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책은 지루하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 한 번만 읽어보세요 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
전자책으로 총 몇 페이지인줄도 모르고 읽기를 시작해서 3일간 정신없이 손가락을 옆으로 슬라이딩하다 보니 끝났다. 인터넷 서점의 도서 정보를 찾아보니 452페이지라고. 워낙 재미있어서 질주하듯 읽다 보면 남겨진 페이지가 쑥쑥 줄어든다.
공항 라운지바에서 비행기의 탑승을 기다리며 낯 모르는 이를 만나 자신이 죽이고 싶은 사람에 관해 털어놓는다는 초반 설정은 어쩔 수 없이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교차살인으로 서로의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는 뻔한 방식으로 전개되지는 않는다.
잘 짜여진 스릴러지만 군데군데 조금 이해가 안 되는 설정들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아내를 죽이고 싶어하는 억만장자 테드는 비행기의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여주인공 릴리는 평범한 학교의 교직원인데 비즈니스 클래스 탑승이 자연스러운가 하는 점들. 그래서 앞 부분에 릴리와 테드의 만남이 절대 우연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외모보다도 비범할 정도의 초연함과 윈슬로의 숲에서 책에 둘러싸여 사는 생활 방식이 더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혼자서 쓸쓸하게 살아갈까? 아니면 살면서 다른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별종일까?


이 소설 직전에 읽은 일본 미스터리가 <어두운 범람>이었는데 둘의 제목이 너무 헷갈린다. <어두운 범람>과 <열린 어둠> 기묘하게 대칭으로 닮았는데 둘 다 뒤돌아서면 제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범람>이 ‘일상’ 느낌이라면 <열린 어둠>은 조금 더 뒤틀렸고 느아르 풍이다. 야쿠자, 형사, 뒷골목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짧지 않은 단편 9개가 실려 있어 팬들에게는 꽤 선물 같은 단편집일 듯.
‘대역’ ‘열린 어둠’ 같은 작품은 무리수를 너무 심하게 두었다. 대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인지 찾아보게 만들 정도로 작품내에서 과학수사가 무시되고 있다. ‘과거에서 온 목소리’ ‘베이 시티에서 죽다’ 등 절반 정도는 재미있게 읽었고 나머지 절반은 다소 실망스럽다.


열여섯 번째 그믐밤은 다시 정겨운 수북강녕입니다. 처음 은평구 한옥마을을 찾았을 때만 해도 여기가 어딜까? 운치 있지만 모두가 비슷해 보였던 낯선 한옥집들 사이 조금은 어리둥절했는데요, 이제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척척 찾아갑니다. 버스에서는 @스마일씨 님을 우연히 만나 정답게 수다를 떨며 책방으로 향했어요. 나름대로 그믐밤 시작하기 전 여유있게 도착했다고 자신했는데 일찌감치 도착하신 @챠우챠우 님과 @동키돈키 님은 이미 재즈를 들으며 책방에서 차분히 책을 읽고 계셨어요.
그믐밤은 저녁 7시 29분에 시작해서 보통 1시간 반 남짓,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는데요, 매번 함께 하는 시간이 짧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믐밤이 끝나고 나면 날이 어두워 집에 돌아가는 교통편 문제로 다들 아쉬운 발걸음을 떼시는데, 이렇게 조금 일찍 오셔서 여유 있게 책방도 구경하고 책도 읽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드라이브 마이 카>가 서점의 흰 벽 한편에 플레이되고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그믐밤을 시작했어요. 각자 언제 하루키를 처음 읽게 되었는지 나누었고요, 자신만의 키워드로 하루키를 표현해 보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하루키는 청춘에 읽어야 다가오는 작가라고 생각했는데요, 의외로 중학생 시절에 접한 분들이 많아 신기했습니다. 또 처음부터 인상적이었다기보다는 나중에 우연한 기회로 하루키를 다시 읽고 그에게 빠진 분들도 계셨구요.
그 시절 하루키로 대표되었던 쿨함, 혹은 허세, 개인주의의 등장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 작가의 꾸준한 활동들, 닮고 싶은 인생 선배로서의 하루키, 마초적이지 않은 현대 남성, 자기 취향에 대한 고집과 성실함, 하루키는 담배 연기다 등등 여러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2부에서는 각자가 꼽는 하루키 베스트를 나누기도 했는데요, 겹치는 작품이 하나도 없어 다시 한 번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에 놀라기도 했어요.
보통의 독서모임에 비해 남성 참가자들의 비중이 높은 것, 70세가 넘는 작가지만 요즘 젊은 세대에서도 여전히 새롭게 발견되고 읽힌다는 점들을 통해서도 그가 대중들로부터 받는 사랑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믐도 하루키처럼 사랑받는 존재가 되면 좋겠다는 질투심 섞인 마음이 들었던 멋진 그믐밤이었습니다.
하루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며! 열 여섯 번째 그믐밤에 참여해 하루키적인 모먼트를 선물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살인곰 책방 MURDER BEAR BOOKSHOP’ 하무라 아키라 탐정 시리즈의 작가 와카타케 나나미 의 단편집. 제목이 언뜻 내비치듯 코지 미스터리는 아니다. 모든 단편마다 한 사람 이상씩 사람이 죽는다. 뒤틀린 인물들의 악의가 작중 대놓고 혹은 끝 반전으로 계속 등장한다. 분위기는 조금 어둡고 약간 쓸쓸하다.
작품들은 최고다 라고 하기엔 2%씩 부족하지만 나는 이 작가가 왠지 사랑스럽다. 미스터리 소설가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런 말을 들으면 반기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작가 후기도 참으로 귀엽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세상에는 똥 더미를 파냈더니 밑에서 더 지독한 똥 덩어리가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광취> 중에서


생각이 필요한 일들이 있는데 집에만 있자니 별 다른 아이디어가 없어 밖에 나가 조금 걷기로 했다. 걷기가 생각 정리에 좋다고 어디선가 듣기도 했다.
11월 답지 않게 날이 따뜻해서 가볍게 나셨다.
도림천을 걷고 있는데 이어폰으로 듣고 있던 음악 사이로 들리는 생 음악.
누군가 일렉 기타로 존 메이어의 ‘그래비티’를 연주하고 있었다. 홀린 듯이 기타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어떤 밴드가 음악 공연 리허설 중이었다. 알고 보니 오늘은 ‘청춘관악’이라는 테마 아래 관악구에서 지역 축제를 하는 날이라고. 천변 옆 공터에 플리마켓과 각종 공연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관악구 인디뮤지션 오석환과 도토리 밴드의 연주와 노래를 들었다. 도토리 밴드의 무대 배경에 그믐달도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도 찍었다.
별 생각 없이 나왔는데 좋은 음악도 듣고 2시간 정도 걸었다.
특별한 아이디어를 얻진 못했지만 그래도 건강에는 좋은 하루였던 것으로.


운명 같은 13일의 금요일. 진정한 악몽은 뱀파이어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었습니다.
오전에 ‘인스타 해킹’이라는 정말 무서운 일을 겪고 그날 오후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실은 이날 그믐에서 또 다른 북클럽 하나를 야심 차게 시작하려 했는데 유일한 홍보수단인 인스타 계정이 사라지니 북클럽을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 일단은 잠정적으로 연기를 했구요.
그렇지만 그믐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처음 그믐밤 시작할 때 마음이 그랬어요. 한 사람이 오던, 두 사람이 오던, 그믐밤은 계속 되어야 한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그믐달이 뜨는 날엔 함께 책 이야기를 하자.
사계리 서점 근처에 숙소를 잡아놓았기에 숙소 도착 후 바로 짐을 풀고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사계리 서점은 원래 있던 곳에서 이사를 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도착하자마자 ‘두용’이라는 이름의 검은 개가 반가이 맞아줍니다. 처음부터 반가이 맞지는 않고 컹컹 큰 소리로 짖다가 시간이 조금 지나면 언제 경계했냐 싶게 큰 덩치로 엥기는 녀석이에요.
원래는 케이크를 먹으며 두런두런 담소를 나누는 차분한 밤으로 기획이 되었는데요, 장맥주 님의 급 제안으로 책맥데이로 바뀌었네요. 각자 재미있게 읽은 단편들을 이야기하다가 수다는 흘러 흘러 이 날 소개된 작품들만도 엄청납니다. 영화 <엔젤하트> <셔터> <디 아이> <콘스탄틴> <사바하> <곡성> <추격자> <황해> <무빙> 그 밖에 수많은 책들 (모임 책꽂이에 일부 꽂아놓았습니다.) 술이 약한 저는 맥주 3 캔에 해롱해롱, 모임 후반부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다만 함께 해 주신 분들의 덕력이 엄청났다는 그 기억만은 취중에도 뚜렷하고요.
7시 29분에 시작해서 밤 12시가 되어 끝난 그믐밤.
13일의 금요일. 우리들은 무엇엔가에 홀린 게 분명합니다.
함께 해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우리 집엔 TV가 없다. 신혼 초에 ‘프로젝션 TV’ 라 불리던 중고 티브이를 사서 잠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아무리 중고라지만 화질이 너무 안 좋아서 몇 번 못 보고 다시 버렸다. 그 뒤로는 TV 없이 그냥 컴퓨터로 동영상을 보는데 별로 불편한 점은 없다. 불편한 점이 없다고 방금 썼지만 좀 민망하기도 한 것이 나는 TV 가 있는 곳에 가면 무조건 TV 를 틀어놓는다. 예를 들어 부모님 집, 혹은 호텔 방 등. TV는 나에게는 귀한 물건이라 볼 수 있는 동안은 보고싶다는 마음이 크다. 그렇게 귀하면 좀 사면 되잖아 싶긴 하지만 또 그렇게까지 귀하지는 않다. 흠.
제주 출장 동안 여러 숙소에 묵었다. 대부분이 5,6만원 안팎의 저렴한 곳이었는데 모두 마음에 들었다. 방은 조용했고 필요한 정도로 깔끔했다. (청결에 관한 기준이 높은 편은 아님) 모든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제공되었으며 더 놀라운 것은 넷플릭스가 전부 기본으로 TV 에 연결되어 있었다. 예전엔 몇몇 모텔에서 ‘넷플릭스 룸’이라며 넷플릭스를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걸 자랑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홍보 문구조차 없었다. 넷플릭스는 어느새 대한민국 숙박업소에서 샴푸린스를 잇는 기본템이 되버린 걸까? 대단하다.
숙소에서 처음 본 영화는 배우 소지섭 주연의 <자백>
스릴러 영화 제목이 <자백>이라니 임팩트가 부족하다. 어쨌든 더 이상 일을 하기엔 너무 피곤해서 노트북을 덮고 기대 없이 TV 리모콘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겨울, 아름다운 숲 속 산장에 살인자로 몰리고 있는 소지섭이 있고 내가 니 변호사다 라면서 김윤진이 찾아온다. 반전은 많은 이들이 초반부터 이미 눈치채지 않았을까. 영화는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대로 살아나 영상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딱 일 끝내고 피곤한 밤 호텔에서 보기 좋다라고나 할까. 반전을 알아도 재미있게 봤다. ‘나나’ 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가 소지섭과 불륜을 저지르는 여인으로 나오는데 너무 예뻐서 놀랐다.


커뮤니티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 대화를 하고 창작물을 올리며 소통하는 곳이다.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처음부터 사람들이 저절로 모이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무엇인가가 나온다. 무언가가 있어야 사람들이 모인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잇는 희대의 난제. 이를 '콜드 스타트' 프로블럼이라고 부른다.
내가 유튜브 이야기에서 얻은 중요한 교훈은 모든 네트워크 상품이 가야 하는 여정이다. 처음 시작할 때는 조직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지만 네트워크가 커가면서 (처음에는 편집자, 중재자,사용자),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의해 갈수록 만은 구조가 적용되었다. 초기의 반복 작업은 정교하지 않았다. 단지 어떻게든 마무리는 했을 뿐이다. 알고리즘은 나중에 나왔다. 심지어 몇 년이 지난 후에 나왔다. 네트워크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일상적인 싸움이다.
p. 414
제주 전도에서 발견한 나의 새 이름. 새섬.


지난 금요일은 그믐이었다.
보통 음력 3,4일 경엔 초승달이 뜬다.
하늘에 초승달 이 예쁘게 걸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