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1월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믐밤. 🌘
1월 10일 수요일, 합정동 ‘디어라이프’에서 정아은 작가님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북토크가 열렸습니다. 오프라인 북토크는 역시 날씨가 관건이라 이날도 눈이 내리면 어떻게 하지 걱정을 했는데요, 다행히 전날 많은 눈이 내린 데 반해 행사 당일은 맑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기온이 낮았고 쌓였던 눈으로 일부 빙판길이었는데요, 걱정이 무색하게 일찌감치 많은 분들이 자리를 꽉꽉 채워주셨습니다.
최대한 많은 분들의 질문을 받고 현장에서 활발히 소통하고 싶다는 정아은 작가님의 바램으로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을 던지는 북토크에는 절반의 시간만을 안배하고 나머지는 객석과의 대화로 이루어졌어요. 문학이란, 또 좋은 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들, 좋은 소설, 에세이를 쓰는 실질적인 팁, 글쓰기로 사회적인 소통이 과연 가능한 시대인지, 작가님의 글쓰기 루틴 살펴보기 등등 1시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밀도 높은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추운 겨울밤에도 함께하여 각자의 온기를 나눠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모두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사진이 마음에 들어 올려봅니다.


한때 독서 팟캐스트를 엄청 많이 들었다. ‘눈동자를 굴릴 수 있고 주의력을 기울일 수 있는 여유 시간에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라고 생각한다. (눈은 있지만 정신이 없는 경우가 요즘 좀 많긴 하다. 😭) 그런데 귀를 이용하면 되는 팟캐스트 청취는 독서의 좋은 보완재다. 20분 정도 되는 구경거리 없는 길거리를 걸을 때, 설거지, 청소 등 싫지만 해치워야 하는 일이 쌓였을 때, 사람들로 가득 찬 울렁울렁 버스 안에서, 무언가를 보는 것은 어렵지만 듣는 것은 문제없다. 이럴 때 독서 팟캐스트를 듣는다. 읽은 책은 맞아맞아 하면서 듣고 안 읽은 책 소개가 흥미롭게 들리면 좋은 추천을 받아서 신이 난다.
한때는 들어야 할 팟캐스트가 너무 많았는데 어느새 점점 그 수가 줄더니 이제는 몇 개 남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와중에도 <YG와 JYP의 책걸상>은 2017년 시작한 이래 그 명맥을 꿋꿋이 이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시즌6 펀딩에도 성공, 올해에도 방송을 계속 들을 수 있다.
그믐에서도 함께 하자고 협업을 간곡히 요청드려 작년 한 해 동안 함께 읽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무려 50개가 넘는 독서모임!!)
내가 생각하는 책걸상의 매력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 큐레이션이 너무 좋다. 신/구간의 적당한 소개 비율, 문학/비문학의 절묘한 배치, 국내/해외 작가의 적절한 안배.
방송 안 듣고 이들이 무슨 책 읽었나만 살펴본 뒤 그냥 개인적으로 그 책 따로 읽어도 이득이다. (라고 쓰면 매우 싫어하시겠지만 😂)
둘째, 소개하려는 책이 무조건 좋다고 하지 않는다. 출판 시장이 워낙 작아지다 보니 책의 단점을 이야기하기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책걸상은 담백하게 이 점은 이래서 좋고 저 부분은 저래서 조금 아쉽다고, 유머있게 풀어주니 듣는 맛이 있다. 자극적으로 방송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고 적당하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한다. 덕담만 오가지 않으니 책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예능처럼 들어도 재밌다.
그 밖에도 하고 싶은 칭찬거리는 많지만, 너무 길어지니 오늘은 1절만.
실은 오늘 방영분에 내가 출연했다. (본론 등장😂)
* YG, JYP님과 찍은 송년회 사진 (혼비 작가님은 아쉽게도 먼저 가셨다)
*팟캐스트 책걸상 다시듣기 링크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342/episodes/24857515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이렇게까지 라는 경 이로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마음이 혼재될 때가 제일 많은데 이 책도 읽으면서 이러한 두 가지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이상한 그림>이라는 제목은 정말이지 끌리지 않아서 혼비 작가님의 추천이 없었다면 절대 읽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앞으로 제목으로만 (사실 '우케쓰'라는 이름인지 성인지 모르겠는 작가 이름도 좀...) 판단하지 말자.
추리소설 많이 읽어서 이젠 좀 심드렁한데, 싶은 사람들에게도 강추!


책을 많이 읽는 이들도 의외로 작가에게 돌아가는 몫인 인세를 모르는 분들이 많다. 실은 나도 그랬다. 보통 10%가 국내에서는 암묵적으로 통용되는 인세율. 책값이 1만5천원인 경우 한 권 팔리면 작가에게는 1천5백원이 가게 된다.
이렇게 10%가 인세 국룰인 출판계에 11%를 외치며 시작한 당찬 출판사가 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도서출판 11프로’ 출판사 이름부터 11프로 라고 짓고 시작했다니 이들의 진심 과연 알 만 하다.
인세율 이외에도 출간 도서에 홀로그램 인증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모든 책을 넘버링해서 몇 번째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도서출판 11%의 편집왕, 임홍택 작가님께서 신간 <2000년생이 온다>를 보내주신다며 [지식공동체 그믐]에 의미가 있는 숫자를 알려달라 했다. 그 번호가 붙은 책을 따로 빼서 출간 후 전달주신다고. 그래서 그믐의 시그니처 넘버 29를 말씀드리며 아무래도 29는 너무 앞 번에 위치한 숫자이니 그냥 29라는 숫자가 들어가면 929도 좋고 329도 좋고 다 좋다고 했는데 덜컥 정말 29번째 책을 보내주셨다.
감사합니다. 도서출판11%의 힘찬 시작 응원합니다.


1월 1일 각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발표되었다.
예전만큼은 그 인기가 못 하다 해도 그래도 매년 새로운 해의 시작임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뜻 깊은 행사다.
당선자들의 소감을 읽다가 코끝이 찡해졌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의심이,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에 대한 원망이, 혼자 울었던 시간의 고독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했던 외사랑이 묻어난다.
당선 소식을 듣고 제법 무심한 듯 진중해 보이려 하지만 그래도 모두들 기쁨과 희망의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그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사랑스럽다.
모르는 이들이지만 “수고했어요. 참 멋져요.”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계속 만나요.


2024년 갑진년 (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직은 계묘년이긴 해요. 육십간지는 음력이니까요.
청룡의 해 24년을 맞아 푸른 용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조금(?) 어려웠습니다.
검은 고양이, 흑묘 사진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볼게요.
23년도 그믐을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4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가 사라지면 암흑이 찾아온다”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결국 한 가지 질문을 담고 있다.
인간이 신 없이 살 수 있을까? 영원을 구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부조리를 용인할 것인가? 어느 날 문득 여태껏 살아온 나의 삶이 구덩이를 파고 내가 판 구덩이를 다시 메우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뒤, 그러고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1.각성
익숙한 무대 장치가 와르르 무너지는 경우가 닥친다. 아침에 일어나기, 전차로 출근하기, 사무실이나 공장에서의 네 시간 근무, 식사, 전차, 네 시간 근무, 식사, 잠 그리고 똑같은 리듬으로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이러한 일정은 대부분의 경우 어렵지 않게 이어진다. 어느 날 문득 <왜>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놀라움이 동반된 이 무기력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2.해답
시지프의 말 없는 모든 기쁨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고, 그의 바위도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그의 고통을 조용히 바라보면 모든 우상은 입을 다물게 된다. 느닷없이 자기 침묵으로 되돌아간 세계 속에서, 이 땅의 수많은 목소리, 경탄에 마지않는 작은 목소리들이 수없이 솟아난다. 무의식적이고 비밀스러운 호소, 모든 얼굴들을 초대하는 이 목소리들은 승리의 필연적 이면이자 대가이다. 그림자 없는 태양은 없는 법이기에 어둠이 무엇인지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조리한 인간은 〈예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노력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카뮈의 해답 역시 ‘노오력’ 이다. 다만 세간에서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른 노력이다. 시지프는 아무리 노력해도 100억 부자가 되거나 100만 팔로워를 얻진 못한다. 노력은 실제 삶의 개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돌덩이는 어제 그랬듯 오늘도 또 굴러 떨어진다. 그리고 내일도 또 굴러 떨어질 것이다. 바위의 무게는 조금도 가벼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을 밀어 올리는 그 순간 그는 잠깐 미소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터질듯한 팔의 근육통과 흙먼지 속에서 자신의 고통을 조용히 음미한다. 운명이 우리 삶에 목적이 없다고 비난할 때에도 우리는 고통에 색깔을 부여할 수 있다. 그 때 신은 그의 자리를 잃는다.



692 페이지의 <64>, 480 페이지의 <빛의 현관>등 굵직한 작품들을 쓴 요코야마 히데오.
과연 그의 단편은 어떨까?
<진상>은 총 5개의 짧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작품집이다. 이야기마다 배경이 다르고 재미가 다르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신만의 결함, 비밀, 치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비슷하다.
마지막 작품 <꽃다발 바다>의 여운이 길다. 작가는 60페이지짜리 단편에도 얼마든지 풍성한 플롯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자신감 있게 보여준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굳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 그것은 철학의 근본적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그 외에 세계가 3차원인지 아닌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개인지 열두 개인지의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런 문제들은 장난이다. 우선적으로 답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니체의 바람대로, 무릇 존경받는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이 대답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대답 뒤에는 결정적 행위가 분명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심정적으로는 분명히 느껴지지만, 이성적으로 명확히 밝혀지기 위해서는 심도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어떤 질문이 다른 질문보다 더 절박한지 아닌지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가 자문해 보면, 나로서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이어질 행동이 바로 그 판단의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존재론적 논증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중차대한 과학적 진리를 주장한 갈릴레이는 그 진리 때문에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그것을 미련 없이 포기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잘한 일이다. 그 진리라는 것이 화형까지 무릅쓸 만한 가치는 없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돌든, 태양이 지구의 주위를 돌든 그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는 것이다. 반면에 내가 알기로는, 인생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여 그 때문에 죽는 사람들은 많다. 또 다른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에게 삶의 이유를 부여해 주는 이념이나 환상들 때문에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우리가 삶의 이유라고 부르는 것이 죽어야 할 멋진 이유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삶의 의미라는 것이야말로 가장 절박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15~16쪽
카뮈의 <시지프 신화> 는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 이렇게 3개의 큰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첫 번째 챕터 '부조리의 추론'의 처음 장인 '부조리와 자살'은 위의 문장들로 시작한다.
정말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바로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으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 책을 시작하는 첫 문단은 언제 읽어도 빨려들 듯 몰입감이 대단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마치 멜로드라마에서처럼, 하나의 고백이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삶을 감당할 수 없다거나, 삶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유추를 너무 멀리까지 밀고 나가지는 말고 쉬운 말로 되돌아와 보자. 그것은 그저 삶이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물론,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삶이 요구하는 행위들을 우리가 계속하는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습관이다.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러한 습관의 하찮음, 삶의 심오한 의미의 전적인 부재, 부산스러운 일상의 어이없음, 고통의 무용함을 본능적으로나마 알아차렸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수면마저 박탈해 버리는 이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일까? 18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