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마침내 읽은 힐링 스페이스물 (이런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 원조! 불편한 편의점. 베스트셀러를 읽을 때는 원래 그리 너그럽지 않은 편인데 (남들이 많이 좋아해 줬으니 굳이 나까지 라는 심술 발동) 이 책은 읽으면서 마음이 한없이 몰랑몰랑해졌다.
오래된 친구의 미소처럼 낯선 동네에서 더욱 반갑게 다가오던 편의점 불빛들, 얄팍한 주머니 사정에도 이것저것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선사해준 진열대, 눈치 보지 않고 언 몸을 녹일 수 있었던 구석 자리 작은 테이블.
편의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인데 앞으로는 <불편한 편의점>도 그 기억 한 켠에 정답게 자리할 것 같다.


남편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신과 진료를 갈 때 동반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처음에 같이 가자고 해서 그때부터 거의 매번 함께 가고 있다. 의사 선생님이 내 상담은 옆에서 공짜로(?) ㅎㅎ 조금 해 주기도 하시고 우리 부부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신다. 그제는 의사 선생님이 "자랑할 일이 있으면 자랑 많이 하세요. 좋은 거에요." 라고 하셨다. 나는 옛날 사람이라 겸손이 미덕이라고 배워 뭔가 자랑하는 것이 낯 뜨겁고 어색하다. 실제로 자랑할 일이 별로 없기도 하고.
하지만! 요 며칠 우연치 않게 선물을 받게 되어 본격적인 자랑 타임을 가져본다. (사족이 길구먼)
1.조영주 작가님이 주신 도장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모름) 그믐을 시작하고 나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마이 네임 이즈 김새섬. 유 노?
작가님이 도장을 선물로 주셨다. 옛날 이름으로는 도장이 몇 개나 있지만 새로운 이름이 새겨진 도장은 처음이다.
선물 상자에 붙은 테이프 문구부터 예사롭지 않다. 겸손 1번에 자랑 10번. 네.자랑할게요!!
파란 천으로 만든 고운 도장집에 바깥에 '그믐'이라 쓰여있는 까만 도장은 손에 쥐어보니 그립감도 좋다. 테스트로 흰 종이에 찍어보고 소리 질렀다. 이건 정말 너무 예쁘잖아! 선물이라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밖에 모르는 나는 이런 센스쟁이들이 너무 부럽고 고맙다.
2.하정 작가님이 주신 레몬 갈갈이
처음 받고 이것은 다진 마늘인가 싶었는데 아니고 제주 유기농 레몬이다. 씨앗과 꼭지만 제거하고, 진공블랜더로 레몬을 통째로 갈아 만든 이름도 재미있는 레몬 갈갈이. (레몬 외 아무것도 안 넣었다고 하심.)
먹기도 전에 눈과 혀가 먼저 반응한다. 상큼한 봄의 기운이 물씬. 궁금증에 일단 한 스푼을 살짝 맛 보았는데 쓰지도 않고 상콤하니 너무 맛있어서 정신줄 놓고 숟가락으로 막 퍼먹었다. 투게더도 아니고 이러다 한 통 다 먹을 것 같아 일단 멈추고 집에 있는 꿀을 함께 넣어 따뜻한 레몬차를 만들었는데 너무 향기롭다. 맛도 맛이지만 그 정성이 너무 고맙다.
3.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이 주신 에코백과 책
그렇다. 나는 서점 주인에게 염치없이 책을 선물로 받는 사람이다. 책을 수십 권을 사도 모자란 판국에 책방지기에게 책을 선물로 받다니. 그믐에서 고전읽기 모임을 하고 싶어 계획 중이라는 이야기에 선뜻 옆에 있는 덴마크 큐레이션 서가에서 '햄릿'을 선물로 주셨다. 노린 거 아니고 그냥 말씀드린 건데! 마침 그 옆에 햄릿이 있었을 뿐이고! (믿어주세요T.T)
에코백은 붉은 컬러도 쨍하니 예쁘지만 거기에 쓰인 글귀가 너무 좋다. Arbeidsglaede '일터의 행복'이란 덴마크 단어라고 한다. '일터의 행복'이라니 이 무슨 '뜨끈한 팥빙수' 같은 소리요 .정말이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일이 괴롭기만 할 이유는 없다.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장소에서 작은 기쁨과 소소한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멋진 단어가 새겨진 넉넉한 사이즈의 에코백. 감사합니다!


3월 9일, 봄이라곤 하지만 아직은 쌀쌀한 토요일. 은평구의 동네책방 수북강녕에서 20회 그믐밤이 열렸습니다. 저마다 이른 봄을 맞으시려는지 지하철이며 거리가 생각보다 많은 인파로 북적이더군요.
하정 작가님은 이미 도착하셔서 전시 물품 디스플레이에 한창이셨습니다. 무얼 도와드려야 좋을지 모르는 저는 방해가 될까 뒤에서 사진 몇 컷을 찰칵이며 찍었어요. 작가님 손길이 닿자 수북강녕의 서가는 눈 깜짝할 사이에 하우스 갤러리로 변신.
책에서 눈으로만 본 물품들이 제 눈앞에 있으니 신기하더군요. 사진으로 볼 때는 실제 사이즈를 가늠할 순 없었는데요 실물로 보고 요모조모 만져보니 더욱 친숙해졌어요.
그 사이 수북강녕 책방지기님은 덴마크 오픈샌드위치를 준비해 주셨어요. 호밀빵에 버터와 치즈, 홀스래디쉬 소스를 바른 후, 올리브와 토마토 슬라이스, 초리조와 살라미, 각종 잎채소까지 올려 먹는 덴마크 오픈 샌드위치는 든든하면서도 맛났어요. 저는 베트남에서 사 온 과자와 노니차를 준비했습니다.
북토크는 7시 29분 시작이지만 참석자분들은 일찍부터 오셔서 책방과 전시를 꼼꼼히 둘러보셨습니다. 그믐에서 아이디로만 만났던 이들을 직접 뵙는 것은 언제나처럼 반갑고 설레는 그믐밤의 귀한 순간들입니다.
북토크 시작 전, 전시 서가에서 하정 작가님으로부터 설명을 듣는 짤막한 도슨트 타임도 가졌고요, 이후 복층으로 올라가서 본격적인 북토크를 함께 했습니다. 작가님의 차분한 음성으로 조용히 그러나 힘 있게 들려주시는 솔직하고도 진솔한 이야기에 모두가 푹 빠져 북토크는 예정된 1시간 29분을 조금 넘겼어요.
책 속의 귀한 물건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온라인 모임의 다정한 참가자들을 제 눈으로 직접 보고. 😊
3월 9일 어느 그믐날, 우리는 그렇게 만났습니다. 🌷


3월 4일자 동아일보 "내가 만난 명문장" 코너에 개브리얼 제빈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