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그냥 내버려두세요
렛 뎀(Let Them)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냅둬' 또는 '내버려 둬' 정도가 가장 자연스러울텐데 나는 조금 장난스럽게 충청도 사투리로 '냅둬유' 이론이라 부른다. 이 책은 현대인이 겪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대한 명쾌한 해법을 제시한다.
'그들을 그냥 그렇게 하게 놔두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는 타인의 행동과 판단에 얽매여 자신을 잃어가는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감을 선사한다. 저자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관계, 사건, 그리고 타인의 기대에 집착하는 대신, 오롯이 자신의 삶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렛 뎀(냅둬유)'과 '렛 미(내가 하자)'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음의 평화와 감정적 독립을 원 하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안내서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안 읽어도 전 그냥 여러분을 냅둘거에유.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용기
책은 총 13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장의 제목은 ‘마지막 질문’이다. 부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물음’. 사람들이 죽음을 앞두고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용기를 낼 걸’,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지 말 걸’이라고 한다. 너무 익숙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치 삶이 무한한 것처럼 살아가는 걸까?
‘희소성의 법칙’이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는 시간이 충분하다고 믿지만, 사실 시간은 가장 희귀하고 소중한 자원이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갈 때, 사회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많은 것들이 얼마나 덧없고 무의미한지 선명하게 보인다. 내 경험상,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제다.
삶의 유한성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되고, 원하는 삶을 살 용기를 얻게 된다. 암이라는 극단적인 계기로 깨닫는 것보다, 책 한 권으로 그 통찰을 얻을 수 있다면, 그건 꽤 괜찮은 거래 아닐까.


그믐 회원들과 연극, 뮤지컬을 함께 보는 ‘그믐연뮤클럽’에 참여했어요. 뇌수술 이후 집에서 차로 30분 이상 가야 하는 장소를 간 곳은 이번이 두 번째네요. 대학로에서 뮤지컬을 봤는데요, 혹시 관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을까봐 아예 극장 근처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방 두 개짜리 예쁜 스튜디오였는데 주방에 비치된 머그컵의 옆면에 적힌 문구가 좋아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RECIPE FOR HAPPINESS
행복 조리법
1 BIG SMILE
큰 미소 한 번
2 CUPS OF SWEETNESS
다정함 두 컵
A LARGE HELPING OF POSITIVITY
적극성 큰 접시로 하나
A GOOD SENSE OF HUMOUR
좋은 유머 감각
1 CUP OF SELF-ESTEEM
자부심 한 컵
2 SPOONFULS OF TRUE FAITH
참된 믿음 두 숟가락
1 SPOONFUL OF GOODWILL
선의 한 숟가락
2 PINCHES OF RELAXATION
휴식 두 꼬집
AND A HEART FULL OF LOVE
그리고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
MIX TOGETHER AND SHARE WITH FAMILY AND FRIENDS
이 재료들을 다 섞어서 가족, 친구와 나눠 드세요
뮤지컬은 다행히 잘 봤고 뒤풀이 자리에도 잠시 참석했습니다. 그믐연뮤클럽을 이끌어주시는 수북강녕 대표님과 그믐연뮤 회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과 좋은 유머 감각이 가득한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치즈케이크와 커피도 먹었어요. 숙소에서 극장까지는 걸어서 2분 거리였는데, 국민대 제로원디자인센터가 길을 내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선의 한 숟가락을 탄 다정함 두 컵을 맛보는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해요.


쥐어야 할 것과 놓아야 할 것을 분간해야 할 때.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하자.
할 수 없는 일에는 미련을 갖지 말자.
그 뒤로는 흔들리지 말자.


폭우가 쏟아지는 날 새벽, 병원에 피검사와 MRI를 받으러 갔습니다. 별관과 암병원을 잇는 복도에 커다란 전망창이 있고 그 앞에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와 테이블을 몇 개 놓았어요. 인기 많은 장소라 비어 있을 때가 없고, 저는 저 자리들을 ‘꿀자리’라고 불렀죠. 저 자리 언제 한번 앉아 보나 했는데 이렇게 소원을 이루었습니다.
병원 직원 분들이 출근해서 각자의 과로 찾아가시는 동안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보며 디카페인 라테를 마시고 아침으로 치즈 바게트도 먹었어요. 8시간 금식 뒤 먹고 마시는 빵과 라테는 꿀맛. 전자책으로 독서도 조금 했어요. 암병원 입구에 꿀자리가 있고, 거기서 꿀맛을 즐길 수도 있는 게 인생인가 봅니다.


물건을 얼마나 오래 쓰세요? 22년 동안 쓴 의자 두 개,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래 쓴 여행가방을 정리했어요. 여행 가방은 마지막으로 쓴 게 17년 전이었어요. 17년 동안 이사를 다섯 번 하면서 그때마다 ‘언젠가 또 쓸지도 몰라’라는 생각으로 저 가방을 버리지 않았다니, 미련하죠.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10년, 20년 넘게 쓴 가구나 가전제품들이 수두룩합니다. 냉장고, 전자레인지, 토스터기 등등. 30년 동안 쓴 독서대도 있어요. 슬리퍼도 빨아 신었는데 얼마 전 다이소에 갔다가 이제 슬리퍼 가격이 1000원인 걸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빨아 신어야 하는 거지... 지구온난화가 심하다는데 물건을 아껴 쓰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드는 시대. 이상합니다.
우리 부부의 엉덩이와 중력 사이에서 22년을 버텨준 의자야, 그간 고생이 많았어. 고마워요.


입원해 있는 동안 궁금한 것들이 많았지만 쉽게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걸 물어봐도 되나, 의사나 간호사 선생님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여쭤본 질문에 간호사 선생님이 친절하게 대답해주셨고, 저는 “이런 거 여쭤도 되는지 몰랐어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간호사 선생님이 “얼마든지 물어보셔도 돼요, 환자의 권리인 걸요” 하고 대답해주셨습니다. 이후로 훨씬 편한 마음으로 의료진을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 다니는 병원에는 ‘환자의 권리와 의무’라는 문서가 담긴 액자가 곳곳에 걸려 있어요. MRI 검사를 기다리며 찍어 보았습니다. 환자의 알 권리와 자기결정권에 대해서는 이렇게 적혀 있네요.
‘환자는 의료진 등으로부터 담당의료진의 전문분야, 질병상태, 치료목적, 치료계획, 치료방법, 치료예상결과 및 부작용, 퇴원계획, 진료비용, 의학적 연구대상 여부, 장기이식 및 기증 여부 등에 관하여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자세히 물어볼 수 있으며 이에 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윤리적인 범위 내에서 특정치료 및 계획된 진료가 시작된 이후 이를 중단하거나 거절 할 수 있고 대안적 진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스운 일이지만 저 액자 근처에서는 좀 더 안심이 되는 기분이에요. 병원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드려요. 병원에서는 어디에 가든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어보는데 환자를 헷갈려서 벌어지는 어이 없는 의료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걸 알게 된 뒤로 기쁘게 제 이름을 대답하고 있어요.
환자의 의무도 잘 새겨 봅니다. 병원에서 마주치는 모든 분들을 존중해야겠다고 다짐도 해봅니다.


8월 4일은 저희 부부가 사귀게 된 날이자 결혼기념일입니다. 저희는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기 때문에 구청에 혼인 신고를 할 때 이날을 결혼일이라고 적어 냈답니다. 매년 8월 4일이면 예약한 식당에 가러 집을 나서면서 투덜대요. “왜 이렇게 더운 날에 사귀기 시작한 거야?” “더워서 정신이 없었나 봐.” 24년 전 그날 날씨는 정말 푹푹 쪘던 걸로 기억합니다.
카메라를 싫어하는 부부라 같이 찍은 사진도 많지 않아요. 23년 9개월 동안 서로 헤어스타일이 달랐는데 석 달 전부터 머리 모양이 비슷해졌습니다. 뒷머리는 제가 더 길군요. 지난 24년,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시간도 잘 부탁드려요. 잘 싸울게요. 이 글 보시는 분들도 모두 건강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시기를 빕니다.


Life is better lived to the full.
‘인생은 충만하게 사는 것이 더 좋다.’
혹은, ‘삶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겠네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이후에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은퇴한 신경외과 의사 선생님께 드렸을 때 들은 말이에요. 그 말을 햄버거 매장 정문에서 다시 마주했네요.
제가 복용하는 항암제의 주요 부작용이 식욕 부진이고, 저도 겪고 있어요. 식욕 부진이 심해져서 체중이 줄면 면역력이 약해져 항암 치료를 견딜 수 없어져요. 병원에서는 날 것과 간에 부담을 주는 보약류를 제외하고는 뭐든지 생각날 때마다 많이 먹으라고 신신당부합니다. 특히 고단백 고칼로리 음식 위주로 식사하라고요.
그래서 가성비가 낮다는 이유로 외면했던 식당들을 찾아가는 맛집 투어를 시작했습니다. 첫 시도는 고든 램지 스트리트 버거. 어땠느냐고요? 리뷰는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에 어제와 오늘, 2회에 걸쳐 올렸답니다. 맛집에 다녀온 감상들을 엮어 ‘새섬의 잃어버린 식욕을 찾아서’라는 외전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그런데 정작 식사를 하고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문에 적혀 있던 저 문구네요.
Life is better lived to the full.
여러분, 모두 충만한 하루 보내세요. 고단백 라이프!
#식욕잃어버리기 #그어려운걸해냈다 #팟캐스트외전


팟캐스트를 시작한 건 체력이 떨어지고 외출을 못하는 상태에서도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어요. 제가 글솜씨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책을 쓰거나 하다못해 블로그라도 운영했을 텐데요.
언어 재활을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요. 뇌수술 뒤로 잘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 있는데, 팟캐스트 녹음 중에는 조금 힘들더라도 그 단어를 찾아내려고 노력하거든요. 이렇게 듣고 좋아해주시는 분이 계시다니, 너무 기쁩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일부터는 더 감사한 마음으로 녹음하게 될 거 같네요!
참, 제 팟캐스트 채널 이름은 ‘암과 책의 오디세이’입니다. 팟빵, 유튜브, 스포티파이, 애플에서 들으실 수 있어요. 좋아요, 댓글, 구독은 사랑입니다. ^^
p. s. 제가 SNS 세상의 매너에 대해 잘 몰라서 이름만 지우고 포스팅과 댓글을 캡처해서 올렸네요. 혹시 문제가 될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 들을 수 있는 곳
● 팟빵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2770
● 스포티파이
https://open.spotify.com/show/5PRHiBjngcInuA50y1aiML
● 애플
https://podcasts.apple.com/.../%EC%95%94%EA.../id1818329538
● 유튜브
https://www.youtube.com/@%EC%A7%80%EC%8B%9D%EA%B3.../video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