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새섬님의 블로그
기고/강연 요청은 본 메일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kokura@gmeum.com왜 살아야 하나? 무얼 염두에 두어야 하나? 무엇을 향해 가야 하나? 그저 존재하기 위해 살아야 하나? 하지만 전에도 그는 이념을 위해, 희망을 위해, 심지어 공상이라 한들 그것을 위해서라면 자기 존재를 천 번이라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는 늘 부족했다. 그는 늘 그 이상을 원했다. 어쩌면 당시 그는 그렇게 강렬하게 원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허용된 사람이라 여겼는지도 모른다.
죄와 벌 2, 424쪽
다들 그렇듯 나 역시 역사내에 있는 식당들에는 기대감이 없는 편이다.
기차역, 버스 터미널에 있는 식당 들은 단골장사가 중요한 동네 식당과 달리 맛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가끔은 생각과 달리 제법 괜찮은 식당들도 만나곤 한다.
춘천에서 돌아오는 길, 용산역에 도착해 한촌탕반이라는 설렁탕집에 가서 불고기비빔밥, 떡만두국을 시켰다. 둘 다 간이 세지 않고 속이 편안했다.
위치는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23길 55 용산역. 동관 4층
춘천을 좋아한다. 십년 전쯤엔가 남편의 친구가 춘천에 살았다. 꼭 한 번 놀러오라는 말에 별 생각 없이 방문한 도시. 친구 부부는 구봉산 전망대를 소개시켜 주었고 밤에는 춘천MBC 근처 KT&G에서 운영하는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다음 날 아침 그 옆의 '댄싱 카페인'이라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남편의 친구는 더 이상 춘천에 살지 않은지 오래지만 우리 부부는 그 이후로 춘천을 자주 방문한다. 서울에서 ITX 청춘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 기차여행 분위기를 내다 보면 어느새 춘천역에 도착이다. 소양강 댐 부근은 춘천역에서 약간 거리가 있어서 우리는 주로 춘천 MBC 부근에 거점을 잡는다.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그냥 적당히 걷기도 한다. 닭갈비를 먹는 때도 있고 그냥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다.
오늘은 '댄싱 카페인'이 공사가 한참이라 그 옆에 '그다방'이라는 카페 (이 곳도 종종 방문하는 곳)에 왔다. 언제 와도 고요한 의암호, 머리 위론 새가 난다.
앞선 일기에 낚시글처럼 써보았지만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는 누군가의 살인예고 같은 건 아니었다. 호텔 프론트에서 왜 체크아웃 안 하고 계속 있냐! 는 문의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설마 오늘이 체크아웃 하고 비행기 타는 날이고 내가 날짜를 착각했나 싶은 거였다. 그렇다면 아주 큰 낭패가 아닌가...서둘러 비행기 일정을 살펴보니 그건 아니었다. 아마도 한국 여행사에서 현지 호텔에 1박을 덜 예약한 것 같았다. 호텔 프론트에 일단은 밤이 깊었으니 오늘은 이 곳에서 어찌 되었든 하룻밤 더 묵게 해달라고 이야기하니 알았다고 했다. 리조트는 그나마 객실에 제법 여유가 있어 우리를 당장 내쫓아야 되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한국 여행사에 전화하니 그 쪽에서 더 당황하며 너무 미안하다고 과일바구니를 방으로 올려주겠다고 한다. 나는 괜찮다고 하고 대신 비행기 시간이 늦으니 체크아웃을 원래보다 조금만 더 늦춰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여행사에서 호텔측에 이야기하고 원래도 레이트 체크아웃인 저녁 6시보다도 서너시간을 더 맘 편히 머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번 여행은 이렇게 소소하게 작은 불행이 작은 행운으로 바뀌는 등 계속 알쏭달쏭한 일들이 많았다. 이번 여행이야 말로 인생에 대한 비유라고까지 말하기엔 너무 클리쉐가 되겠지만...
작은 불행 하나는 가져갔던 소설책 하나를 깜빡 잊고 숙소에 두고 온 것이다. 게다가 책 안에는 현지에서 사용하려던 약간의 현금도 책갈피처럼 끼워두었다. 누군가 발견해서 그 책도 읽고 돈도 써 주면 좋으련만...
여행은 원래 3일째부터가 제대로다. 도착 첫 날은 숙소 안을 살펴보고 가져온 짐을 풀며 별 필요도 없는 화장품과 칫솔 등을 화장실 세면대에 늘어놓고 부산을 떨다 지나간다. 이동하느라 피곤해서 뭘 할 여력이 없기도 하다. 둘째 날은 숙소 바깥이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며 관심도 없는 산책로를 꾸역꾸역 걷고 생전 갈 일도 없는 짐의 운동기구를 둘러보는 등 역시 부산을 떨다 지나간다. 셋째 날쯤 되면 이미 숙소 안팎을 전부 둘러보았기에 별 거 없다는 걸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과 공간에 집중하며 하루를 꽤 괜찮게 보낼 수 있다. 문제는 진짜 여행은 3일째부터인데 한국의 대부분 여행상품은 3박4일로 구성되어 있다는 거다. 이제 막 좋은 걸 깨달았는데, 내일이면 집에 가야 되는 거.
그래서 하루라도 더 있고자 이번엔 4박6일의 여행상품을 선택했다.
나의 워케이션도 3일째부터 최고조를 향해 갔다. 편안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 날 밤 12시, 한 통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사진에 보이듯 리조트의 메인 공간에는 3개의 수영장이 나란히 붙어 있고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옆에 있다. 원래 투숙객들이 자유로이 오가며 이용하는 곳인데 오늘은 단체손님이 이 공간을 예약했다고 오지 말라고 한다. 대신 그 위에 단차가 있는 곳인 바는 여전히 자유롭게 이용해도 된다고.
시끄럽게 웬 단체손님이야 라고 투덜거렸는데 저녁 시간이 되어 '마린 헬스'라는 이름의 회사가 워크샵 공간을 꾸미길래 왠지 흥미가 생겨 옆에서 구경했다. 그러다 회사측에서 불러온 초대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는 절로 흥이 돋아 무대에서 조금 멀리 떨어지긴 했지만 호텔 투숙객들이 앉을 수 있는 바 자리에서 그들의 행사를 함께 즐겼다. ㅎㅎ
Marine Health 라는 개성 없는 회사 이름에 처음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지만 직원들이 화기애애하게 행사를 즐기는 모습과 인종도 굉장히 다양해 보이는 구성원들이 궁금해 회사를 찾아보고 급관심이 생겼다.
늦게까지 살아남은 매미가 맥없이 맴맴 울다 소리를 그쳤다. 한철 살다 죽는 건데 저렇게 대충 울어도 되는 걸까.
66쪽
사람들은 더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를 낳으려 들지 않는다. 연애하지도 않을 것이다. 사랑을 염원하긴 해도 거기에 선뜻 발 담그지 않는다.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사랑과 연애라는 모험은 스릴을 즐기거나, 많은 자원을 가져서 얼마든지 그 손실을 메울 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284쪽
인회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녀가 잘하는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회는 사랑을 할 수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328쪽


이 곳은 나트랑의 스완도르 리조트라는 곳이다. 동남아 지역의 다른 휴양지 리조트와 비교하여 크게 다를 것은 없으나 all-inclusive 라고 하여 모든 음식과 주류가 무제한! 제공된다. 리조트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1시였는데, 식당이 그 때도 문을 열고 있어서 저녁을 먹었다.
무제한이라고 음식의 질이 형편없지도 않다. 제법 괜찮은 수준의 다양한 음식들이 상시 제공되고 있어 충만한 행복감과 더 충만한 죄책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여행을 '워케이션'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특별한 일정 없이 낯선 장소로 떠나 그 곳에서 일과 휴식을 병행하는 형태.
베트남 나트랑으로 4 박 6일의 워케이션 떠나는 첫 날.
공항 내 미니 기차 타고 도착한 1터미널 탑승동에서 저녁 식사도 하고 좀 편안히 앉아 일도 할 만한 곳을 찾아보았는데 제일 처음 눈에 들어온 '라그릴리아'
다른 데 더 좋은 곳도 있을 것 같아 옆에 푸드코트도 가봤는데 사람이 많고 먹고 싶은 타코벨은 문을 닫아 남은 메뉴들은 그닥 땡기지 않았다.
다시 '라그릴리아'로 돌아가서 그냥 아무 자리에나 앉았는데 쓸쓸한 공항 전망도 좋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옆에 콘센트까지 있어서 잠깐 일도 하고, 저녁 식사도 맛있게 하고. 시작은 좋다.