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84~85p.
나와 같은 엄마들에게
당신이 꼭 책을 좋아하리라는 법도 없습니다. 내 아이는 책을 좋아하기를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의 독서는 육아서와 요리책이 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자신을 돌볼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남을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남이 더 이상 내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 때가 되면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희미해져 다시 찾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바야흐로 로맨틱 코미디의 시대는 끝난걸까? 철마다 무수히 쏟아져 나오던 그 수많은 로맨틱 코미디들은 어디로 갔을까?
로맨틱 코미디는 두 남녀의 힘의 균형이 포인트다. 둘에게는 맺어지기 어려운 적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적, 사회적, 신체적, 정신적 결합이 최종적으로는 가능해야 한다. 보통 둘의 관계는 아래와 같다.
1. 오랜 친구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해리&샐리)
2. 서로 적대적인 비즈니스 관계, 나는 진보정당 대변인, 당신은 보수정당의 정치인 등 (유브 갓 메일)
3. 수저가 다른 우리들. 왕자님과 나, 재벌 3세와 나 (너무 많아서 언급하지 않겠다.)
4.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 나는 18세 여고생. 당신은 72세 할아버지 (코미디로 만들기가 어렵다. 일단 장르는 둘째치고 작가와 감독의 큰 결심이 필요)
5. 두 유부들의 만남. 왜 우리들은 이렇게 서로를 늦게 만났을까? (역시 코미디로 풀기 어렵다. 치명 격정 멜로 정도로 노선 변경 가능)
이 정도 리스트가 지금 생각나는 정도인데, 이 책의 김범 작가님은 정말 신박하게도 여기에 6번이라는 새로운 후보를 넣으셨다.
6. 오래된 부부사이
허걱! 이렇게 천재적일 수가! 생각해 보니 현대인이 정말 사랑에 빠지기 어려운 대상은 바로 내 남편! 내 아내! 옆에서 내 복장터지는 짓만 수십년째 골라 하고 있는 이 징글징글한 화상아.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간질간질 설레임이 반갑다. 주말엔 역시 소설 한 권!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만 불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그런 황무지였어요
그대가 일궈 놓은 이 마음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따뜻한 바람이 부는
기름진 땅이 되었죠
내 마음은 황무지 / 산울림
꽤 흥행했던 영화인데 늦게 봤다.
아무도 죽지 않고 갈등을 해결하고 미션은 완수하고 사랑을 얻고 오해를 푼다. (설마 이게 스포이려나?)
한 마디로 판타지다. 세상이 꽃밭으로 묘사되는 이런 류의 영화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탑건은 왠지 싫지 않았다. 사실 눈물까지 흘리면서 봤다. ㅎㅎ
왜 흥행이 되었는지도 얼핏 이해가 되었다.
언젠가 파일럿이 없어지는 날이 올거야. 먹고 자고 싸고 명령에도 불복종하는 파일럿들.
책 읽는 사람은 사라지게 될 걸세.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TopGun 그믐 ver.)


오랜만에 하루키를 읽었다. 나 원래 하루키 참 좋아했는데...
내가 변한건지 아니면 하루키가 변한건지...라고 하기엔 이 작품은 92년 작이니 변한 하루키를 만날 수 있는 작품은 아니고 오히려 그의 원형에 가깝다.
책의 주제는 명료한 편이라 작가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전달은 잘 된다.
어린 시절 사랑의 원형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남자 주인공 하지메 (이름부터가 하지메, 즉 시작이란 뜻)가 자라면서 연애를 하고 여러 여성들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다루었다. 결국 끝끝내 다른 여성들에게는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초등학교 시절의 애인 시마모토를 그리워하는 내용.
선진국 중산층의 건조한 삶을 영위하는 주인공의 결핍과 상실감은 잘 알겠는데 그의 내면 묘사가 자꾸만 불륜을 저지른 남자의 추접스런 변명으로만 읽혀 책 읽는 내내 (이런 꼰대같은 내가) 곤혹스러웠다. 나는 완전히 감성이 메마르고 괴팍한 중년이 되어버린 걸까? 아니다, 어쩌면 이제야말로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인간으로 성장했는지도?
내용은 둘째치고 334페이지인데 거의 하루만에 다 읽었다. 별 내용 아닌 것 같은데도 그만두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읽게 만드는! 이 것이야말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하루키의 힘.


시인의 말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하다
고 중얼거렸다.
그것이 차라리 영원의 말이었다.
물끄러미
자정의 문장을 썼다.
나는 의욕을 가질 것이다.
2016년 6월
이장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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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의 시 모임에서 읽은 시인의 말.
시집은 비록 읽지 못했지만 기록을 위해 블로그에 가져온다.
이 모든 일에는 끝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언젠가 죽는다는 것.
그 사실이 때로 마음에 큰 위로가 된다.
영원히 살지 않아 영원을 꿈 꿀 수 있다.
그렇게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0의 시간에.


프롤로그 중에서
이 책은 어느 해 책 모임에 대한 기록이자, 나의 성장기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 소리를 듣는 운영자의 마음을 담으려 했다. 책 읽는 세 상을 꿈꾸며 달려온 한 독서광의 삶을 기록했다.
이런 상상도 한다. 죽음을 앞둔 시기가 되었을 때, 가장 하고 싶은 말은 '나와 책을 읽어준 분들께 감사합니다' 일 거라고.
이 책이 주제도서였던 그믐 모임에서 심금을 울리는 명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뒤늦게나마 개인적으로 손에 잡았다.
https://www.gmeum.com/meet/423
베스트셀러 저자로만 알았는데 실은 이 에세이가 먼저라고 한다.
책에 진심인 저자의 53편의 에세이.
생각만 해도 지루한 게 책인데, 책에 관해 50개가 넘는 이야기 거리가 나온다고?
저자는 머리를 드라이어로 잠깐 말리는 순간에조차 책을 눈에서 떼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언제나 궁금해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저자의 책에 대한 사랑이 정말 찐이라는 그 사실은 내가 알겠다.
오늘은 24절기 중 열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 '하 지'이다.
5개월 전 어느 날,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1월 20일 금요일. 얼음이 아직 다 녹지 않은 골목길을 국민교복 검정패딩을 입고 종종거리며 걸었다. 마침내 발걸음이 닿은 곳은 창밖으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오던 '무슨서점'
지금은 7시면 환하지만 한 겨울 이 시간은 꽤나 어둑했다.
작은 책방에 모인 사람들은 편지글을 읽고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다.
"하지가 되면 편지를 보내드릴게요"
무슨서점지기님이 말했다.
고작 6개월 뒤지만 상상이 되지 않았고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추운데, 여름이 온다고요? 그러니까, 칼바람이 들이치는 이 얼음골목에도 뜨거운 태양빛에 손부채를 부치는 날이?
오늘 편지를 받았다.
초록 봉투 속에 그믐밤 냄새가 들어있다.
"허무에 지지 마" 라고 겨울의 내가 말했다.


6월 17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행사들이 많았다지요.
BTS 페스타 / 국제도서전 / 11회 그믐밤
앞의 두 행사도 뜻 깊겠지만 17일은 음력 그믐날이니 아무래도 그믐밤입니다!
양주의 옥정 신도시를 알고 계신가요?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방문한 도시였어요. 수도권에서 나름 몇십년을 거주해서 서울을 비롯 경기권 도시들을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양주는 첫 방문이었습니다.
잠실에서 빨간 버스를 타고 갑니다.
잠실광역환승센터를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잠실 지하에 김포공항이 있다고 생각하심 됩니다. 그 규모에 놀랐어요. 2호선, 8호선이 교차하고 지하상가에 롯데월드까지 있는 잠실 지하 어디에 그런 공간이 있었는지 정말 몰랐어요. 그믐밤 덕분에 시대에 맞춰 새로운 지식들을 알아가네요.
양주에 도착. 우뚝 솟은 고층 아파트들 사이 호수공원을 발견했습니다. 세 번째 그믐밤이 열렸던 ‘구름산책’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달랐어요. 이 날은 공원에서 버스킹도 한창이었어요. 평소라면 즐거이 합류할 공연이지만 오늘은 그믐날이니 아무래도 그믐밤입니다!
이용석 작가님을 뵙고요 1부는 작가님의 활동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계기, ‘전쟁없는 사회’ 단체 소개를 비롯 활동가로의 에피소드를 들었습니다.
2부는 자유롭게 여러 질문 드렸고요.
평화는 좋지만 현재 우리 나라 같은 분단 국가 상황에서는 어렵지 않을까요? 라는 저의 질문에 이럴 때일수록 평화를 말 해야 한다고 이야기해 주신 부분이 인상에 남습니다. 태평성대에 평화 이야기 할 필요 없죠. 긴장과 대치가 있을 때 평화의 의미를 다시 생각합니다.
이번 그믐밤도 함께 해 주신 여러분 너무 감사합니다.
11번째 그믐밤, 양주라는 멋진 도시에서 ‘책방소풍’과 함께 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번 그믐밤은 서울의 마포 연남동에서 열립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릴게요.


“답답한데 저녁에 잠깐 산책이나 할까?”
가볍게 아파트 주위 산책으로 시작했는데 왠일인지 정신을 차려보니 동네 코인노래방이다!
“40분에 5천원인데, 콜?”
“40분씩이나 부를 노래가 있을까? 그냥 한 두 곡 정도면 되지”
정신을 차려보니 37분이 되어 다급하게 긴 곡을 찾아 마무리를 했다.
“노래방에 두 사람밖에 없는데 어딜 나가는거야?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들어줘야 매너지.”
“아니, 탬버린 좀 가져 오려고.”
역시 흥을 아는 남자였다.
노래방에 탬버린은 없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불필요한 모든 것을 없앴다. 룸은 하도 작아 무릎이 기계에 닿을 정도였다. 간간이 채워진 공간들에선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지만 댄스 음악조차 묘하게 슬프게 들렸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어린 시절 친구들과 우르르 갔던 노래방들, 줄이 길어 대기를 해야했던 그 때를 이야기했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나의 엔딩곡인데 오늘 서둘러 마무리를 하는 바람에 못 불렀다. 다음 번에 다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