰 도움이 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언젠가 둘 중 한쪽의 입장이 될 것이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모두에게 의미 있는 울림을 줄 것이다.


가족, 친구,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드리고 싶었어요. 혹시 제가 곁에 있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물건을 보거나 쓰면서 저를 기억할 수 있는.
그런 점을 염두에 두다 보니 선물의 조건이 정해지더라고요. 저라는 사람의 개성이 담긴 물건이면 좋겠고, 너무 값싼 물건은 아니길 바랐습니다. 일상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실용적인 물건이면 좋겠다, 기왕이면 곁에 두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면 좋겠다….
처음에는 굿즈 제작 플랫폼에서 그믐 도안을 넣은 티셔츠나 모자를 제작할까 생각도 해봤는데, 커스텀 향수를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상수역 근처에 있는 ‘121르말뒤페이’라는 향수 공방이었어요. 진열대에 비치된 230여 가지 향을 하나하나 맡고 그 중 두 가지 향을 골라 레이어드하는 방식으로 나만의 향수를 제작합니다.
르말뒤페이(Le Mal du Pays)는 프랑스어로 ‘특정 장소가 불러일으키는 그리움이나 슬픔’을 뜻한다고 하네요. 리스트의 피아노 곡 제목이기도 해서, 음악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도 등장합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한 등장인물은 르말뒤페이를 이렇게 설명해요.
“일반적으로는 향수나 멜랑콜리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전원 풍경이 사람의 마음에 불러일으키는 영문 모를 슬픔.’ 정확히 번역하기가 어려운 말이에요.”
제가 만들 향수가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더라도 그게 슬픔보다는 반가움에 가까운 감정이기를 바라며 코를 혹사시켰습니다.
121르말뒤페이는 외국인 손님도 많이 찾는 명소였어요. 코가 지쳐서라기보다는 제 집중력이 요즘 90분 이상 발휘되지 않아 중간에 잠시 카페로 나가 쉬기도 했습니다. 몸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에어비앤비로 근처에 숙소도 잡았는데 잘한 선택이었어요. 최종 선택은 다음날 내리기로 하고 이날은 후보들만 골랐습니다.
다음 날 향수 공방을 다시 방문해 최종 결정을 했고 두 종류의 향수를 제작했습니다.
1. ‘봄, 새섬’ 향
새로운 계절,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새벽의 섬. 따뜻한 봄 햇살 아래 갓 피어난 꽃망울의 설렘과 싱그러운 풀잎의 상쾌함이 어우러진 향. 깨끗하고 순수한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정화시키는 듯한, 시작의 아름다움을 담았습니다. 여성용 향수입니다.
2. ‘밤, 그믐’ 향
깊고 고요한 밤, 모든 것이 잠든 그믐달 아래의 신비로운 정원. 어둠 속에서만 피어나는 꽃의 그윽함과 젖은 흙내음이 어우러져 차분하고 섬세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사색적이고 우아한 향입니다. 남녀공용 향수입니다.
향수병에 붙일 가죽 라벨에 ‘봄, 새섬’과 ‘밤, 그믐’이라는 글자를 레이저로 새겼어요. 병뚜껑과 가죽은 서로 다른 색으로 선택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감사한 분들을 찾아뵙고 ‘봄, 새섬’ 혹은 ‘밤, 그믐’ 향을 전해드리려 합니다. 일단은 39번째 그믐밤 참가자 분들 2분을 추첨을 통해 골라 각각 다른 향 하나씩을 배송해 드리려 합니다.
(참고로, 121르말뒤페이나 다른 업체로부터 어떤 협찬도 받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여요.)


불편함이 주는 선물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장마철에 꼼짝없이 집에 갇혀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기억이 난다. 만화책을 다 읽고도 할 일이 없어 천장 장판 무늬를 세던 그 시간, 그 시간은 단순한 나만의 공백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미국의 유명 시나리오 작가 아론 소킨도 비슷한 경험을 회상한다. 돈도, 약속도 없던 어느 밤, 그저 지루함을 견디기 위해 타자기로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렇게 쓰다보니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어느새 날이 밝아왔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불편함과 지루함을 일상적으로 마주했다.
이 책은 편안함의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한 공백처럼 보였던 그 시간들은 사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만들어내는 소중한 기회였을지 모른다.


꿈꾸는 바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