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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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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지 공원의 고양이

어제는 날이 선선해져서 모처럼 유수지공원에 산책을 나갔는데, 공원 입구 계단에서 어미고양이와 아기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아기고양이는 모든 게 신기한 듯 이리저리 뛰어다녔고 어미는 혹시나 위협이 없는지 사방을 경계하고 있었어요. 공원을 걷다가 바람에 봄날 벚꽃처럼 떨어지는 나뭇잎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오늘 종일 비가 내려서 유수지공원이 물에 잠겼습니다. 유수지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으면 ‘홍수 때에 하천의 수량을 조절하는 천연 또는 인공의 저수지’라고 나오네요. 저 공간의 첫째 목적은 홍수 방지니까 건설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한 것이지요. 둘째 목적인 공원 역할은 첫째 목적을 위해 미뤄질 수 있는 거고요. 고양이들의 보금자리는 애초에 건설 목적에 포함되지도 않겠지요.


어렸을 때 양희은의 ‘아름다운 것들’이라는 노래를 좋아했습니다. ‘엄마 잃고 다리도 없는 가엷은 작은 새는 /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면 어디로 가야 하나 / 바람아 너는 알고 있나 비야 네가 알고 있나 / 무엇이 이 숲속에서 이들을 데려갈까.’ 곡도 좋았지만 가사도 좋았는데, 어른이 되어 원곡인 스코틀랜드 민요의 가사를 접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별로 서정적이지 않더라고요.


어미고양이와 아기고양이는 어디로 갔을지 궁금합니다.

오늘의 주인공

이 그림의 제목이 왜 ‘오늘의 주인공’인지, 그림 속 인물들 중 누가 주인공인지, 금방 파악하셨나요? 저는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양성자센터로 가는 병원 복도에 걸려 있는 그림이에요. 상상주아 작가님은 멀리서 삶을 바라보면 누구나 공평하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셨다고 적어주셨네요. ‘인기없는 번데기 부스’와 ‘외로운 피크닉’ 그림도 재미있지요?


‘주인공이 된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거꾸로 ‘우리는 불운을 통해서도 주인공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드네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신가요? 저는 병에 걸리면서 오히려 삶에 충실해지고 더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저는 방사선치료 30회를 모두 마쳤습니다. 방사선으로 암세포 발생을 억제한다니, 그러면 계속 방사선을 맞으면 뇌종양 재발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한 인간이 평생 쐴 수 있는 방사선의 한계가 있다네요. 큰 부작용 없이, 주인공답게 방사선 치료를 무사히 마친 걸 축하해주세요!

일요일 저녁에는

일요일 저녁은 ‘약 달력’에 약을 넣는 시간입니다. 여러 종류의 약을 서로 다른 시간에 복용해야 하는 분들께는 강력 추천하는 아이템이에요. 내가 이 약을 먹었던가, 안 먹었던가 하고 헷갈릴 때 있잖아요. 약 달력이 있으면 투약 실수 걱정 끝!


저는 요즘 네 종류의 약을 먹고 있는데, 사진에는 세 종류만 나왔네요. 처음에는 항암 코디네이터의 설명을 듣고 잘 이해가 되지 않아 ‘무슨 약을 언제 어떻게 먹으라는 거야’ 하고 걱정했는데 요즘은 약 달력 덕분에 척척 잘 먹습니다.


식탁에 앉아 약 달력에 약을 넣고 있으면 마약상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듭니다. 요즘 암사동 쪽 움직임이 심상치 않던데... 자양동 녀석들이 보내오는 약 순도도 많이 떨어진 거 같고 말이죠... ㅎㅎㅎ

당신의 삶의 마무리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당신의 삶의 마무리를 생각해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아침마다 가는 방사선치료실 입구에는 저런 책자가 놓여 있습니다. 사실 저 책자는 제가 병원에서 들르는 곳들-방사선치료실, 신경외과 진료대기실, 양성자센터, 암병동-에 모두 놓여 있어요. 김영민 교수님은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저는 아무튼 저 책자 덕분에 아침마다 삶의 마무리에 대한 질문을 마주합니다. 문제는 질문은 매일 만나는데 답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참으로 중요한 질문인데 너무 자주 마주하다 보니 오히려 심드렁해지는 부작용마저 생긴 것 같습니다(책자는 사전연명의향서 등록과 상담을 안내하는 내용인데 저희 부부는 의향서는 이미 몇 년 전에 제출했어요).


굿즈의 시대라 방사선치료 굿즈도 있어요. 사전연명의향서 상담 책자와 함께 올려봅니다. 지그소 퍼즐 속 환자들은 방사선치료를 받으러 가는 복도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도 다른 환자 분들이랑 복도에서 저렇게 인사를 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이 듭니다. 굿모닝, 좋은 항암되세요! 오늘따라 양성자가 아주 시원하네요! ㅎㅎㅎ


#사전연명의향서 #방사선치료굿즈 #농담아니라정말하이파이브해보고싶어요 #모두화이팅 #아침에는하이파이브를하는게좋다

아파트 단지의 헬스장

아침 저녁으로 집 근처 공원 트랙을 돌며(산책 아니에요 ㅎㅎㅎ) 재활운동을 했는데 이제는 도저히 그럴 수 없겠더라고요. 내가 왜 찜질방에서 경보를 하는 거지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파트단지 지하에 있는 헬스장에 등록했어요. 여기 트레드밀 위에서 빠르게 걷고 거울 앞에서 체조를 합니다. 처음부터 헬스장으로 지어진 공간은 아닌 것 같죠? 운영업체가 따로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에 손을 뗐고, 이후에 단지 헬스동호회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하시네요.


조금 낡았지만 집에서 가깝고 이용자도 적어서 저는 좋아요. 병실 생활을 하면 아침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데(새벽 5시 반부터 검사를 이것저것 받아요) 덕분에 헬스장 문을 여는 사람이 제가 됐네요. 두꺼비집을 올리면 껌껌한 지하실에 왁자지껄하게 사람들 목소리, 웃음소리가 울려퍼져요. 실내 조명은 꺼져 있는데 트레드밀 여러 대의 TV가 켜지면서 토크 프로그램 패널들이 떠드는 소리가 나오는 거죠. 귀신들이 내는 소리 같아서 은근히 스릴 있어요.


새벽에 저희 부부가 전세 내고 쓰니까 음악을 원하는 대로 마음껏 틀 수 있어서 좋네요.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오랜만에 틀었는데 왠지 점점 더워지는 것 같아 다음 곡은 겨울왕국 OST 중에서 골랐습니다. '러브 이즈 언 오픈 도어'. 산타나의 '더 게임 오브 러브'를 들으며 짧게 춤을 추기도 했어요. 시계는 저의 남은 시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진을 찍은 건 아니고, 그냥 디자인이 예스러워서 렌즈에 담아 보았습니다. 옛날 시계는 저렇게 로마자로 숫자를 표시한 게 많았어요. 어쩌면 저 시계는 저랑 나이가 비슷할지도 모르겠네요. 모두 시원하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양성자 치료센터의 희망나무

일주일에 한 번씩 양성자치료센터에서 진료를 받아요. 제가 쐬는 방사선이 양성자인지 다른 입자인지조차 모르지만, ‘프로톤 세라피 센터’라고 하니 왠지 웅장하게 들려서 좋아요. 양성자치료센터는 인테리어도 병원의 다른 구역과 달리 좀 웅장한 느낌이랍니다.


웅장해진 기분으로 센터 입구에 들어서면 ‘희망나무’가 방문자들을 반깁니다. 가로로 자른 나무 모양을 한 접시에 환자와 환자 가족들이 적은 메시지가 있습니다. 진료 순서를 기다리며 그 메시지들을 읽는데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문장도 있고, 울컥하게 되는 메시지도 있어요. 자기 가족이 아닌 방문자들의 행복을 빌어준 분은 누구일까 궁금하기도 하고요. 병원이 어쩔 수 없이 무섭고 삭막한 장소일수밖에 없는데 이 나무 덕분에 밝고 뭉클한 생각을 해봅니다. 감사해요. 양성자치료센터, 센스 짱!

물결위에서

추위를 못 견디는 체질로 태어난 저는 늘 하와이나 캘리포니아에 가보고 싶었어요. 거기서 살고 싶었죠. 한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앞으로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뇌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기압 변화는 좋지 않아 장시간 비행기 탑승이 바람직하지 않거든요.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는 항공사도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체력도 온전치 않은 상태이고, 진료 받는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는 일도 부담스럽네요.


제가 치료를 받는 삼성서울병원에는 암병동과 별관 사이 복도에 작은 갤러리가 있고, 전시하는 그림도 정기적으로 바뀌어요. 와이키키 해변을 담은 예쁜 그림 앞에서 한참 구경하다가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조은혜 artist.eunhye 작가님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덕분에 암병동 가는 길에 눈으로나마 하와이 해변을 즐겼습니다.


전시회 이름은 ‘물결위에서’라고 하네요. 그림 앞에서 인터뷰하시는 젊은 작가님이 계셨는데 그 분이 조은혜 작가님이었나 봐요. 그림엽서도 들고 갈 수 있게 해주셔서 한 장 들고 왔어요. 방에 모셔두고 하와이 생각날 때마다 볼게요. 감사합니다.

석촌호수 근처 에어비앤비

낡은 집에 살다 보니 한 달 새 단수를 세 번째 겪네요. 24시간 동안 물이 안 나온다고 해서 에어비앤비로 도심 숙소를 잡고 도망왔습니다. 복층 공간에 작은 서재가 있었고, 제목이 끌리는 책이 있었어요. 그 책을 펼쳤더니 나오는 건 어슐러 르귄의 문장.


삶이 가능한 이유는 오로지 끝나지 않는,
참을 수 없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어둠의 왼손> 중에서



삶이 가능한 건 불확실성 때문이라고요. 제 병과 단수 덕분에 제 삶이 가능해지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요즘 제가 인생과 탱고를 춘다는 생각은 해요.


낙상예방 안전 수칙

방사선치료실에서 매일 마주하는 문구입니다. 꼭 혼자 걷는 게 좋은 일만은 아니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요청하는 게 현명할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에게는 침대도 위험한 장소구나 하는 생각도 하고, 보호자 없이 방사선치료실에 와야 하는 분들의 심정도 헤아려봅니다.


#항암일지 #그믐 #김새섬 #방사선치료실 #낙상예방

우리는 함께 읽기를 모른다

1. 독서 모임을 만들 때 모임을 이끌 모임지기를 구하는 것은 참여 멤버를 구하는 것보다 (   )배 어렵다.


2. 책의 두께가 2배로 증가하면 그 책을 함께 읽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의 수는 (   )분의 1로 감소한다/[혹은] (     )배로 증가한다.


3. 다음 중 독서 모임을 가장 잘 이끌 사람은?

① 그 책을 쓴 사람

② 그 책을 만든 사람

③ 동네서점 주인

④ 도서관 사서

⑤ 학교 선생님

⑥ 일반 독자


4. 독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                                                    )


2022년에 나는 저 문제들의 답을 전혀 알지 못했다. 온라인 독서 모임 플랫폼 ‘그믐’을 만들고 나서 2년 반 동안 한 문제 한 문제 천천히 풀이법을 배웠다(울면서). 지금도 내가 적어낸 답안이 아주 정확한 정답인지는 자신 없다. 하지만 그믐에서 2,100개가 넘는 독서 모임이 생기고, 1만 5,000명 회원의 글 19만 건을 지켜보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했으니, 어떤 감각은 있다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먼저 1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약 0.25배 어렵다’이다. 다시 말해 어떤 책을 읽자고 제안하는 사람을 찾는 건 의외로 그리 어렵지 않다. 그 제안에 따라서 책을 읽을 사람을 구하는 게 그보다 4배가량 어렵다. 이 문제를 풀기 어려운 것은 그믐처럼 누구나 모임지기가 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 이전에 없었기 때문이다.

트레바리나 독파와 같은 독서 커뮤니티에서는 운영 주체인 플랫폼이 모임지기를 먼저 구하고, 그 다음에 모임지기와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을 모집한다. 모임지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작가나 문화계 안팎의 유명 인사들이다. 대체로 모임지기의 인지도가 높을수록 참가 희망자의 수도 늘어난다. 플랫폼의 성공이 ‘얼마나 영향력 있는 모임지기를 구하느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고, 실제로 이들 플랫폼은 모임지기 섭외에 대단한 정성을 쏟는다.

나는 그믐을 창업하기 전 트레바리 모임에 참여하며 독서 커뮤니티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도 살폈고, 트레바리 윤수영 대표로부터 직접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서 커뮤니티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모임지기라고 생각했다. 오픈형 플랫폼을 구상하면서 나의 가장 큰 걱정은 ‘트레바리처럼 수익을 제공하는 게 아닌데도 과연 모임지기로 나서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베타테스트를 석 달 남짓 하는 동안 모임지기를 맡아줄 사람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모임 한 건당 얼마가 적당할지 잘 몰라 사람들에게 물으며 알맞은 비용을 찾아갔다. 그런데 베타테스트가 끝나기 전 누군가 자발적으로 모임을 열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아 지인이 장난치는 줄 알았다. 그 첫 외부 모임지기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이후에도 모임지기로 나서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독서가들 사이에는 동네서점 개업에 대한 로망만큼이나 자기가 운영하는 북클럽에 대한 로망도 은근히 있는 것 같다.

정작 함께 책을 읽을 사람을 모으는 게 더 어려웠다. 진지한 독서가들은 놀라울 정도로 쿠폰 제공 같은 이벤트에 반응하지 않는다. SNS에서 커피 쿠폰을 뿌려서 가입시킨 회원들은 대부분 진지한 독서가가 아니라는 의미다. 독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스타트업들이 초기에 빠르게 회원을 모았다가 그만큼 빠르게 몰락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커피 쿠폰으로 가입시킨 회원들은 커피 쿠폰이 사라지면 떠나며, 커피 쿠폰을 받는 동안에도 진지하게 책 얘기를 하지는 않는다.

그믐은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더디게, 정공법으로 진지한 독자들을 회원으로 모았다. 회원 수 1만 명이 넘었을 때 즈음 그믐에서 독서 모임을 연 한 대형 출판사 마케터로부터 “이런 ‘고급 독자’들을 어떻게 모으신 거예요?” 하는 질문을 받았다. 우리 사이트에 진지한 독자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 하는 자부심도 느꼈고, 이런 회원을 모으는 건 큰 출판사에도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생각을 함께 했다.

다음 2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1.5-~2배로 증가한다’이다. 얇고 가벼운 책을 읽자고 하면 사람이 더 모이지 않겠느냐고? 커피 쿠폰으로 유혹할 수 없는 진지한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말로도 유혹할 수 없다. ‘신상품(신간)’이라는 말에도 그들은 시큰둥하다. ‘이 책으로 과연 멤버를 몇 명이나 모을 수 있을까’ 싶었던 두껍고 어려운 책들을 읽겠다고 손을 드는 이들이 오히려 많았다.

실제로 그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임 중 하나가 ‘벽돌책 읽기 모임’이다. 강양구 지식 큐레이터가 진행하는 이 모임은 지금 21회째인데, 현재 셰익스피어의 인생과 작품을 다룬 696쪽짜리 논픽션 『세계를 향한 의지』를 49명이 함께, 활발히 읽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 23일 동안 올라온 감상은 모두 1,625건. 출판사들이 운영하는 서평단처럼 책을 무료로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다 읽었다고 따로 보상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오프라인 뒤풀이도 없다. 그런데도 늘 열기가 뜨겁다. 지난해 1,040쪽짜리 과학 교양서 『행동』을 읽을 때에는 61명이 참여해 29일 동안 2,107건의 감상을 남겼다. 나는 이런 독서 모임은 그믐 외에 다른 곳에서 본 적이 없다.

이전에 이런 독서 모임을 못 봤기 때문에, 나는 오해를 했다. 그리고 나처럼 오해를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독서 장려’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대체로 ‘책을 읽지 않는 잠재 독자’를 향해 있다. 그러다 보니 읽기 어려운 책보다 쉬운 책을 권하고, 독서에 대한 보상을 강조한다. 가볍고 얇은 책이라도 안 읽는 것보다는 읽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잠재 독자가 아닌 ‘찐독자’들에게 가장 큰 보상은 독서 그 자체다. 그들을 유혹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책’이지, ‘가벼운 책’이 아니다. 물론 그들에게도 두껍고 어려운 책은 읽기 버겁고, 그래서 ‘함께 읽자’는 권유가 더 먹히는 것 같다.

다음 3번 문제. 그믐에서의 정답은 ① 그 책을 쓴 사람, 그리고 ② 그 책을 만든 사람이다. 복수 정답이다. 작가들은 모임을 정말 잘 이끈다. 자기 책을 읽는 모임에 한해서만큼은 매우 열정적이며, 독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오프라인에서는 내성적으로 보이던 작가가 온라인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는 모습에 놀란 적이 여러 번 있다. 『아카식』의 해원 작가는 SF 장르에 상당한 내공을 갖추었다. 실시간으로 독자와 채팅하는 그믐 라이브 챗에서 그가 들려준 타임머신 이야기는 꽤나 감동적이었다. 이처럼 상당수 작가들이 독자들의 진심 어린 반응에 감격하는 것 같다. 특히 신인 작가는 더 그렇다.

『둔촌주공아파트, 대단지의 생애』를 쓴 이인규 작가는 직접 팟캐스트 <스몰포켓>에 출연하여 그믐을 언급하기도 했 하였다. “같이 책을 읽는 그믐이라는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어나가고 있거든요,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이제 살 것 같아요. 책 내고 한 달 정도는 조금 약간 불행한 느낌이었어요. 그전까지는 내가 애써서 한 게... 아무 소용이 없는 책을 쓴 건 아닐까 약간 그런 생각이 많이 들던 시간이었습니다. 여러분, (저는) 후기 정말 사랑해요.”

『에이징 솔로』의 김희경 저자 역시 자신의 책을 읽는 그믐 모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가 기고한 글의 일부다. “나는 이 토론의 링크를 저장해 두고 지금도 가끔 들어가서 책을 함께 읽은 분들이 올린 토론을 읽어보고는 한다. 삶의 다양한 과정을 통과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읽는’ 것의 정수를 경험했던 시·공간이었고, 작가가 책을 세상으로 내보낸 뒤에는 책이 자신만의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독자들과 만나며 작가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을 절감했다.”

출판계 편집자, 마케터들도 독서 모임을 활발히 이끈다. 제한된 마케팅 예산을 가진 출판사들이 흔히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는 온라인 서평단 운영이다. 이러한 서평단은 대개 정형화된 패턴을 따른다. 1.온라인 서점에 리뷰 게시하기, 2.개인 SNS에 서평 올리기. 

그믐은 책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 모이는 공간이기에, 잠재 독자층과 소통하고 싶은 출판사들이 자연스럽게 찾아온다. 전통적인 온라인 서평은 본래 책을 완독하지 않고도 품질을 가늠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었으나, ChatGPT 등장 이후 천편일률적인 내용으로 독자들의 신뢰를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와 달리 그믐은 독서 모임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더욱 생동감 있고 진정성 있는 책 대화의 장을 펼쳐낸다. 참여자 입장에서는 서평단이 더 간단하고 할 일이 적지만 우연찮게 서평단과 독서 모임이 함께 올라오면 단연코 독서 모임을 하겠다는 참여자가 더 많다.

동네서점도 상당히 적극적인데, 자신의 브랜드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 때문인 듯하다. 다만 아무래도 물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비즈니스이기에 전국적 인지도보다는 실제 방문객이 매출로 이어지는 오프라인 모임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 반면 도서관이나 학교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담당자마다 모임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책 이야기에 열의를 쏟는 사람과 업무 지시 때문에 마지못해 모임지기를 맡은 사람이 운영하는 모임 분위기가 같을 리 없다.

일반 독자가 운영하는 모임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다. 성실하게 모임을 운영해 신뢰를 쌓아 이제는 쉽게 다른 참여자를 모으는 모임지기도 있지만,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고 중도에 포기하거나 책임감 없이 모임을 종료하는 이도 있다.

마지막 4번 문제. 그믐에서건, 다른 독서 모임에서건 정답은 ‘자기 이야기’다.

그믐을 시작하기 전, 나는 다양한 독서 모임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전문가의 정교한 작품 해설보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참가자들의 눈빛은 달라진다. 문학 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여러 책이나 강연에서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생각과 감정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은 일상에서 찾기 어렵다. 

'그믐밤'이라는 오프라인 행사를 매월 진행하기에 참여하는 강사들이 종종 조언을 구한다. 34회 강사였던 정윤지 피아니스트에게 내가 유일하게 부탁한 것은 참가자 모두가 돌아가며 충분히 이야기할 기회를 갖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35회를 이끄는 정명섭 작가에게도 서울 서촌 문학 답사 후 실내에 모여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자고 요청했다. 답사 후 그대로 거리에서 헤어질 수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독서 모임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교류하는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때 비로소 참가자들은 자신이 이 모임에 참여한 진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내가 '그믐'을 만든 이유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연뮤클럽'처럼 원작을 먼저 읽고 함께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한 후, 들뜬 마음으로 뒤풀이 자리에 모여 맥주 한 잔과 함께 나누는 공연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

그믐은 온라인 공간이다. 모든 대화는 전부 공개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할지 걱정스러웠다. 초기 그믐의 대화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줄거리 나눔조차 허덕였다. 역시나 공개된 공간에서 사람들은 속 깊은 얘기를 나누기 꺼리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 날, 한 모임에서 참가자가 큰 아이의 자해로 병원에 가느라 책을 읽지 못했다는 글을 남긴 것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사정을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 모임에 털어놓는 모습이 반가웠고 사람들이 이 공간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요즘 나의 고민은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이다. 그믐이 어떻게 지속 가능한 단체로 성장할 수 있을까? 그믐을 앞으로 어떻게 더 널리 알릴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이 나의 머리를 맴돌고 있다. 


김새섬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우리 사회에 좀 더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2022년 9월, 느슨한 연대를 표방하는 온라인 북클럽 플랫폼 ‘그믐’을 열었다. 책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잇다 보면 밀도 높은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혼자서는 독서가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 함께 읽는 재미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에게 기꺼이 손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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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양각색! 앤솔로지의 매력!
[그믐앤솔러지클럽] 1. [책증정] 무모하고 맹렬한 처음 이야기, 『처음이라는 도파민』[그믐미술클럽 혹은 앤솔러지클럽_베타 버전] [책증정] 마티스와 스릴러의 결합이라니?![책나눔]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을 때, 시간을 걷는 도시 《소설 목포》 함께 읽어요. [장르적 장르읽기] 5. <로맨스 도파민>으로 연애 세포 깨워보기[박소해의 장르살롱] 20. <고딕X호러X제주>로 혼저 옵서예[그믐앤솔러지클럽] 2. [책증정] 6인 6색 신개념 고전 호러 『귀신새 우는 소리』
과학의 언어로 인간의 마음을 탐구하는 작가, 김초엽
[라비북클럽] 김초엽작가의 최신 소설집 양면의 조개껍데기 같이 한번 읽어보아요[다정한 책방] '한국작가들' 함께 읽기5탄.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_김초엽[문풍북클럽] 뒷BOOK읽기 : 8월의 책 <지구끝의 온실>, 김초엽, 자이언트북스방금 떠나온 세계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레슨!
[도서 증정] 『안정감 수업』 함께 읽으며 마음을 나눠요!🥰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자기계발 수업》 온라인 독서모임
한국의 마키아벨리, 그의 서평 모음!
AI의 역사한국의 미래릴케의 로댕최소한의 지리도둑 신부 1
🎬 우리가 사랑한 영화 감독들
[책나눔] <고양이를 부탁해><말하는 건축가> 정재은 감독 에세이『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메가박스 왕가위 감독 기획전 기념... 왕가위 감독 수다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함께 이야기 나눠요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와 함께해요![아티초크/책증정] 윌리엄 해즐릿 신간 『왜 먼 것이 좋아 보이는가』 서평단&북클럽 모집[아티초크/책증정] 장강명 작가 추천! 해즐릿의 『혐오의 즐거움에 관하여』와 함께해요.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축하합니다!
[밀리의 서재로 📙 읽기] 31. 사탄탱고[이 계절의 소설_봄] 『벵크하임 남작의 귀향』 함께 읽기(신간읽기클럽 )1. 세계는 계속된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공룡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기로!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27. <경이로운 생존자들>[밀리의 서재로 📙 읽기] 10. 공룡의 이동경로💀《화석맨》 가제본 함께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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